왜냐하면 본래 일본식 이름이 조선식 이름임.

 

연개소문

한자로 적으면 연개소문이지만

일본서기를 보면 고구려식 발음은 '이리카수미'라고 적혀있음.

 

목라근자(모쿠라 콘지라 발음함. : 백제) , 을지문덕(고구려) , 연개소문(=연개소문이라 적고 '이리카수미'라고 발음. :고구려) , 도수류금류(고구려)

 

이런 이름들은 오늘날 김인후 박말자 김윤복 같은 중국식 이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남.

 

일본식 이름도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 ,

무전신현(타케다 신겐) ,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라 발음) , 가등청정(카토 기요마사라 발음) ,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라 발음)

 

이런 식임.

 

본래의 조선식 이름은 일본식 이름과 비슷함.

 

 

그리고 일제시대 창씨개명에서 개명은 강제가 아니고 자유임.

 

그리고 창씨는 강제가 아님.

 

그냥 조선인이 조선식 성명을 계속 고수하며 2등신민으로 지내고 싶다면 자유로 내버려두는데.

 

대신 사회적 진출이 힘들게 사회적으로 제한하는 반강제적인 정책을 썼음.

 

 

 

그럼 왜 일본제국은 조선인에게 창씨를 요구했는가?

 

 

일본제국 당시의 씨氏는 천황에게 속한 거대한 민족 공동체를 의미함.

그래서 조선인에게 씨를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한건 거대한 영광임.

 

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민족말살이자 일본인으로의 완벽한 동화겠지만.

 

 

 

그리고 미나모토나 토요토미란 씨를 쓰라고 강요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글자의 씨를 만드는게 허락됨.

 

김씨 이씨 박씨 노씨같은 흔하디 흔한 중국식 성씨 갖다버리고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씨를 만들라고 하는게 뭐가 민족말살임?

 

 

해울씨에 

이름은 라임

 

이렇게 만든다 해봐라

 

얼마나 지리냐 

 

김성인

김일성

김인후

김도균

이딴 이름이 멋짐?

이런건 중국식 이름임!

 

 

자 사료로 증거를 하나 하나 볼까?

 

 

일본서기 : 고구려와 신라가 화친하자, 백제가 원병을 요청함

날짜(흠명 13년) 552년 5월 8일

연계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연계자료

 

5월 무진삭 을해(8일)에 백제, 가야, 안라가 중부(中部) 덕솔 목리금돈(木刕今敦) [주]

과 하내부(河內部) 아사비다(阿斯比多) [주]

등을 보내어 “고구려와 신라가 화친하고 세력을 합쳐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고 합니다 [주]

. 따라서 삼가 원병을 요청하여 먼저 불시에 공격하고자 합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은 천황의 칙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조를 내려 “지금 백제왕, 안라왕, 가라왕과 일본부의 신 등이 함께 사신을 보내 상주한 상황은 잘 들었다. 또한 임나와 함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하여라.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늘이 지켜주는 복을 받을 것이며 또한 황공하신 천황의 영위에 의한 가호가 있을 것이다.”라고 명하였다.

 

五月戊辰朔乙亥, 百濟·加羅·安羅, 遣中部德率木刕今敦·河內部阿斯比多等奏曰, 高麗與新羅, 通和幷勢, 謀滅臣國與任那. 故謹求請救兵, 先攻不意. 軍之多少, 隨天皇勅. 詔曰, 今百濟王·安羅王·加羅王, 與日本府臣等, 俱遣使奏狀聞訖. 亦宜共任那, 幷心一力. 猶尙若玆, 必蒙上天擁護之福, 亦賴可畏天皇之靈也.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 가야 안라가야의 오리지널 조선식 이름

‘목리금돈’ , ‘아사비다’

이게 본래 조선식 이름임.

하내부 출신 아사비다는 가야 안라에 파견되어있던 야마토 정권 출신 외교관인데 이건 그렇다쳐도

목리금돈 이건 백제 사람임. 근데 성씨가 목리씨이고 이름은 금돈임.

 

오늘날 한국 학교에 어떤 학생이 '목리 금돈'이란 성명을 쓰며 다닌다 보자

얼마나 이질적이냐?

 

 

자 일본서기의 황극천황기를 보자.

 

//황극천황기

丁未, 遣諸大夫於難波郡, 檢高麗國所貢金銀等幷其獻物. 使人貢獻旣訖, 而諮云, 去年六月, 弟王子薨. 秋九月, 大臣伊梨柯須彌殺大王, 幷殺伊梨渠世斯等百八十餘人. 仍以弟王子兒爲王. 以己同姓都須流金流爲大臣.

"날짜(황극 원년) 642년 2월 21일

연계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연계자료

정미(21일)에 대부들을 난파군(難波郡;나니하노코호리) [주] 

에 보내어, 고구려국이 조공한 금, 은, 동과 그 헌상물을 점검 [주] 

시켰다. 고구려의 사인은 바치는 일이 끝나자 “작년 6월에 제왕자(弟王子) [주] 

가 죽었습니다. 가을 9월 [주] 

에는 대신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주] 

가 대왕을 죽이고 아울러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 등 180여 명을 살해 [주] 

하였으며, 제왕자의 아들 [주] 을 왕으로 삼고 동성(同姓)인 도수류금류(都須流金流) [주] 

를 대신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일본서기 황극천황기

 

 

황극천황기를 보면 연개소문이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하며 중국몽 따르던 병신 왕이랑 귀족들 모조리 죽이고

정권을 잡은 사건을 적고 있다.

근데 여기서 연개소문을 '이리가수미'라 적고

연개소문한테 죽은 재상의 이름을 '이리거세사'라 적고있다.

그리고 연개소문은 같은 성姓 계통 사람임 '도수류금류'라는 자를 정권의 2인자로 삼았다.

중국 기록을 보면 연개소문은 정변 후 안시성 성주랑 싸웠다가 화해했다. 그냥 화해했을린 없을거고

정권 1인자, 2인자 구도를 정했을 것이다.

그럼 사서에 성명이 전혀 전하지않는 안시성 성주의 이름은 사실 성은 도수류 이름은 금류였을 것이다.

우린 보통 고구려하면 떠오르는 이름으로 고주몽 연개소문 연남건 이런 식의 이름을 떠올린다.

근데 정작 연개소문은 '이리가수미'라 적혀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삼국사기 '천개소문전'을 보면 "개소문(蓋蘇文)은 혹은 개금(蓋金)이라고 하는데. 그의 성(姓)은 천씨(泉氏)이다.'

蓋蘇文 或云蓋金, 姓泉氏, 

이렇게 적혀있다.

왜 연씨가 아니라 천씨라 적혀있느냐?

당唐나라는 연개소문의 이름을 자기들 사서에 적을 때 당태종의 아버지 이름인 이연李淵의  연淵이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연淵과 똑같으니 이런 불경한게 어딨느냐 네이놈 개소문~하며 

연淵(연못 연)이라 안 적고 천泉(샘물 천)이라 적어 '천개소문'이라 적었다.

사대주의자 김부식은 감히 고구려한테 천자의 나라인 당唐나라한테 깝치다가 망했다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끝 사론史論에 

적을 정도로 지독한 사대주의자였다. 그래서 천개소문을 그대로 썼다.

 

근데 이 삼국사기 천개소문전에서 주목해볼만한게 또 있다.

개소문蓋蘇文이란 이름을 '개금蓋金'이라 적고 있는 것이다.

혹시 '소문' = 금金이 아닐가? 고구려 말에 '소문'이란 한자로 적힌 어떤 특정한 말이 있고 그 말의 뜻이 금속 금金이 아닐까?

한국 학자들은 열심히 사서를 뒤지다가 삼국사기에서 후백제의 왕자 금강金剛을 수미강(須彌康)이라고도 적고 있는데. 

이 둘은 동일인물이다.

금金을 수미須彌라고도 적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후백제는 백제를 계승한 나라다.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갈라져나온 부여 계통의 나라다. 그래서 고구려,백제 말이 어느정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면 고구려,백제 둘 다 '수미'란 단어가 있고 그 수미란 단어의 뜻은 '금속(金)'이 아니었을까 라고 

한국학자들은 밝혀냈다. 한국학자들 독자적 발굴이 아니라 일본학자들 논문 베고 베낀걸 수도 있다.

 

일본서기 기록을 통해 보건대 연개소문의 성씨인 연淵.  연淵은 사실 고구려 말로는 '이리'라 불렸고 

개소문 혹은 개금의 '개'는 고구려 말로는 '카' 혹은 '가'라고 불렸고 

소문 혹은 금이라 적힌 것은 고구려 말로는 '수미'라 불렸다.

결국 연개소문의 성씨는 이리  이름은 카수미 혹은 가수미인데. 이것을 정작 고구려 사람들이 한자로 적을 때는 연개소문이라 적은 것이다.

(이래서 일본서기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사료이며 일본서기에 적힌 임나일본부도 허구가 아니라 ㄹㅇ이라고 

보는게 맞다.)

근데 이와 비슷한 경우가 일본에도 있다.

일본의 풍신수길,직전신장,무전신현도 한자로 적을 땐 풍신수길,직전신장,무전신현이라 적지만 정작 일본말로 발음 할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오다 노부나가,타케다 신겐이라 발음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선민족의 전통 이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