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수프(이하 돌죽)라는 로그라이크의 시초격 턴제 게임이 있음.

게임의 목적은 단순한데, 던전 심층에 있는 조트의 오브라는 보석을 갖고 던전 밖으로 나가면 클리어임.


고전 로그라이크 게임답게 난이도가 더럽게 높았음.


가장 쉽다는 미노타우르스 광전사로도 수십번을 타죽고, 맞아죽고, 중독되서 죽고...


어느새 나도 지쳐갈때쯤, 이번엔 제발좀 깨보자는 생각으로 캐릭터 이름을 'nodye'로 입력함.


그렇게 불사라는 이름을 가진 미노타우르스 광전사가 던전을 돌파하기 시작했음.


nodye는 초반 구간에서 종결템을 먹거나, 고스펙 장신구가 미니던전에서 뜨는 등 운이 기가막히게 좋았지만 그만큼 죽을 위기도 많았음.


오우거들한테 둘러쌓이고, 텔포스크롤을 찢었더니 산성드래곤 눈앞으로 배송되고, 저층에서 후반 네임드가 튀어나고....


매턴이 고민과 긴장의 연속이었음.


그렇게 죽을 위기를 꾸역꾸역 넘기고 조트의 오브가 있는 방에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열쇠가 있는 서브던전으로 들어갔음.


nodye의 환상적인 운덕분에 nodye는 그시점을 아득히 뛰어넘는 스펙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 생각없이 자동 탐색, 자동 전투 키를 연타했음.


그렇게 서브던전 마지막 층에서 던전 구석진곳에 있는 열쇠를 주움.


그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몬스터 무리가 우르르 몰려옴.

리치 세마리, 아이스 트롤 무리, 오크 전사와 마법사, 사제 삼종세트 무리, 소형부터 중형 악마들까지...


당황한 나는 공격키를 연타하다가 hp가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지자 정신을 차리고 텔포 스크롤을 찢으려고 함.


그런데 스크롤이 안써졌음.


이 좆같은 게임엔 스크롤 사용불가 상태이상이 있었고 그 덕분에 난 패닉에 빠져 쳐맞고 있는 nodye를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음.


결국 nodye는 그렇게 클리어를 목전에 두고 사망함.


죽은 캐릭터 로그를 멍하니 보던 난 허탈해져서 그대로 컴퓨터를 꺼버림.

이딴 병신같은 게임 두번 다시 하나봐라라고 소리치면서.


그렇게 한 두달 정도? 돌죽은 커녕 바빠서 게임도 거의 못했음.

그렇게 nodye가 잊혀져갈때쯤 주말에 시간이 남아서 컴퓨터를 키고 할만한 게임을 찾기 위해 파일을 뒤지다...


돌죽이 눈에 딱 들어왔음.

수십초 동안 진지하게 할까말까 고민하다가 걍 딱 한번만 더 해보기로함.


익숙한 로딩창이 끝나고, 다시 닉네임을 쓰라하길래 그냥 아무 생각없이 lasttry라고 씀.

이번에도 미노타우르스 광전사. 할줄 아는게 그거 밖에 없었으니까.


캐릭터가 생성되고 '조트의 오브가 던전 어딘가에 있다지만 그것을 찾아온자는 아무도 없었다...' 라는 이제는 지겨운 메세지가 뜸.


별생각없이 자동탐색, 자동전투 키를 연타하다



이렇게 생긴 유리벽으로 된 방을 발견함.


그 후 메세지가 떠오름.


'nodye's ghost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그안엔 nodye's ghost라는 몹, 아니 내가 생성한 캐릭터 중 가장 강했던 미노타우르스 광전사의 영혼이 있었음.


이 개좆같은 게임은 죽은 캐릭터가 하나의 몹으로 나타날 수 있었단걸 알게되자


난 정말로 nodye를 구해주고 싶었음.


하지만 엔딩 직전까지 갔던 하이 스펙 미노타우르스 광전사에게 내 3렙따리 캐릭터는 종잇장 보다 더 쉽게 찢길것이 분명했음.


그렇기에 나는 클리어가 아니라 nodye의 안식을 위해 던전을 내려가기 시작함.


매 턴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산기까지 두드려가면서 lasttry를 키웠음.


하지만 lasttry는 nodye처럼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와 같은 스펙을 갖추긴 어려윘음.


결국 난 도박을 하는 마음으로 클리어를 위해서라면 굳이 안가도 되는 고인물 용 서브던전, 판데모니움에 들어감.


lasttry는 수많은 악마들을 썰어재끼고, 또 악마들에게 몸이 찢길뻔한 위험을 수차례 돌파해나가면서 성장해갔음.


그렇게 어느 순간 나는 nodye를 이길수있다는 묘한 확신이 들어 다시 던전을 거슬러 올라감.


nodye가 갇혀있는 방의 문 앞에선 lasttry를 지켜보면서 숨을 들이마신 후 문 여는 키를 누름.


nodye는 정말로 강했음.

지옥까지 찍고온 lasttry가 몇번이나 도망치고 다시 도전해야할만큼. 


수차례 도전한 끝에, 겨우 난 nodye에게 안식을 선물해줄 수 있었음.


왼쪽 아래에 뜬 'you kill nodye's ghost!'라는 메세지만 없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 스펙이라면 lasttry로 엔딩을 볼수있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져서 그냥 그대로 게임을 종료함.


좆같은 게임 다시 하면 내가 개새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