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한들 감옥에 남녀를 따로 두는 것은 오랜 관례.


그러한 관례조차 사장시키고 남녀를 합사시킨 무자비한 창살의 내부에서.


내게 몸을 기대던 그녀가 말을 툭 던졌다.


“넌 내 모습이 이렇게나 추한데 아무런 미동도 없네? 꺼려지진 않아?”


“어째서 꺼려해야 하지?”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에 세나카 아르실라는 여상스럽게 답했다.


“흉하니까. 너를 제외한 모두가 꺼려왔는걸.”


흉하다라.


흉하다는 것은 네 뺨을 가로지르는 자상을 말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얼굴 반절을 주름잡는 화상 자국? 혹은 빛을 잃은 한쪽 눈동자?


여인인 세나카에겐 의기소침한 요소일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내 결론은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대화를 이어갈 가치를 못 느끼는 주제였다. 그러므로 나는 단번에 일축했다.


“시답잖아.”


“아하하. 이래서야 믿을 수밖에 없네. 피차 죽기 전까지 얼마나 남았다고…그래서 말인데.”


이런 나를 그간 오래도 봐온 세나카였으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넌 어떻게 그들과 다를 수 있는 걸까. 내 비릿한 외모가 신경 쓰이지 않아?”


“인간이 수백 페이지로 이루어진 책이라면, 외모는 고작 첫 페이지의 서두에 불과할 뿐이니까.”


세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머리를 어깨에 툭 부딪치며 실소했다.


“자존감 낮은 주제에 퍽이나.”


“피차일반이잖나.”


“후후, 그러게. 그러면 우리 서로의 상처나 핥아줄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결국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세상을 등진 대가로 사냥꾼의 화살을 맞으며, 덫에 걸려 허우덕대는 두 마리의 오만한 짐승. 그것이 우리를 일컫기 마땅한 표현이다.


극이 다른 자석처럼 끌렸던 우리는 위로가 서툴렀다. 그저 베어나온 상처를 핥아 주는 정도의 헛짓거리를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다.


우리 둘 모두 바보였다.


“오즈.”


“응.”


“손 잡아도 돼?”


“그리하여 네 상처가 핥아진다면.”


“충분하지.”


가끔 세나카는 복수에 허덕이다가도 약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래서 세나카라는 인간을 책으로 비유하자면 무척이나 어려운 고문서였다.


사실 본인의 연약한 일면은 수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차지하는데, 세나카는 그걸 감추기 위해 책의 표지부터 서장까지 온통 난해한 언어로 도배를 해 놓는다.


내가 그 문자를 해독하고 읽어나가는 시간이 참 길었다. 만약 세나카의 약함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우리에겐 다른 길도 있지 않았을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즈.”


“왜.”


“안아줘. 꼬옥.”


“이렇게 응석이 많은 성격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한쪽은 냉혹한 줄 알았더니 실은 응석쟁이고, 한쪽은 목석 같이 굴더니 오냐오냐 다 받아주고...”


세나카가 활짝 웃었다.


“우리 제법, 잘 맞는 짝꿍이었네!”


처음으로 드러낸 그녀의 눈부신 미소가 처형날의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여명빛에 화사하게 비추어졌다.


나는 점점 벌어져 가는 세나카의 상처를 핥았다. 눈부신 미소와 함께 흘러나오는 따뜻한 눈물이야말로 그녀로부터 흐르는 붉은 피였다. 더러운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내는데도 세나카는 아무런 불만도 토해내지 않았다.


세나카는 오히려 한술 더 뜨며 내게 요구해 왔다.


“속삭여줘.”


“무엇을.”


“뭐든지. 여동생에게 들려주던 동화도 좋고, 나를 칭찬하고 긍정해 줘도 괜찮겠고.”


“실없네.”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가져다 댔다. 허나 그러고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안 떠올라서 한참을 침묵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기대가 흘러넘치는데 부응하지 못 해서 미안했다. 그러다 속살거린다는 것이 익숙치 않은 위로였다.


너는 대단해.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쉬웠어. 고지가 눈앞이었는데.

세상이 우리를 버렸을 뿐, 네가 못 한 게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 했다. 뭐라도 더 말해야 할 텐데, 세나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는 것처럼 눈웃음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윽고 세나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즈, 나 있잖아. 어쩌면 널...”


“….”


내가 경청하고자 입을 다문 사이,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을 정정했다.


“오즈.”


“말해.”


“…입을 맞춰도 될까?”


“그리하여 네 상처가 핥아진다면.”


“그럼 네 상처는?”


“….”


“오즈의 상처는 핥아지는 거야?”


“이런 형편에 내 상처를 묻는 건가.”


세나카는 내가 해독해낸 그대로 바보였다. 목이 날아갈 형편인데도 내 상처 따위를 신경 쓰는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본모습에 가까울 테지.


그래서 나는 행동으로 답을 주기로 했다.


“충분하지.”


그 한마디를 싣고, 나는 평소라면 손도 못 댔을 세나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 읏.”


입술이 맞물리며 세나카의 숨결이 당황과 함께 새어나왔다. 그러나 곧 현상에 순응하는 것처럼 그녀도 눈을 감고 느껴지는 거칠거칠한 촉감에 집중했다.


좋았다.


냉기를 감당 못 해 부르튼 입술이 이렇게까지 고혹적일 줄은 몰랐다.


내가 세나카에게 집중하는 만큼 세나카의 의식 역시 지금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세상에 대한 증오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던 그녀는 어느새 완전히 내 것으로 변화했다.


그 변화가 시리도록 몽환적이면서도 애달팠다.


끝끝내 이 지경이 돼서야 서로를 온전히 마주했다는 현실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우리다웠다.


그 한순간의 환희가 끝난 직후.


몽환은 물러가고 서로의 거리감이 벌려지며 이별의 시기가 다가왔다.


오직 그 짧은 순간만이 내 것이었던 너는 아련하게 미소 지었다.


“오즈.”


“응.”


“넌…나를…”


세나는 무언가를 전하려다 문득 호흡을 끊었다. 그러곤 미련을 내려놓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며, 조곤조곤 목소리를 냈다.


"…아냐. 아무것도. 그냥, 하나만 말해 줬으면 좋겠어."


“무엇을.”


“오즈.”


그녀가 다시금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곤 바깥으로부터 침입하는 사형집행인의 기척을 적실히 느끼며 마지막 다짐을 받아냈다.


"언제 어디서든, 내 편이 되어 줄 거지?"

"네가 있다면. 언제까지고."


이에 세나는 피식 웃는다.


"뭐야, 그 맥빠지는 대답은... 내가 곧 사라진다고... 사라진다고... 그러기는..."


"나는, 세나카."


내 덧말은 거기서 단말마처럼 무자비하게 끊겼다.


창살이 열리는 소음이 귀에 끔찍한 이명을 난도했고, 집행인이 그녀의 목에 걸린 구속구를 당겨서 우리의 간격은 영원히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버렸다.


나는 아직 입술에 감도는 따뜻한 온기를 잊지 못 한 채 세나카에게 손을 뻗었다.


다섯 걸음.


딱 그 정도의 거리가 대륙의 끝과 끝처럼 먼 것 같았다.


열 걸음.


집행인의 뒷모습에 가려, 감옥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옥문이 닫혀 그녀가 맑은 볕으로 나아갔을 때, 나는 뒤늦게 깨달은 감정을 인격과 함께 토해냈다.


아무리 토해내더라도 결코 마르지 않을 감정. 그것에 켜켜이 깃드는 온기를 한없이, 한없이, 토해냈다.


이렇게 서툴 줄은 몰랐다.


너도, 나도.


멈출 줄 모르던 우리의 과거가 이런 식으로 목을 조여올 줄은 몰랐다.


그것이 사무치도록 후회될 거라는 것 역시 알지 못 했다.


전부, 어리석었다.


어느덧 자리잡은 감정을 겉표면으로 드러내면 네가 불편할 것 같아서.

마지막에라도 승리한 너를 보면 만족하겠지 싶어서.


일부러 차갑게 굴었고, 의식적으로 외면해 왔다.


이미 소중한 것을 한 번 떠나보내 놓고선, 무엇 하나 교훈을 얻지 못 하는 서툰 사람.


그것이 너와 나였다.


“세나카….”


네가 있으면, 같은. 그런 조건부의 대답 따위를 해서는 안 됐다.


응, 이라고. 그 한마디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허나 교수대로 끌려가는 너의 뒤를 목시하며, 나의 맹세는 가슴 깊숙한 근원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세나카…너는, 너는….”


여태까지 내가 숨쉴 장소를 마련해 줬지. 그때부터 너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만약 이 세상에서 네가 사라다면 나는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을 거야.


대답을 망설인 건 그래서였어.


공허에 질식하는 나로서는 네 편이 되어 주더라도 무용할 테니까.


네게 쓸모가 다한 백정일 뿐일 테니까.


하지만 그 한순간의 망설임이 네 최후를 고독하게 몰아갈 줄은 몰랐어.


그렇기에 뒤늦게나마 맹세를 남길게.


만에 하나.


다시 한 번 네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언제까지고 네 편으로 남겠노라고.


죄는 함께 짊어지고, 행복은 있는 힘껏 안겨 주리라고.


우리가 만났던 그날. 찬란하게 맺혔던 눈꽃에 대고 맹약을 맺겠다.


“세나카. 너를….”


서로의 상처를 핥는 짐승이 아니라, 너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을 쉬는 인간인 내가.


무엇을 원하든간에 편이 되어 주고 싶은 내가.


언제까지고 너를 사랑하겠다.


삶의 지평선에 다다른 네가, 다음 지평선을 걸어나갈 준비가 될 때까지.


외로움을 잘 타는 너의 옆을 지켜주리라.




너를 좋아해.


나의 세나카 아르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