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쟁이 인생 26.

복상사로 죽었다아니사실 잘 모른다.

 

내가 죽은 이유가 정말로 복상사인지다른 이유 때문인지.

 

사실 다 필요 없다죽은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

그냥 엄청나게 추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고개를 내저었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은가.

 

아카데미물에 빙의했다.

문제는 이 아카데미물.

 

야겜이라는 것이다.

 

내가 죽기 전 마지막 반찬으로 삼았던 그 게임이다.

 

주인공은 아리스평민이지만 아카데미에 수석으로 합격한 천재 검사.

외모는 당연히 이 게임의 주인공인 만큼 이쁘다실력 역시 수석 합격인 만큼 굉장하다.

 

그런데 이 게임기본적으로 주인공이 능욕당하는 것을 감상하는 게임인 만큼 심각한 약점이 존재했는데.

 

무려 피 공포증을 지니고 있었다.

 

천재 검사인데 피를 무서워한다.

 

이것만으로도 골때리는데무려 한 번 패배하면 특성으로 도 M‘과 스킬로 자폭이 생성된다.

도 M는 말 그대로 좋지 못한 상황에 흥분을 하는 것을 뜻했고.

 

자폭은 지루한 전투를 한 턴에 끝내서 빠르게 능욕씬을 보라는 의미로 만들어둔 것이다.

 

그것으로 끝일까?

 

그럴 리가자폭을 누르면 레벨이 1씩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존감이 팍팍 깎여나간다.

 

결국 야한 장면을 위해 마구잡이로 자폭을 눌렀다간 나중에는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도 강제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설정.

 

다만그것으로 끝이라면 나는 주인공이 마조히스트가 되건 능욕중독자가 되건 상관하지 않았겠지.

 

내가 박히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이 게임의 엔딩에 있었다.

주인공이 일정 수치 이상 능욕을 당하면 검을 완전히 놓아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무려 세계가 배드엔딩이 나버린다.

그 누구도 아닌 주인공아리스의 손에 말이다.

 

검을 놓은 아리스는 완전히 타락하여 서큐버스퀸이 된다.

그리고 마왕의 수족이 되어 마왕과 함께 세계를 멸망시킨다.

 

사실과정만 보면 마땅히 멸망해도 좋은 세계였지만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죽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주인공인 아리스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한 번도 패배를 겪지 않게 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패배를 겪으면 생성되는 특성과 스킬이 미쳐 날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절대로 못 막는다.

 

아니...”

 

생각할수록 억울하다.

 

딸치다 뒤진 것도 너무 병신같아서 억울한데 하필 빙의를 해도 이딴 게임이다.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심지어 내가 빙의한 대상조차 어이없을 지경이다.

 

초반부 입학식 파트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금발 태닝 양아치.

 

그게 나다.

 

적어도 주인공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기 전이었으면 하고 바래 보았지만.

 

이미 입학식은 치러진 뒤.

 

내가 이 몸에 빙의했을 때는 이미 주인공에게 시비를 턴 후라는 것이다.

그냥 시비를 턴 것도 아니고 무려 우하하하 팡파레같은 대사를 면전에다 내뱉은 직후.

 

절대로 친근하게 다가서지 못한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관계를 회복시킬만한 이벤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서 주인공이 능욕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내가 애써 무시하고 있을 뿐.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곤 내뱉었다.

설마 내가 이런 대사를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상태창.”

 

설마 초반부 주인공에게 피 공포증을 일깨워주는 병신이라고 상태창도 안 보여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국룰처럼 반투명한 푸른 창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악당A]

[레벨 : 3]

[특성 무기술F]

 

...”

 

진짜 보잘 것 없는 스펙이다.

 

참고로 이 시점의 주인공 스펙은 다음과 같았다.

 

[아리스]

[레벨 : 10]

[특성 검술B, 끈기B, 노력파B]

 

아무리 생각해도 차이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B급 특성만 무려 3.

 

내가 고작 F급 특성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 우울해지는 일이다.

 

게다가 난 이름도 없다무려 이름이 악당A.

 

아니이름이 없는 거야 둘째치고 내가 누굴 도울 상황이 아니다.

 

단순히 스펙을 비교해봐라.

이게 말이나 되는 것 인지.

 

B급 특성이면 당장 기사급 성취였으며, B급 특성들의 조화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말 그대로 괴물이라 불리기에 적합하다.

피 공포증만 없었다면 말이다.

 

피 공포증을 치료할 방법?

 

있기야 하다어딜가나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능욕당하지 않고 플레이하여 결국 피 공포증을 치료마왕을 해치우는 루트가 있었다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그 루트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듣기만 했다.

 

아니상식적으로 딸치려고 가볍게 실행한 게임의 모든 공략루트를 외울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고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야한 것을 보기 위해게임 진행을 위해 알아야 할 것만 알고 있는 어설픈 플레이어였다.

 

전투?

 

자폭 버튼이 생기자마자 무지성 자폭만 해서 능욕씬만 봐왔다.

 

새삼스럽게 내가 정말로 좆됐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