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메이드. 저택을 관리하는 사용인. 그리고 여러 환상이 있는 그런 직종.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건 한 순간. 낭만적인 사랑도, 낭만적인 만남도 없는 그저 쳇바퀴를 굴러가는 일상.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서로 힘들기에 의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생긴 사용인들만 있어서 서로 빠져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저는 가주님이 불러서 왔을 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서로 으르렁거릴 일도 아니지 않나요? 일단 들어갑시다. 예의를 갖춰서."

 

하우스 키퍼 아르데아와 집사장 타르하. 서로 관리직의 최상위에 있기에 할 일도 많고 관리해야 할 인원도 많은 두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용되어 능력을 인정받아 역대 최연소로 세하르 가의 집사장과 하우스 키퍼가 되었지만 그 뿐이었다.

 

나이가 어리기에 종종 무시당하는 일도 있었으며, 다른 귀족들을 접대할 때도 이상한 추문이 날아왔으니까. 물론 가주님이 도와주셔서 사전에 차단해 주었지만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일. 게다가 집사장은 나보다도 어려서 혼약 제의도 많이 들어온다.

 

나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혼기가 찬 건 맞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래도 스물 다섯이면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데.

 

그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자각하고, 집사장에게 말을 건넨다. 가주님이 부르셨는데 문 앞에서 질질 끄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먼저 말하시죠. 아무리 그래도 가주님과 같은 남자인 분이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연장자가 먼저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저보다도 더 오래 계셨으니까 실질적으로는 저보다 위일 텐데."

"가주님 앞에서 위 아래를 따지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고, 집사장이나 하우스 키퍼나 둘 다 직위는 비슷해요. 그러니까 어서."

"예, 예, 알겠습니다. 아르데아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러면서 타르하는 가주실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청한다.

 

"집사장 타르하, 세하르 가의 가주 베토 세하르 님의 부름에 답하였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 질문에 돌아오는 중후한 목소리. 가주님의 목소리다.

 

"들어와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끼이익-

 

조금은 낡은 듯한 문이 열린다. 하우스 메이드가 가주실 관리를 안 하는지 소리가 조금 거슬린다. 나중에 기름칠 하라고 전달해야지.

 

“아르데아도 왔군.”

“하우스 키퍼 아르데아. 세하르 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타르하, 아르데아. 일단 앉게나. 일으켜 세워서 할 말이 아닐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나란히 소파에 앉는 아르데아와 타르하. 각 사용직의 최상위 관리직인 만큼 동시에 불려나가는 일이 없던 건 아니지만, 나란히 앉는 건 또 오랜만이다. 이렇게 나란히 앉게 한 경우에는 중요한 말이 오가곤 했으니까.

 

“너희가 여기에 있던 지 얼마나 됐지?”

“저와 타르하 집사장 말입니까? 일단 저는 대략 11년쯤 됐고, 타르하 집사장은 9년 정도 된 것 같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하우스 키퍼인 아르데아는 11년 4개월, 저는 8년 10개월 정도 있었습니다. 2년 반의 차이를 두고 각각 하우스 메이드와 집사로 고용되었으니까요.”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집사장 자리는 놀음으로 딴 게 아닌가 봅니다?”

“이 정도는 관리직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소양이지요. 아르데아.”

“오래도 있었군. 불편한 건 없나? 이번에는 타르하 집사장이 대답하게.”

“딱히 없습니다. 일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불편한 게 아니니까요.”

“역시, 유능한 집사장과 하우스 키퍼답군. 믿음직해.”

“감사합니다. 가주님.”

“감사합니다. 가주님.”

 

가끔씩 칭찬을 해주시던 가주님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밑밥을 까시는 걸까?

 

“그렇다면 다시 묻지.”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 가주님이 진중해질 때 나타내는 눈빛이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궁금하다. 자세를 바로 잡으며 가주님의 말씀에 경청한다. 타르하도 마찬가지였다.

 

“타르하, 아르데아.”

“예, 가주님.”

“그러면, 지금까지 연애는 해 봤는가?”

“……. 예?”

 

하지만 가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당혹스러운 말이었다. 타르하도 나도 얼빠진 대답을 내뱉었다. 원래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다. 나야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으니까 별 상관 없기는 한데, 너희들은 내가 고용한 이후로 단 한번도 연애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연애. 사랑.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나나 타르하나 어린 나이에 고용되어 온갖 일을 도맡아 하며 능력을 보여 여기까지 온 것이었으니까.

 

누군가는 일 중독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출세에 미쳐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아니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다 한 거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메이드들을 이기고, 그들에게 책잡히지 않게 스스로를 증명하며 여기까지 올라온 것일 뿐.

 

일은 많지만 봉급도 많다. 언젠가 갑작스럽게 이 저택에서 나가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모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세하르 가의 하우스 키퍼가 되었고, 나보다 2년 반 정도 뒤에 집사로 고용된 타르하는 나와 같은 수순을 거쳐 집사장이 되었다.

 

악착같이 살아온 나나 타르하나 연애는 둘째 치고 저택의 일에 파묻히는 게 다반사. 그걸 알고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저 순수한 호기심에 그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답은 드려야 하는 게 맞겠지.

 

“없습니다. 하우스 메이드로 고용된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저도 집사로 고용되어 교육받은 이후로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계약을 하나 하지.”

 

그에 가주 베토는 갱신된 계약서 두 장을 아르데아와 타르하에게 내민다.

 

“이건?”

“가주님, 계약을 갱신할 때가 온 겁니까?”

“마지막 조항 하나만 추가했다. 잘 읽고 서명하도록.”

 

둘의 계약서는 각자 하우스 키퍼와 집사장으로 승진했을 때와 똑같았지만 가주의 말대로 마지막에 단 한 문장이 추가되었다.

 

[3개월 내로 서로의 연애 상대를 데려올 것.]

 

“가주님, 이게 뭡니까?”

“말 그대로다. 3개월, 단 3개월을 주지. 그 동안 자네들의 일은 메이드나 집사 중 연차가 높은 인원을 위주로 하여 대체할 테니, 서로 사랑할 사람을 찾아 오도록.”

“3개월 동안 휴가를 가란 말씀입니까? 휘하 메이드 관리에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합니다.”

“저도 제 밑에 집사들 관리하는 게 힘듭니다. 게다가 일의 양도 꽤 있는데 순순히 받아들일지도 의문입니다.”

“정 안되면 내가 해결하면 된다. 어차피 둘의 일은 가주 대리 업무가 대부분 아니던가?”

 

호탕하게 업무를 대신하겠다고 하는 가주님. 이대로면 사용인 실격이다. 계약서를 무르면 당장 쫓겨나고, 계약하자니 연애 상대가 문제다.

 

‘어쩌지? 스물 다섯의 여인을 연애 상대로 데려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고민은 아르데아의 고민만이 아니었다.

 

‘남자가 스물 둘이면 적어도 책임질 가정이 있는 게 대부분인데,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서로 일만 하느라 혼기는 진작에 꽉 찬 둘.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쳐도 연애 상대를 구하기에는 너무 막막하다.

 

‘차라리 계약하자마자 아르데아와 연애한다고 말해버려?’

‘타르하 정도면 꽤 괜찮은 남자인데, 받아 주겠지?’

 

누구보다 많이 마주쳤던 둘. 고용 기간도, 고용된 날도 직위에 비해 그렇게까지 차이가 안 나는 두 최상위 관리직인 하우스 키퍼와 집사장. 아르데아와 타르하.

 

‘일단 연애부터 선언하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관리해야 될 메이드가 몇인데.’

‘아르데아와 연애한다고 당당하게 말 한 다음에 일부터 해야지. 저택 관리가 쉬운 건 아닌데.’

 

둘은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며, 계약서에 서명한다.

 

“하우스 키퍼 아르데아.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집사장 타르하,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 아르데아는”

“저 타르하는”

 

계약에 써져 있던

 

“집사장 타르하를”

“하우스 키퍼 아르데아를”

 

연애상대 구하기를

 

“연애 상대로 정했습니다.”

“연애 상대로 정했습니다.”

 

바로 끝내버렸다.

 

“어?”

“어?”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둘.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인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세하르 가의 가주 베토는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당신, 진심인가요? 스물 다섯의 여인을 연애 상대로 한다는 게?”

“그럼 당신은 그 외모로 나보다 더 어린 상대를 찾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이 나이의 여인을 연애 상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얼마 없다고요!”

“저도, 이 나이의 남자를 혼약이 아닌 연애 상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습니다.”

 

둘은 서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랑이를 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사실 둘의 나이가 어리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계약은 이걸로 해결 됐는데, 아직 남아 있는 게 있다네.”

 

베토는 둘의 말이 끝나자 둘에게 다시 말한다.

 

“3개월이라는 말은 그대들이 일을 쉬면서 연애 상대를 구하라는 말이었지. 여태까지 제대로 휴가를 간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쓰지 않은 휴가를 모으고 모아서 3개월이라는 장기 휴가를 준 것이다. 그 사이에 연애 상대를 찾아오면 더 좋다는 뜻이었고.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연애 상대를 구하는 건 끝난 것 같군. 하지만 3개월이라는 휴가가 남았네.”

 

이후 베토는 서류 두 장을 꺼내 아르데아와 타르하에게 내민다.

 

“휴가계다. 그 동안 쓰지 않은 휴가가 너무 많아서 내가 3개월을 강제로 쓰게 했으니까 갔다 오도록. 물론 유급휴가니까 돈은 걱정 마라.”

“…. 이렇게까지 잘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냥. 너희 둘이 각자의 삶도 없이 그냥 일만 주구장창 하길래 내가 손을 좀 썼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베토.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휴가 잘 다녀오게나. 좋은 소식도 가져오고.”

“하우스 키퍼 아르데아,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집사장 타르하,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둘의 연애와 휴가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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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에서 편집 시간 보니까 45분 걸렸고 3700자 썼네요.


연애 안하는 둘이 너무 불쌍해서 연애좀 하고 다니라고 밀어주는 가주와 워커홀릭이라 서로를 연애 상대로 정하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계약 내용 이행하는 집사장과 하우스 키퍼.


하지만 3개월의 기간은 휴가였고 그와 동시에 연애와 휴가가 시작된 두 관리직!


서로 반쯤은 계약에 의해 연애를 시작했지만 3개월간 서로에게 진심이 되는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를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