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레이먼드…! 저희 이제 어떡해요? 어떻게든 해봐요 좀!”


어둡고 축축한 동굴, 그 속에 우리는 숨어있었다.


-키르륵! 캬아아악!


동굴 너머로 몬스터들이 도망친 먹잇감을 찾으려 기를 쓰고 찾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솔직히 말해서 무리입니다.”

“그, 그렇지만!”


별빛이 내려앉은 것 같이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의 긴 생머리, 생전 겪은 적 없는 공포에 질려 눈물이 맺혀있는 연녹빛의 눈동자는 처연해 보였다.


스텔라 그레이스, 성격이 까칠하기로는 두말할 것이 없는 전형적인 안하무인격의 철부지녀였다. 평생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평생 받아오며 남을 깎아내리는 것에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는 미친년.


세간에서도 그레이스의 은방울꽃이라며 독초이기도 한 그 꽃에 빗대어 이중적인 이름으로 불렸다.


“후우……”


품속에서 스크롤을 하나 꺼내어 찢었다.


저장된 마법은 땅파기.

생활마법 중에서 공사 현장에서나 쓸 법한, 땅을 파주는 녀석이었다.


-쿠르르르


제법 그럴싸한 땅굴이 완성되었다. 한명이 들어가기에는 썩 괜찮아 보이지만 두명이 버티기에는 무리다.


여기까지 그녀를 업고 도망치느라 마나도 이젠 거의 남지 않았다.


그에 반해 밖에는 비록 하급 마물들이지만 물경 30마리는 넘는 녀석들.


‘이래서 호위 좀 늘리고 가자니까…’


끝을 직감했다. 자신은 여기서 죽으리라. 어차피 둘이 죽으나 하나 죽으나 자신이 죽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을 곱씹으며 다가올 최후를 대비해 상념에 잠겨 있으려니 스텔라가 작게 소리를 죽여 신경질을 내었다.


“이, 이걸 가지고 어쩔건데요! 우리 둘이 들어가기에는 터무니 없이 작잖아요!”


‘이 와중에도 화를 내는 건가.’


그간 많이 참고 참았다. 저년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타이르고 어르는 것도. 늘상 말꼬리나 잡고 지랄해대는 것을 받아주는 것도.


“닥쳐 좀 씨발년아… 그냥 좀 들어가 있어…!”


작게 윽박지르며, 구덩이 속으로 그녀를 밀쳤다.


“꺄악!, 레이먼드! 이게 무슨 짓…!”


이젠 땅을 막을 차례였다. 적어도 호위기사로써의 소임은 다 하고 명예롭게 죽고싶었기에.


“닥치라고 좀. 그냥 잠자코 듣고 있으란 말이야, 씨발년아…”

“……히끕!”


한번도 이런 거친 욕설을 나에게서 들은 적이 없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해지며 놀라 딸꾹질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불길하다고 오늘 만이라도 호위 늘리자고 했잖아 씨발…, 뒤질 놈의 원망이나 좀 듣다가 살아가.”

“히끕, 저… 저는 이런일이 올 줄 모르고…!”


마물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앞으로 5분 내로 이곳을 발견할 터였다.


그녀가 변명을 하는 사이, 나는 하고싶은 말을 쏟아내었다.


“이제와서 죄책감은 들어?”

“……”


두려움에 떠는 눈동자,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다.


“어차피 너 지키다 죽은 놈 말은 잊어버리고 평소 때처럼 티타임이나 즐기다가 적당한 데 시집가서 편하게 살아.”

“아, 아뇨……! 저는…! ”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고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말하려는 그녀.


“사, 사실 저는…!”

“만나서 더러웠고, 다음 생에는 제발 보지말자.”


한 때는 흠모했던 내 주군, 스텔라.


그녀가 무어라 말하는 것을 들어줄 시간 조차 남지 않았다.


구덩이에 알맞은 바위를 꽂아 넣으면 그녀는 이제 안전할 것이다.


-탁!

“#%:,?-!”


그녀가 무어라 외쳤지만 모르겠다. 내 할 일을 할 뿐.


“씨발… 나도 살고싶다고!!”


분노에 차 고함을 지르자 달려오는 마물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갈 땐 가더라도 호락호락 죽어주진 않는다…!’


떨리는 손,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저 멍청한 년이 소리를 내면 내 희생이 의미가 없잖아.’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는 떠오르는 노래도 없다보니 생각나는 것은 하나 뿐이었다.


지겹도록 듣고, 불렀고, 기사단장인 아버지가 처음으로 가르쳐 준 노래.


‘좆같네’


그렇게도 지겨워하던 그레이스 기사단의 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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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나도 …고 싶다고!!


캄캄한 어둠 속 오로지 한 사람만이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


“레이먼드! 레이먼드!!”


엉엉 울며 그를 불러보아도, 그는 그저 노래를 불렀다. 잘 들리지는 않아도 멜로디는 기억한다.


그야, 당연하게도…… 자신의 영지의 기사단에서 부르는 군가니까.


그에게 내 마음이, 말이, 닿지않는다. 소리쳐보아도, 아무리 바위를 두드려 보아도.


“레이먼드……”


마물들의 불길한 외침과 비명이 울려퍼지고 피륙이 갈라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몇번 째 반복되는 군가를 들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군가는 끊겨 있었다.


더없이 불길한 침묵 속에서 그저 숨 죽여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르륵! 드륵!


천장을 막던 돌이 들썩이며 움직였고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씨가 여기있다!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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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 자격이 있을까…’


구출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


정황을 들었다. 무너져 내린 동굴, 그 속에서 레이먼드는 왼 팔이 뜯겨나간 채 서서 죽어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에는 참살된 수 많은 마물들. 생명력까지 모두 끌어써서 자신을 지켜내었다는 모양이었다.


“흑, 흐아아아앙…!”


연모하던 그에게는 만나서 더러웠고 다음 생에도 만나지 말자는 소리를 들었다.


그간 쑥쓰러운 마음을 감추려 틱틱대긴 했었지만, 설마 자신을 그토록 싫어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침실에 틀어박혀 그를 그리며 울었고, 그와의 첫 만남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 만난 그는… 순진했어…’


서글서글한 웃음, 순박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잘 부탁한다던 곰 같은 남자.


요령이 없는 사람이었다. 배려가 서툰 사람이라 자신의 심기에 거슬릴 때도 종종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맞지않게 여성에는 문외한 인건지, 에스코트마저 서툴던 그 남자.


‘그때의 난…’


왜 이런 간단한 것도 못하냐며 짜증을 냈고… 교양은 배우지 못한거냐며 그를 폄하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애써 웃어넘긴 레이먼드.


그는 필사적으로 주군에 어울리는 호위기사가 되겠다며 휴일에는 요즘 예절을 좀 배우고 있다며 묻지도 않았던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했다.


‘당연한 걸 일일히 말 안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거절당하면서도 그는 주눅들지도 않고 늘 해사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와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1년 정도 되었을까. 그때 쯤 부터 나는 이슬비에 젖듯 , 제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온통 그의 생각 뿐이었다.


‘내가 그런 곰탱이 같은 남자에게? 그럴리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깟 자존심이 무어라고. 제 마음을 부정했고, 그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을 구태여 찾아내며 말도 안되는 이유로 꼬투리와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


그렇게 그를 싫어할 이유를 찾아내며 꼬투리를 잡으면 잡을 수록…


그는 웃음을 잃어갔다. 말 수가 줄었다. 그 대신 이제는 몸에 배어 당연하게 세심한 배려가 우러나오는 행동들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행동들이 마음에 들어올 만큼 따스하지가 않았다. 감정이 우러나오는 배려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마음은 공허했다.


-저 이제는 호위기사를 그만두고자 합니다.

‘안돼요. 한번 정한 보직인데 그렇게 쉬이 내팽겨 쳐버린다니, 실망이 크네요.’

-저는 더 이상 잘 해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공녀님의 실망만 안겨드릴 뿐인 무능한 놈입니다.


그때의 자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자신을 폄하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요. 경은 잘 해주고 있어요.’


그가 손을 떨었다.


-이제… 와서입니까?


그때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이 완벽하게 떠나버린 시점이.


그와 함께 한 순간, 순간을 되새기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었다.


‘한번이라도 그에게 웃어준 적이 있었나?’


그에게 예쁘게 웃어준 적이, 그에게 긍정적인 말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새로운 플롯 짜는 앱 얻자마자 세계관 적당히 짜서 인물 조형하고 만들어 놓은 스토리 타임라인 보면서 쓰고있는데, 후회물 첨 써본다.


이런거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