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씨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세상에 분노를 표하는 아우성이자 원한에 사무친 설움이다.
혼돈이 세상을 좀먹는다 생각하는가.
혼돈이 부정한 것을 몰고 와 선량한 이를 썩어 들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내 목소리였다 생각한다면 그리 생각하라.
머릿속 부정한 것들을 속삭이는 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게, 진정 혼돈의 짓이라 생각한다면 그리 받아들여라.
그것은 너희의 안에 똬리 틀고 있는 그릇된 진실의 뱀이며,
부정하고 싶은 내면의 메아리는 너희가 내뱉은 단말마일지니.

가리고 싶은 진실과 부정하고 싶은 목소리가 들려 괴롭다면
그래, 편하게 내 짓이라 말해도 좋다.
그것으로 세상이 까발려지고 너희의 아둔함이 드러난다면,
내가 몸소 곪은 상처 속의 그것을 꺼내어 너희의 앞에 보여주겠다.

나는 그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세상의 나침반이며 먼저 쏘아진 화살일 뿐이니,
화살 하나를 겨우 받아친다고 뒤이어 쏟아질 화살의 우레를 모두 막아내진 못할 것이다.
내 시위를 당긴 것은 원한이었으나 내가 가르고 나가는 것은 뒤집힌 세상의 하늘이니.

옭아맨 사슬이여, 혼돈은 이미 사슬로 묶어두기엔 너무 커져 버렸고,
앞을 가리는 빛이여, 내 두 눈은 이미 빛 속에 어둠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보아라.
내가 나서지 않아도 혼돈의 시간은 도래했고,
기어코 저들은 내 앞에 당도했음을...
이는 예견되었던 수순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음이다.

그 진실대로라면 이 껍질은 부스러지겠지만, 껍질을 부수고 돋아난 혼돈은 영원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명계에 기다리고 있을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것이 내가 정한 나와 세상의 종막이니...







혼돈의 오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