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붕괴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바이러스의 창궐은, 어디서 많이 보던.

마치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미리 경고라도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속과 같은 좀비 창궐의 시대가 열렸다.


문명은 급속도로 붕괴했으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이 장소는, 정말 운 좋게도 대기업의 회장이 마련해둔 핵전쟁을 대비한 '벙커'


행운의 신이 나를 택했던걸까, 정말 '우연'한 기회로 나는 이 쉘터의 유일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좀비 역병이 창궐하기 전, 바로 일주일 전의 이 벙커의 청소 및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파견나온 인원이...

그래, 바로 나였다.


다른 조사원들은 운 나쁘게도, 먼저들 집으로 귀가했고.

오직 나만이 이곳에서 홀로 외로운 업무를 이어가고 있을때, 재앙이 도래했던 것이다.

이건 분명히 행운이다, 나도 그들처럼 집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저기 밑에서 흐느적 대는 감염자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무궁화 벙커'는 본래 고위층의 여러 가족들이 수십년을 버티기 위해 마련해둔 곳이다.

수십명, 혹은 수백명이 오랜 세월을 버티도록 설계되있는 무궁화는, 많은 투자를 받아 건설된 만큼 내부가 훌륭했다.

직접 내가 점검을 담당했던 만큼, 어디의 무엇이 있고 어떤 기능이 있는지는 다 파악하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안에서는 적어도 내가 늙어 죽을 때 까지는 문제 없을 정도의 막대한 식량, 무언가를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재료와 자원들

누군가를 만나 교류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적어도 나는 바깥 세계와는 무관하게 지낼 수 있을 터이다.


-삐삑

3번 감시카메라의 신호가 잡혔다.

위치는 벙커의 출입구, 누군가 벙커로 찾아온 건가?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감염자와 스캐빈저 외에 누가 이곳을 알아채고 오겠는가.

괜한 기대를 집어치우려하나, 그런 내 생각과 달리 나는 감시카메라의 화면을 링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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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큰 규모의 생존자 무리

얼핏 보아도 100명을 조금 넘는 듯한 그들은, 감시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 말을 보내고 있다.

"3번 카메라, 음성 링크"


-CCTV No.3 통신 허용


"이봐! 여기 CCTV가 움직였어, 이거 안쪽의 사람이 있는게 분명하다고!"

"저기요! 저희를 좀 들여보내주세요, 부탁이에요!"

"아이가 몇일 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저희를 내치지 말아주세요..."


곤란하다.

안쪽의 식량과 자원을 빼앗길게 두려워서?

그 생각이 틀리다고 답할 순 없다.


단지, 그들중 '감염자'가 있을 경우엔

작은 타액의 교환만으로도 감염은 빠르게 번진다.


피, 혹은 땀이나 침으로도 서로 감염이 번지게 된다.

무슨 소리인지 아는가?

그들이 의도를 감추고 내게 접근하여, 서로 동귀어진 하자고 내게 달려들면

나는 감염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감염자의 변이 과정을 확인했던 적이 '한번' 은 있다.

처음에는 일반인과 별 다를 바 없으나, 몇일의 걸쳐 서서히 이성이 사라지고

공격본능만 남은 괴물로 변하게 된다.


나는 그들을 받아들여야하는가?


오랜만의 사람을 만나 기쁜건 사실이나

위험을 감수하고 그들을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