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왜… 도대체 왜…!”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숲속을 달리는 그녀의 뒤로 푸른색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본래는 하늘을 담은 듯 푸르렀던 머리카락이었지만, 지금은 흙먼지에 뒤덮여 본래의 색을 잃은 지 오래다.



- 쐐애액!



“읏…!”



날카로운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친 뒤, 앞의 나무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저런 걸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제아무리 ‘용사’라 불리는 그녀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 콰직.



그녀는 앞을 가리는 나무를 검으로 베어내며 전진했고,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숲의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돌연 그녀의 앞에 거대한 메이스가 나타났다.



- 콰앙!



“악의는 없습니다. 리나…!”

“윽. 제발! 왜 이러는 거예요!”



이단 심문관 ‘가브리엘’의 메이스를 검으로 쳐내며, 쌓였던 억울함을 담아 외쳤다.


일부러 힐러 겸 전투원인 그를 파티원으로 영입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그녀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빈틈이 생길 때마다 절묘하게 그곳을 노리고 날아드는 ‘아르웬’의 바람 화살도 그녀의 신경을 갉아 먹는데 일조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이안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까. 만약 그의 마법까지 그녀를 노리기 시작한다면…….



- 펑!



“아악!”



잠시 다른 생각을 한순간 리나의 어깻죽지에 아르웬의 화살이 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치명상은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던 순간, 가브리엘의 메이스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어졌다.


몸을 굴려 가까스로 메이스를 피한 그녀는 그대로 몇 바퀴를 더 구른 뒤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마왕을 처치했잖아요!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도대체… 왜… 흐윽….”



리나의 황금빛 눈동자에 물기가 감돈다.


그녀는 울음을 삼키며 입술을 짓씹었다.


지난 몇 년간 함께 울고 웃으며 마왕 토벌을 위해 달려온 네 명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리나와 그녀의 파티원들은 마왕을 토벌 했단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왕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그 분위기가 산산조각 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왕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한지 사흘째가 되던 날.


평소와 달리 어색한 행동을 반복하던 가브리엘은 대뜸 리나에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리나는 가까스로 그의 기습을 피했지만 이어지는 아르웬의 공격에는 옆구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마왕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본 실력을 낼 수 없는 상태인 리나는 둘의 협공을 막는데에만 급급했다.


반격을 했다면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게 어렵지 않았겠지만, 리나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검을 들이밀 수 없었다.

 

위태위태하게 둘의 공격을 막아내던 리나는 아이안의 안위를 살피려 했지만, 그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아이안이 사라진 자리엔 누군가 앉아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동료들이 자신을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 무언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 펑!



마침 리나에게로 날아든 아르웬의 화살이 리나의 상념을 깨트렸다.


그와 동시에 한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저주… 네… 마왕의 저주 때문이군요… 아이안은 저주를 해주 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런 거였어요.”



리나는 제발 그녀의 가설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그녀에게로 날아드는 메이스를 쳐냈다.


그 탓에 어깨의 상처가 벌어진 걸까, 피가 멎었던 그녀의 어깨에서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저 신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 핏



“윽….”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쌓여온 데미지에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고, 그 때문에 가브리엘의 메이스가 리나의 머리를 살짝 스쳤다.


마왕과의 싸움에서 얻은 내상 때문에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마나가 바닥났기 탓일까.


메이스를 정통으로 맞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쓰러질 수 없어요.’



진작에 바닥난 마나를 바닥의 바닥까지 긁어모았다.

쓰러지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은 리나의 귀와 입, 코에서 피가 흘렀다.



“쿨럭.”



마른 기침을 하자 더욱 많은 양의 피가 리나의 입가를 적셨다. 



- 콰앙!



“포기하십시오. 리나.”



가브리엘의 메이스를 막은 팔의 뼈가 부서졌다. 

힘없이 축 늘어진 오른팔을 본 리나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마침내, 한계가 찾아왔다.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저 멀리,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아르웬과 눈이 마주쳤다.


숲을 닮은 그녀는 왜인지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이시여. 부디 이 죄 많은 어린 양에게 축복을.”



- 쐐애액!



리나는 그녀의 머리로 날아드는 가브리엘의 메이스와 아르웬의 화살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감고 있던 눈을 더욱 세게 감으며 앞으로 이어질 고통에 대비했다.



[배리어]



- 쾅!!!



“미안, 용사. 조금 늦었다.”



[블링크]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어지럼증이 한층 강해졌다. 그 어지럼증이 멎었을 때는 방금의 그곳과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아이안…?”

“그래, 나야. 우선 사과부터 하지. 미안하다. 용사.”

“네…? 그게 무슨… 우읍…!”



아이안의 갑작스러운 사과를 들은 리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붉은 피를 한가득 토해냈다.



“우선, 이것부터 받아.”



아이안의 손이 리나의 등에 부드럽게 얹어졌다.


그러자 등에서부터 시작된 시원하고 청명한 느낌이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자세한 설명은…….”



- 쾅! 쾅!



“아이안!!!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이안님! 당장 마법을 해제하세요!”

“설명은 힘들겠네. 마지막 인사는 간단하게 할게.”



리나와 아이안의 반경 10m 정도를 둘러싼 반투명한 배리어는 가브리엘과 아르웬의 공격을 막아주고 있었다.



“용사, 네 파티의 일원이 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선택한 일인 것 같아. 그리고…… 쿨럭….”



아이안에게 받은 마나를 이용해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린 리나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아이안을 바라봤고, 그 순간 기침 소리와 함께 그의 입가에 선홍빛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안!?"



- 쩌적…



그와 동시에 견고하던 배리어에 기다란 금이 생겨났다.


이제 배리어가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내 일생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맙다.”



[디멘션 커넥트]



“크윽…!”

“아이안! 지금 이게 무슨, 커흑.”



아이안의 영창과 동시에 마나의 흐름이 급격하게 변했고, 그는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리나는 그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누군가를 말릴 수 있을 만큼 좋지 않았다.



- 우우웅



곧 리나의 바로 옆에 있던 나무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차원문이 생겨났다.



“크… 용사! 당장 차원문으로 들어가!”

“제가 들어가면 아이안은요!”



- 파창!



리나가 차원문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사이 둘을 지켜주고 있던 배리어가 산산조각 났다.



[디그]



리나와 아이안을 향해 달려오던 가브리엘과 아르웬은 그들의 발밑에 생겨난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우욱…! 용사! 어서! 곧 마나가 바닥난다!”

“절대, 절대로 혼자는 못 가요!”

“흐… 용사, 끝까지 너다운 말이네.”



느슨한 웃음을 흘린 아이안은 손가락을 튕겼다.



[에어 붐]



- 팡!



리나의 등 뒤에서 일어난 작은 폭발에 그녀의 몸은 힘없이 차원문을 향해 쓰러졌다.


차원문은 강한 힘으로 리나를 끌어당겼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리나는 자신을 덮쳐오는 마냐의 격류에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리나가 정신을 잃기 직전, 그녀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아이안의 모습이었다. 



‘이곳의 일은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아. 리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다는 것을 눈치채기도 전에, 정신을 잃은 리나는 마나의 격류에 몸을 맡겼다.





“컥… 쿨럭…. 작전 성공….”



발밑을 가득 적실만큼의 피를 토해낸 아이안은 힘없이 쓰러졌다.



“아르웬! 아이안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아이안님!”



아이안은 그에게 달려온 가브리엘과 아르웬의 치료를 받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작전은 성공했어. 다들 수고 했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반겨주는 가브리엘과 아르웬을 본 아이안은 작전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정말로 리나는 살 수 있는 겁니까?”

“빨리 당신네 신께 기도 안 하고 뭐 해요?”

“기도 해봤자 의미 없어. 마왕의 힘도 닿지 않는 곳인데, 신의 힘이라고 닿겠어?”



자칫하면 신성 모독으로 치부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흐… 다들 남은 시간은 어떻게 쓸 생각이야?”

“대지모신께 기도를 드릴 생각입니다.”

“어머니 나무에 가볼 생각이에요. 그래도 엘프인데, 어머니 나무를 한 번쯤은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세계수? 세계수는 그냥 커다란 나무라던데?”

“아르웬, 차라리 저와 함께 대지모신께 기도를 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말! 다들 이러실 거예요!? 신성 모독이라고요!”



그들은 아르웬의 투정에 웃음을 터트렸고, 셋의 웃음이 잦아들 때쯤 아이안은 아공간에서 맥주를 꺼냈다.



“마실 사람?”

“한 번 정도는 대지모신께서도 용서해 주실 겁니다.”

“이제 곧 죽는데 다 무슨 소용인가요. 저도 한 잔 주세요.”



종교를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던 가브리엘과 엘프라는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던 아르웬은 처음으로 술이란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술친구가 생긴 아이안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맥주잔을 두 개 더 꺼냈다. 



“생각해놓은 건배사는 있어?”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받은 두 명은 아이안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렇지."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고개를 저은 아이안이 잔을 하늘로 쳐들며 건배사를 외쳤다.



“용사의 새 삶과 우리의 남은 삶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몸이 떨릴 정도로 시원한 맥주가 그들의 목을 적셨다.



“크흐~!”

“맥주… 이걸 마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오! 시원하고, 뭐랄까 톡 쏘는 맛이네요?”



각자 맥주에 대한 감상을 내놓던 중, 긴 한숨을 내쉰 아이안이 입을 열었다.



“마왕이 이렇게 구질구질할 줄이야.”

“구질구질이라… 마지막까지 악마들의 지도자다운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꼭 열흘일 필요가 있던 걸까요?”

“다 죽어가던 마왕의 힘으로는 열흘이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어.”

“만약 마왕이 만전의 상태였다면 리나를 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단 말입니까?”

“그나저나 리나님에겐 조금, 아니 많이 죄송하네요….”



아무리 리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지만,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더욱 미안한 점은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을 공격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어. 이곳의 일은 모두 잊길 바라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아이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맥주를 전부 들이켰다. 



“그건 그렇고 저희만 배신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저희만 배신자가 되고, 아이안님만 혼자 멋진 역할을 맡으셨잖아요.”

“차원문을 여는 건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해서 어쩔 수 없었다니까. 그리고 용사한테 사실대로 말했으면 차원문에 들어가려고 했겠어?”



작전에서 맡은 역할에 대한 불만에 반박하는 아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제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자신과 동료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마왕의 저주를 떠올렸다.


마왕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 용사 파티의 전원에게 저주를 걸었다. 그 저주는 열흘 뒤, 저주에 걸린 존재의 목숨을 앗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저주였다.


그 저주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아이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파티원들이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저주의 기한 동안 저주의 해주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왕의 목숨을 매개로 빚어진 저주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간 아이안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저주를 해주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성과는 있었다. 


마왕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전이 바로 조금 전, 리나를 차원문으로 밀어 넣은 작전이었다.



“그리고 용사를 다른 차원으로 보내자는 의견은 다들 듣자마자 동의했잖아?”

“저희 중에서 가장 살아야 하는 사람은 리나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한 잔 더 마실래?”



가브리엘과 아르웬은 말없이 아이안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다시 한번 건배를 나눈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다른 차원으로 보내진 리나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했다. 





***





[재난 안내 문자 - 서울(강남) 게이트 브레이크 전조 발생. B급 이하의 헌터들과 일반인들은 조속히 대피소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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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탭에 이런 거 써도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