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내 말에는 기묘한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1학년 처음 체벌을 받고 아버지께 맞기 싫다며 울면서 얘기했을 때 이후로 아버지는 매를 들지 않으셨고


싸우는 친구를 말릴 때 싸움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선생님보다 나를 찾아와 싸움을 말려달라고 했다.


연애를 할 때도 그녀가 불만을 얘기할 때 공감을 해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 덕에 승진했다고 좋아했다.


몇몇 친구들은 나 덕에 자살을 면했다며 명절날마다 선물을 보내오는 친구도 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내 말은 마음에 콱 하고 박히는게 있다던가.


그래서 심리상담을 시작했고 어느덧 8년차.


장사는 잘 된다.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탓인가 별다른 홍보 없이도 손님은 찾아온다.


그리고 오늘은 기묘한 손님이 찾아왔다.


남자와 여자 한 쌍. 


남자는 눈에 익다 못해 아주 잘 아는 사이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알이 두꺼운 뿔테안경. 검은색에 흰 라인이 들어간 츄리닝을 입은 방구석 백수같은 몰골을 하고 있지만 웹소설 사이트 간판소설을 연재하는 녀석이다. 명절마다 선물세트를 보내오는 친구들 중 하나기도 하고. 특이할 거 없는 친구지만....


같이 온 여자가 문제였다.


챙이 넓은 마녀모자 밑으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가진 벽안의 미녀였지만 입술은 사막에 있다 온건지 비쩍 말라 갈라져 있었고 눈빛은 무슨 죽은 생선마냥 공허했다. 손목이 긴 흰장갑이 미처 가리지 못한 자상이 여러개 보였고, 목에도 누가 목을 조른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옷은 대충 어디의 교복 같은데 일단 아는 학교는 아닌걸로 보아 근처 학생은 아닌 듯 했다.


"좋아.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자고."


생각을 마친 내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들자 친구가 외쳤다.


"잠깐! 오해야! 네가 생각하는... 게 얼추 맞기는 한데 잠깐 진정하고 들어봐!"


"미친 새끼야! 이렇게 심각한 사람이 있으면 일단 병원부터 가야지 왜 나를 찾아오고 지랄이야!"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너를 찾아왔지! 상처 말고 이 친구 외관을 한 번 봐봐!"


친구의 말에 다시 그녀의 외관을 살펴보고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핸드폰에 깔려있는 웹소설 어플로 들어가자 그녀의 일러스트가 보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친구의 멱살을 잡았다.


"너는 이 심각한 친구한테 코스프레를 시키고 온거냐! 네가 아무리 사회성이 결여됐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도리가 있을 거 아냐!"


"코스프레 아니야! 원래부터 이 복장 이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네가 네 소설 등장인물 코스프레 시키는걸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건 선 쎄게 넘은거야!"


"아니. 나도 차라리 코스프레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친구와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이 교환을 지켜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분명 미성이었을 터인 목소리는 갈라지고 탁해져 원음을 찾을 수 없었다.


"저.... 신님? 곤란하시면 그냥 돌아갈게요."


"아냐! 곤란한거 아니니까 좀만 기다려봐."


그렇게 대답한 친구는 나를 끌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 내 귀에 속삭였다.


"자세한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지금은 저 애 상담만 해줘. 상담비는 내가 낼게."


"... 좋아. 일단 전후사정은 나중에 듣겠어. 만약 네가 저 여자에게 말 못할 짓을 한거라면...."


"아니니까 일단 상담 먼저 해줘. 저러다 저 애 큰일나!"


"... 후우. 그래."


친구와 대화를 마친 나는 상담실을 정리하고 여성을 상담실에 들였다.


"일단 성함부터 알려주시겠어요?"


"...... 케일라 블루스틸."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여자를 바라봤다. 마녀모자를 벗어 손이 하얗게 질릴만큼 세게 쥐고 있는 모습이 장난은 아닌 듯 했다.


"어.... 그러니까 본명 이시죠?"


"예. 케일라 블루스틸. 제 본명이에요."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걸 느꼈다.


케일라 블루스틸은 저 녀석이 쓰는 웹소설 '아카데미에서 인생 폈다'의 표지 히로인인 등장인물의 이름이었으니까.


대충 소설속 등장인물 상담해주는 힐링물 보고 싶은데 상담도 자세히 모르고 필력도 딸린다. 


대충 마왕을 무찌르고 번아웃 와서 자살 직전인 용사라던가

주인공에게 선택받지 못해 정신이 무너진 하렘물 히로인이라던가

오래 살아와서 더 이상 자기가 쓸모없는건 아닌가 불안해하는 무협지 고수라던가


요즘 소설 보면 상담 필요한 사람이 많아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