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찬바람이 부는 봄의 어느 날.


바람에 흩날리던 꽃잎 하나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살면서 몇번째 맞이하는 봄인지, 또 사람들은 뭐이리 많은지 생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가치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두려워 억지로 연명하는 매일이 계속된다는 신호였다.


그런 나의 삶에 유일한 활력소가 되는 것이 있다면,


[어서 와, 주인님! 귀여운 토끼 차림으로 기다렸어!]


휴대폰의 액정 너머로 메이드복 차림의 미소녀가 활기차게 인사를 건넨다.


[지휘관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자, 오늘의 업무를 시작하지요.]


그건 분할화면 너머로 비추어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인님, 선생님, 지휘관, 제독, 프로듀서, 트레이너……


뭐라고 부르던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의 삶에 억지로라도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리는 소리.


여기서만큼은 나도 사랑과 관심을 받고, 또 주어진 일을 해내는 훌륭한 어른이었다.


그 사실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감격스러워서, 진짜 내 삶이 휴대폰 액정 너머에 비추어진 이 세상이었으면 하는 망상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4천원입니다."


자취방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하나씩 집어드니 어이가 없는걸 넘어 억울하기까지 한 액수가 출력된다.


그렇다고 한 끼도 먹지 않은 채로 하루를 마칠수는 없었기에 마지못해 카드를 꺼내 결제했다.


안녕히 가시라는 알바생의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과 그 아래 드러난 토사물들, 어느나라 말인지 짐작도 안 가는 외국어와 생선 굽는 냄새까지.


못사는 동네 원룸촌이 으레 그렇듯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참 볼만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허름해 보이는 주황색 페인트가 덧칠된 3층짜리 건물이 나의 보금자리.


보증금 없이 관리비 포함 월 50을 잡아먹는 세 평짜리 단칸방에 들어와 대충 끼니를 떼우고 몸을 눕히니, 하루 종일 일한 피로가 뒤늦게 몰려왔다.


[토끼는 외롭게 두면 안돼. 그러니까, 주인님한테 잔뜩 쓰다듬어져야지!]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너머 바니걸 차림을 한 미소녀는 밝은 목소리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힘없이 입꼬리를 올리며 녀석의 머리 부근을 터치하자,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간지럽다는 대사를 출력했다.


사랑일까.


순간, 스스로 생각해도 비참하기 그지없는 감정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모바일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를 상대로 사랑을 하다니, 내 인생도 진짜 갈때까지 간듯 했다.


"아하하하하! 잠깐, 간지러워, 주인님!"


하지만 그런 생각도 거기까지. 


화면을 터치하자 발랄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그녀의 한마디에 아주 조금은 구원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치노세 아스나를 사랑한다.


이와 관련하여 몇 번을 고뇌해 봤자 매번 그런 사실만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


갑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착신음에 게임 화면을 내리자, 별로 보고싶지 않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항상 아들을 믿고 있어.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거라고 생각하렴.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게 이번 주에는 집으로 내려왔으면 좋겠네."]


그건 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10만원 정도의 금액이 입금됐다는 메시지는 덤.


항상 이랬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알바로 겨우 전전하며 살아가는 나는 부모에게 기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어그러진 생활양식은 의식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의 내가 1년 내내 츄리닝에 슬리퍼나 끌고 다니는 동안, 게임 속의 아이들은 하나에 수 만원을 호가하는 옷들을 몇 벌이나 가지고 있었다.


현실의 내가 라면에 삼각김밥 따위로 삼시세끼를 떼우는 동안, 이 아이들은 세트 요리에 케이크, 호텔 뷔페는 이용했다.


현실의 내가 3평 남짓한 곰팡이 핀 원룸에서 이불 한장 덮고 잠을 청하는 동안, 이 아이들은 고급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저택에서 일상을 즐겼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이 아이들이 행복해 한다면 그거로 그만이니까.


설령 내가 당장 죽어 없어진다 해도 이 아이들은 계속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했다.


그만큼 내 삶은 무가치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불러. 바니 아스나가 언제든지 뿅 하고 뛰어갈테니까!"


비록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고마워, 주인님! 앞으로 더~열심히 할게!"


내가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던 항상 믿고 지지해주는 이 아이듵이 있기에


"아~정말! 역시 주인님 최고! 사랑해!"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사랑의 감정들을 쏟아내는 이 아이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 눈을 감으면서 내일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