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릴 대로 질려버린 

기나긴 마족과의 전쟁 속에서


나는 첩자였다.



겉으로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던 내가 부귀영화를 위하여 

마왕군에 빌붙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는 첩자였다.



태생이 인간인 내가 마족들의 

신뢰를 얻기란 결코 쉽지 않기에, 

나는 어떤 잔혹한 임무라도 주저함 없이 해내며 

왕국에 크나큰 피해를 안겨주었지만


나는 첩자였다.



끔찍한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지만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나는 결국

마왕군의 기밀문서들과 

중요 작전계획까지 모두 알 수 있는 

마왕의 오른팔 자리까지 올라섰다.


이번 임무는 성공적이라 여기며 

보고서를 올릴 때쯤


내가 첩자란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계시는 

재상께서 다른 신하들의 중상모략에 당해

세상을 떠나버리셨다.


나는 첩자였... 는데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날 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을 배신한 채

마왕군에 빌붙어 온갖 잔혹한 계략과 악행들을 

저지른 놈이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마왕이 953세의 나이에 

오랜 지병과 노화로 인하여 세상을 떠나버렸다.

나를 후계자로 지목한 후에...


나는 첩자였다.


하지만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열심히 일한 결과

나는 부하들에게 신망받는 

새로운 마왕이 되어버렸다...


이게 잘된 건지 좆된 건지

방안을 모색하며 

일단은 마왕행세를 하고 있을 때.


새롭게 임명받았다는 용사가 

나를 토벌하기 위해 

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마왕님!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용사 일행의 모습입니다”


인간인 나보다 훨씬 오랜 기간 

이 성을 지켜온 신하는 무릎을 꿇고선

그림 한 장을 건네왔다.


“어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용사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 첫사랑.


내가 첩자 생활에 발을 들이기 전 

날 차버렸던 전 여자친구였다.


다음으로 시야에 들어온

그녀 곁에 있는 동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겉모습만을 보고 함부로 

판단을 내리면 안 된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편견은 

완곡히 이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


“마왕님...? 바로 척살대를 보낼까요?”


“아니...  내가 직접 조지러 가겠다.”





[용사파티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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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쓰다보니 삘받아서 ai로 끄적여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