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웹소설의 서사, 진정성,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주로 나쁜 의미로)



독자의 입장에서, 웹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미완결된 글, 다시 말하면 어떤 방향으로 커브를 틀지 알 수 없는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출간 소설의 경우, 어쨌든 하나의 이야기가 완결된 후에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빠르게는 하루 내에 평이 나오고, 

평이 인터넷에 업로드되면 후발주자들은 작품의 갈래, 내용, 수준을 대강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영화가 개봉일 하루이틀이면 어떤 작품인지 대강 판가름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웹소설은 연재되는 글이고, 순항하던 작품이 하루아침에 침몰할 가능성을 지울 수 없는 글이다 (사례도 많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게 정보고 그 정보를 습득하는 게 일상적인 시대에서, 

작가의 멱살을 잡는 게 아니고서야 작품의 미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은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한 점에서 독자는 끝없이 작가를 검증하려 한다. 

이것이 웹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적인 독자가 되는 것은, 자신이 그 소설을 읽은 경험이 파괴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작가가 쓰는 글 때문이 아니다. 


독자는 글 자체보다도 그 글을 읽었던 자신의 경험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이는 비단 웹소설, 혹은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모든 컨텐츠에 적용되는 원론에 가깝다. 


그래서 독자는 잘 나가던 소설이 엎어지면, '그래도 지금까지 재미있었지' 하고 훌훌 털어 버릴 수가 없다. 

독자는 꽤 절박하다. 



또한 웹소설은 여러 플랫폼, 또 각각의 플랫폼에서 무수한 소설이 경쟁하고 있다. 

다만 플랫폼이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독자는 여러 작품 중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줄어든다. 그냥 다 보면 된다.


실제로 이른바 '뽕을 뽑기' 위해 다독하는 독자도 상당수 존재하며, 

이런 독자의 특성은 크라카우어가 논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인) 'Zerstreuung' 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읽기의 목적이 작품의 내용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시선을 돌려 기분을 전환하는 행위 그 자체에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웹소설에서 유행 혹은 클리셰에 편승하는 풍조가 강한 이유 중 하나이다. 

텍스트에 심각한 결함만 없다면 기분 전환 정도에는 문제가 없으며, 

어떤 관점에서는 진부하고 뻔한 텍스트일수록 가볍게 흡수하고 지나가기에 유리하기도 하다. 


그리고 개성적인 서사보다는 진부한 서사가 독자를 배신할 가능성이 아무래도 낮다. 

독서 경험이 파괴되기를 두려워하는 독자는 그럴 가능성이 낮은 쪽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커브를 꺾을 때마다 사고가 날 것 같다면 커브가 없는 길을 선호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에서 언급한 독자의 방어적 태도가 웹소설의 진정성과 문학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태도를 뒤엎을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교만이다. 

독자의 태도는 사회 전체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독자의 불안심리는 연재되는 글의 불안정성에서 온다. 

웹소설의 특성상 이 불안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완결된 좋은 글이 쌓이면 적어도 플랫폼 단위에서는 독자가 믿고 볼 글이 생긴다. 


그렇다면 연재되는 동안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스토리뿐 아니라, 당장에는 불안했지만 뒤돌아 보니 좋았던 스토리 또한 주목받을 수 있다. 

클리셰에 의존하지 않는 글도 주목받을 기회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낙관적이라면 낙관적인 생각이겠지만, 적어도 플랫폼과 작가 단위에서 저질 꼬리표를 떼어 버리려는 노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