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아버지.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그야 너 이녀석아, 궁수면 열의 아홉은...."


중년 남성이 말을 멈추었다.

입가를 매만지는 그의 손 끝에서 고민과 번뇌가 다투었다.

소년은 그것을 보고 재빨리 선수를 쳤다.


"[파괴자 아바돈] 이 궁수 출신이었다는 소문 때문에 그러십니까?"

"네가 그 소문을 어찌 아냐?"

"화살로 성벽을 부순다는 괴물인데 회자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소년의 아버지가 지그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아들아, 네 말대로 당시 용사의 동료이던 아바돈의 타락 이후로 궁수들을 보는 시선이 안 좋아지기는 했지."

"하지만 그것은 모두 선입견이 아닙니까. 실제 궁수들은 그런 불량한 마음가짐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흥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누구보다 냉철한 판단력에, 고결한 마음, 그리고 넓은 시야를 지닌 게 그들입니다.
그들을 활잡이족이라며 배척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 여자냐?"


남일 같지 않게 화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넌지시 물었다.


"... 예?"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이미 궁수 하나를 동료로 삼은 모양 같으니 하는 말이다. 그 궁수, 여자냐?"

"아 저기, 그게 그...."


고넬 지방의 딸기는 맛이 달고 색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소년의 뺨이 지금, 고향 마을의 명물처럼 수줍고 붉게 물들었다.


"그래 여자 좋지. 여자, 여자라."

"무, 물론 마음이 아예 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동료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실력이 출중했다고요."

"누가 뭐래냐? 이 애비는 그저 여자냐고 물은 것 뿐이다."


이 반응으로 보니 틀림 없구만. 


"청춘사업 좋기는 한데 말이지."

"아버, 아버지가 반대하셔도 그녀는 제 동료입니다! 저도 이제 어엿한 모험가고요!
아버지가 이래라 저래라 하셔도 안 들을 겁니다!"

"그런 거 아니다. 애비가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니... 아, 내일 그 아일 데리고 집에 와보려무나."

"예?"

"저녁이나 같이 들자, 이 말이다. 궁수는 이젠 멸종위기 직업 수준이 아니냐."

"... 아!"


소년의 격양되었던 근심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소년은 맑게 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미안미안, 난 몰랐지 하하하!"


꼭 24시간이 지나고 몰락 귀족가문의 작은 식탁엔 세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소년, 소년의 아버지, 그리고 궁수.

소심한 소년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못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아버지?"

"어젯밤에 네 이야기를 전헤들을 때부터 설마설마했거늘
아무래도 이 애비의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구나."

"추측? 무슨 추측 말이십니까?"

"엘프가 아닐까 하는 추측 말이다."

"엘프요? 궁수님이 엘프라고요? 하지만 귀가 뾰족하지 않잖습니까."

"엘프, 귀에서 그거 당장 떼."

"아잉 섭섭한 말을."

"어서."

"알았어 알았어. 성질하고는."


아버지의 으름장에, 궁수는 마지못해 하는 척 귀고리를 벗었다.

장신구가 떨어지자 궁수의 귀는 돌연 길쭉길쭉한 엘프 특유의 귀로 변했다.


"앗! 귀가!"


놀라는 소년.

소년의 아버지의 말투는, 한층 더 험악해졌다.


"마도구까지 사서 그런 짓을 하고 싶었나?"

"에이 뭘 그리 퉁명스럽게 그래, 제임스.
예전처럼 살갑게 굴면 좋을 것을."

"먼저 꼬리친 건 네 놈이겠지 엘프?"

"에헷 어떻게 알았담."

"어라? 궁수님, 아버지와 아는 사이셨어요?"

"제임스와 난 옛 친구니까."

"친구 아니다."

"... 어느 쪽이에요?"

"음~ 더 끈적끈적한 쪽?"

"더 짜증나는 쪽이었다."


소년으로선 갈피를 잡기 어려운 대화였다.

매섭게 노려보는 소년의 아버지를 향해, 궁수가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그것은 방향성이야 어찌 됐건,
내용은 썩 충격적인 애교였다.


"아이, 그렇게 사납게 말하지 마! 여보."

"그렇게 부르지 말자고 헤어질 때 분명히 정해두지 않았나?"

"예?"

"너무해! 그럼 아들이라고 불러줄까?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안 떨어져?"

"예?"

"용서해줘, 엄마도 오랜만에 젊은 놈이랑 해보고 싶었다."

"예에?"

"설마 제임스와 내 아들일 줄은 몰랐지. 그만 화 풀자, 응?"

"아 좀!"



어렸을 때 죽었다던 생모.

전설적인 모험가였다던 할머니.

첫사랑의 화려한 과거를 알게 된 소년은 그날 밤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