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8살짜리 남고생인 내가 말하기에는 살짝 아저씨같긴 하지만, 내겐 꿈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평범하디 평범한 꿈이었다.
요컨데, 순애를 하고 싶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득한 옛날에 부모에게 버려져 사랑받지 못한 채 살아온 나에게 있어 그 평범한 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소망이었다.

"왜..."

그리고 그 간절한 소망은 하룻밤만에 깨져나갔다.

"왜..!"

평소보다 20cm 가량 줄어든 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길어진 머리카락, 부풀어오른 유방, 백옥같이 흰 피부, 그리고 뭔가 허전한 사타구니.

눈 앞에 놓인 전신거울에 비친 소녀의 모습이었다.
'내' 모습이었다.

"왜 내가!!!"

학술명은 Trans Sexual Symtom.
한국어로는 성전환증후군.
속히 이르길, TS병.

20XX년에 최초 발병한 이후로 고작 58명 밖에 발병 사례가 보고된 특수 희귀병. 이제 59명이려나.
최초 발원지 불명, 원인 불명, 감염 경로 불명... 이곳저곳이 불명으로 도배되어있는 정체불명의 병이지만 증상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로 감염자의 성별을 영구적으로 바꿔버리는 것.

"왜 난데!! 도대체 왜!!!"

그것 외에 신체에 해가 되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역대 발병자들은 금새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 꿈을 산산히 부숴버리기에 충분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 그게 내 꿈이었다.
그렇다면 비록 신체는 여자지만 정신은 남자의 것을 가지고 있는 내가 남자를 남자에게 박혀 임신한다?
일명 '암컷타락'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순애가 아니다. BL물이지.

그렇다면 세상의 성별은 남자와 여자, 둘 밖에 없으니, 남자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여자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신체는 여자, 이런 내가 여자와 사랑을 한다면... 그건 순애가 아니다. 백합물이라고 한다.

"내 꿈이 그렇게나 아니꼬왔냐고...."

그야말로 완벽한 딜레마.
남자와 사랑하면 순애가 아니다.
여자와 사랑해도 순애가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성별은 남과 여, 딱 두 종류 뿐이다.

평생을 그 꿈을 이루기위해 달려왔는데, 내 삶이 전부 하룻밤 사이에 부정되었다.
너무 허탈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고 무기력하게...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할 뿐이었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아이씨 누구야..."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이 정신없이 울리는걸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폰을 확인하고 말았다.
카톡을 발신한 사람은 고아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같이 붙어다니고 있는 여사친, 서진아였다.
말하자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내 휴식을 방해한 메시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급한 일이 생겨 너와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문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살아서 왠만한 일은 인터폰을 통해 얘기하면 될 텐데.
굳이 카카오톡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 그 태도가 의심스러웠으나 호출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으므로.
시간상 그녀는 벌써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여자가 되었단 사실은 그녀가 가장 먼저 알게될 것 같다.

때는 마침 여름이니 추울 일도 없을 것이니.
지금까지 입고 있던 티셔츠 차림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야 이 남자???
그리고 다음순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야 너 설마..."
"너..."

"진아야...?" "민준이...?"

설마, 정말? 진짜로?
그 극악의 확률을 뚫고, 이게 된다고?
나와 진아가 동시에 TS병이 발병해 성별이 바뀌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그렇다면 만약 내가 진아랑 사귀게 된다면...

신체는 여+남 1대1 사랑.
정신도 남+여 1대1 사랑.
이건, 순애다. 
완벽히 순애라는 정의에 들어간다.

이 남(여)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진아야, 우리 아기만들... 아니, 결혼... 아니, 사귀자!"
"으응????? 아니, 그, 좋긴 한데 갑자기...?"


TS 순애는 존재하는가?
증명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