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라는 것은 어쩌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시라는 것은, 특정한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단계에 있다고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대가 ‘무엇을 하던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나한테 뭐라 말하든지 대답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이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아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에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두 분 다 충남 출신, 현재는 서울 거주 중)임에도 눈꺼풀이 길었고, 눈썹 색도 짙어서 사람들한테 외국인 같다거나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음. 그리고 이 말은 딱히 처음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가 자꾸, 자꾸 들으니까 그거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고 과민 반응을 하게 된 것 같음.


유치원 때는 딱히 애들한테 괴롭힘이나 겉돌지도 않았고 다들 잘 놀았음. 천주교계 유치원이었는데 부지도 넓고 시설도 좋았고 선생님들도 친절해서 어렸을 때부터 유치원 다니는 거에 딱히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유치원 때의 아이들이 내 외모에 대해서 딱히 말을 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 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은 외국인의 개념이나, 외국인스러운- 혹은 한국인스러운 외모에 대해서 딱히 특별한 기준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것은 어리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내 외모가 대놓고 어두운 피부거나 그랬으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그 정도로 이질감 같은 것이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부터 아이들이 이전처럼 그 외모에 대한 잣대를 가지지 못한-수문자 그대로 순수한 상태가 아닌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학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다녔음. 학교 앞에서 접촉 사고가 난 적이 있었지만 피부만 쓸리고 뼈는 안 부러져서 그렇게 오랫동안 쉬지도 않았고, 그것을 제외한다면 정말 평화로운 나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2학년이 됐는데, 그 때부터 아이들이 내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 쪽으로.


복도를 다니다가 누가 날 쳐다보면 ‘그 애‘ 라고 수군거리고, 언제는 다른 반 애가 나한테 영어로 말을 걸었던 적도 있었음. 그 때부터 나의 과민 반응 비슷한 것이 발동한 것일지도 몰랐다.


정말 갑자기 이 환경이 변하니까, 외국인이나 눈꺼풀이나 눈동자 같은 외모를 묘사하는 말에도 흠칫하면서 누가 그걸 말했는지, 지금 저 애가 나를 외국인 같다고 생각하는지, 내 외모가 얼마나 이질적인지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없었던 따돌림 같은 것이 시작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입 다물고 ’무시’ 를 한 뒤에 관심 가지지 않았다면 편했을 것을, 그때의 나는 몰라서 일일이 하나하나 반응을 하고 과민한 말 과 예민한 행동을 하며 그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던 것 같다. 나는 외국인 아니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화를 내듯이 말하니까 그게 ‘재미’를 유발했을지도 몰랐다.


일종의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내부의 태엽이 돌아가며 춤을 추는 인형처럼, 그 애들도 내가 ‘과민 반응’을 하며 춤을 추는 행위를 감상하기 위해 ‘관심’이라는 동전을 지속적으로 넣었던 것이라고 지금은 깨닫고 있다. 아직 그 동전에 저절로 반응을 하게 만든 알고리즘 말고는 짜여지지 않았던 나는 그대로 관심을 주자 과민 반응을 보였고, 그 애들은 재밌어하며 계속해서 관심을 주입한 것이다.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따돌림이나 괴롭힘 같은 것이 시작되었고, 내가 하는 과민 반응은 아이들의 피로감을 올려서 그 아이들이 나에게까지 거부와 혐오감 같은 것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6학년 때 조를 편성할 때 어떤 여자애가 ‘너네들 임XX(내 이름) 같은 애라고 하라고 하면 싫어하잖아 ’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내 드라이브에 있었던 과제물이 삭제되어도 제제를 가하는 것은 선생님 말고는 없었다. 다른 애들 대다수는 내가 뭐를 당하던지,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던지 그에 피로감과 거부감을 느껴 ‘무시’ 를 하고 있었으니까. 선생님들도 때로는 피곤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 선생님들은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식 날에 최대한 다른 애들이랑 떨어져서 앉으려 했고 바로 사진을 찍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직후에 학교를 거의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이제 더 이상 괴롭힘을 받을 일이 없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기쁨을 느낀 건 그 날 말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음.


그리고 이제 그 직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는데, 곧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고 나는 이런 원초적인 고민이 처음으로 떠올랐다.


’또 초등학교처럼 애들이 그러면 어쩌지?’


거의 3년을 넘게 그 생활을 이어왔던 나로서는 이 악순환을 끊을 마지막 기회인 중학교 생활마저도 똑같이 반복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 비슷한 것이 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 때 내가 어떻게 ‘무시’ 를 해야 하는지 깨달았음.


애들이 뭐라 해도 , 관심이라는 동전을 넣어도 나는 과민 반응을 하듯이 춤을 추지 않으면 된다. 바로 이 논리를 깨달았다. 그러면 애들도 관심을 더 이상 넣지 않을 거고, 다른 사람들한테 거부감을 살 일도 없을 테니까.


사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생각이 맞나 하는 불안이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내가 틀리게 생각했으면 어쩌나, 오히려 옛날보다 답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계속 불안했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어떤 여자애가 나한테 ‘혹시... 외국인이니?’ 하고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나는 또 그걸 잊어버리고 과민 반응을 할 뻔 했지만, 어떻게든 그걸 억누르고 평소에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고, 외국인은 아니라고 말했다. 평범하게 태연한 어조로 말하니까, 그 애가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고 말해 줬다.


그 뒤로 나는 평온하게 살아가는 데엔 무시라는 게 필수 불가결하다고  깨달았음. 관심 자체를 주지 말아야 하는 일종의 병먹금 같은 것을 하니까, 그 뒤로 친구도 생기고 괴롭힘도 안 당했음. 그 때는 정말 옛날의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그런 일은 없고 평온하게, 아무 일 없이 살고 있음. 이걸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내가 괴롭힘을 받을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