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다들 들어봤을 법한 고전중의 고전 논제 테세우스의 배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 난제는 기본적으로 아래 내용과 같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좀 어려운데 토마스 홉스라는 양반은 여기다가 전제를 하나 더 갖고 온다. 


위와 같이 테세우스의 배에서 판자를 하나씩 갈아끼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배를 배1라고 하자. 그런데 테세우스의 배에서 갈아끼운 낡은 판자들을 버리지 않고 그걸로 다시 테세우스의 배와 똑같이 생긴 배를 만들어 배2라고 부르자. 배1과 배2, 배 두 척이 생긴 셈이다. 그렇다면 둘 중에 테세우스의 배는 무엇인가?


슬슬 좆같아진다. 일단 가장 간단한 답변을 생각해보자면 둘 다 동일한 테세우스의 배라고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근데 이건 동일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전제를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답변이다. 한자로 동일을 써보면 同一인데 이걸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같으면서 하나인 것이란 뜻이다. 즉 둘 다 처음 테세우스의 배와 동일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즉, 배1 배2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배1이 테세우스의 배라고 주장하는 경우부터 살펴보자, 이 경우 원래 테세우스의 배가 아무리 손상 되서 교체되어도 그것이 테세우스의 배라는 사람들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첫 번째 배가 테세우스의 배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우리의 신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의 세포는 알다시피 일정기간이 지나면 세포가 사멸하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게 된다. 그렇다면 일정시점이 지난 뒤에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걸까? 만약에 내가 아니라고 할 시 우리는 직관적으로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순히 물질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 기억 등 관념적인 요소들을 종합해서 나라고 규정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최근에는 이런 관념적인 요소조차 허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렇듯 첫 번째 주장은 관념론과 연관되어있다. 


하지만 첫 번째 주장은 테세우스의 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한계에 부딪힌다. 만약에 테세우스의 배를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 1인 레이드 갈 때 타고 간 배로 더 좁게 정의한다면 첫 번째 배가 테세우스의 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은 위의 반론에서 이어진다. 테세우스가 1인 레이드 뛸 때 탄 배의 부품을 모조리 가져온 배2가 진짜 배라는 것이다. 단순히 물질만으로 정의내린다는 점에서 2번째 주장은 유물론과 유사하다. 


근데 이 주장은 무더기의 역설,더미의 역설,대머리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논제에 의해 반박된다. 여기서는 대머리의 역설을 인용하도록 하겠다. 


흔히 머리 한 가닥만 남은 사람도 대머리라고 하고, 두 가닥, 세가닥만 남은 사람도 대머리라 한다. 그럼 과연 머리 몇 가닥이 남은 시점 부터 대머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논제를 이용해서 두 번째 주장을 반박하자면 과연 몇번째 판자를 끼운 시점부터 테세우스의 배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두 주장 모두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그럴 듯한 반박에 부딪히고 만다. 


이외에도 다양한 답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배1과 배2 모두 테세우스의 배와 동일한 건 아니지만 배1과 배2 그리고 원본 테세우스의 배 모두가 테세우스의 배라는 존재의 일부라는 주장한다. 즉, 테세우스의 배라는 존재(개별자)는 시간에 걸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이 개별자를 정확히 관찰하려면 모든 시간 부분에 걸쳐있는 개별자를 관찰해야한다는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보통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로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과거에 뜨거운 물이 있었을 때는 현재에 차가운 물이 없었다. 그렇다면 차가운 물은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만약에 차가운 물이 생긴 게 아니라면 뜨거운 물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이 주장을 한 사람, 그리고 옹호한 사람들은 물이 시간에 걸쳐서 존재하지만 뜨거운 물은 과거 부분에 여전히 존재하고 차가운 물은 현재 부분에 그리고 더 뜨거운 물이나 더 차가워진 물은 미래 부분에 존재하며 이 모든 것이 관측되어야만 완전히 관측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사차원주의라고 한다.



이렇듯 테세우스의 배는 여러 형이상학적 논제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이를 바탕으로 해서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소리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