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부산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전시회가 있다.

제목은 <상흔을 넘어>.

자유의 상흔, 자본의 상흔, 도시의 상흔을 테마로 중국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작가와 큐레이터분들께는 정말 죄송하게도,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 관람했기 때문에 꼼꼼히 감상하기에는 힘겨웠다.

하지만 관람은 굉장히 재미있었고 몇몇 작품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근 남챈에서 소개받은 민주화에 대한 다큐들을 보고

전시회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 몇 가지가 떠올랐기 때문에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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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80년대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을 간단히 알아보겠다.

80년대 초 신군부가 득세하자 젊은 예술인들은 미술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다.

그들은 시위 현장에서 판화를 제작하거나, 메시지를 담은 걸개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며 

현실비판적, 저항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할,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


정권에서 이들을 탄압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더 이상 군사정권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과거와 같이 '불의에 투쟁하는' 식의 예술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민중미술 작가들의 관심사도 사회 투쟁보다는 노동, 생태, 소수자 인권, 역사, 대중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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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중국의 현대미술로 눈을 돌려보자. 

중국의 미술계는 마오저뚱 사후 개혁개방을 통해 서구의 모더니즘, 전위예술을 받아들이며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사상적 신념과 낭만주의적인 열정으로 미술활동을 전개해나가며 중국 사회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역량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적인 현대사회를 지향하던 중국의 미술계는 6.4 항쟁의 비극적인 결말 이후 허무주의가 지배하게 된다.

방향을 잃은 많은 예술인들이 해외로 떠났고, 남은 이들은 분노와 미련, 현실에 대한 자조를 느끼며 비판의 의미를 불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90년대에 들어 저항예술인 ‘아파트먼트 운동'이 등장한다.




쑹둥, <끓는 물 주전자>, 1995


1995년 당시 북경의 골목길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기록한 12장의 사진이다.

작가는 오른손에 주전자를 들고 땅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서 걸어온다.

마지막 사진에서 작가가 완전히 사라지고, 땅에 선을 그린 물도 이내 수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작가는 자신의 행위에서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쑹둥, <물 도장 찍기>, 1996


(확대한 모습)


이 작품도 티베트의 라사강에서 1996년 이루어진 퍼포먼스이다.

작가는 한 시간동안 힘찬 몸짓으로 강에다 거대한 도장을 찍어대지만,

이 힘겨운 노력 또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쑹둥, <입김>, 1996


앞의 두 작품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의미가 뚜렷하다.

작가는 그의 부인과 인민해방군 군인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하 19도의 날씨에 천안문 광장에 엎드려 40분간 입김을 뱉어내었다.


다음날 아침 베이징 중심가의 다른 광장에서도 입김을 내뱉지만

그의 뜨거운 숨결은 광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웠다는 현실을,

지난 항쟁에 대한 미련과 자조가 섞인 깊은 무력감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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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무엇을 느꼈을까.

중국의 체제를 욕하며 우리는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도 있고

혹은 민주화가 이루어진 한국에 대한 철 지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문득, 나도 앞으로 저런 무력감을 느끼게 될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이제는 그의 작품이 경고의 의미로도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