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그의 얼굴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듯 하다.

좋아, 딱 이 정도 반응이면 충분해.

이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않는다.


"이게 무슨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중요한 거란 느낌이 들긴하네요. '멸망'이라는 키워드가 있으니 말이에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듯 김독자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의심만 가는군요. 가람 씨가 방금 말씀하신 줄여서 '멸살법'은 10년 전부터 연재 중이던 소설입니다. 실제로 아까까지 저는 그것을 읽고 있었고요. 당신이 인터넷에서 우연히 소설 제목을 보고 저를 떠보려는 것일 수도 있죠."


"흠.... 그건 좋은 대답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 예언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알기 쉬운 방법으로 당신에게 신뢰를 얻으려는 이유가 있나요?"


그건... 이라면서 김독자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쉬지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그렇다면 제가 예언자라는 사실부터 입증해 보죠. 저 아이가 가진 채집망 보이시죠?"


"...."


"독자 씨는 저 아이가 가진 채집망의 곤충을 죽여서 시나리오를 클리어합니다. 지금 생각 해둔 방법도 그게 맞으시죠?"


정확히 맞춘듯 김독자가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당신은 실제로 이 방법으로 첫 번째 시나리오를 클리어 하니까.


"잠깐만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지금까지 우리의 대화에 끼지 않고 계속 기다려 주던 유상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질문해 왔다.

하지만, 지금 유상아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다.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아이의 앞에서 길영아. 라고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며 귀를 막고 무어라 중얼 거리고 있는 아이.


훗날, '충왕'이라 불리며 모든 별들을 공포에 떨게할 아이가, 이곳에서 웅크려 있었다.


어린 아이가 떨고 있어도 관심조차 주지 않으며 서로에게 폭언을 내뱉는 어른들.

이것이, 지금까지 '이길영'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던 세계일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곤, 채집망에서 메뚜기를 꺼내 죽였다. 징그러움을 느낄 세도 없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메뚜기 한 마리를 쥐어주고 아이가 메뚜기를 죽이는 것까지 확인한 후, 다시 김독자에게 다가갔다.


"저를 동료로 받아주세요. 그렇다면, 반드시 이 세계의 '에필로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방금 나 좀 멋있었는데?

지금까지 나의 행동을 쭉 지켜보던 김독자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마음을 굳힌듯 내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돌발행동을 하시면 저 심쿵사 할지도 모릅니다."


진심이었다.


"아직 당신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가람 씨를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일단 두 번째 시나리오까지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모든 대답은, 그때 들려드리죠."


기회를 줄테니 잘 활용 해 보라는 뜻이군.

나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시나리오를 클리어 해 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둘에게 메뚜기 두 마리를 건냈다.

김독자는 주저없이 메뚜기를 터뜨렸고 유상아도 얼굴을 찡그리며 메뚜기를 죽였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반응이 올텐데.


"어이 잠깐, 너희들 지금 뭐하냐?"


왔군. 새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주머니에 손을 꽃아 넣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망상악귀 김남운.


원래라면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죽어야할 존재.


나 또한, 초반부에서 그를 혐오했다. 


할머니를 무자비하게 때린것도 모자라 나의 사랑스러운 독자에게 칼까지 휘두른 녀석이었지만,
스토리가 진행될 수록 슬픈 과거사가 나와 점점 그에게 동정을 표했던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망상'으로 자신을 유지했어야하는 소년.


이 녀석은, 추후 대멸망 시나리오에서 비장의 수가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깨는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번 회차에서 이 녀석은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음? 넌 누구니?"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다가오는 김남운에게 물었다. 옆에서 김독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뭐 어떤가.


"먼저 내 질문에 대답해. 뭐하는 거냐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한 것 뿐이야. 너에게 해가 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텐데."


주위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곤충!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생명체를 죽이라 했지 사람을 죽이라곤 안했잖아?"


해결책을 찾자 방금까지의 상황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서로를 부등켜 안으며 살았다 외치는 사람들.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없네. 

바로 옆에서 아이가 벌벌 떨고 있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은 놈들이.

왜 유중혁이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사람들을 몰살하고 시작했는지 이해가 됐다.


아, 물론 그런 사람들 사이에는 한명오도 껴있었다. 

이현성은 어느정도 상황이 진정되자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남운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가지 않자 짜증이 난 듯,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안 닥쳐!? 곤충? 하, 그래 너희들의 멍청한 대가리로는 거기까지가 한계겠지. 지금 느그들 주위를 둘러 봐. 곤충이 한 마리라도 남아있냐? 앙?"


그 말에 사람들이 동요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아무것도 없었다. 이길영의 채집망에 들어있는 단 하나남은 곤충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을 보고 김남운이 악귀같은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아, 그래 남아있었네. 저 망할 애새끼가 들고있는 통에 딱 한 마리."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그, 그거 내놔!!"


"뭐? 내가 먼저야 비켜!!"


"제발..! 나한테 줘! 살고싶다고 제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사람들이 좀비 때처럼 우리에게, 정확히는 길영이에게 달려들었다.

여기까지 모두 예상대로다.


"잠깐 스탑!"


그렇게 외치고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 타이밍에 나선 내가 이해 되지 않는 듯 김독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저 학생 말대로 지금 사람을 제외한 생명체는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곤충이 전부죠."


그렇게 말하며 채집망에서 하나남은 곤충을 꺼내 흔들었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도 따라왔다.


그래, 잘 봐둬라. 이제 곧 너희들의 희망이 산산조각 날테니까.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여기있는 곤충 하나를 죽이고 나면 이제 어쩌실 거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이현성을 바라보고 이리 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현성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 라고 말하는 듯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죽여서 여러분 중 한 사람은 살았다고 칩시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할겁니까?"


지금 이 칸에 있는 사람은 대충봐도 24명.


"아마 여러분은 또 다시 서로를 비난하겠죠. 너만 아니었으면... 이라면서요."


이현성이 커다란 몸을 이끌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다가 결국 서로 싸우겠죠. 죽고 죽이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10명도 채 안될겁니다."


인간은 나약하다. 지금 살아봤자 나중에 괴수종에게 죽을 수도 있고 운 좋게 생을 연명한다 해도 시나리오로 죽든, 성좌들에게 죽든 자신이 약하다면 어떻게든 죽게 돼있다.


그렇다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기를 믿고 따라주는 동료만 있다면. 그렇다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이현성에게 나는 손을 내밀라 했고 그가 잠깐 당황해 하더니 이내, 그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 같은 개돼지들이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메뚜기를 얹고 그것을 움켜쥐어 터뜨리게 했다.


퍼석- 하는 소리가 지하철에 메아리 치고 주위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지금 뭐하는거야!!"


"너 이 년이..!!"


"무슨 짓을 하는거에요!!"


이현성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듯 입을 쩍 벌리며 그의 손과 나를 차례차례 돌아보았고,

김남운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크킄... 그래 너도 결국 나랑 같은 부류였구만."


"너와 같은 취급당하는 건 사양인데."


"하나만 물어보자, 왜 그 군인인거냐?"


"....."


왜 많고 많은 사람들중 이현성을 콕 집어서 살린거냐 묻는거겠지.


"글쎄다, 너희 개돼지들 중 유일하게 정상으로 보여서?"


"크킄... 하하하하하하하!!!!"


김남운은 진심으로 즐거운듯 그의 얼굴에 손을 얹고 미친듯이 웃었다. 정말 중2병 그 자체군.


"좋아, 너 되게 마음에 드는데? 너 나랑 팀을 짜지 않을래? 우리 꽤 통하는게 많을 것 같은데 말이야."


김남운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꼽고 거만한 태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얼굴에는 섬뜩한 미소를 띈채로.


"미안하지만 사양하지. 나는 이미 이분들과 팀을 맺었거든."


"흠.... 그래? 어쩔 수 없네. 그럼 이제 비켜. 난 너 뒤에 있는 할망구한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가 내 어깨를 툭툭 치고 뒤에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본편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전 내가 곤충을 터뜨려서 주위가 혼란스러워졌기에 할머니는 상처 입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저 할머니를 잡으러가네."


"뭐, 그렇지. 내 눈에는 저 할망구도 벌레로 보여서."


그래, 역시 너는 이렇게 나올줄 알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을거다.


칼을 빼들고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가 할머니에게 돌진하려던 녀석의 목덜미를 누군가가 움켜쥐었다.


....이현성이었다.

그의 커다란 팔이 김남운을 막았다.

원작과는 달라진 이현성의 행동에 다시 한 번 그가 어떤 인간인지 느낀다.


"그만해."


"앙?"


김남운이 진심으로 열받은 듯 엄청난 표정으로 이현성을 돌아보고 그의 팔을 뿌리쳤다.


"하, 하하하!!!! 나참, 이래서 나이든 놈들은 정상이없어. 설마 이 상황에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라고 훈계할 셈이냐 군인?"


이현성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김남운의 말처럼 지금은 도덕적으로 행동할 만한 상황이 아님을 그도 잘 알고있었지만, 할머니를 보호하려는 듯. 두 팔을 크게 벌리고 김남운을 막아섰다.


저것이 이현성이라는 인간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군인.

더 이상 그는 '불의를 외면한 군인'이 아니다.


"하! 뭐 찔러달라는 거냐? 좋아 그럼 너부터 죽여줄게!"


그렇게 말하는 김남운의 전신에서 어두운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저건 '흑화'다. 

흑화의 기운이 담겨있는 칼이 이현성에게 날아들었다.


칼끝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순간까지 이현성은 도망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김독자를 바라보니, 그 역시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상황을 읽어가고 있었다. 

옆에서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유상아와는 딴판이었다. 


그건, 그 또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겠지.


물론 유상아도 김남운을 막으려 했지만 김독자가 그것을 제지했다.


"죽어!!"


칼끝이 마침내 이현성의 가슴까지 다가온 순간, 

이현성이 몸을 틀어 칼을 피하고, 그의 얼굴에 카운터를 박아넣었다.


퍼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김남운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고 지하철 칸의 끝까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자세히 보니 이빨이 몇 개 빠져있었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김남운의 입에는 피가 나오고 있었고 얼굴에는 주먹자국과 함께 뺨이 심각하게 부어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입을 땔 수 없었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김남운이 몇 번 움찔 거리더니 이내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이현성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기절한 김남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모두, 예상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