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아가 무사히 환생해 김독자 컴퍼니에 복귀한지 3일째 되는 날, 무언가 어색한 분위기가 공단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저...독자씨."
"네,희원씨. 무슨 일이시죠?"
"독자씨, 혹시 상아씨랑......"
"아, 잠시만요, 갑자기 현상금 시나리오가 와서요 ......비유야."
[바, 바아앗......]
이런것이다.
요즘들어 김독자가 유독 유상아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쌓여가는 의문속에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결국, 공단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그들이었다.
"아무래도......싸운건가?"
"......싸워요?"
"싸운게 아니면 저 둘이 저렇게 피하는 이유가 뭐가 있어?"
"그것도 그렇지만......아저씨랑 상아언니가요?......뭔가 상상이 안되는데...."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저건 분명 사춘기라고 말합니다.]
"너는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바락바락 우깁니다.]
심지어 성좌들까지 둘의 상황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휴......비유야, 넌 뭐 아는거 없니? 네 아빠잖아."
[에오밧,밧!]
비유가 신유승의 머리위에서 통통튀며 고개를 저었다. 명백히 모른다는 뜻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분명 고백했다가 차인거라고 말하며 낄낄댑니다.]
"......고백?"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설마?"
"......가능성이 없진 않은데?"
디오니소스의 말에 분위기가 술렁해지는 그들이었다. 에이, 설마, 그럴리가, 같은 의뭉스러움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성좌,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가능성이 있다며 자료를 건넵니다.]
그러자 허공엥서 종이가 나풀거리며 내려왔다. 이지혜가 종이를 잡아 큰소리로 읽었다.
"......구원의 마왕 배필 후보 기호 1번 유상아?"
"뭐?" "진짜?"
[다수의 성좌들이 자료의 내용에 경악합니다!]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그것 보라며 히죽히죽 웃습니다.]
"자료출처...큐피드 솔까연, 도와듀오 비너스?......뭐 이런게 다 있데? 참나......"
이지혜는 어이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뭐하러 이런 것에 코인을 쓰는건지......
"그,그럼 독자씨랑 상아씨랑...정말?"
"음....차마 부정할 수가 없네요."
그렇게 저들끼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그때, 신유승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맞는 것 같아요..."
"맞다! 유승이는 아저씨 화신이었지!"
"그래, 유승아 김독자 한테서 무슨 감정이 느껴지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신유승은 잠시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진실을 말했다.
"그게...아저씨에게서요..."
"독자형에게서?"
"상아언니 앞에선...부끄러움, 창피함, 민망함 그리고......."
"뭐, 뭐 , 뭐?"
"저, 정말로?"
[다수의 성좌들이 화신 '신유승'의 발언을 경청합니다!]
[일부 성좌들이 그럴 줄 알았다며 무릎을 칩니다.]
"마지막은 확실하지 않아서......"
"그건 넘어가고, 그럼......앞에 말한 세가지는 확실한거야?"
"네. 확실해요."
신유승의 말에 다시한번 파란이 일어났다. 한참을 수근대더니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만약에."
한수영의 마지막 말에 그들은 물음표를 띄웠다.
"만약에 우리가 오해한거면?"
"오해?"
"둘이 진짜 아무것도 아니면 어쩔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정희원은 잠시 회상했다.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6번 시나리오 직전 둘이 손을 잡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유상아의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는가? 분명 무슨 해프닝이 있었을 것이다.
"아! 알았다!"
"뭘 알아요?"
한수영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항했다.
"유상아 걔, 김독자 스킬? 머릿속?...... 에 갇혀있었다고 해야하나?"
"아아!, 맞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
"오......수영언니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그들은 한껏 들뜬 얼굴로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공단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
.
.
"독자씨."
김독자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유상아가 있었다.
"아, 그, 저...잠시 화장실 좀..."
"성좌는 화장실 갈 필요 없잖아요."
김독자는 당황하며 자리를 피하려다가 정곡을 찔렸는지 멈칫했다.
"......"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건 유상아였다.
"그...미안해요. 허락도 없이 읽었던 거."
"네? 아, 네....뭐."
"이런 제가 싫으신 거죠?"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김독자는 당황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나 유상아의 표정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그럼 왜 저를 피하시는거죠?"
"그, 그게 말이죠......"
김독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제 삶이 누군가에게 전부 읽혔다는게......조금 부끄럽기도 하고...민망해서 말이죠...어느정도 예상은 했는데......막상...으음...하하...하."
김독자는 먼곳으로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제 눈을 똑바로 보고 말씀해주세요."
"......"
그제서야 김독자는 유상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대체 어째서 유상아에게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일까...김독자는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때...유상아 씨는 왜 그런 선택을 하신 겁니까? 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 말고, 이 세계의 정보를 담은...공략서 같은 멸살법을 읽으시지......"
"그런 건 독자씨가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소설은......재미가 없더라구요."
김독자는 재미가 없다는 말에 살짝 당황했지만, 다시 침착을 되찾고 말했다.
"유상아 씨."
"네."
"제가 아는 유상아 씨는 단순히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그러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김독자는 잠시 흠칫했다. 자신이 조금 따갑게 말했던 것 같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게 독자씨가 아는 유상아라면, 독자씨는 저를 모르시는 거에요."
"......"
"저는 항상 궁금했어요. 독자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체 왜 자신을 그렇게 두꺼운 벽 뒤에 숨기는 건지, 그리고......독자씨는 독자씨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알고 싶었어요. 그 두꺼운 벽 뒤에 있을 상처를요. 저는 그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김독자는 뒤늦게 반성했다. 유상아는 이런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타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 그 사람을 응원해주고 보듬어주는 사람......
"그러니 그 차갑고 딱딱한 벽에 의지하지 말고, 저에게, 우리에게 의지해 주세요. 혼자 머리 싸매고 끙끙 앓지 마세요. 아무리 독자 씨에겐 독자 씨만의 삶이 있다고 하셔도.....제 삶 속엔 언제나 독자 씨가 있어요. 그렇지만 만약, 독자씨가 용기가 나지 않으시면......더 이상 다가가지 않을게요."
"기다릴게요......"
유상아는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러곤 가만히 김독자를 바라보다가 발을 움직여 걸음을 옮기려했다.
"유상아 씨."
유상아는 그 자리에 멈췄다. 다시 김독자를 바라봤다. 김독자의 얼굴은 조금 후련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
"제 삶을 읽어주셔서......제 삶의 유일한 관객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독자는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유상아에게 다가섰다. 그제서야 유상아는 미소지었다.
"그래도, 읽은 보람은 있네요."
김독자도 유상아를 따라 미소지었다.
"어서 사람들에게 가요. 요즘 사람들이 독자씨랑 절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아,...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후후, 괜찮아요. 이상하게 생각하면 뭐 어때요?"
유상아는 주춤거리는 김독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마침내, 하나의 무대가 완전하게 완성되었다. 관객석과 하나 된 무대에, 배우와 그의 관객이 있었다.
어찌 배우가 자신의 연극을 지켜봐준 유일한 관객을 싫어할까? 배우는 그 관객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끝
ㅡㅡㅡㅡㅡ
상아가 독자의 기억을 읽었다는 거에서 생각난 소재임
항상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