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들이키면 꽤나 맡기 좋은 책의 향이 난다.
빼곡히 꽂혀 알록달록한 벽지처럼도 보이는 책장은 이 서점의 자랑거리중 하나다.

미노소프트에서의 인턴생활을 끝낸 나는 소설을 좋아했던걸 떠올리며 서점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종일 서서 사람을 상대한다는건 꽤나 기분이 묘했다.

계속 서 있는건 맘에 안 들었지만 다른 사람이 고른 책으로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 일에 빠져들게 만든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처럼 유명하고 메이저한 책들부터 인간실격, 죽음같은 마이너에 가까운 책, 그리고 제목이 너무 길어 기억도 안 나는 마이너한 책들까지. 혼자만 느끼는 공감대지만 그걸 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쭉 빠지고 사람이 없는 시간에는 할게 없다. 기껏해야 이상하게 꽂힌 책은 없는지, 있을리가 없지만 도난, 또는 분실된 책은 없는지, 훼손된 책은 없는지 살펴보는게 끝이다. 이 것조차 끝났음에도 사람이 없다면 그냥 카운터에 서서 각자 할걸 하면 된다.
그리고 모든건 이 시간때 일어났다.

"독자씨?"

인기척에 읽던 책에 책갈피를 꽂고 앞에 있는 사람을 응시했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갈색에 부드럽고 고운 머리카락, 백옥같은 피부, 가느다란 체형.
그런 그녀에게서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상아씨."

*

"감사합니다."

선배들의 배려덕에 그녀에게 커피한잔은 대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따뜻한 커피향이 우리를 감싸 묘한 기분이 들도록 만든다. 그녀에게 그리 많은 호의는 없지만.

"잘 지내셨어요?"

그녀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손을 가져다댔다가 뗐다가 하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미소지으며 답했다.

"네, 미노소프트때보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 기억상 그녀는 정규직 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했다. 그랬기에 나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했음에도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런 그녀가 이 시간에 여기 있을 수 있다는게 조금 놀랍기도 하다.
그랬기에 나도 그녀에게 안부를 물어볼 생각이였다.

"저, 미노소프트 나왔어요."
"네?"

한번에 이해되긴 됐다.
미노소프트를 나왔다면 이 시간에 여기 있을 수 있다. 거기에 저 사복차림은 그녀가 미노소프트에서 근무할때 입던 복장이 아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몸상태가 좋아보인다.
하지만 왜 나온걸까. 미노소프트 정도면 보장된 곳이다. 최고의 직장이라는 말도 나올 지경이니.

유상아가 피식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장이 저한테 손을 대려해서, 술에 쌈장을 타버렸어요."
"예?"

오늘따라 얼빠진 소리를 자주 내는 것 같다.
술에 쌈장을 타다니, 내가 아는 유상아가 맞나 싶었지만 저 순해보이는 표정은 유상아만이 지을 수 있었다.
그녀가 조금 식은 커피를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직서를 내버렸어요. 얼빠진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그건 좀 궁금하네요."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그랬어요."

정말로 궁금했다.
그 꼰대가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니, 그 사진이 찍힌 메모리는 가보로 남겨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를 다시 생각했는지 그녀가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

그녀와 잡담아닌 잡담을 하던 나는 선배에게 반 협박으로 온 메세지를 받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카운터를 계속 비울 수는 없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 네. 나중에 뵈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중에'. 이 단어를 주목했어야 했다.
그걸 몰랐던 나는 평소처럼 일을 했다.
그리고 또 그녀를 만난건 다름아닌 다음 날이였다.

"어, 상아씨?"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유상아라고 합니다."

어제도 본 유상아가 서점 앞치마를 두르고 내 앞에 나타났다. 무척이나 당황한 내게 유상아가 어제보다 장난기 서리고 해맑은 미소를 배실배실 내보내고 있었다.




독상 좋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