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 약빤 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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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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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ㅆ......”
그 날 따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즘따라 잠이 부쩍 늘기도 했지만,
어젯밤은 늦게까지 한수영의 소설을 모니터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조만간 있을 공모전을 위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얘는 어디를......’
분명 옆에서 “이제 일어났냐?”
또는 “빨리 씻고 나와서 밥이나 먹어.”
등의 말을 쏘아붙일 그녀가 오늘은 없었다.
“수영아! 한수영......?”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부르던 와중 탁상 위에서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나는 부스럭거리며 침대를 주섬주섬 나왔다.
-‘야, 어제 대체 몇 시에 잔거야? 흔들어도 깨지를 않으니 원......’
갑자기 마음의 한구석에서 미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마 4시쯤 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열심히는 안 해도 돼.’
나 또한 열심히 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읽으며 빠져드는 것이 소설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나 미팅 있어서 나갔다 올게. 아마 점심 먹기 전에는 올 거야.’
나는 게을러져 가는데, 어째 그녀는 점점 바쁘게 생활했다.
-‘빨리 일어나. 사랑해.’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글씨체에는 거침이 없었지만, 분명한 부끄러움이 묻어 있었다.
한수영의 손글씨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녀도 나도 정말 많이 변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너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뭔가 해줄 게 있나......
정신을 차리기 위해 부엌에서 물을 마시던 도중,
며칠 전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
‘수영아, 나 요리 배워볼까?’
‘갑자기 왜?’
‘그냥, 너한테 해주고 싶어서......’
‘유중혁한테 배워보지 그래?’
‘음, 걔한테 배우면 손이 남아나질 않을 거 같은데.’
+
유중혁한테 배우는 요리라.
상상도 하기 싫다. 아마 나를 잡아먹으려 안달이겠지.
+
‘너 뭐 좋아하냐? 내가 꼭 해줄게.’
‘나중에 배우면 그냥 아무거나 해줘. 난 딱히 안 가리니까.’
+
요리라......
사실 남는 게 시간이었지만,
정작 나가기 귀찮아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게 현실이었다.
호언장담을 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조금 미안해졌지만,
제대로 배우기 전 그녀에게 평가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신이 난 나는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방 밑 서랍에서 식칼을 꺼내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칼이 뽑히지가 않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전장을 누비며,
이것보다 몇 배는 무거운 칼을 수도 없이 뽑았던 나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아니 이게 왜 이렇게 안 빠져......!”
며칠 간 사용도 안했던 힘을 쓰니 칼을 그제서야 나오는 듯 했다.
‘쾅!’
관성에 뒤로 나자빠진 나는, 식탁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아오 씨...... 더럽게 아프네......”
언뜻 보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식칼은 다행히 다른 곳으로 튕겼다.
그렇게 손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응......? 웬 식탁에 물이......”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는,
그제서야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런 씨발.”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어젯밤 마시고 남은 물은 엎어져 있었다.
물을 남긴 어제의 나를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물이 엎질러진 바로 그 자리에는,
한수영의 노트북이 있었다.
그것도 보란 듯이 활짝 열린 채로.
집에서 나가기 전까지 소설을 쓰고 있었던 모양인지,
키보드에는 창작의 고통과 온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에 그마저도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마치 너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알라는 듯이.
등에서 서서히 식은땀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물은 조금씩 키보드와 본체의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재빨리 행주를 가져온 나는 허겁지겁 자판 위를 누르며 닦았다.
그럴수록, 정갈하게 소설이 쓰여진 한글 파일 위로는,
알 수 없는 말들이 하나 둘 적혀갔다.
마치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듯이.
‘-틱-.’
“아......제발......”
물기는 사라졌지만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노트북의 화면은,
이제는 검정색으로 물들여졌다.
전원 버튼도 말을 듣지 않았다.
제발, 항상 그랬듯이 소리와 함께 화면 좀 켜주라.
아니면, 나 죽을지도 모르거든.
“삑-!”
“......?”
아, 다행이다.
고쳐진건가.
이제 화면만 켜지면......
“삑-!”
‘......? 다시 소리 날 리가 없는데......?’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삑-!”
“아니 이거 뭐야......?”
[02150401]
“삑-!”
“아, 좆됐다.”
여덟 자리의 현관 비밀번호 중,
그 소리가 도어락의 버튼을 누르는 소리인 것을 알아챈 것은,
그녀가 네 번째 ‘0’을 누를 때였다.
나는 황급히 노트북을 덮고는 소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는 연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들어온 것은,
내가 킨 티비의 화면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김독자! 일어났어?”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아마도 오늘 일은 잘 풀린 듯 보였다.
그런 그녀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알아채기를 바랄 뿐이었다.
“야! 왜 부르는데 대답이 없어?”
“어, 어! 왔어? 나도 방금 일어나가지고 말이야.”
“뭐야, 갑자기 왜 말을 더듬어?”
“아니 뭐... 아, 그보다 쪽지 잘 봤어! 너 같지 않게 손글씨로 말이야.”
“아, 어... 하 씨...... 그게 있었지......”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
하지만 알아줘서 고맙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 빛은 조금씩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당장 달려가 그녀에게 몸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벽을 이뤘다.
하지만 내겐 그럴 겨를이 없었다.
“봤으면 됐어......”
수줍게 나를 본 그녀가, 식탁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제발.
그녀를 보고 순간 내 잘못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일어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평소에 한수영이 눈치가 빨랐었나?
“뭐야. 내 노트북 가지고 뭐 했어? 왜 닫혀있지? 분명 열어놨는데.”
젠장.
아마 그 질문의 답은 ‘그렇다’인 것 같다.
어떻게 아침에 노트북을 열어놨는지 닫아놨는지를 기억하는 거지?
“아, 아 그, 노트북은 열어놓는게 안 좋다고 그러더라고! 어......”
“그런 말도 있냐? 너 오늘 좀 이상하네.”
이상하겠지.
그래도 노트북은 제발 열지 말아주라.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축축해?”
시발,
“얘 왜 이러냐? 전원은 왜 또 안 켜져? 이거 너가 그런거야?”
걸렸네.
“어......? 갑자기 왜 나야?”
“너긴 왜 너야, 건드린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 아침엔 분명 잘 됐다고.”
사실대로 불어야 하나. 그럼 난 죽을텐데.
“나는 모르는 일이야, 왜 그래......”
“너구나? 왜 그랬어? 사실대로 말해, 나 진짜 화낸다.”
“아니 나 아니라니까......?”
“그럼 이 새끼가 발이 달려서 저절로 망가지냐? 빨리 안 말해?”
서로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걸로 싸울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이유를 말히기도 어려웠다.
“아 수영아...... 왜 그래 제발......”
“그래, 이유를 안 말하겠다 이거야?”
아, 말해야겠네.
이유를 말하려던 참,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
“흠, 오늘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너 김독자 맞아?”
“뭐......?”
순간 흠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말한 것이겠지만,
내 존재가 부정될 수 있는 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하...... 수영아, 정말 미안해.”
“왜 그런건데.”
“사실......”
이유를 말하는 동안,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쓰는 소설을 비롯한 모든 파일은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그 노트북은 물에 젖어 망가졌다.
그것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이유를 듣는 마는 둥 하는 와중에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도 불안해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좋은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이.
***
한수영은 눈치가 빠르다.
몇 년 전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렸을 때, 그니까 청소년이었던 시기에,
그렇다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다.
사실 열려있던 노트북이 닫힌 것을 본 순간부터 알아챘다.
아, 이 새끼가 지금 난장을 까는구나.
그리고 그 후,
노트북이 망가진 이유를 진지하게 설명하는 김독자를 보고 알아챘다.
아, 이 새끼 지금 진지하구나.
한수영은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화내고 불안해 할 것이었다면,
거실같은 열린 공간에 노트북을 놔두지 않았겠지.
며칠 전 그녀가 모든 파일을 백업해 두지 않았더라면,
김독자는 아마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용량이 꽉 찼다는 구실로 새로운 노트북을 사려던 참이었기에,
그녀에겐 그를 너그럽게 용서해줄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그저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연기를 시작했다.
***
“그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쳐.”
그녀가 화내고 있었다.
“근데 이미 망가진 이건 어떡할건데?”
그녀답지 않았다.
뭔가 어색해 보였다.
“그 비싼 노트북 너, 너가 다시 사줄 수 있어?”
말까지 더듬고 말이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시답잖게 화를 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가만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내게는 명백한 잘못이 있으니까.
화를 내면서도 스스로가 황당한지,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화나게 해서 미안해, 수영아.”
“그래, 당연하지...... 아니 잠깐, 뭐?”
그녀가 연기에 소질이 없다는 것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네 화가 풀릴 때까지, 너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구멍 뚫린 풍선처럼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막으며,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사과했다.
너도 장난일테니 그래도 사과는 받아줘.
“그 말, 진심이지?”
먹힌건가.
“당연하지. 정말 미안해.”
“흠......”
이 모든 게 장난이라는 걸 생각하니 약간은 괘씸하기도 했지만,
귀엽게 투정부리는 그녀가 좋아서, 싫은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하...... 그래. 어차피 연재분은 다 올려뒀으니 상관없겠지.”
역시 먹혔구만.
“진심으로 사과한 거 같아서 봐주는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마.”
“알겠어. 근데 뭐......”
그 말을 하며 돌아서는 한수영의 입꼬리는 씰룩씰룩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마트폰은 왜 꺼내는 걸까.
조용하게 그녀의 뒤로 접근했다.
그녀는 굉장히 급하게 무엇인가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소설을 쓸리는 없고.
자세히 보고 싶어서 그녀의 어깨맡까지 얼굴을 들이댔다.
집중하느라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글씨가 조금씩 보인다.
-[휴재공지]
‘......?’
알 수 없는 영문이었다.
갑자기 휴재를 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어디 몸이라도 아픈가......
‘......!’
아, 그런건가.
대체 내게 얼마나 대단한 걸 바라는지 궁금해졌다.
놀러가기라도 하자는 건가.
‘아마도 당분간은 외박할 거 같다고 일행들한테 알려줘야겠네.’
이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한수영이 기특해보였다.
그녀의 휴재 기간 동안,
정말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지금은......
“수영아!”
큰 소리와 함께 그녀를 부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놓았다.
“아 시발 깜짝이야! 야 너 죽고싶냐? 잘못한 거 잊었......”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볼이 손가락에 의해 귀엽게 눌렸다.
그녀의 앳된 얼굴은 그 장면을 더 어린아이처럼 만들었다.
“아이 씨...... 뭐야......”
그녀의 귀가 홍당무만큼이나 빨개지고 있었다.
이제 내 차레야.
“대체 나한테 뭘 시키시려고 작가님께서 휴재공지까지 올리시나?”
“아 뭐야! 이 미친놈아! 왜 남의 핸드폰을 보고 있어!”
“쓰읍, 말 예쁘게 해야지!”
“하...... 진짜 김독자......”
꼬리를 잘 간수했어야지.
“내 질문에 답 안해줘?”
“뭐?”
“나한테 뭘 바라는데 휴재까지 하냐고. 궁금해서 그래.”
“......”
그녀는 말하길 꺼려하는 듯 했다.
이상한 거만 아니여라.
“응? 빨리 말해줘. 나 궁금해서 미친다.”
“오늘 내 방......”
“뭐라고? 안 들려, 좀 더 크게.”
“아 오늘 나랑 같이 자자고!!”
“......?”
1초라도 견디기 어려운 정적이 흘렀다.
한수영은 말하고도 당황한 눈치였다.
“아 진짜!!”
그녀가 박차고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문도 쾅 닫아버리네.
이상한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닌 것을 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거 또 사과할 일이 하나 더 생긴거 같은데 말이지.
꽤 오랫동안 할 말을 생각한 후, 나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녀의 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끼익......’
“수영아? 자......?”
문을 열고 보이는 것은,
움직임없이 내게 등을 보이며 침대에 누워있는 한수영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정말 자고 있는건지 아니면 이것도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상기 되어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게 지금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깨지 않게, 나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웠다.
‘으응......’
깬 건가.
조금씩 뒤척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그녀.
본능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간은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오후였고,
창문을 통해 산들바람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혹여나 그녀가 추울까 이불을 조금 더 올려주기도 했다.
그녀의 얼굴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이불삼아 덮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위로 살며시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귀엽네.’
이렇게 그녀의 첫 번째 소원은 이뤄준 것 같다.
내일은 또 다른 임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해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언덕 아래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살며시 자연의 불을 꺼주는 해를 벗삼아,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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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진지한거만 갈기다가 이런거 처음써봐서 어떨랑가 모르겠음
방금 반을 써서 급전개긴 한데 평가좀
보면서 한번이라도 입꼬리 움직인 전붕이는 개추박기
도움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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