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씨, 저희 왔어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정희원과 듬직한 체형의 남성 이현성이 1인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상아는 그들의 병문안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제 가벼운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스타 시티의 의료 기술은 굉장히 뛰어났기에 관통상도 일주일이면 후유증이나 흉터 하나 없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상아는 초능력자라 선천적으로 신체가 일반인보다 월등했다.
"진짜 걱정했다고요."
"하하.....고마워요."
그렇게 병실의 간이 의자에 앉던 둘은 음료수며 과일이며 다양한 병문안 선물들을 발견했다.
"누가 왔다갔어요? 뭐가 좀 많네요."
희원은 호기심이 동해 이리저리 선물을 훑어보았다. 상아는 순간 한숨을 푹 쉬었다.
"마왕이요."
"네?"
"진짭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더욱 충격을 먹었다.
"혹시 독이 있는 건......"
"독은 없어요. 제 앞에서 하나씩 까서 먹던데요."
"그래도, 빌런이 준 건데......"
"저도 그게 고민이에요."
히어로들은 선물을 함부로 받지 않는다. 시민들로 위장한 빌런이 폭발물이나 독극물을 선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의 싹을 지울 수 없었다.
"제가 버리고 올게요."
"......괜찮겠죠?"
"안 괜찮으면 뭐 어때요. 마왕놈 그냥 길가다가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네요."
희원은 독자가 선물한 물건들을 현성과 하나씩 수거해 나갔다. 상아는 조금 침울한 눈빛으로 그것들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마왕이 진짜 옆집에 살아요?"
"네, 딸이랑 같이요."
현성은 놀라 되물었다.
"딸이요? 정말입니까?"
"입양딸이래요. 애 키우기 좋다고 이사왔다나 뭐라나......"
희원은 어이가 사라졌다.
"있잖아요. 상아씨, 진짜 마왕이 도와준 이유가 뭐에요? 현장에선 그렇게 철천지 원수처럼 싸우던데, 혹시 그동안 미운정이 들었다거나 둘이 눈 맞은 건 아니죠?"
상아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소리에요! 제가 빌런이랑 그럴 리 없잖아요! 희원씨 진짜......"
"아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근데, 이거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어디서 들었던 거 같은데요?"
상아는 분했는지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그 둘 사이로 현성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
.
.
"사, 살려.....으아아아악!!"
우드득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남성의 팔이 뜯겨져 나갔다.
팔을 뜯은 남자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뜯은 팔로 마치 방망이처럼 어깨를 팍팍 치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곤 말했다.
"남의 걸 함부러 건드리면 벌을 받아야지."
"으으......무, 무슨......"
"알 거 없어."
마왕, 김독자는 사내의 목을 움켜쥐곤 씨익 웃었다.
"잘 가."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독자는 발걸음을 돌려 건물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도박장 곳곳은 피와 시체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빌런 집단 <3D>
고작 1시간 만에 조직의 보스와 간부들, 다수의 말단 부하들이 전부 사망했다.
단 한사람, 마왕 김독자에게.
"퇴원 선물로는 이게 딱이겠지."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비유의 저녁밥과 상아의 퇴원만이 맴돌고 있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비유랑 외식이나 해야겠다. 아, 아지트에서 옷도 좀 갈아입어야겠네.'
마왕이 사라진 도박장에는 곧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
.
.
이곳은 불이 환하게 켜진 아지트.
독자는 샤워를 막 마친 것인지 살짝 젖은 머리에 수건을 걸치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야, 김독자. 저거 니가 한 짓이냐?"
"어, 내가 했는데."
"미친 또라이아냐, 이거."
단발머리에 눈물점을 가진 고양이 상의 여인이 뉴스를 보다가 욕설을 내뱉었다.
"또라이라뇨. 저는 나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자 검은 생머리에 적안을 가진 여인이 말했다.
"또라이든, 뭐든 어차피 언젠가는 치웠어야 할 놈들이었어."
페도라를 쓰고 궐련을 입에 문 남자도 말했다.
독자는 그들 중심에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사람의 몸을 찢으며 학살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뭐 귀찮은 일 하나 사라졌다 치자."
"고마워요. 여러분.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저도 사랑한답니다. 김독자. 확 덮쳐버리고 싶을 만큼 말이죠."
이들은 독자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다.
흑염마황, 한수영.
요마(妖魔), 아스모데우스.
지배자, 아가레스.
이들은 여러가지 사업으로 거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뒷세계의 거의 모든 마약과 담배는 이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물론 히어로 연합에 걸리지 않도록 적정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식사나 하고 가. 요즘 메타트론이 눈에 불을 켜고 다녀서 나는 당분간은 여기서 쉬어야겠어. 근데, 아스모데우스, 그 라파엘이랑은 잘 되어가나?"
"후후, 거의 다 넘어왔어요. 앙칼진 고양이 같은 게 얼마나 귀엽던지."
아가레스가 궐련을 끄자 그의 부하들이 차례차례 음식을 대령했다. 그러나, 독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지만, 오늘 저녁은 비유랑 먹으려고요.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너네 집 놀러가도 되냐? 비유 얼굴도 보고 싶은데."
"그래, 언제 한번 와."
"알겠어. 잘 가."
"조심히 들어가라."
"잘 가요. 김독자."
독자는 아지트를 걸어나와 날개를 펼쳐 자신의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
.
.
이곳은 대형마트의 스낵 코너.
비유는 독자가 끄는 쇼핑카트에 앉아 있었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은 과자 있어?"
"우움...'도깨비 밥'이요."
독자는 '도깨비 밥'을 담고는 다른 곳으로 셔핑 카트를 이끌었다. 생필품까지 사고 나서 둘은 푸드코트로 향했다.
비유는 치즈 돈가스를, 독자는 철판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는 지금 소소한 삶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뒷세계에선 서로 이득을 차지할려고 아득바득 싸워대는 것은 정말 흔했다. 그렇게 피와 장기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주말엔 비유랑 뭐하지......'
그렇게 돈가스를 오물거리던 비유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독자였다.
.
.
.
뚜벅, 뚜벅
한손에는 장 바구니를, 품에는 잠에 든 비유를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독자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건 바로....
"이게 왜 안 열리지......"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상아였다. '아직 초저녁인데 뭐지.....'라고 생각한 독자는 헛기침을 살짝 했다.
"크흠."
"!!"
상아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독자의 얼굴엔 황당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거기 우리집인데요."
"네?"
상아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과 번호판을 바라봤다.
그녀는 얼굴이 더욱 발개지며 횡설수설했다.
"아, 그, 그러니까! 이건!...죄송합니다아!"
무언가 설명하려다가 혀가 꼬여 포기하곤 도망치듯 달려가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상아였다.
'잘 퇴원하셨나보네.'
독자는 피식 웃고는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어서 잠이 든 비유를 침대에 눕혀주려던 찰나.
텁
상아가 자신의 옷깃을 살짝 잡아왔다. 그러곤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열었다.
"저...진짜 죄송한데요...잠시......"
"쉿. 애 깹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독자는 상아의 말을 끊고는 속삭였다. 그러자 상아는 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미안함을 표했다.
독자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는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잠시 깬 비유의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식탁에 앉아 머리를 박고 있던 상아에게 차가운 냉수를 한잔 건네주었다.
냉수를 원샷하자 술이 좀 깼는지 목소리를 가다듬곤 말했다.
"제가 주사가 좀 있는데.....이게 뭘 자꾸 까먹어가지고요...."
"그래서 방금 자기 집이랑 비밀번호마저 까먹으신 겁니까?"
얼굴을 숙이곤 고개를 끄덕이는 상아.
독자는 너털웃음을 흘린 뒤 말했다.
"그럼 기억 나실때까지만 계시다가 가세요."
"...고마워요."
"별말씀을."
독자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자 상아가 푸흡하고 웃기 시작했다.
"크흡...."
"왜 그러십니까?"
"잠옷이...크흡, 귀, 귀엽네요."
독자의 잠옷엔 '도깨비'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아, 비유랑 같은 디자인입니다. 귀엽죠?"
"후흐...네."
상아는 그 모습에 긴장감이 확 풀어졌다. 저 남자의 정체를 모른다면 누가봐도 다정한 딸 바보 아빠였으니까.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상아는 순간적으로 웃음을 멈추곤 한 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요즘 정체불명의 능력자가 나타나서요. 히어로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으니까, 경찰 신뢰도도 떨어지고......3D 진상 규명 때문에 업무량도 많아지고......술 접대도...."
독자는 마지막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심히 기분이 불쾌해졌다. 독자는 슬쩍 3D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상아는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놀랐다가 살짝 웃었다.
"부럽네요. 그렇게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사는 거. 저희는 누구 죽이면 경위서랑 보고서까지 전부 다 작성해야 하는데......"
"그럼 지금이라도 빌런 하시겠습니까? 상아씨라면 훌륭한 빌런이 되실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크흠...네. 그러죠."
독자는 제 하얀 뺨을 살짝 긁적였다. 상아는 그를 가만히 보다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독자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상아가 그의 뺨을 손으로 잡아 주욱 늘어트리고 있었다.
"멈니까?"
"와, 이거 진짜 말랑하네요."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이제 술도 다 깨신 거 같은데 어서 들어가세요."
독자는 상아의 손을 떼어내곤 살짝 퉁명스레 말했다. 상아는 그를 놀리듯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게 인사를 나누며 상아를 배웅하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한 독자는 비유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독자는 비유의 침대 앞에 살짝 앉고는 상아가 만진 자신의 뺨을 손으로 쓸었다.
마치, 아직도 그녀가 꼬집고 있는 것 같았다.
'참 마음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사람이네.'
그는 한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자신 앞에서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 갈색 눈을 떠올렸다.
다음에 계속
ㅡㅡㅡㅡㅡ
왜 독상은 아무도 안씀?
원통하구나 원통해
그런 의미에서 독상 한편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