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 아직 안끝났어"


한수영은 나를 밀치고 유중혁에게로 달려갔다.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한수영의 단검이

유중혁의 왼쪽 뺨을 베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얕게 상처난 유중혁의 뺨에서

피대신 연기가 솟아 올랐다.


"역시 아바타 맞네"


한수영은 가짜 유중혁의 배를 걷어찼다.

가짜 유중혁은 정신을 잃고 힘없이 방 모서리에 부딫혀 쓰러졌다.



"김독자, 유중혁 이렇게 된거 언제부터였지?"

"대충 한 2월 초..쯤?"

"후.. 이 미친새끼"


한수영은 잔뜩 찌푸린 미간에 검지와 엄지를 얹었다.


"그 새끼도 돌아오면 공단에 매달아놔야 돼 아주"


한수영은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화신 유중혁을 소환한다."


[성좌, 거짓 종막의 설계자가 스킬 '등장인물 소환'을 사용합니다!]


시나리오가 끝난 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간접메시지.

하지만 이보다 놀라운 건 이후에 뜬 간접메시지의 내용이었다.


[화신, 유중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엥? 뭐야 이거"


한수영은 날카롭게 찢어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화신, 유중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화신, 유중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화신, 유중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유중혁을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에, 한수영은

곧장 예상표절을 사용했다.


그리고 나도 골똘히 유중혁의 위치를 추론하기 시작했다.


'소환계 스킬은 대상이 같은 세계선에 있다면

장소에 상관없이 어디에서든 소환할 수 있어.

하지만 방주도 부숴진 마당에 유중혁이 다른

세계선을 갈 수 있을 리가 없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중혁의 위치가 짐작가지 않았다.


그때, 예상표절을 끝마친 한수영이 밖으로 빠르게 뛰쳐나갔다.


"시발 조졌다..!"


나는 곧바로 한수영을 쫓아 방을 나섰다.

한수영은 신발도 대충 구겨신고 현관문을 열어 집 밖으로 나갔다.


"야 한수영 어디가! 설명은 해줘야지!!"


[성좌, 거짓 종막의 설계자가 스킬 '흑운칠성'을 사용합니다!]


"아씨, 대체 왜 저러는거야?"


['마왕화'를 발동합니다!]

['천사화'를 발동합니다!]


등 뒤에 돋아난 두 쌍의 날개가 펄럭이고,

금새 허공을 달리고 있는 한수영의 근처까지

쏜살같이 쫓아갔다.


"야 왜 그러는데!! 설명을 좀 하라고!!"


한수영은 어깨를 붙잡은 내 손을 떨쳐내고 말했다.


"확실한 건 몰라, 예상표절로도 정확히는 못 알아냈어"

"그럼 왜 이러는데!"

"예상표절을 통해 나온 결론이 '지금 유중혁을 찾지 않으면

이 세계선은 멸망한다.'야"


한수영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나도 날갯짓을 재촉해 빨라진 한수영의 속도를 겨우 따라맞췄다.



여태까지 한수영의 예상표절은 틀린 적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성좌가 돼 격을 높인 한수영의 예상표절의 정확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을 것이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불안감이 커져갔다.


'유중혁을 찾지 못하면 세계는 끝난다.'


무조건 혼자 짊어지며 나 자신을 희생해 읽어냈던 이야기의 비극을,

일행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그 이야기의 결말을 바꿨다.


이 세계는 어릴 때 내가 꿨던 가장 오래된 꿈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이 세계를 잃을 수는 없었다.



한수영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안나 크로프트


그녀가 왜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 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한수영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아서겠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독자 씨! 독자 씨 지금 어디에요!! 왜 서울 벗어났어요!!! 

능력은 또 왜 쓰고!!!! 수영 씨랑 같이 있죠? 당장 돌아와요 빨리!!!"


"그게.. 유중혁이 사라졌습니다."


"...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바로 다시 안나 크로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리가 없어요 기록에 안 남았는데..?"

"당신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뚝-


전화를 끊고 나랑 한수영은 다시 허공을 내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유중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젠장.. 어디에서도 그 망할 놈의 설화가 안 느껴져.

그 찐따같고 불쾌한 설화의 느낌을 내가 잊었을 리는 없는데.."


혼자 중얼거리던 한수영은 갑자기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김독자, 너 가장 오래된 꿈이잖아. 어떻게 못 찾아?"

"한번.. 해볼게"



지하철에서 돌아온 이후, 꿈 장악력과 내 설화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됐다.


이 상태에서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을 사용하면

내 설화는 박살나버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난 여태까지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지금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유중혁을 찾지 않으면 세계는 멸망한다.


난 유중혁의 설화의 흔적을 찾기 위해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을 사용했다.



..아니 하려했다.



['제 4의 벽'이 능력 사용을 막습니다.]


'뭐야 이놈? 요즘 말도 없더니 갑자기 왜 이래..'


난 제 4의 벽의 제지를 무시하고

손을 뻗어, 조금 더 강하게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을 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찰나 공중에서 인간 모습의 비유가 나타나

급하게 내 손목을 움켜쥐고 능력 사용을 막았다.



[멈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