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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ㅡㅡ


"왼팔을 천천히 움직일 수 있겠어?"

"네."


나는 비무대회가 끝난 후 상아 언니의 장원에서 설화 언니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왼팔로 '백청반경'과 '부분전인화'를 시전하다보니 아무래도 조금 무리가 간 상태였나보다.


설화 언니의 지시에 따라 손을 쥐락펴락 하기도 하고 위 아래로 움직여보기도 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하지만 당분간은 왼손은 쓰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알겠어요."


왼손에 붕대를 감고 진통제를 먹은 다음, 아빠를 기다렸다. 이번 비무대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게 꽤 많았다. 교의 대주 아저씨들과 대련할 때와 정파의 고수들과 비무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그래도, 강호에선 경험 많은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성장했다.


"으아....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서 시원했다.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 덩어리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낮잠이라도 자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시상식.

나는 높은 단상 위에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침울했다. 나를 노려보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지금 내 뒤쪽에도 한 놈 더 있었다.

나에게 패배한 남궁언이 머리에 붕대를 둘둘 둘러싸맨채로 눈을 희번득 뜨고 있었다. 저러다가 칼뽑고 달려드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남궁언이 그 정도로 병신은 아닐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씩씩 대기만 할 뿐이었다.


맹주님도 참 잔인하다. 꼭 이렇게 공개처형을 해야하는 건가? 시상식은 본인이 직접 참가해야 한다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십삼 회 천하제일 후기지수 비무대회. 최종 우승자 김비유. 일등상은......대...환단 입니다."


사회자 아저씨가 말을 늘였다. 사람들의 한 숨 소리와 탄식성이 들려왔다. 나는 딱히 축하나 환호성을 바라지 않았기에 어깨를 으쓱하고 예를 표한다음 대환단이 든 목갑을 받아들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맹주님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거 가짜는 아니죠?"

"하하하하!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내 별호를 걸고 맹세하마."


저 정도로 호언장담 하는 걸 보면 진짜가 틀림없다. 하긴, 가뜩이나 나한테 진 것도 분해 죽겠는데 상품까지 가짜로 내준다? 정파 무림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다음, 제 십삼 회 천하제일 후기지수 비무대회 이등......"


시상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참가상으로는 화산파의 매화단이 주어졌다.

매화단은 만들기도 쉬워 화산파에 아주 그냥 굴러다닐정도로 많다고 한다.


"헤헤헤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환단이 든 목갑을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치만 이것은 지금 먹으면 안된다. 우리에게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빨리 본교로 돌아가는 게 먼저였다.


그 전에.


시상식이 끝나고 참가자와 그 문파의 사람들과 연회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참석했다. 대환단은 어디 숨겨놓기 보다 아빠의 품에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했기에 직접 지니고 다녔다.


우리들은 상아 언니가 골라준 옷을 입었다.

역시 얼굴이 받쳐주니까 아빠가 입은 옷은 귀티가 좔좔 흘렀다. 상아 언니도 만만치 않았는데 오늘 하루는 '천하제일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빠는 진짜 복 받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몰렸다. 그래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 보다는 불편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빠 옆의 언니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더 많았다. 특히 상아 언니랑 설화 언니를. 저런 음흉한 놈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는 없었다. 그저 멀리서 아주 예쁜 독초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가볍게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식사 전에 독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은침을 하나씩 꽂아보는 것 부터 대부분의 독에 면역이 있는 설화 언니가 한 번씩 먹어보고 난 후에야 우리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연회가 끝나면 새벽같이 움직여야 해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즐깁시다."

"네!"


우리는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가 끝나자 아빠가 갑자기 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더니 마개를 제거하고 우리 잔에 한잔씩 따라주었다.

물론 내 잔에도.


"우승 축하한다."

"축하해, 비유야."


아빠와 언니들의 축하 속에 우리는 잔을 들이켰다. 목이 조금 뜨거웠지만 생각보다 쉽게 넘길 수 있었다. 나 술 잘 마시는 거 아닐까?


무공도 고강하고 술도 잘 마시는 차기 교주 김비유.......크으 내가 생각해도 멋지다.


"비유야!"


그렇게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동안. 파천문 친구들이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지혜 언니는 삼등상으로 무당파의 태청단을 받았다. 대환단 보다는 값어치가 떨어지지만 무당파 최고의 단환으로 엄청난 보물임은 틀림 없었다.


"아저씨랑 언니들도 안녕하세요!"


우리들은 파천문 친구들의 인사를 받아줬다. 언니들도 파천문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주었다.


"중혁이 너도 왔네?"

"나는 오면 안 되는 건가?"

"아니....신기해서 그래. 이런 자리는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싸가지 없는 유중혁 저놈도 있었다. 

나는 저런 놈은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


"맹주님은?"

"곧 오실거다."

"밥은 먹었어? 이거 꽤 맛있어."

"생각 없다."


싸가지 없는 놈. 남궁언은 적어도 존댓말은 하는 사내였다. 가만히 보면 진짜 짜증나는 놈이다. 지금이라도 대가리 깨버릴까?


"내일이면 작별이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

"맞아요. 언니. 저희 다음에 또 만나요."

"다음에 만나면 저랑도 대련해주세요. 누나."

"그럼, 당연하지."


그때, 갑자기 연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슬쩍 바라보니 맹주님이 예복을 입고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맹주님의 덩치 때문에 마치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난 느낌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길다랗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함울 들고 오고 계셨다.


그래, 저 정도면 검 한 자루는 충분히 들어갈......

잠깐, 검 한 자루?!


"다들 식사는 잘 하고 계셨는가?"

"너무 맛있는데 다 못 먹을까 걱정입니다. 근데 맹주님...그건?"

"아...자네 딸 한테 주는 내 개인적인 선물일세. 정확히는 검이지. 대회가 끝났으니 이제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네. 비유야. 어서 열어보거라."

"빨리 열어봐요. 비유 언니!"


와아아아아!

파천검성! 천하제일고수란 별호가 아깝지 않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차오르는 흥분을 억누르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절이라도 한 번 해야하나?


나는 몇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맹주님이 내 입을 틀어막아버릴 정도로. 옷을 가다듬고 주위를 슥 둘러보니 나보다 더 한 기대감으로 가득 들어찬 눈들이 보였다.


부럽냐? 부러우면 지는거다.


나는 천천히 목함을 열었다. 안쪽엔 부드러운 비단이 검을 받쳐주고 있었다. 검을 들고 검집에서 천천히 발검해보았다.


스르릉......


아....이 소리...짜릿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

"우와..."


여기저기서 감탄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 신경은 검에게 쏠려 있었다. 내 표정을 본 맹주님이 호탕하게 웃으시며 검을 소개 해주었다.


"그 검은 백련정강(百鍊精剛) 검이란다. 원래 이름은 그대로 백련(百鍊)검이다. 네가 원하는 이름을 지어도 좋다."


백련정강(百鍊精剛).

'한철' 보다는 한 단계 아래지만 '현철'보다는 한 단계 위의 강도라고 볼 수 있다.

백련정강은 말 그대로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손에서 100번의 담금질을 거쳤다는 뜻이었다.

어째선지 이 검에서 엄청난 정성이 느껴진다 했더니......100번을 담금질 한 검. 엄청나게 튼튼하고 날카로울게 분명했다.


"마음에 드냐?"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잖아요! 진짜 감사합니다 맹주님!"

"하하하! 그래, 검의 이름은 정했느냐? 내가 하나 지어줄까?"

"정했어요. 이 검의 이름은 이제부터 '비유검'이에요."

"검에 니 이름을 붙였어?"


하영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빠가 쓰시는 검도 '독자신검'인데 뭐 어때."

"검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좋은 마음가짐이군. 비유검......좋구나."

"거 봐. 맹주님도 마음에 들어하시잖아."


나는 검을 천천히 납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맹주님에게 인사하고, 이름 모를 대장장이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이 정도면 내 첫 강호행은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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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우리는 짐을 싸고 있었다.

나는 출발하기 전, 검이 검집안에 잘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나를 본 희원 언니는 가소롭다는 듯 깔깔 대며 웃었다.


그때, 장원 바깥에서 많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일부러 지신들의 위치를 알리려는 듯한 기척이었다. 아빠가 일어서서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대략 열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것은 우리 교에서 호위, 정찰, 암습, 등을 주로 하는 교주 직속 정예부대 '흑림대'였다.


"흑림대주."

"교주님을 뵙습니다."


아빠의 말에 흑림대주 아저씨가 마차에서 튀어나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저 멀리 사천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셨던 마부 아저씨와 흑림대원 아저씨들도 한 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해요."


우리들은 상아 언니와 작별 인사를 했다.

상아 언니는 상단의 후계자를 정한 다음, 내년 봄에 아빠와 혼례를 올린다고 한다.


그때를 위해, 지금은 작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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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흘러 꽃들이 만발하기 시작하는 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마교의 신물인 마혼단(魔魂丹)과 소림사의 대환단을 섞어서 만든 '태극단'을 만들었다는 것. 덕분에 내 몸은 마공을 익혀도 주화입마나 환상을 보는  부작용이 사라졌다.

그리고 천마신교에도 봄이 찾아왔다.


천마신교의 거대한 광장.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시끌벅적했다.


당연히 그 축제는 아빠와 상아 언니의 혼례였다.

교인들이 몰려나와 술과 음식을 마시며 환호성과 박수를 내질렀다.


그 사이에 맹주님이 술병을 들고 보기 좋다며 소리 치는 것도 보였다. 혼례가 끝나자 아빠가 좌중을 한 번 쓱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하늘 아래 모든 존재에 영광있으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크게 외쳤다.


"하늘 아래 모든 존재에 영광있으라!!!"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와 새엄마를 보자니 문득 옛날이 떠올랐다.


가끔씩 아빠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대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며칠동안 잠을 못 자 눈 밑이 거뭇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옛날에 아빠가 익힌 마공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아빠에게 어째서 마공을 배웠냐고 물어봤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지. 비유야, 마공이고 정공이고 사공이고 전부 부질없다. 무공은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있는거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빠는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신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 저 한쌍을 축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만 봐도. 아빠의 삶은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빠는 한평생 힘 없는 약자들을 지키려고 노력해왔기에 나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는 이들이 보는 풍경,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노을들을 지키기 위해 살겠다.'


그것이 나의 마도(魔道)다.

우리는 모두 술에 취해 흥얼거릴 줄 알고, 노을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우리 자랑스런 아빠가 바꾼 천마신교의 첫번째 교리.


하늘 아래 모든 존재에 영광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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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드아....

근데 끝이 좀 힘이 딸려서 흐지부지 되버렸다......


암튼 지금까지 봐준 전붕이들한테 감사 인사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