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은 가벼운 일상에서 시작됐다.



발렌타인 데이 때, 나가라는 한수영의 말에

곧장 나가고, 꺼지라는 길영이의 말에

곧장 꺼지는 유중혁의 모습.



그건 내가 아는 유중혁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돌아오고, 유중혁이 주변인들에게

유해지려고 노력한다지만


요즘은 너무 이상한데..





"한수영. 일로와봐"


방에서 원고작업을 끝마치고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내려온 한수영이 내 쪽을 돌아봤다.


"왜? 나 피곤한데."



...유중혁은 방 안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외출했으니

말해도 되겠지?



"요즘.. 유중혁 좀 이상한거 같지 않아?"


"안그래도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수영이 식탁 앞에 앉으며 물 한모금을 마셨다.





"저거 유중혁 아니야."


한수영은 확신에 찬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내 물음에 한수영이 한숨을 푹 쉬고

대답을 이어갔다.





"...아바타 스킬의 숙련도가 어느정도 올라가면

아바타에게 많은 기억을 주지 않고도

'자유의지'를 부여할 수 있어."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아바타는

가지고 있는 기억 내에서

본체처럼 행동해."


"근데, 자유의지를 부여하는게

아까 말했듯이 숙련도가 필요한

어려운 기술이란 말이야.


그래서 미숙련자가 사용하면

본체와 아바타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아바타의 의지가 점점 상실 돼."



...잠깐, 그러면..



"저 자식.. 아바타야."



따뜻한 4월 햇살이

구름에 가려 집안은 조금 어두워졌다.



하필이면 그 유중혁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한수영은 컵에 남아있는 물을 마저 마셨다.


"가장 확실한 건 베어봐야 알지.

피를 흘리는지 안흘리는지."


한수영은 들고있던 컵을 식탁 위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래서 말인데.. 그 새끼 지금 어딨냐?"


한수영의 소매에서 단검 하나가 밀려 나왔다.

단검에 약한 마력이 흘려내리는 것을 보고


시나리오 때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그치만,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저 유중혁이 진짜 '아바타'라면,

유중혁이 모종의 이유로 혼자 어딘가로 떠난거라면,



이야기의 비극이 다시 한번 재현될 가능성이 뚜렷했다.





"... 방에. "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한수영을 따라 조용히 유중혁의 방으로 걸어갔다.



한수영이 강하게 문을 열자

그 곳에는 흑천마도의 검신을 닦는

유중혁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흐트러짐 없이 꼿꼿히 허리를 펴 앉아

똑같은 동작으로 검을 닦는 유중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무슨일이지. 김독자 한수영"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유중혁에게

천천히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치켜들었다.





"막아. 중혁아"





유중혁은 가볍게 휘두른 내 검격을 빠르게 흑천마도를

휘둘러 막았다.


하지만 흑천마도는 유중혁의 손에서 떨어져

방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하는 짓이지. 김독자"





날 응시하는 유중혁의 말투에서, 표정에서

그 어떤 감정도 표현되지 않았다.


그저 국어책을 읽는 듯한 유중혁의 어조에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섬뜩함 마저 느껴졌다.





난 대답없이 바닥에 떨어진 흑천마도를 확인했다.



검신이 두동강이 난 흑천마도의 모습.


그리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나를 응시하는

유중혁의 모습.








이건 가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