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나리는 하얀 소복눈, 길거리에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


병원복을 입고, 링거줄을 매단 한 소년이 대학병원의 창가에서,

캐롤의 가사처럼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절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작은 장난감과 같이 보이고, 길거리를 지키는 가로수들이 한 손에 잡힐 수 있을 만큼 작아보이는 높이.


이 높이가 딱 소년이 뛰어내렸던 높이였다.


소년은 머릿속에 들리는 잡생각들을 떨쳐내려 울려퍼지는 캐롤 음악에 집중했다.


아름답고 조심히 한 음, 한 음 읊는 피아노 선율을 따라 소년의 기억이 다시 되감아졌다.




---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기계음의 소리, 온몸이 부서질 듯이 소리를 지르고 환한 천장의 조명이 소년을 깨우며, 그의 기억은 시작된다.


"으..으...으.."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에, 소년은 깨어나서도 제정신을 찾을 수 없었다.


깨질듯이 죄여오는 두통과, 조금도 숨을 쉴 수 없게 폐를 압박하는 듯한 갈비뼈, 미친듯이 부대껴오는 뱃 속 장기들의 고통에

소년은 넋을 놓은채 흐느꼈다.


이후 바로 달려온 간호사가 소년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 단계 높은 진통제를 투여해 소년은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죄여오는 두통을 견뎌내며, 조금씩 조금씩 이전의 기억들을 되짚었다.



조금씩 불어오는 산뜻한 여름바람, 난간에 올라선 소년의 몸이 점점 앞 쪽으로 기울었다.


위태위태한 각도로 기울어지는 소년의 몸, 등을 떠미는 바람에 힘입어, 소년의 몸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낙하했다.


- '한순간이다.'


5분 전,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껏 받아온 괴롭힘, 폭언, 폭행이 고작 나약한 한순간으로써 청산될 수가 있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소년의 시간 속,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지자 소년의 머리는 온통 공포로 가득찼다.


'살고싶어, 살고싶어, 살고싶어...'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난간은 아스라히 닿지 않았다.'



쾅!



소년의 몸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땅을 짚은 손부터 시작해서 손목을 타고올라 어깨, 척추, 허리,


소년은 땅에 닿는 순간의 그 충격을 온몸으로 똑똑히 느꼈다.



아찔한 기억을 더듬은 소년은, 속에서 밀고 나오는 구토를 애써 막아냈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소년의 자살 기도는 명확히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에 좌절할 새도 없이, 소년의 병실 문이 강하게 열렸다.


"너.."


한껏 상기된 얼굴로 병실로 성큼성큼 한 중년의 여인이 들어왔다.


밍크코트에, 명품백, 과하게 칠해진 색조화장,


대충 보아도 꽤나 돈이 많아보이는 한 여인이, 누워있는 소년을 내려보았다.


갖가지 의료기구를 온몸에 꽃은 채, 힘겹게 숨을 내쉬는 소년의 모습.


여인은 그런 소년을 향해 나지막히 한 문장을 내뱉었다.



"죽을거면 확실하게 죽어, 사람 기운빼지 말고."



여인은 곧바로 명품백을 고쳐쥐고 다시 성큼성큼 병실 밖을 향해 나섰다.


-[그냥 확 뒤지지!! 왜 살아나가지고.. 이 씨발]


병실 문을 강하게 열며 중얼중얼 내뱉은 혼잣말이 소년의 귀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소년은 간신히 참았던 눈물을 흘려보냈다.


울음소리를 내뱉을 때 마다, 오른쪽 늑골에서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고,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온몸이 부대껴왔지만,


소년은 가슴을 강하게 찌르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린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계속해서 울음을 내뱉었다.



---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되짚었던 기억을 다시 한번 곱씹은 후, 소년은 병상에서 일어나 링거걸이를 쥐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소년은 저려오는 다리를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가벼운 기계음 소리와 함께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은 소년은 잠시 고민한 뒤, 버튼을 눌렀다.


[B1, 지하 휴게실]


소년의 아찔했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소년의 행동의 목적은 확고했다.


일전의 실패는 부족한 높이에서 비롯되었다.


소년은 병원 옥상에서는 그 높이가 절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엘레베이터가 옥상 층인 12층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지하로 향하는 것은


사실 죽기 싫고, 살고 싶다는 뻔한 클리셰의 생각이 아니었다.


지옥같은 수 년을 버텨낸 자기 자신에게, 마지막 휴식을 스스로 선물하기 위함이였다.



잠깐 동안의 기다림이 끝나고,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자정이 넘은 늦은 새벽의 고요한 적막이 어두운 지하 휴게실을 가득히 채웠다.


티비 앞 밝게 켜져있는 조명을 따라 소년은 링거걸이를 끌며 무거운 걸음걸이를 재촉했다.


휴게실 한 쪽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컴퓨터, 소년의 마지막 휴식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늦은 새벽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앞에는 중절모를 쓴 한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아.."


마지막 휴식을 침범받았다는 생각해, 소년은 저도 모르게 나지막히 한숨을 내뱉었다.


중년 남성은 한숨 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봤다.


소년은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 그, 그게.."


중년 남성은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의 모습을 흐뭇이 쳐다보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쓰시죠"


"네?"


자리에서 일어난 남성이 중절모를 잠깐 벗고 소년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휴게실 너머 어둠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소년은 이상한 남성의 행동에 잠깐 넋을 놓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밝게 켜진 모니터에는 소년이 평소 즐겨보던 한 웹소설 사이트가 떠있었다.


소년은 마우스를 움직여 검색창을 클릭했다.


몇번의 검색과 뒤로가기를 반복한 후, 소년은 천천히 한 문자를 입력했다.



[ㅅ]



짤막하게 그려진 한 문자에, 소년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살ㅇ]



소년의 마음은 언제나 확고했다.



[살아남는..]



그리고 그 마음은 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다.



[살아남는 방법]



작은 검색창에 쓰여진 한 문장이 소년의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살고 싶다.'



아찔한 생각 속에 감춰진 소년의 진짜 마음이 어둠을 밝히고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마우스를 굳게 쥔 소년의 오른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딸깍-


한번의 클릭, 그리고 소년은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아..."



검색결과 1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작가: tls123

회차: 1 총 조회수: 0 총 댓글: 0




소년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문단과 문단을 읽어 내렸다.


정직하게 그어진 획을 따라, 소년의 감정이 웃고 울었다.


건조하게 적힌 문장을 따라, 소년의 심장박동이 더 빠르게 달아올랐다.



[유중혁은 곧바로 테러리스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후 깔끔하게 뻗어나가는 그의 주먹은 마치…… ]


[그의 주먹이 한 발씩 내리 꽃힐 때 마다, 지하철 내의 상황은…… ]


[유중혁은 굳게 닫힌 칸막이를 강하게 발로 찼다. 바로 옆칸에는 건장한 한 사내와…… ]



[회귀자 유중혁. 그것이 유중혁의 회귀 1회차의 시작이었다.]



소년의 놀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병원복을 적셨다.


굳게 떨리는 오른손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음 속 피어난 작은 빛이, 이내 조금씩 마음 속에서 백색의 파랑을 일으켰다.


소년은 빠르게 로그인을 하고, 천천히 인생의 마지막이자, 새 인생의 첫 문장을 적어내렸다.


김독자  ㅣ  혹시... 내일도 연재하시나요?


그러자 마치 기다린 듯 곧바로 답글이 이어졌다.


tls123  ㅣ  네. 내일도 연재합니다.



그렇게 소년의 내일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