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린 김독자가 꾸는 꿈을 일행들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성좌들이 보는 화면처럼 작게 비춰지는 어린 김독자.
그의 아픔에 일행들이 안타까워한다.

 ㅡ 무척 가혹하군요.

 ㅡ ...뭐가 이렇게 암울한거야?

【...

그리고 움직이려는 한 소년.
녀석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ㅡ 그래서, 여기서 다들 멍청하게 보기만 할거냐?

 ㅡ ...

 ㅡ ...

...

우리엘이 가만히 자신의 설화들을 바라보았다.

[방대한 '격'을 지불했습니다.]

[설화의 손상률이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설화들이 해당 세계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 자신의 '신'을 바라보기 위해 개연성을 많이 써버렸다.
이전에 쌓아왔던 [격] 역시도 많이 소실된 상태였다.
우리엘뿐만 아니라 이현성과 이지혜도 마찬가지였다.

수만년동안 그녀와 일행들이 미쳐버리지 않도록 지켜주었던 설화들.
외우주를 떠돌며, 서로를 지키고 살아온 이야기.
그 소중한 아이들이 사라지는것.

그들에게는 너무 두려운 일이였다.

그리고 이제 그 설화들에 얽매이지 않는 유일한 녀석이 말했다.

 ㅡ 난 내려간다. 더는 쓸대없는 힘을 낭비하기 싫으니까.

【더는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마라, 남운아.

 ㅡ 참나, 니가 뭔데 나한테...

 ㅡ 그냥 좀 가만히 있어!

이지혜가 버럭 소리쳤다.
떨리는 눈으로 사납게 노려보는 그녀.
김남운은 그 눈빛을 읽고서 빈정거렸다.

 ㅡ 외신이라는 것들이 뭐가 그렇게 두려운것도 많냐?

 ㅡ ...

 ㅡ 나처럼 되는게 그렇게 무서워?

 【...

 ㅡ 그 설화들. 우리가 함깨했던 이야기 모두, 사실은 다른 세계선에서 훔친거잖아.

그의 말에 일행들이 녀석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해서는 안 될 말이였다.
이지혜가 싸늘하게 경고했다.

 ㅡ 그 잘난 주둥아리... 이만 닥치는게 좋을거야.

 ㅡ 하! 웃기내. 

일행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긁어놓은 그가 돌아섰다.
그가 [모략]을 노려보았다.

 ㅡ 야, 모략! 언제까지 네놈도 지켜만 볼 건데.

【...

 ㅡ 다들 감을 읽어버렸나? 언제부터 우리가 [시나리오]를 바라보기만 한 거야?

【...

 ㅡ 어제까지 누군가의 [시나리오]를 찬탈하던 그 삶들이 지루들 해지셨나?

일행들을 빙글 돌며 훝어보는 김남운.
침묵하는 [모략].
화면을 바라보며 이를 악문 일행들.
김남운의 시선에서, 그들은 그저 하나같이 정체되어 있는 한심한 녀석들일 뿐이였다.

 ㅡ ...진짜 대단한 겁쟁이들 나셨구나.

 ㅡ ...

 ㅡ 난 갈거야! 말리지마.

【...남운아! 제발!

 ㅡ ...야, [우리엘] 이 멍청한 자식아.

김남운이 화면 앞으로 다가서서 멈추더니 조용히 말했다.

 ㅡ 정말 모르겠냐?

【...무슨 말이냐?

 ㅡ 야, 이지혜. 이현성. 늬들 정말 뭘 해야할지 모르는거냐?

 ㅡ ...

 ㅡ ...무슨 말을 하고싶은거냐. 남운아.

김남운은 잠시 침묵했다.
어린 김독자가 화면에서 웅크리고서 떨고 있었다.
정말 뭘 해야할지 일행들이 모르는것일까.

 ㅡ ...그렇게 [대장], [대장]... 노래를 부르더니.

 ㅡ ...

그 말에 이지혜가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김남운이 화면속 웅크린 녀석을 바라보았다.

 ㅡ 정말 [이 녀석]처럼... 너희는 답답하기만 하내.

【...알아듣게 말해라.

 ㅡ ... 우리엘. 모르겠으면 그냥 여기서 지켜봐.

【뭐? ...지금 뭘 하려는 거냐!

그가 화면으로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우리엘이 다급하게 녀석이 뻗는 손을 붙잡았다.
녀석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안된다! 저곳으로 가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ㅡ 왜? 저기엔 [시스템]이 없어서?

【저곳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시스템]도 무엇도, 아직은 없는 세계.
잔혹한 '현실'.
그들이 쌓아온 설화들이 응답하지 않고 있었다.
에초에 이 세계선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듯이 침묵하고 있었다.

 ㅡ 왜? [설화]들이 침묵하고 있어서?

【...

 ㅡ 잘난 [특성]과 [스킬]이 없어서?

【...

 ㅡ 정말로... 정말로 우리가 할 게 없어? '아무것도'?

【...왜 이러는 것이냐...!

우리엘이 녀석의 팔목을 애타게 붙잡았다.
김남운이 그녀의 손을 모질게 뿌리쳤다.
그 모습에 이지혜가 외쳤다.

 ㅡ 정말 왜 이러는거야! 그러다 네가 진짜로 죽기라도 하면...!

이를 악문 이지혜.
아까의 이별아닌 이별이 떠오른듯이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흩어지던 설화들.
그녀에게 외치던 그 소년.

그리고 바로 그 소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ㅡ 지혜야.

 ㅡ ...!

이지혜가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엘도 마찬가지였다.

담담하게 서서 일행들을 돌아보는 소년.
그가 띈 옅은 미소.
마치 세계선에 몸을 던졌던 '군주'처럼.
그들을 수없이 지켰던 [대장]처럼.

녀석이 녀석답지 않게 의지되는 목소리로, 진실을 전하듯 말을 한다.

 ㅡ 우린 이미 알고있어.

 ㅡ ...

 ㅡ 진짜야, [대장]이 알려줬잖아.

김남운은 오래 전의 기억속에서,
그들의 앞에 섰던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ㅡ ...너희는 [대장]을 만나보기를 바랬을 뿐이야? 그저 복수하기를 원했을 뿐이야?

 ㅡ ...

 ㅡ ...정말 그 오랜시간동안 그저 그리워 하기만 했던거야?

일행들의 눈빛에는 슬픔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그가 그들의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럼에도 일행들은 두려움만을 느끼고 있었다.
김남운이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ㅡ ... 적어도 나는 [대장]이 '되고'싶었어.

김남운은 일행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남운은 [모략]을 돌아보았다.

 ㅡ ... 너도 지금은 그런 것 같고.

[모략]이 눈썹을 크게 꿈틀거렸다.
감았던 눈을 뜨고서, 놀란듯 김남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ㅡ 그러니까 보여줄게.

 ㅡ ...싫어!

이지혜가 눈물을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김남운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그리고 그것은 일어날 일이라는것도.
그는 저 세계로 뛰어들 것이다.
그가 익숙한 삶에 미소짓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하고 나서, 감히 멈춰설 수 있었던 존재들인가.
우리는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그들이 배운 전부였다.

【우리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알면서 두려워하는 한 존재도 있었다.

【우리 '이야기'는 끝이 났단 말이다!

 ㅡ ...참나, '끝'이 어디있냐? 누가 '끝'을 봤는데?

김남운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듯이,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담은 그의 말이 일행들을 슬프게 한다.

 ㅡ ...'우리'가 해야지. 우린 '시작'한 사람들이니까.

【...!

 ㅡ 우리엘... 너도 아직 '확신'이 없구나.

이 이야기의 [가치].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구나, 우리엘.
넌 그 아름다운 가치에 바칠 대가를 지불하기가 두려운거야.
김남운은 이미 텅 비어버린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우리의 상처 투성이인 손은 숨겨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껏 뻗기 위해 존재하니까.

적어도 이제껏 배운대로는 그랬다.

김남운이 다시 화면에 손을 가져다 댄다.

 ㅡ 콰지지지지ㅡ....

주변을 환하게 비추며, 춤추듯 타오르는 [개연성]의 전조.
튀어오르는 스파크와 빛 사이에 김남운이 서 있었다.

 ㅡ 지켜봐. 내가 보여줄 태니까.

【가지마라 남운아!

 ㅡ 모르면 배우면 되는거야. 계속.

【그렇게 두지 않는다!

김남운의 빈 왼손을 그러쥐는 [우리엘].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이현성]이 김남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지혜] 역시도 김남운의 오른팔을 끌어안았다.

일행들의 [격]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활자들이 김남운의 날개가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이번엔 절대 널 홀로 보내지 않겠다!

 ㅡ 두번다시 널 잃지 않아!

 ㅡ 형은 널 항상 믿는다.

김남운은 [개연성]이 대신 지불되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계선에 [낙하]하기 위한 준비가 된 모양이였다.
그의 손을 붙잡은 일행들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차가운 외우주로 한없이 솟구쳐, 그의 손을 뿌리치고 증오스러운 [모략]에게 닿기위해 내달렸던,
그가 잃어버렸던 손들이였고, 온기였다.

적응의 괴물인 그에게도,
이 온기만큼은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았다.

 ㅡ ...바보들...

화면이 입을 쩍 벌리듯, 일행들을 삼키고 있었다.
[우리엘]이 맞잡은 손이 풀리고.
[이현성]이 어깨에 짚은 손이 사라지고.
[이지혜]가 끌어안은 팔이 풀려나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였구나.'

배운대로 살아간다는 것.

먼저 나아간 일행들을 느끼며, 시린 가슴을 뒤로한채로 녀석이 돌아보았다.

 ㅡ 넌 언제까지 그렇게 망설이고 있을래?

【...

[모략]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전 그 남자처럼.
일행들을 두고서, 그곳이 마지막이라는 것 처럼.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ㅡ ...생긴것도 똑같고 ...정말 하는짓도 이젠 비슷하잖아? 이 '가짜'가 되어버린 '진짜' 녀석아.

【...

 ㅡ 그럼에도 넌 아직 '가짜'야.

말없이 발을 내딛지 못한채로 선 남자.
가만히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 김남운이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ㅡ ...항상 그랬듯이, 우리 먼저 갈게 [대장].

【...!

그를 올려다보는 [모략].
김남운이 그 얼빠진 모습에 즐겁다는듯 피식 웃었다.

 ㅡ ...너한태 한 말 아냐. 혹시... 보고있을지도 모를 -...

말을 끝내지 못하고, 세계선으로 사라지는 김남운.
돌아서는 그의 표정이 [모략]에게는 생소한 것이였다.

놀라운 정경이였다.

마치 일행들에게 양손을 잡히지 않았었더라면, [모략]에게 손이라도 내밀었을 것 처럼.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 첫 발을 끌어줄 것 처럼.

감히 그 김남운이.
앞서가는가.

그에겐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순간이였다.

【...

그는 멍하니 한동안 서있었다.
그도 모르게.
넋을 놓아버렸을까.

「수많은 회차들 중, 그 '너머'를 유일하게 원하지 않았던 남자.

자신과 달랐던 999회차의 유중혁.
사라진 저 소년이 '그렇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니,

「그 ■■이 '그렇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토록 [모략]이 보고 싶은 [감동]이라는 ■■.

지금 너무 일찍히 그 감동을 느껴버리고 있었다.

빛이 사라지고.
[작은 화면]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망연히 중얼거린다.

【...나를 앞서가는것.

중얼거리는 [모략].

[시나리오]속에서,
그가 한번도 허락한 적 없었던 것이였다.

[모략]은 누군가가 부러웠다.
지금 '그'가 쌓아온 설화가.
바로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루는구나.
[모략]이 감히 넘어설 수 없을,
대단한 이야기를 살았던 남자였다.

모략에게 김남운이라는 존재.
그가 유일하게 이 세계에서 찾아낸 진정한 [동료]였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그의 도움이 필요없었으니까.
모두가 그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빼앗으려고 할 때,
처음부터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던.
가르쳐 줄 것 없었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동료]였다.

그렇게 그는 모든 회차를 김남운과 함께했다.

그리고 사실, 녀석은 [적응]했을 뿐.
살아남는 방법을 알지는 못했다.
...그렇게 멸망을 수용했을뿐.
진짜 이겨내진 못했다.
항상 마지막에서, 그는 '당당하게' '쓰러졌으니까'.

그는 그저, 두려움을 감춘 소년이였을 뿐이였다.

유중혁은 그 쓰라린 사실을.
오직 이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녀석과 함께했다.

그리고 지금 떠난 저 [녀석]이.
내가 아는 [김남운]이 아닌, 저 녀석이.

...사실 '그'를 닮았었구나.

그리고 나와 달리.

네놈은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인가.

그렇게 멈춰서지 않고 나아가는가.

모략이 평소 답지않게 중얼거렸다.

...그렇군. 네놈이 저 녀석의 ■■■이였던 것인가.

회귀 우울증」이라도 도진듯, 그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계속 중얼거린다.

【...결국 내가 가진 단 한개의 회차도, 너만큼 가치있지 못한 것이냐.

자신을 앞서가는,
저 '4명'을.

그리고 이곳에 선 '하나'의 겁쟁이조차도.

네 손을 거쳐가는가.

내가 되고싶었던 [이야기]가.

내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알량한 [의지]의 원인이.

차갑고, 선명하게.
찬물에 씻기듯이 드러나고 있구나.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진실].
숨겨진 유일한 [공략].

모든 이야기를 찬탈했던 [모략]조차도 절실하게 가지고싶은 '단 하나의 이야기'.

[모략]이 미소지었다.

【...그래, 가거라.

화면에서, 김남운이 비친다.
[모략]은 그 이야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것에 슬프고 허탈하게 미소지었다.

【...'현실'따위는 사실, 나의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 바보를 두고서.

화면 속에서 이지혜가, 우리엘이, 이현성이, 김남운이 뭉치고 있었다.

그곳에 [유중혁]은 없다.

모략은 뱉어본적 없던 말을 조용히 뱉어본다.

【...이제야 나도 살아야겠다.

.
.
.

ㅡㅡㅡㅡㅡㅡ

.
.
.

[그들]이 세계선으로 낙하한 이때.

아직 아무런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들의 존재를 누군가 눈치채고 있었다.

 ㅡ 나의 '신'이여...!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어두운 방에 쳐박혀서, 작은 화면을 바라보며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한 소녀.
 ㅡ 탁탁... 탁타탁...!
바쁘게 움직이는 그 손이 마감을 두려워하는듯이 급하게 문장을 써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설정하나 놓치지 않으려는듯, 약속된 활자들이 아름답게 기록되고 있었다.

도깨비왕은 잠시 그 황홀한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ㅡ 제가 어제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그의 말을 듣지 못한듯, 한수영은 모니터를 바라보는데에 집중할 뿐이였다.
도깨비왕은 말을 계속했다.

 ㅡ 이 세계선에 침범한 존재들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결국, 그들이 여기까지 온 모양입니다.

그녀의 손이 딱 멈춰섰다.
차갑게 돌아오는 대답.

「...그래서 어쩌라고.

 ㅡ ...놀라운 존재들입니다.

녀석이 너무나 캄캄해서 모니터 화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을 부드럽게 가로질러 창가로 다가서고 있었다.
창문을 가린 커튼을 걷는 중년인.
중절모를 쓴 녀석의 얼굴에 환한 빛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푸르르게 펼쳐진 하늘.
구름한점 없는 그 하늘에서, 소리없는 작은 번개들이 치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신기한듯 그 하늘을 핸드폰으로 찍어대고 있었다.

「...놀라운 것과 위험한건 다른거야.

 ㅡ ...

「그래서 뭔데, 넌 저것들이 뭔지 알아?

 ㅡ ...예, 그렇기에 놀랍다고 한 것입니다.

중년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 너머, 아름다운 날개를 가졌음에도 추락하듯이 [낙하]하는 존재들.
도깨비왕이 그 설화의 비대함을 느끼고서 감탄했다.

 ㅡ 놀라운... 설화들입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설화? 놈들이 '멸살법'의 존재란 말야?

 ㅡ 예.

「...잘 됐네.

그녀의 퉁명스러운 말에 도깨비왕이 놀라서 돌아섰다.
마치 그녀의 이해력으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사실을 그녀가 알아낸 것처럼, 깜짝 놀라는 도깨비 왕.

 ㅡ 아니...! 정말 그걸로 끝입니까?

「...무슨 [외신]인지 알아와.

 ㅡ ...예?

도깨비왕이 멍청한 표정을 짓자 한수영이 버럭 소리쳤다.

「...여기까지 올 정도면 [모략]같은 존재일 거라고! [설정] 오류야! 당장 수정해야겠어.

 ㅡ ...

한수영이 모니터의 설정집을 뒤져보고 있었다.
[외신].
[이계의 신격].
그 끔찍한 설정들을 적은 메모장을 켜는 한수영.
그녀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역시, 아직은 너무 일렀어.

한수영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요즘들어 왜 그렇게 흥분했을까.
김독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였을까.
그녀가 쓴 글들이 마구 비틀리고 있었다.
많은 [설정]들을 무시한채로, 유중혁이 너무 강해져 있었다.
김독자가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써내려간 글들.
이제 수정하지 못할 그 글들이 그녀를 질책하고 있었다.

김독자가 유중혁의 다음 [시나리오]를 기다린다.

겨우 살려낸 그 아이가 납득할 만한.
너무나도 강대한 유중혁이 죽어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존재.
...그렇게 김독자를 하루라도 더 살게할 존재.
새로운 시나리오.
[외신].
또 다른 흑막.
그 존재를 다음 회차에 적으려고 했었다.

「...아직도 너무 이르다고...

그녀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녀가 창가로 눈을 돌려 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 치는 잔 번개.

[개연성]이 없어야 할 세계에서 보이는 [개연성의 후폭풍].
이 [원형의 세계선]에서, 누가 감히 저런짓을 할 수 있을까.

어제 저녁.
김독자를 살리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던 도깨비왕은 그 [전조]를 목도하고서 화들짝 놀라 대경한채로 그녀에게 말했었다.

 ㅡ 나의 '신'이시여! 이 세계선에 어떤 [존재들]이 침범한 것 같습니다!

 ㅡ 저희가 너무 [개연성]을 어그러뜨린것이 아닐까요?

한수영은 그것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었다.

김독자를 살리기 위해서, 도깨비왕에게 너무 많은것을 바랬으니까.
어린 그 녀석을 살리기 위해,
2회차씩 연재를 하고, 옥상의 문들을 모두 걸어잠그고, 사람들의 시선을 물렸으니까.

그런일이 과연 어제뿐이였을까.

수십 수백번째, 아파하는 녀석의 현실에 몰래 개입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 세계선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원하는 ■■는 사실, 그녀 따위가 쓰기에는 과분한 '소설'이라고.
하찮은 '멸살법'처럼.
'죽어야만' 하는 작은 아이 하나 쉬이 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이 끝에 실패를 항상 염두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어린 김독자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

「정말... 이렇게 계속하면 녀석이 살 수 있을까.

한수영은 능글맞은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20살이 넘어.
세계선을 넘어와 그녀의 이야기를 망치고.
[유중혁]을 결국 살게 만들었던 밉상스러운 김독자.

그리고 그녀는 '작은 손'을 떠올렸다.
아파서 떨고있는 작고, 멍들고, 활퀴어져서, 아파하는 창백한 손.
그녀가 붙잡아보아도, 그녀의 손가락 하나 쥐지 못하고 툭 떨어지던 힘없는 그의 손을.

그녀는 그 손이 무언가를 움켜질 때 까지.

꽉 움켜쥐고서, 녀석이 언젠가는 장난스럽게 웃어주기까지.

그녀는 아직도 쓰고, 또 쓰는 중이였다.

[은밀한 모략가].

그녀가 모니터에 떠오른 그 텍스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살았던 1863회차의 세계선.
그녀가 거쳐온 그 끔찍한 모든 [시나리오]를 합해도, 이 [외신]하나만 못할 것이다.

너무나도 끔찍한 존재.

그녀가 쓴 글에서 998회차의 마지막이 가깝다.
이대로라면,
도무지 녀석이 등장할 [개연성]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겨우 1860회가 넘어갈 회차로는,
유중혁이...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하고싶지 않은,
비틀린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한수영은 [외신]을 기록하기에 망설였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에는 한 회차에서 그렇게 많은 [개연성]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허구'여야만 하니까.

언젠가는 그 아이가 깨어날 '꿈'이니까.

잔혹한 현실을 느끼며, 손을 멈춰버린 한수영에게 도깨비왕이 말했다.

 ㅡ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저들이 누구인지... 정말로 모르시겠습니까?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걸까.
뭘 더 알아야만 하는가. 
내가 이미 이 이야기를 쓴 '작가'라는 존재인데.
모든 [설정]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설령, 몰랐던 사실이 있다고 해서,
그게 어린 그 녀석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

「...내가 또 알아야 하냐?

탁한 목소리로 답한 한수영.
도깨비 왕이 또 다른 [설정]이 있었다고 그녀에게 말하는 것일까.
도무지 적히지 않는 유중혁의 다음 회차를 두고서, 그녀가 이를 꽉 물었다.

「...네가 알아와. 녀석들이 '독자'에게 닿기전에, 우리가 막아야만 해.

 ㅡ ...

「아직은 이 세계에 '등장인물'도 '시나리오'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여기는 언젠가 녀석이 추억할 '현실'이니까.

 ㅡ ...

「아직은 내가 '쓰기' 전이니까. 바꿀 수 있을거야.

 ㅡ ...저희는 감히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ㅡ 저들은 저희의 '이야기'에서 파생되었지만, 저희의 '이야기'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수수깨끼같은 소리 하지말라고 내가 그러지 않았었나?

한수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깨비왕은 황홀한 표정과 동시에 슬픈 표정으로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ㅡ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저들은 단순한 '멸살법'의 길잃은 등장인물들이 아닙니다.

「...

 ㅡ 저들은... 이 '위대한 대서사시'를 [살아서 돌아온] 존재들입니다.

「...그게... 뭐... ...

한수영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도깨비왕이 표정을 기쁜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ㅡ 어쩌면... 저들이... 저희가 기다리던...

「...김독자?

작은 모니터의 소설따위는 잊은듯이,
어느샌가 한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달음에 창가로 다가서 있었다.

저기 너머.

[재앙]이라 여겼던 그것이 떨어진 지점을 애타게 바라보는 한수영.

정말 어쩌면.

너의 이 '현실'에서, [개연성]을 어그러뜨리고 너의 세계를 망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를 만나러.
누군가 내 모자란 소설을 살아서, 마침내 돌아온 것이라면.

정말 너일까?

정말로?

너야 김독자?

한수영은 마음속으로 애타게 녀석을 불렀다.
정말로 너일까.
내 부족한 그 글들을 읽고서, 살아내 준 것일까.

한수영은 작가로써의 자신감을 잃은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몇편의 줄글로, 그 아이를 감동시킬 수 있을거라 여겼다.
하지만 녀석의 잔혹한 현실이.
그녀의 단편으로 끝났어야할, 인기몰이용 소설따위가.
아무리 주인공이 험난한 고난을 많이 이겨내어도, S를 아무리 많이 갖다붙여보아도.
그 조그마한 멍든손이 무언가 쥘 힘을 주기에는, 그녀의 글이 너무도 연약하고 천박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지금도 그녀는 눈을 감으면 들린다.

「너무... 힘들어...!  제발 나를 그냥 죽여줘...!

「유중혁...! 나 이제 그만할래...!

「나는... 엉엉엉...! 유중혁이다...!

그녀가 목숨을 다해 매일 한글자, 한글자씩 힘겹게 공백을 채워넣어도.

삶이라는 벽은 너무도 넓고 컸다.

그럼에도 오늘도 답글이 달린다.

 ㅡ 정말 잘 읽었습니다.

 ㅡ 2회분 연재 고마워요 작가님.

 ㅡ 이 글을 읽는게 제 유일한 낙이에요.

그렇게 벼랑의 끝에서 그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게 부여잡는 그녀를 돌아보며 애써 웃는 아이.

오직 그녀를 위해 살기에.

그녀가 꼭 붙들어잡은 작은 사랑이라는 과분한 [개연]이기에.

그녀는 빈 여백을 향해 서투르게 달리고 또 달린다.

이런 내 하찮은 글에도.

결국 네가 살아준것일까.

「김독자! ...김독자!

그녀가 애타게 그 이름을 불렀다.
제발 들어달라는듯이.
점점 크게, 마침내 간절하게 소리치듯이.
울먹이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작은 소녀.
도깨비 왕은 그 모습을 눈물흘리며 지켜보았다.

그가 배운 글이란.

항상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에,
인간 작가들이 헌신한다는 것을.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의 '독자'들에게 해석되기에.
그들을 위한 간절한 '의도'를 가지고.
애타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는 것을.

도깨비왕은 그녀에게 배웠기 때문에.

비록 그가 생각했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실,
빈 여백을 힘껏 개척하며 적히는 모든 이야기는 아름답다는 것을.
그렇게 '완벽'하다는 것을.

독자들이 살아가면서 기억하는 한.

영원히 [완벽]하다는 것을 도깨비왕은 실감하고 있었다.

 ㅡ '완벽'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조용하게 한탄했다.

 ㅡ 결국... 수많은 '나'들이 찾은 것이군요.

도깨비왕은 감격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 애타게 살아가는, 
기대했던것 보다도 훨씬 작고 연약한.
그럼에도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작은 '신'이 있었다.
창가로 애타게 [그분]을 부르는 그의 작은 '신'.
그 모습에 기대치 않았던 경탄을 한다.

도깨비 왕이 보기에, [그분]. 김독자는 이 이야기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진짜 '현실'처럼.
이 이야기는 그렇게 적혔기에.
글을 읽는것 만으로도 살아가듯이.
어느 [시나리오]보다도 험난한 여정, [그분]이 생각지도 못했던 공략.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해쳐나가는 [주인공].

감히 글귀라 할 수 없을정도로 아름다운 멸망의 [표현]들.

그 문장 하나하나가, 그의 '신'이 목숨을 바치듯 간절하게 적어냈기 때문에.

그래서 도깨비는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
벽을 앞두고 넘어서지 못한 유중혁처럼.
현실을 살아가기 보다도, 그가 이 세계선에 오기 전에 작은 TV직접 보았듯이, [그분]은 결국 '꿈'으로 승천하시어, 영원히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꿈의 성소에서.
이 이야기만의 '꿈'으로 남아서.
비록 '작가'가 의도한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게만 된다면, 그대는 영원히 살지 않겠는가.
유년에 죽지 않아도, 지금처럼 아프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사실 도깨비 왕도 그저 슬퍼했을 뿐이다.

결국 [독자]가 없는 외롭고 영원한 이야기가 될 이 서사가.

그렇기에 지금 그가 경탄하겠지.

모든 [별]이 그러하듯이.
[그분] 역시도 자신의 [시나리오]는 해쳐나갈 수 없을거라 스스로 여겼기에.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그분]에게 파생되었기에.
또한 [그분]이 이 이야기에서 삶을 배웠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리]이기에.

그래서 [그분]이 그토록 [성좌]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그들처럼 사시는것이 아닐까.

현실보다 '허구'를 아름답다고 여기시어.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시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미래가 바뀐 것일까.

그들이 개입했기에. 
진심으로 김독자가 그 너머를 나아가길 원했기 때문에.
정말로 [그분]이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정말 그 글에 숨겨진 마음을 찾아내신 것일까.

그런 그분의 '무의식' 속에서, 어쩌면 저 세계선들에 살아가는 또 다른 한수영과 또 다른 도깨비 왕들이.
그분에게 전달될 [단 하나의 이야기]를 어느 세계선에서 찾아내버린 모양이였다.

창가에 선 소녀에게, 그는 도저히 하지 않았을 말을 했다.

 ㅡ ...가십시오.

「...

그를 돌아보는 소녀.
그 '신'에게 도깨비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ㅡ 가 보십시오. 어서.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소녀.
이윽고 눈물을 머금은 소녀의 눈이 슬프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말했잖아. 그럴 권한따위는 우리에게 없다고.

 ㅡ ...

이 세계에서 도깨비가 그녀에게 경고했던 것.

 ㅡ [그분]이 당신의 존재를 알아서는 안됩니다.

 ㅡ 그 누구도 당신에게 영향력을 끼쳐서는 안됩니다.

그 말들을 항상 지켜오던, 그렇게 멀리서 [그분]을 오직 바라만보았던 '신'이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연재분을 써야지. 어제 녀석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휴재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

한수영이 미소를 띄며 아쉬운듯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도깨비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ㅡ ...오늘은 제가 쓰겠습니다.

돌아본 한수영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써본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는거 아니다.

문득 그녀 몰래 맞춤법을 수정하던것을 떠올린 도깨비왕이 어색하게 잔기침을 했다.
그리고 점잖히 웃으며 대답했다.

 ㅡ 흠흠... 누군가가 써야한다면, 오늘은 제가 쓰겠습니다.

「...

 ㅡ 잊지 마십시오.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도깨비가 자신있다는듯이 작은 가슴을 쫙 폈다.
한수영은 가만히 왕을 바라보았다.
도깨비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그렇지 않겠지.

그럼에도 한가지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따스하게 적시고 있었다.
아주 오래동안 어떤 이야기를 바라본 존재는, 그 이야기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도깨비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한수영은 작게 투덜거렸다.

「사랑 안하거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소지을 뿐인 도깨비 왕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수영.
그녀가 작게 말했다.

「...안되겠어. 어쩐지 내가 녀석들을 만나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ㅡ ...어째서?

「난 '허구'를 쓰니까. 저런 '현실'은 필요하지 않잖아.

그녀의 눈빛은 결연한 것 이였다.
사소한 호기심따위에 글을 휘둘려본 적 없었던 그녀의 삶처럼.
그녀가 집중하는 '이야기'의 외전따위에는 눈을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ㅡ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한수영이 뜻밖이라는듯이 눈썹을 치켜떴다.
도깨비 왕이 말했다.

 ㅡ 어쩌면, 이게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저 [존재들]이 [그분]과 [당신]을 만나는. 그럼으로써 '완벽'해 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

 ㅡ 그러니 가 보십시오.

「...안돼. 그런 불확실한 것에 기대어본적 없어. 못 만나는건, 못 만나는거야.

한수영이 마음을 다잡은듯이 창가에서 물러났다.
도깨비 왕이 미소지었다.

 ㅡ [타임 페러독스]. 기억하십니까.

「...

 ㅡ 저들은 이곳에 얼마 있지 못할겁니다. 이 세계선은 절대 저런 존재들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요.

「...

 ㅡ 그럼에도 그들이 이 세계선에 왔다면, 분명 어떤 [개연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

 ㅡ 아마도... 저희의 '멸살법'의 끝에서까지. 나오지 않았던 '단 하나의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아니겠습니까.

김독자마저 알 수 없을 하나의 정보.
오랜 이야기를 쓴 존재에 대한 말이였다.

「...그건 ...궤변이야...

 ㅡ 한국인들은 [진 엔딩]에 환장한다고 하더군요. 대체로 그건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아닙니까?

도깨비 왕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을 꽉 쥐고 떨고있는 작가.
그녀는 작가에 관한 정보, 그 일말의 여지도 '멸살법'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부정하고 있다.

tls123.

그 존재가 이대로라면 과연 마지막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단 한사람을 위한 이야기이다.
도깨비왕은 조용히 홀로 독백했다.

 ㅡ 그분이라면, 절대 그렇게 두시지 않겠죠.

도깨비 왕이 아는 [그분]이라면, 
오지랖이 많은 그 김독자라는 [인간]이라면.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작가]라는 존재가 마지막에서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이 이야기의 끝에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가만히 생각하던 그녀.
쥐었던 손을 조용히 풀었다.

그녀가 도깨비에게 다가서서 속삭이듯 말했다.

「...너 사실 시스템 쓸 수 있지?

뜻밖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뜬 도깨비.

 ㅡ ... ...아, 아니요?

「내가 봤는데?

한수영은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몰래 외진곳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불완전한 시스템을 살짝 켜놓고서, 
그것이 깨어질까 한동안 소중하게 바라보던 도깨비.
시선을 피하는 도깨비에게 그녀가 말했다.

「아바타... 잠깐이라면 쓸 수 있지 않을까?

 ㅡ ...

「아주 잠깐이라면.

 ㅡ ...

「나랑 같이, 저 녀석을 훔쳐보러 가지 않을래?

 ㅡ ...!

도깨비 왕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 까만 눈에도 한수영과 같은 호기심이 어른거렸다.
한수영이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 그 정도 자격은 있잖아. 

 ㅡ 그건 '저희'가 아닌, 당신의 자격입니다.

새까만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그녀.
그녀가 그의 말을 듣지 못한듯 말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이 지루한 이야기를 적어야만 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도깨비 왕이 침묵하고 있었다.
조금은 흉하게. 일그러지듯 감격하는 그의 표정.
한수영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만 본다면.

사실, 우리가 만나 이야기할 [개연성]따위는 이 '멸살법'에 없겠지만.
정말 이 이야기를 다 살아낸 녀석이라면,
추억이 된 이 '현실'을 알아서 떠나, 자신의 다음 '현실'로 돌아서 주기 전에.

어떤 [기별]이라도, 너에게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도깨비 왕이 항의하듯 웅얼거렸다.

 ㅡ ...지루하다니!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

그가 우습도록 진지하게 말했다.

 ㅡ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ㅡ 제가 손 쓴다면야... 히힛!

도깨비왕이 즐거움속에 걱정을 숨긴채로 손을 들어올렸다.
지직거리며, 떠오르는 시스템의 작은 창.
갓 태어난 아이를 어루만지듯, 조심스래 그 창을 손대는 도깨비.
그 장난스러운 도깨비의 눈에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한수영은 피식 웃고서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쳐대고 있었다.

마치 대책없이 그녀의 세계선으로 넘어와, 마음대로 휘저어놓았던 그 녀석처럼.
서투르고 화려하게 저질러주고 있었다.

「김독자...

한수영은 피식 웃었다.

.
.
.
ㅡㅡㅡㅡㅡㅡㅡㅡ
.
.
.

「...내 감동 돌려내.

 ㅡ ...그...

「거지같은 멸살법.

 ㅡ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게는 인간들의 성경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을 본 것 마냥,
안색이 굳어진 그녀가 말했다.

「...뭐냐 저 떨거지들은?

 ㅡ ...

그녀의 다크서클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느껴지는 피로만큼 짜증이 올라오는 한수영.
그녀가 사납게 도깨비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에 오싹한 재앙이라도 [목도]한 것처럼 도깨비 왕이 몸을 떨었다.
혹시나 주먹이 날아올까봐 경계하면서도, 놀랍다는듯 떨면서 말하는 도깨비 왕.

 ㅡ 놀라운... 설화들입니다! [외신] ... 정말로 이 [이야기]를 넘어서!

「...

 ㅡ ...

그 다음말을 잇지 못하는 도깨비 왕.

그는 아까부터 애타게 찾고 있었다.

어디에 있을까.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심하게 망가진 그들의 방대한 설화 속에서도.

그 어디에도 [그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깨비왕이 한수영의 눈치를 보며 탄식했다.

 ㅡ 아아...! 그분은 마침내 [선택]하신 것이로군요! 

「...뭘 선택해.

이야기꾼의 본능대로 자꾸만 공백을 채우려고 애쓰는 도깨비왕.
그는 날선 그의 '신'의 말을 애써 무시한체,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홀로 떠들었다.

 ㅡ 참으로... 참으로 가슴 아픈 '살아감'이십니다! 이것이...! 이것이 진정한 ■■...!

「...

 ㅡ 결국 이 이야기를 지켜보시기로 한 것이군요...!

「...■발!!! 아아아악!!

 ㅡ 히이익...!!

한수영이 처절하게 비명질렀다.
그 욕지거리같은 비명에 도깨비 왕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물었다.

 ㅡ 왜... 왜 그러십니까?

「잘봐... 없잖아! 가장 중요한... [녀석]이!

 ㅡ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저 설화들이 말해 주잖아! 피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봐!

한수영이 도깨비의 말을 덥썩 잘라 물었다.
지금 김독자가 없다는 것 만이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사나운 일갈에 도깨비왕이 침음했다.

눈앞에 혐오스러운 4명의 존재.

녀석들의 설화들이 잠들어 있었다.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면서.
마치 삶을 포기하듯이.
'꿈'을 품고서 웅크린 작은 [그 아이]처럼.

그들이 [등장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넘기는 뭘 넘었다는 거야. ■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도깨비.
그들의 설화를 읽어내는 중이였다.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어느 지점을 읽어내던 그 순간,
도깨비 왕의 표정 역시도 절망스럽게 바뀌었다.

어떻게 그런 설화가 존재할 수 있을까.

 ㅡ 세계선을 뛰어넘어? 그보다도... [그분]이 안계시는 세계선?

절망감에 중얼거리는 도깨비 왕.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였다.

환하게 빛나는 [시스템]이 녀석들의 말도 안되는 [격]을 대변하고 있었다.

아무리 [외신]이라도.
그렇게 환하게 타오를 수 있을까.
그들의 설화들이 아가리를 벌린 태고의 아귀처럼. 주변의 현실을 비틀어삼키고 있었다.

 ㅡ 대체...! 저들은 무슨 존재들인가!

그들에게는 뒤가 없었다.

마치 ■■을 앞에 둔 것 처럼.

이 세계선에 모든것을 들이붓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이 비틀리고 있었다.

 ㅡ 저건...! 저런...! 대체 저것들은 무슨 끔찍한 존재들입니까...!

「...

 ㅡ 절대로 ..! 허억... 허억... 있을 수 없어...!

충격에 호흡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도깨비처럼, 
한수영도 무척 어두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의 양.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격.
마치 [모략]이라도 되는듯.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켜진 시스템 속에서 [예상표절]이 절규하듯 비명을 지른다.

 ㅡ 「불가능해! 불가능해!

 ㅡ 「난 저런 것들을 적지 않아!

그녀가 애써 상황의 가능성들을 가늠하고 있었다.

'...설마 [사냥개]들의 격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청소부]들일까.'

'이 우주가 우리의 비틀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이 '이야기'에 대적하기 위해, 나와 도깨비왕 조차도 모르는 [대적자]를 만들어낸 것일까.'

모두 그녀가 설계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의 '허구'같은 추측이였다.
한수영은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다행인것은 아직 저 정체모를 녀석들이, 완전히 이곳의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야.

아직 그들은 이 이야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지금이라면 도깨비왕이 손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그녀가 수정할 수 있을지도 모를 [오류]였다.

 ㅡ ...아아...!

갑작스레 절망하는 도깨비.
그가 절망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돌아본다.

 ㅡ 저기...! 저 존재...!

「...!

이상한 자세로 선 소년.
중2 스러운 자세였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외쳤다.

"뭐야! [흑염]도 못쓰는거야? 이건 에바잖아!!"

욕지거리를 내뱉는 녀석.

한수영이 절망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켜진 임시 시스템에서 오직 그녀와 도깨비 왕만이 볼 수 있는 메시지창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존재의 설화에서 '가장 오래된 ■'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존재를 제외하고, 저들은 ■■■가 없는 존재입니다!]

...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재구성합니다!]

...

[등장인물, 김남운이 당황합니다!]

[세명의 인물들이 '등장인물'이 되는 ■■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한수영이 작가가 되고서야 깨닳은.
이 이야기(세계선)에서의 '개연성'을 부여받는 존재.

갓 태어났거나.

혹은 이미 어떤 '이야기'의 ■■을 보고서.

'배역'이 없다는 조건하에 될 수 있는 존재.

그들은 정말로 무언가를 비틀어서 뛰어넘은 것이다.

[알 수 없는 세계선의 존재, [우■엘]이 자신의 배역의 적합도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알 수 없는 세계선의 존재, [■현성]이 자신의 배역의 적합도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알 수 없는 세계선의 존재, [이지■]가 자신의 배역의 적합도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저 외우주에서, 알 수 없는 존재 하나가 이 세계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재앙].

한수영은 그것을 목도하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되는... 절대로...

그리고 그것은.

항상 알 수 없음에 두려운 것이였다.

.
.
.

ㅡㅡㅡㅡㅡㅡㅡ

.
.
.

비명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우리엘이 사납게 소리쳤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일을 벌인것이냐! 김남운!

 ㅡ 이건 에바야...! [흑염]이 없는 삶이라니!

 ㅡ 우리엘! 일단 고정하시고, 날개를 숨기십시오!

그들이 온 이후,
도망칠 사람들은 모두 도망치고,
겁없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뭐야? 영화 촬영인가?"

"하늘에서 떨어졌어!"

"찍어봐! 쟤는 진짜 예쁘다! 날개 달린 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이지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ㅡ ...일단 어디론가 가자! 우리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ㅡ 중요해!

이지혜가 소리쳤다.
그녀는 어떻게든 설화의 힘을 일깨워보려다 그만둔채였다.
우리엘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이지혜가 말했다.

 ㅡ 여긴 네가 모르는 세계라고 우리엘! 너 '경찰'이란건 알아?

【...인간의 질서와 치안을 담당하는 존재들 아닌가.

 ㅡ 그래 [시나리오]의 시작 전의 절대적인 존재들이라구. 들키면 골치아프니 당장 피하고 보자.

그들이 착륙한 지점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땅이 운석이라도 쳐박힌듯이 파이고, 사방의 화초가 다 파해쳐져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것을 배상할 [금전]도, 누구인지 증명할 [신분]도, 그 무엇도 없었다.

이지혜는 그나마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상황이 아닌것은 아니다.
그들이 엉망으로 쳐박듯이 낙하한 이곳은 평범한 공원이였고, 벌써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어딘가로 전화하고 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겨우 [시나리오]전의 인간따위가 날 막을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사납게 화를 내는 우리엘.
결국 [모략]이 일행들을 이 세계선으로 쳐박았는데도,
김남운을 비롯한 일행들은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다.

너희는 화가 나지도 않는가.

우리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감히

[대천사]에게 그 무슨 망발인 것인가.

겨우 시나리오전의 인간인 [경찰]따위가 뭐가 문제란 말이냐.

[모략]의 의도도 모른체 떨어진 별은 오직 [모략]의 계획에 놀아남에 분노할 뿐이였다.

 ㅡ 정신차려!

 ㅡ 일단 우리엘. 진지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현성이 나섰다.
그의 눈빛이 진지함을 담고 있었다.

 ㅡ 날개를 넣으십시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입니다.

【...뭣...!

 ㅡ 일행들을 큰 위험에 몰아넣고 계신겁니다.

우리엘이 분노를 담아 그를 노려보았다.
...진심인가? 이현성.
겨우 저런 하찮은 존재들을 감당하지 못할것이라 보는가.
그러나 이현성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ㅡ 위험한 상황입니다! 

【... 알겠다!

그녀는 정당할지언정, 매정하지는 않다.

너희의 뜻이 그렇다면.

이를 악문 우리엘이 날개를 감추고 있었다.
좀처럼 응답하지 않는 설화들의 힘을 짜내어, 그녀는 인간들과 같은 의태를 했다.
사람들이 재각각 반응하고 있었다.

"와 대박! 찍었냐? 날개가 사라졌어!"

"마술사들인가? 근데 공원이 진짜 파괴됫는데, 미친사람들 아니냐? "

"일단, 신고해! 땅 파인것좀 봐! 저것들은 괴물이라고!"

"그딴게 어디에 있냐? 무조건 영화야."

이지혜가 나서서 크게 소리쳤다.

 ㅡ 영화 촬영중입니다! 폭팔장면을 찍을 예정이니 다들 떨어지세요! 폭파 부산물이 날릴 수 있습니다.

"와! 재미있겠다!"

"무슨 영화에요?"

 ㅡ 그건 알려드릴수 없어요! 오후에 찍을 예정이니, 이곳에 남으시면 안됩니다!

"오후래!"

"뭐래? 영화 이름이 뭐래?"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돌린 이지혜의 눈에 우리엘이 상처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
이현성이 서둘러 '어둠의 다크' 따위의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김남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ㅡ 가시죠! 지혜야!

 ㅡ 알겠어!

이지혜가 몰린 인파를 뒤로하고 서둘러 달려왔다.
그렇게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그때였다.

 ㅡ 이쪽으로 오시죠.

 ㅡ ...너는?

 ㅡ 어서요!

이지혜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살짝 구겨진 중절모.
살짝 작은 키를 가진 중년인.

지금 그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존재.

그것은 믿을 수 없는 눈이였다.

누군가를 가늠하려 애쓰는, 그들이 너무 많이 봐온 눈이였다.

그럼에도 그런 눈을 한 존재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좋은 조력자가 된다는 사실을 이지혜는 알았다.

 ㅡ 알겠어! 안내해!

그 작은 존재는 그녀의 대답을 들은 후, 허공에 손짓을 몇번 하더니 앞장서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전화가 안돼!"

"어 내 핸드폰! 사진이 죄다 날라갔어!"

아비규환이 된 주변을 무시한체로 그들은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ㅡㅡㅡㅡㅡㅡㅡ

.
.
.

 ㅡ 그러니까... 너희들은...

 ㅡ ...놀란건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도깨비 왕]이라고?

이지혜가 아연실색을 했다.

 ㅡ ...지금 그게 문제가... 아아...

도깨비 왕은 입을 딱 벌렸다.
이상하게 일그러진 얼굴.
그것은 도깨비가 절망할때 짓는 얼굴이였다.

 ㅡ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도깨비는 한동안 그들의 읽지못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서 눈앞의 [999회차의 우리엘]의 이야기에 한없이 절망했다.

'벽'에서 멈춰서야만 했던 [은밀한 모략가].
그는 [외신]이였다.
[성좌]라는 말이다.
그 말은 [그분]이 그 이야기의 마지막을 보았고, 녀석은 일종의 '■■'을 맞이했다는 것 아닌가!

이야기는 '거기까지' 여야만 했다.

 ㅡ 그걸... 그럴리가...!

도깨비 왕은 믿을수가 없었다.
분명 그 '벽'에 도달한 순간.
그들의 설계대로 였다면.

[완벽한 이야기]가 되었을것을.

'그'를 비추던 하나의 별빛은 마침내 시선을 거둘 것이고.
그렇게 그 별빛은 [선택]을 하게 된다.
허구임을 인정하고 떠나는가, 허구임을 알아도 계속 바라보는가.

그 선택이 어떻든간에.
[모략]이란 이름의 유중혁은 마침내, 바람대로 [결]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ㅡ 이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그 '벽'을 넘지 못해서,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세계선을 찾기위해 수없이 [다음 세계선]으로 넘어간 [은밀한 모략가].

그리고 그가 다른 세계선에 말도 안되는 [개연성]을 부여하고 말았다.

그렇게 [999회차]가 다시 쓰여졌고.

[은밀한 모략가]를 사냥하기 위해, 수많은 세계선들을 해집어놓은 또다른 [999회차의 존재]들이 생겨났다는 것인가.

[1863회차의 한수영]이, [1863회차의 도깨비 왕]이 '모르는 존재'들이였다.

그런 이들이 존재함'만'이 문제가 아니였다.

그것도 수만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들이 말도 안되는 [개연성]을 침범하면서 이 '이야기'를 계속 비틀어놓았다는 말인가.

얼마나 방대한 [개연성]이 이 우주에 흐트러진것일까.

대책없는 행동이였다.

올바른 '적'을 가진 [시나리오]를 만나서,
알맞은 '극복'을 거쳐,
'주인공'을 성장시키는것.

그것이 '기본'이다.

대체 이들이 무엇을 비틀었다는 말인가!

 ㅡ 감히... 어쩌자고 그런짓을 한 것인가!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도깨비 왕이 대경하여 소리치자 [999회차의 이지혜]가 경계하며 되물었다.

 ㅡ ...무슨 소리야?

 ㅡ 너희 세계선을 나와서... 다른 세계선으로 넘어갔단 말이냐? 대체 누가? 너희 중 누가 그런 끔찍한 발상을 했단 말인가!

 ㅡ 우린... 그런 말은 안했는데?

 ㅡ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나운 일갈에 일행들이 침묵했고 김남운만이 중얼거렸다.

 ㅡ 되게 씨끄럽내...

 ㅡ 말해라! 너희는 결코 혼자서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세계선]은 결코 그렇게 많은 [개연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ㅡ ...

 ㅡ 오직 '주인공'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설계되었거늘, 너희는 절대 [세계선]을 넘을 수 없단 말이다!

도깨비 왕은 실성하기 직전이였다.
그만한 개연은 불가능하다.
'벽'은 오직 단 '하나'의 존재.
모든 '시나리오'를 찬탈한 그런 존재만이 볼 수 있을 것이였다.
그것이 올바른 [공략]이자, '가장 오래된 꿈'에게 전달되었어야 할 이 '이야기'라는 '허구'의 전부였다.

 ㅡ 그냥 넘었지 뭘...

 ㅡ 말해라! 이건 중요한 문제다!

도깨비 왕이 펄쩍펄쩍 뛰었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려 애썼다.

4명?

자그마치 한개의 세계선에서 넷이나 '벽'을 도달함에도 모자라, 그 세계선을 [넘어섰다]고 이들이 말하고 있었다.

1이 4가 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그들은 '1'도 아닌 존재들이였다.

우리엘이 조용히 말했다.

 【...네놈이 도깨비 왕이거늘, 우리가 숨길 것이 뭐 있겠나. 우리는 '벽'을 만났다. 그리고 곧 '혹부리'가 나타났지.

 ㅡ ...호, 혹부리!

【녀석이 [모략]의 존재에 대한 정보와 함께, 세계선을 넘어설 방법을 제시했었지.

 ㅡ ...아아!

【사실 그것은 전부 [모략]의 술수였었다! 또다른 증오스럽기 짝이없는 [이계의 언약]이였지... 그럴 줄 알았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ㅡ ...

【...아니, 어쩌면 그래도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우리엘이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잃어버린 소중한 유중혁.
그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죽음이 대수였을까.

우리엘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혹부리가 말했다.

「대천사여. 이제껏 저지르지 못한 [죄]를 지을 준비가 되었는가.

【...너야말로, 이 이야기의 끝에 우리가 원하는것을 준비해 두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 [존재]가 너를 기다린다.

녀석의 혹이 탐욕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희가 움켜질 '의지'만 가진다면, 거머쥘 수 있겠지.

【안내해라! 반드시 내 동료의 복수를 하겠다!

그렇게 그들은 세계선을 부유했었다.
유중혁을 앗아갔다고 생각했던 그 [이계의 신격]을 죽이기 위해서 한없이 부유했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알아낸 그 [존재]의 정보.
[모략].
그러나 그 [이계의 신격]은 절대적 존재에 가까웠다.

그렇게 그들은 녀석을 붙잡기 위해서,
수천의 세계선을 침범하고 멸망시켰다.
부족한 [시나리오]와 설화를 찬탈하기 위해,
그들의 '의지'를 휘둘렀다.

그녀의 설화속에서 모르는 세계선의 [도깨비 왕]이 서럽게 울며 무릎꿇고 있었다.

 ㅡ 제발...! 제 목숨만으로 만족해 주십시오! 더는 이런 [시나리오]가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건 [그분]이 도저히...!

이글거리는 화염의 검을 꺼내들고, 일말의 주저도 없이 목을 내려친 [999회차의 우리엘].

 ㅡ 으아악...! 죄송합니다. 위대한 '꿈'이시여...! 비틀려버린 이 이야기를...! 아아...! '꿈'이시여...!

「80~95번 시나리오가 영구히 변질됩니다!

「모든 세계선이 당신의 격을 인정합니다!

「[외신]에 대항하기 위한 [성좌]들의 격이 대폭 허용됩니다.

「[시나리오]의 허용 상한선이 한계점을 넘은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999회차의 우리엘]은 그의 설화를 집어삼킨체 주저없이 다음 [세계선]으로 날아올랐다.

「모든 세계선이 감당할 수 없는 [시나리오]에 끔찍히 신음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모략]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엘의 이야기를 바라본 도깨비 왕이 기겁했다.

 ㅡ 아아, 미친 이야기구나...!

도깨비 왕은 절망했다.

오래 전부터 알았던,
그 '벽'너머에 있는것을 유일하게 탐내었던 존재.

혹부리.

그 나약한 녀석이 결국, 
[모략]도, [999회차]의 이들도 끌여들였단 말인가.
...겨우 그 '벽'너머를 한번 바라보기 위해서.

도깨비 왕이 그들을 일별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시나리오]의 '적'이 되고도 '소모'되지도 못한채로.
기어코 그 끝에서.
이기적이게도 이제서야 '소모'되기 위해, 이 세계선으로 죽으러 기어왔다는 것이냐.

말도안되는 악(惡)이자,
[재앙]들이였다.

「...망했내.

한수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천사]가 하나.
거기에 999회차의 [김남운], [이지혜], [이현성].

...그리고 [모략],
...모든 회차를 경험한 유중혁의 정신집합체.

한수영이 절망감에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 요즘 Marve■ 코믹스 라는거 재미있게 보면서 참고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건가...?

전 우주적인 존재들.

수만년.
사람의 정신이 퇴화하고도 남을 충분할 시간.

그러나,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아닌 '등장인물'로써만 만들어졌기에.
퇴화되지 않는 '캐릭터'성을 지키면서 살아온.
혐오스럽고, 존재만으로도 죄악인 존재들.

그 끔찍한 '의지'라는 이름의 문장 하나로.
무얼 비틀어 버린것일까.

요즘들어 특히 글을 쓰기가 힘들다고 느끼던 한수영이였다.

어제 쓰던것이 유중혁의 998회차였을까.

눈앞에 다가온 999회차.

그녀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재앙]의 회차였다.

한수영은 저도 모르게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점점 서러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단박에 이 이야기들로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혹부리따위가 [이계의 신격]따위를 자아낸다고는 알았지만.
그건 그저 [시나리오]에 등장할 부족한 인물을 채우기 위한 [설정]이였을 뿐이였다.
사실 이건 [모략]이 꾸민 일일 것이다.

[모략], 너 김독자를 통해 진짜 '현실'을 본 거냐?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것이 아닌.
벽 너머, [자신의 것이 아닌것]을 보겠다는 '새로운 의지'.

...그렇게 너 하나가 아니였구나 [모략].

너만한 존재의 격을 가진.
그것도, 네가 이 이야기의 [진리]에 손을 대어 만들어낸 존재가.

...사실, [넷]이나 더 있었구나.

한수영은 자신의 작은 손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가 대체 무얼 적어야 하는가.

지금도 죽으려 하는 [그 녀석]을.
얼마나 끔찍한 멸망으로 몰아넣어야만 하는가.

이 이야기는 녀석이 당면할 [미래]다.
그리고 더 [너머].
삶.
누구나 가지지만, 지금의 그가 도저히 가지지 못하는 그것을 돌려주기 위하여.
김독자의 예행연습이 되어야 할 터였다.
그 조그마한 녀석이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아니야...

 ㅡ '신'이시여...!

도깨비의 말에 999회차의 일행들이 의아스럽다는듯이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 중얼거릴 뿐이였다.

「멸살법은... 너희같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수영은 생각했다.
이야기는 '적당한 줄거리'를 가져야만 그 '본질'을 잊지 않는다고.
그녀는 그토록 지켜오던 [의도]가 바뀌어 버렸음을 짐작하고서 슬퍼했다.

한수영은 눈앞에 앉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엘, 이지혜, 김남운, 이현성.

[999회차.]

그녀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장]! 나 대장이 되고싶어...!

「당신이 최고야! [사부]!

감히 나를 지키겠다고 선언하는가, [유중혁].

「중혁 [오빠]가 최고에요!

... '회귀'같은 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를 반드시 모든 회차에서 데려가 주십시오. [중혁씨].

...나는 저들이 나 대신 살기를 원한다.

【...네가 죽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가 없군... 도저히... 나와의 [언약]이 너의 무엇을 바꾸어 버린 것인가. 네놈이 선택한 ■■은 기만일 뿐이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사랑'을 결여시켜서 만든 주인공이,
결국 사랑하여, 지키고 싶어했던 존재들.
그리고 모든걸 바쳐, 그들을 살리고 말았다.

그런 존재들이 감히 '멸살법'에 있었다.

그것은 '현실'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이였다.
...결국 '허구'속에서 김독자에게 보여준 것이구나.

「...[모략], 무슨 짓을 한거야.

...'멸살법'에는 아름다움 따위 없어야만 했다.

이건 허구니까.
너는 벗어나야 한다.
현실로 달려가라.
네가 다 자랄때 까지만이라도.
누군가의 '허구'를 보며 살아남아라.

그래서 언젠가 '현실'을 마주했을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배운대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여야만 했다.

한수영은 슬퍼하며 한탄했다.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사적으로 그녀를 경계하며 따라 일어선 [우리엘].

한수영이 말없이 그녀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999회차의 존재]들 중 가장 많은 존재들을 지켜낸 존재.
그런 그녀의 손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사실, 그 손은 누군가에게 '지켜진' 손이였던 것이다.

한수영은 자신이 쓴 998회차의 유중혁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했다.

「유중혁은 마지막 순간, 그가 잃어버린 스승을 떠올렸다.

「어째서 그런 결과가 다시한번 반복된 것일까.

「문득 그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찢어지고 벌어져서 피가 흥건히 묻어나오는 손.

「'굳은살과 상흔으로 뒤덮혀 본래의 형체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손'이였다.

「 ㅡ 그렇군... 이번 생에서 결국 알아낸 것인가. 내가 스승을 잃었던 것은 [모든 일행들]을 구하려고 했기 때문이였구나.

그렇게 앞으로의 회차에서,
유중혁이 일행들을 완전히 하나씩 포기했어야만 했다.
결국 모든 설화를 그가 찬탈해야함을 깨닳아야만 했다.
그렇게 전달되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그 아이가.
[공략]에 따라 모든것을 가져보고서.
이 이야기를 영원히 돌아보지 않게끔.
가끔 녀석의 끝없는 무의식으로만 추억하면서.
그렇게 외롭게 이야기가 영원해져야만 했다.

그렇게 끝났어야 할 998회차의 이야기였다.

「흑흑... 엉엉...!!

한수영은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반드시 기록해야할 내용들을 곱씹으며 서럽게 울부짖었다.

「 ㅡ [모든 일행들]을 구할 수 없다면. 나는 앞으로 [모든 일행들]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 ㅡ 하지만, 마지막으로 너희 모두를 구해 주겠다.

「 ㅡ 그 대가로 999회차는 나 자신을 포기할 것이다.

「 ㅡ ...이번 회차는 너희를 위해 살겠다.

한수영이 떨리는 손으로 [우리엘]의 손을 부여잡았다.
켜진 시스템이 그녀의 설화를 한수영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너는 내가 구하고 싶은 유일한 세계였다! 유중혁! 제발...!!

그의 마지막 순간.
뜨겁게 타오르는 대천사가 죽어서 부스러지는 유중혁을 끌어안은체로 웅크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서럽게 울면서.
당연스럽게 소모되어야할 그 존재가.
대신 살아남는가.
어쩌면 김독자도 이 끔찍하게 따스한 온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김독자는 결국 녀석처럼 살았겠구나.

능글맞게 웃던 녀석.

한수영은 김독자가 어떻게 이 하찮은 '멸살법'에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설화를 쌓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존재들이 그의 이야기를 사랑했는지,

그녀가 앞으로 넘겨줄 '선물'을 선사받음에도.


왜 1863회차에서 만났던 그때의 네가,
'허구'를 허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서,
왜 그렇게 많이 아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999회차의 유중혁이 그랬듯이.

삶이라는 치열한 경쟁에서.
지는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배우고 말았구나.

내가 숨겨놓은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더욱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고 말았구나.

[저 외우주에서 한 존재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증오스럽다.

증오스러운 시선에 한수영이 한탄했다.
저 너머.
하늘의 끝에.

아직 내려오지 못한 겁쟁이같은 [외신]이여.

그 어린 녀석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고, 망쳐놓은 녀석이 나를 감히 내려다보고 있구나.

우리엘의 일행들이 놀라고 있었다.
열차에서 바라보았던 그 한수영이.
일행들의 앞에서 기뻐하던 그 엑스트라가.

분노에 일그러지는 그 얼굴.

오열하며 망가지는 소녀.

그들이 이해못하는 슬픔에 일그러진 그 감정.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서,
그들이 모르는 한수영이 울고 있었다.

그녀가 서럽게 울부짖었다.

「무슨 짓을 한거냐! 감히..!! 아아아...!!

 ㅡ ...'신'이시여!!

「왜... 그렇게 '살아'버린거냐! 왜...!!

'이렇게' 끝났어야 했다.
홀로남아서.
벽을 마주하고.
끝나지 않을 고민을 '주인공'에게 넘겨주고.
그제서야 눈을 떼게 했어야지.

'홀로' 남았어야 했다.

난 가치있는것을 적어본 적이 없다.

모두가 원죄속에서 학살에 춤추고.

그저 '적'일 뿐이였을 텐데.

이겨내지 않으면 잃으니까. 이겨내여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끝에. 이곳에서는 잃을것 조차 없다는 것을.

이게 '허구'라는 것을.

그게 [진리]라는 것을 깨닳았을 것 아니냐.

잘난 '멸살법'.

나는 안 살아봣을까.

1863회차에서 바로 알아챈, 하찮은 [시나리오]의 진리.
끝없이 절망적이더라도.
반드시 이겨내고자 함에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잔혹함'에 아무리 훌륭한 [독자]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게끔 설계했을텐데.

너가 아는 그 작은 소년.
정말 [이겨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살았던 것이냐?

한수영은 시나리오들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적었다.
역겹고, 추악하게.
그러나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시나리오]에서,
하나같이 먼저 이겨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쟁취하고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화신과 성좌들.
그 추악함과 더러움 속에서.
가장 '현실'스럽게 살아가던 [유중혁].
다가오는 [시나리오]에 맞서고 살아가는것.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찬탈하는 것.

마치 현실에서 사람들이 공부하고, 운동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무리에 속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관계로 매우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할 존재를 만들고.
마침내 그들을 지킬 힘이 충분함에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그것이 삶이라는것이고,
김독자가 가졌어야 할 미래였다.

누구보다도 힘든 삶을 살아야할 녀석이니까.

하지만 한수영이 [999회차]를 적는다면 김독자가 '멸살법'이라는 '허구'에 진저리칠까.
진심으로 그런 허구라는 현실에 갇힌 [유중혁]이 되려 했을까.

한수영은 울었다.

「...엉엉..!! 엉엉...!

서럽게.
그녀가 사랑한 작은 소년의 멍든 손이 떠오른다.
이제서야 한수영은 그들의 망가진 설화들이 무슨 [재앙]을 가져왔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니였겠지.]

허구에 진저리치기는 커녕. 너무도 [사랑]했을 것이다.

도저히 못 이겨내어서.
네가 외우듯이 읽어서 알아낸 모든 사실을 다 가져와보아도.
겨우 [시나리오] 하나에 무너져 내리는 모든 존재들을 보면서.

 ㅡ 「원래 소설의 내용과 너무 바뀌었다.

그럼에 너무나 아름다웠을 그것을.

 ㅡ 「...그런데 네가 나타나고 말았구나.

비틀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쥐지 못한 그 빈손으로.

 ㅡ 「이야기꾼이, 독자의 편을 들었다.

999회차에서 넘어온 너희가 뿌린 [개연성]이라는 씨앗에 변질되어서,
[망가진 시나리오]를 고치듯 살아내려 하다가.

999회차의 이 녀석들처럼.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이 비현실속에서 너를 희망삼아 기대고,
결국 측은해진 네가 꼭 지켜주고 싶어진 그 존재들을 끌어안고서.

 ㅡ 독자형!

 ㅡ 독자씨!

 ㅡ 김독자.

 ㅡ 아들!

 ㅡ 막내야!

많은 희망을 그 작은 몸에 기대받으면서.

 ㅡ 저를 믿고 따라주세요.

 ㅡ 싫어!

 ㅡ 당신이 내가 구하고 싶은 유일한 세계야.

너무나 가혹해진 시나리오에 결국 희망을 기꺼이 받아준 '신'에게 작별하고 각자의 [■■]을 받아들이려는, 너를 믿어준 '등장인물'들을 최대한 데려가기 위해서.

오직 너만을 위해 준비한 외로운 ■■을 넘어서기 위해서.

 ㅡ 「[하데스, 우리의 ■■가 다가왔어요.

 ㅡ 「...그렇소, 이것이 옳은 이야기겠지... 가거라, 내 자랑스러운 [후계]여. 단 한명이라도 네가 원하는 사람들을 이 증오스러운 세계에서 구해보거라.

 ㅡ 「[하데스...]

 ㅡ 「나도 아오.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할것을. 그럼에도 믿소. 어쩌면 저 아이 하나만라도 이 [시나리오]를 이겨낼 수 있기를. 저 아이의 진짜 [시나리오]를 찾기를 빌어줄 뿐이오.

그렇게 그들은 준비된 [■■]을 기꺼히 맞이했겠지.

 ㅡ 「......막내가 보이질 않는다. 일어서라! 녀석만큼은 이런 [시나리오]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너희의 [시나리오]를 직접 감당해라! 이건 막내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녀석이 대신 살아줄 삶이 아니란 말이다!

긴 세월, 시시한 [진리]쯤은 진즉 깨닳았던 성좌들이 그제서야 하나씩 쓰러졌겠지.

 ㅡ [‘최후의 벽’이 당신의 행동을 의아해합니다.] 

 ㅡ [‘최후의 벽’이 이것은 당신의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는 비유와 함께 온 힘을 다해 문장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멈추지 않는 문장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칼을 꽂았다. 제발, 제발. 제발.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글자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거대 설화, ‘최후의 벽을 부수는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세계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독해력'이 극한으로 발동합니다!]

「당신의 '현실'이 '멸■한 세계■■ 살■■■ 3■■ ■■'에 집어삼켜집니다!」 

그렇게 너는 배운대로.
너 대신.
일행들을 나아가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허구'속에서 [사랑]한거야? 김독자?

한수영은 [우리엘]의 방대한 설화, 그 끄트머리에서 그토록 보고싶었던 녀석을 찾았다.
[이야기의 적].
꿈을 꾸는채로 '현실'을 살아가려고 하는듯,
우스꽝스러운 광대같은 삶.
그 불가능에 도전하는 녀석이 안타까워서, 움직이는 [외신]들.

 ㅡ [전용 특성, ‘유희의 지배자’가 발동합니다!]

모략이.

 ㅡ 【그는 단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엘이.

 ㅡ 【크으, 다 같이 싸우는 거 진짜 오랜만이네.】

김남운이.

 ㅡ 【도깨비 왕. 나는 너와 계약한 적이 없으니 해당 되는 바가 없다.】 

이현성이.

 ㅡ 【.....장전.】

쌍룡검을 뽑아든 이지혜까지.

네깟것들이 또다시 [개연성]을 보태었구나.

한수영은 찬란히 빛나는,
그녀가 앞으로 적어야 할,
너무나도 가슴아프고 사랑스러운 999회차라는 '허구'를 증오스럽게 바라보며 울었다.

[모략]이란 탈을 쓴 유중혁은 들추지 말았어야 했다.

'혹부리'가 유혹했어도.
'벽' 앞에서도.
나를 1863회차로 보냈을 때도.

그저 두었으면 끝났을 이야기를.
결국 계속 들추었느냐.

하찮은 그 궁금함이 그 긴 절망끝에 남아버렸나?

그리고 결국 녀석의 악(惡)이 되어주지도 못하고.
분노가 마지막에 식어버려서, 너도 녀석을 [사랑]하게 되었나?

그리고 '허구' 속 일행들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는 네 [배후성]을 보며, 후회하고 후회해서.

네가 '허구'속에서 건져올린 이 [찌꺼기]들과 함께,
이제서야 '소모'되려 하느냐.

네 '종장'을 잊어버린 대가를,
대체 누구보고 치루어달라고.

「으아아아아아아!!!

 ㅡ 아아...! '신'이여어...!! 흑흑...!

[999회차의 유중혁]은 이 자리에 '없다'.

'이야기'는 해석되었다.

어린 독자의 끝없는 무의식에서.
결국 절망같았던 삶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간이 지나면 그저 추억처럼 동떨어진 다른 '이야기'였을 이 소설이.

결국 같아지고 말았구나.

김독자는 결국... '허구'를 벗어나 '현실'로 달리지 못하고서, '현실'마저도 '허구'로 집어삼켜버린 것이구나.

[저 외우주의 존재가 알 수 없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슬퍼하느냐.

「...너는 알지? 이 이후의 이야기?

한수영이 슬퍼했다.
놈이 999회차의 이들에게 들은대로라면. 
[은밀한 모략가], 너는 모든 [답]을 가진 존재다.
내가 앞으로 써내려갈 그 많고 험난한 [시나리오], 그걸 모두 이겨내지 않았나.

「...결국. '이야기'가 해석된 대로 가는구나.

이제 그녀가 적어야만 했다.
정말로 표절이라도 하듯이.
따라적기만 하면 되는 것이였다.

글은 [작가]의 손에서 떠난지 오래다.

아아... 김독자...!

머릿속에서.
녀석이 아파하고 있었다.

「으아앙...! 너무 아파... 이제 나 죽을래...! 흐아앙...!!

한번 잡아보았던 그 힘없는 손은, 사실 무언가를 쥘 수 있다고.

「나는 유중혁이야...!! 엉엉엉...! 유중혁이다...!!

그것을 [극복]시키려 내가 살았는데.

이제서야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감정따위 없는 살인귀라서 1863회차를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게 유중혁을 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었을까.
아니, 유중혁은 알았다. 자신이 '허구'임을.
[모략]의 존재를 들은 놈은 겸허히 받아들였었다.
비록 당시의 한수영이 알지 못해도, 1863회차의 유중혁은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통찰을 하는 전재였으니까.
놈이 비틀어버린 끔찍한 시나리오들.
언젠가,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모든 설화와 시나리오를 찬탈하고 나서야 찾아올 [결]에 지쳐버려서.
[한수영]에게 맡겼었다는 것을.
1863회차로는 사실 부족하니까.
999회차부터 서서히 [모략]에게 다가오며, 망가지는 세계선들이 가늠되었으니까.
그렇게 더 살아감이 누군가 백지에 쓰는것보다 어려우니까, 너는 이해하고 나와 계약했었지.

그렇게 이 '허구'가 끝나고 충분히 해방될 수 있었음을 눈치챘으니까.

그런데, 녀석은 '본' 것이다.

'현실'을.

김독자의 몸에 깃든.
자신이 존재하고서부터 생겨난 헛점 투성이의 '허구'의 세계와 달리, 
김독자처럼 끝없는 잠재력을 지니고, 서로 다르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어떤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변하는 캐릭터성'을 가진 무수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해진 하나의 [결]에 도달하기 위해 달리는 존재들이 사는 세계가 아닌.
모두가 각자의 [결]을 [선택]하는 세계.

1863회차를 살아가면서도 변하지 않던 본질을 가지는 그의 '등장인물'들과는 다르게.

잔잔함에도, 그 어느 '신화'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이,

유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살아감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진짜 [사람]이라는 존재에,

[특성창]하나 보지 못해서, 일평생 어떤 한 사람을 알아보려고 해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그럼에도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구나.

...너도 그런 '현실'을 그 벽 너머에서 가질거라고 착가했구나.

[저 외우주에서 한 존재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해해.

한수영이 그 메세지에 슬퍼했다.

모든 인물이, 모든 사건이,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공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녀석은 생각했겠지.

【끝내다오.

아직 변질되기전인 1863회차.
그곳으로 김독자를 보내어.

■■과 함께 녀석이 그제야 눈을 떠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결국 1863회차의 너는 봐버린 '현실'을 탐했고.

그의 반쪽은 한껏 비틀어진 3회차에 겨우 도달했겠지.

우습지 않은가. 1863회차의 찬탈의 결과가 겨우 비틀린 '3회차' 수준이라니.

그리고 멋지게 녀석을 허구에 묶어둔 것이다.

「...차라리 받아들이지 말지 그랬어, 유중혁.

「...지금처럼 그냥...

이제서야 뭔가 해 보려고.

흰 망토를 두르고 사라진 녀석을 쫓는 것인가.

[도깨비 왕]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수영이 망가질 것만 같았기에.
그녀가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끔찍하게 뒤섞인 이들의 설화가, 그녀의 사고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일행들이 당황스럽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수영이 서럽게 울었다.

[모략]이 '이제서야'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무엇을 후회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뒤죽박죽인 사고 속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서야 네가 뭘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아쉽게도, 그것은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나는 쓸거야.

...사실 저기 앉아서 눈물흘리는 내 [아바타]가 이미 써내리는 중이다.

결국... 살 수 없는가.

...미안해 독자야...!

고통속에 꺼져가는 의식속에서 그녀가 간절히 중얼거렸다.

너를 위해 준비했던 문장이 있었어.

「그렇게 너는 행복하게 살았어.

「가짜같은 끔찍한 '허구'를 잊고.

「마침내 ■■이 되어서.

「'현실'에서 사랑하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살면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내가 넘봤던 너의 설화의 아주 일부.
그걸로 쓴 '이야기'.

네가 나중에,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 읽을 이야기를 이미 적고 있었는데.

[유상아]와 결혼하고.
힘들땐 술집에서 [정희원]에게 하소연하고.
너와 비슷한 유년기를 보낸 [이길영]이란 소년의 형이 되어주고.
영원히 모를 [한수영]이란 사람이 쓴 소설을 읽는 취미를 가진.

...그리고 언젠가 [아이]를 가지겠지.

험난한 세계에서, 가슴을 쭉 펴고 아이 앞에 서서.

너도 '누군가의 유중혁'이 되었을거야.

...너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웠을 '현실'.

이제는 그런것을 꿈 꿀 수 없겠구나.

미안해 독자야...!

너는 '허구'를 사랑할거야.

지금 내 앞에 옹기종기 앉아서.
그들을 [사랑]해주었던 [유중혁]을 기리면서 살아갈
이 '허구'와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들에 만족하면서.

너는 눈을 감을거야.

...

그래,
지금도 감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뜨지 않을 눈을 감은체로.

'꿈'을 꿀거야.

그토록 바꾸고 싶었던 한 [설화]를.
바꾸어주지 못했구나.

한수영은 슬퍼했다.

'꿈'을 건드리지 못하게 끌어안고서 웅크릴 녀석을 떠올리면서.

[막]을 치고.
[영원]히 웅크려버릴 작은 소년을 생각했다.

[■■]이 될 수 없는 소년.

그녀가 사과를 던진다.

독자야 미안해.

[사람]은 일어나서 두 발로 걸으며,
존재를 만나 교감하고,
그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함의 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해.

「이것을 배우지 못해도,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안녕.

안녕... 독자야.

작은 '꿈'이 되어서 눈을감고 웅크릴.

내가... 정말로... 바꾸어주고 싶었던...

 ㅡ 시... '신'이시여! 신이시여!!!

한수영이 쓰러진다.

[막대한 개연성이 지불됩니다!!]

저 하늘을 가르고, 검은 별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날아들듯 창가로 들어오는 존재.

콰츠츠츠... 두두두....

설화들이 슬프게 흩날린다.

 ㅡ 아아...! 아아...!! 네놈...! 네놈이...!!

【...

[모략].

그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ㅡ ...허억...! 허억...! 모략! 네놈이!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그가 조용히 쓰러진 한수영을 내려보았다.

【이제서야... 돌려주러 온 것이다.

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많은 존재들.

그렇게 오랜 삶을 살아옴에도.

그는 그들 중 단 한사람조차도 알 수 없다.

[특성창], [등장인물], [시스템].
[공략]을 위한 그 무엇도 없고, 필요로 않는.

아무런 정답도, 정해진 기간도 없는 [시나리오].

...그것이 '현실' 이였다.

【그래... 내가 감히 탐냈던, 이 '현실'을 돌려줄 것이다.

그가 그것들을 아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그의 것이 아닌.

김독자가 해쳐나가야할 그 [시나리오]들을.
그 때문에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시나리오]들을.
[모략]은 오래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나의 ■■을 마주할 용기가 났으니까.

마지막 순간 부스러졌던 그 녀석처럼.

【...나는 그렇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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