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게임의 발매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생각났던 소재였음 근데 매번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쓰게 됐음 재밌게 보길 바람

아 그리고 제목 추천 받음





"실례 하겠습니다."

 동네 골목길, 별 볼일 없는 어둑 어둑한 골목길을 지나친다. 그 곳에는 몇 번 사진으로 본 이가 있었다. 긴장해 경직 된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그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자 대놓고 그가 나를 살기등등하게 바라보았다. 어찌나 대놓고 보던지 주머니에 넣은 손이 조금은 떨리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내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을 집중한 귀에 자세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다. 시야에 이물이 낀듯 살짝 뿌얘졌다가 여러 선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벽면에도, 쓰레기 더미에도, 바깥으로 향하는 길에 놓여있는 전봇대에도 푸른 선이 세겨져 눈 안으로 들어왔다.

 안경을 주머니에 대충 넣고, 반대 쪽 주머니에 있는 것을 슬쩍 꺼냈다. 나의 이 행동에 의아심을 가졌는지 더 이상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 움직이든 안 움직이든 달라지는 건 없다. 잭나이프의 칼날을 펼치고 손에 힘을 주자 심장이 한 번 강하게 쿵 뛰었다. 그 것 때문인지 피가 강하게 도는 게 느껴졌고 덕분에 익숙해지지 않는 어지럼증이 잠깐 일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뒤돌아 그를 바라보자 의아심을 버리고 나에 대한 적대심만 품은 채 자세를 잡았다. 어제까지 봐온 놈들보다 정확하고, 빠르고, 강한 의지력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 호응하듯 잭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저번 주 같이 놓쳤다가는 진짜 죽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게 배운 자세를 잡는다. 누가 보면 겉멋으로 보이겠으나 내가 잡을 수 있는 자세중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준비 자세였다. 나이프의 날을 바깥 쪽으로 잡고, 자세를 낮췄다. 얼마나 낮췄는지 아무 것도 쥐지 않은 손 끝에 아스팔트의 감촉이 느껴질 정도였다. 눈에 힘을 주자 심장이 또 다시 강하게 뛰었다. 이번엔 좀 심한 어지럼증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정확하게 선이 보이자 적당하지 못한 운동으로 단련된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오른 쪽 발을 뒤로 빼느라 아스팔트에 신발 밑창이 갈렸다. 다시금 손에 힘을 주고, 달렸다.

 낮은 자세에서 일어서며 달리는 자세 덕에 그의 예상보다 빠르게 칼날이 그의 몸에 닿았다. 우측 늑간근 부근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그대로 보이는 선을 따라 그어내자 인간도 아닌 지라 단단한 근육과 피부, 웬만한 강철처럼 단단한 뼈를 끊는 것 때문에 처음 박아 넣었던 그 속도는 유지되지 못했음에도 충분히 근육을 꿰고 뼈를 긁어내며 쇄골까지 긁어내며 첫 한 방은 마무리 되었다. 사람이었다면 치명상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부상이겠으나. 눈 앞에 이 남자는 인간이 아니다. 마인(魔人), 최하급인 9급 인외종이지만 충분히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갖는다. 웬만한 치명상은 통하지 않는다. 심장을 꿰어내거나, 목을 떨궈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보이는 선은 그냥 선이 아니다. 적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경로를 보여주는 선이다. 방금 베어낸 부분을 제외하고도 여러 관절 부분과 목, 심장 부근 등에 선이 보였다. 어찌나 많은지 다 보는 것도 힘든 수준이었다.

 정확히는 볼 수야 있지만 이 상황에서 하나하나 보고 있다가는 반격 당한다. 마인인 그와 다르게 나는 인간이다. 종이에 스친 것 만으로도 베일 수 있고, 문에 손이 낀 것 만으로도 부러질 수 있는 그저 일반인···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였다. 두번의 발걸음으로 거리를 둔 내게 그가 베인 부위를 감싸안고는 달려왔다.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몸이 뒤로 넘어가 머리가 깨지든, 맞아서 뼈가 뭉개지든 결국은 죽는다. 그렇기에 빠르게 나이프의 날을 안 쪽으로 돌려 타이밍에 맞춰 자세를 최대한 낮췄다. 서 있던 나를 밀칠 생각이었던 그가 몸을 띄워 날아왔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고 나이프를 두 손으로 쥔 채 위로 푹 찔러냈다. 심장 부근에 있던 선이었기에 빗맞았을 확률은 적었다. 조심스레 칼날을 빼냈다. 뼈에 걸리고 압축되는 근육에 껴 살짝 힘들었지만 다 뺴내자 붉은 피가 푸슉 하고 튀었다. 그가 내 위로 쓰러졌고 나는 확인사살을 한다는 생각으로 목덜미에 있는 선을 그었다. 바닥에 쓰러져 차가워질 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죽었겠지만, 이런 식이 아니라면 죽일 수 없다. 

 칼질에 망설여도, 죽는다. 

 중간에 생각을 해도, 죽는다.

 죽음을 각오해야만 죽일 수 있다.

 죽이기 싫어도 죽여야 한다.

 그게 '그녀'와 '나'에게 들은 내 삶의 목표고, 삶의 이유이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마인을 죽이고 묘하게 지어지는 미소는 그들의 말의 증거가 되어있었다. 이젠 익숙해진 마인 사냥의 결과물을 살짝 들여다 보다가 손과 나이프에 묻은 피를 그가 입고 있던 옷에 슥슥 닦았다. 피에 절어 손이 붉에 물들긴 했지만 피가 묻을 걱정은 없었기에 주머니에 넣었던 안경도 쓰고, 점퍼 안 쪽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 능숙하게 전화번호를 눌렀다.

10초 정도 연결음이 들리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끝냈냐?"
 "응, 처리는 어떻게 할까?"
 그녀가 으음 거리며 고민하듯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그냥 돌아와, 내가 처리할게."

 나는 들고 있던 나이프를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금속 냄새와 피냄새가 섞여 썩 그닥 좋은 냄새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건은 끝났기에 끊으려 했다. 귀에서 스마트폰을 떼자마자 그녀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김독자, 김독자!"

 "···뭐."

 그러자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레몬 사탕좀 사다주라."

 "사갈테니 보수에 더해놔."
 "오케이."

 그걸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옷이고 얼굴이고 손이고 다 피투성이인데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