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이건 아니야. 

무언가가 잘못됐다. 


"왜?"


떨리는 유중혁의 입에서, 영원불멸의 지옥도를 걸어온 회귀자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다른 것이 아니였다. 

'어째서'도 아니였고, '말도 안 돼'도 아니였다. 

1864번의 삶을 살았다. 

그의 안에서 이설화는 수백 번을 죽었고, 수백 번을 같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 특별한 게 아닌 것이다. 


"김독자. 말해다오. 이설화가.. 정말, 정말로 죽은 건가? .. 대답해라 김독자! 어째서, 너희는 이설화를 지키지 못했지?"


".. 미안하다."


김독자는 말을 늘이지 않았다. 

너무나 깔끔하고 빠른 인정이었기에, 오히려 그것이 더욱 유중혁의 분노를 배가시켰다. 

유중혁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흑천마도'를 뽑아들었다. 


"사부.."


이지혜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유중혁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에도 유중혁은 그 분노와 절망,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유중혁!"


'주작신보'를 발동한 유중혁은 가장 앞에 서 있던 정희원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김독자는 '마왕화'를 발동하고 있었고, 이현성은 이미 '강철화'를 발동한 채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랬더라면. 

이설화가 저들이 아니라 나와 함께 시나리오에 참가했다면.. 

이들도 열심히 노력했을 터다.

아무도 죽게 하지 않으려고 온갖 고생을 다 했을 터다.

나는 무언가 이들에게 따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인가?

내 분노는, 이들에게 정당한 것인가?


백팔 번뇌가 유중혁의 마음에서 혼란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렇게 수 많은 상념들의 범람 속에서 유중혁은 손에서 '흑천마도'를 놓았다. 


쨍그랑 -


".. 사부?"


유중혁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이설화가 누워 있는 침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불 속에서 살짝 빠져나온 그녀의 희고 고운 손을 살포시 쥐었다. 


"울어?"


유중혁의 어깨가 반복적으로 조그맣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묵묵히 그들의 앞에 있었던 그 크고 넓은 등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설화.. 미안하다."


유중혁은 사과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였음에도, 너의 죽음은 내가 이 회차를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듯.

초월좌 패왕도, 인간 유중혁도 아닌 한 명의 회귀자로써, 그렇게 너무나도 외로이. 

그 숙연한 유중혁에게서, 그가 짊어진 책임과 무게를 본 김독자는 그만 이 '장난'을 끝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김독자."


유중혁은 아직도 이설화의 손을 잡은 채로 김독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바로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어떤 적을 마주했어도 꿇리지 않았던 무릎이, 서서히 땅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지혜와 유미아가 달려왔지만 유중혁은 이미 두 무릎을 다 꿇은 후였다.


"유.. 유중혁?"


"사부!"


"오라버니!"


유중혁은 이제 이설화의 손마저 놓고 김독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모자라 김독자를 향해 마치 절을 하듯 엎드린 유중혁은,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말했다. 


"김독자. 내 탓이다. 내가 무능해서, 내가 안일해서, 내가 신경쓰지 않아서.. 그러니 부탁하마. 제발.. 제발 이설화를 살려다오."


김독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선 먼저 물어뜯어야 했고, 물어뜯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으면 안 됐다. 


"유중혁.."


"사부! 알았어, 우리가! 우리가 꼭 설화 언니 구할게."


이지혜가 말했고, 


"맞아요! 우리가 꼭!"


"쳇, 검은 놈. 이번 한 번 만이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가세했다. 

그러나 유중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김독자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다는 듯. 


".. 유중혁."


김독자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히 가능할지, 아닐지는 나도 몰라. 솔직히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까울 수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려낼게. 너도, 아일렌 씨도, 상아 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나만 아는 방법이 있다."


김독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시를 읊듯, 노래하듯 말했다. 


"내가, 너의 세계를 구해주마."





p.s. 내가 원하던 엔딩은 이게 아니였는데. 뭐 쨌든 즐감해라

참고로 외전으로 이설화 시점도 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