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


다시 돌아온 서울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마냥 장대비가 내렸다.


드문드문 나 있는 상처에서 흐르는 설화들은 빗물에 희석된 채 배수구로 흘러나갔고,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는 핏물이 고여 선홍빛을 띄었다.



"...끝난건가?"


어느 한 성좌가 나지막히 뱉은 말에 분위기는 금새 어수선해졌다.



깔끔하게 수복된 균열.


김독자가 아무리 가장 오래된 꿈의 권능으로 그 흔적을 찾아보려 해도 더 이상 균열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환호성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상처입은 동료를 바라보며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야, 김독자 뒤질래?"


아직까지 흑염이 완전히 사그러지지 않은 한수영이 김독자한테로 걸어갔다.


"이 새끼가 사람 놀래키는데 아주 재주있다?"


마지막 순간, 김독자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뻗는 이계의 신격에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채 바라본 것이 꽤나 마음에 걸렸는지 한수영은 계속해서 무릎으로 김독자를 걷어찼다.



하지만 김독자는 그런 한수영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유수처럼 두 뺨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따라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김독자. 이게 내가 사랑했던 너의 이야기야.]


비형의 음성이 김독자에게 계속 맴돌았다.


설화를 잃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흩날리는 육신을 붙잡고, 마지막까지 김독자의 이야기를 바라보았던 비형의 모습.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한번, 그리고 균열에서 한번.


두번의 희생으로 김독자 컴퍼니를 구해낸 비형의 구원은 김독자의 이야기 속 오류였다.


비록 비형이 단언했지만, 비형은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 모두가 인정하는 그들의 동료였다.


999회차 유중혁의 삶을 토대로, 자신의 헌신으로 그 어떤 동료도 희생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김독자의 다짐은 항상 비형의 앞에서는 무력했다.



비형에게 김독자 컴퍼니의 설화는 멸살법이나 다름없었다.


수동적인 이야기꾼의 삶을 고독하게 살아온 비형에게, 김독자 컴퍼니의 설화는 그가 이야기꾼으로써의 삶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혹자가 도깨비가 감히 화신의 이야기에 과도하게 몰입한다고 아무리 욕할지언정, 비형은 김독자 컴퍼니의 설화를 그의 작은 두 눈속에 담아왔다.


하급 도깨비에서 중급 도깨비, 중급 도깨비에서 상급 도깨비, 상급 도깨비에서 마침내 대도깨비에 이르기까지,


김독자 컴퍼니의 설화 속 비형은 잔혹한 이야기꾼도, 나약한 하급 도깨비도 아니었다.


그저 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독자였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 보따리 속 김독자 컴퍼니의 이야기를 만끽하던 비형의 모습은, 중학교 시절 멸살법을 읽던 김독자의 얼굴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크흑..!!"


김독자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아보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감싼 두 손에서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비형의 설화에, 김독자는 도저히 눈물을 막아낼 수 없었다.



물안개가 이는 뿌연 서울의 광화문 거리, 성좌들이 지르는 환호성 속에서 김독자의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독자 씨, 정말 안가려구요?"


"그래도 김독자 컴퍼니의 회장이신데,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시는게... "


"아뇨, 괜찮습니다. 당분간은 좀 쉬고싶어요."



김독자는 자신을 걱정하는 듯 내려다보는 이현성과 정희원에게 등을 돌린 채 거실의 쇼파에 드러누웠다.


김독자의 좁고 부실한 등에, 이현성과 정희원의 한숨소리가 아스라이 닿았다.



"에휴.. 그럼 저희가 가서 잘 설명할게요."


"독자 씨, 쉬십시오!"


김독자는 현관을 나서는 이현성과 정희원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들어오는 기자들의 셔터소리와 무언가 물어보는 말소리,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진 김독자는 베개로 얼굴을 감쌌다.



"하..."



한숨이 텅 비어버린 거실을 지나 복도와 온 방을 누비고, 다시 김독자의 귀에게로 안착했다.


적막하고 묘하게 쓸쓸한 큰집의 분위기, 가벼운 독서를 하기에 딱 알맞았다.


원래였다면 별 이상한 오징어 춤을 추며 서재에 가 멸살법 단행본을 꺼내읽을 그였지만,


지금은 서재에 시선조차도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탄식섞인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한없이 비극적이던 우리의 이야기를, 비형은 대체 어떤 이유로 사랑해주었던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길래 두 번이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내고싶어했던 것일까.



수없이 의문을 던져보아도, 그 막막한 해답은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김독자, 뭐하냐?"


구석에 있는 방에서, 한수영이 레몬티를 홀짝거리며 거실로 나와 김독자에게로 다가갔다.


눈밑에 나려앉은 다크서클에, 강의를 나설 때만 썼던 무테안경을 쓴 모습으로 보아 마감을 끝낸 상태처럼 보였다.



"그냥... 좀 그래서."


생기없고 떨리는 목소리로 응하는 김독자에, 한수영은 그가 누워있는 소파 머리맡에 걸터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비형 때문에?"


""


레몬티를 홀짝거리는 한수영의 물음에 김독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굳이 김독자의 대답이 필요할까, 


한수영은 김독자가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저 너머로 작게 들리는 기자들의 셔터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여러 대의 자동차들의 엔진소리가 나란히 들려오고,


평화로운 낮을 만끽하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가운데에서 한수영은 레몬티를 음미했고, 김독자는 베개로 머리를 감싼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 내가, 내가 999회차의 우리엘이나 은밀한 모략가처럼 강했다면, 비형이 안 죽지 않았을까...?"


"글쎄."


"하다못해 비형이 아니라 999회차의 세계선으로 넘어가 이계의 신격의 왕들에게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했더라면, 비형은 계속 0회차의 세계선에서 평화롭게 노후를 즐기지 않았을까...?"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나 때문에…. "



말끝을 흐리는 김독자의 베개가 조금씩 젖어들었다.


적막했던 큰 집을, 김독자가 버겁게 들이키는 숨소리가 가득 채웠다.



"이제 알겠어? 구원은 그걸 행하는 사람이 보기좋게 포장한 말이지 구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한없이 잔인하게 세상을 무너뜨리는 멸망이나 다름없어. 너가 허구헌 날 구원이랍시고 희생하고 다녔을 때, 애들은 하루하루를 그 기분을 느끼면서 살아갔다고."



레몬티를 다 마신 한수영이 컵을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만 힘든게 아니니까 닥치고 질질짜지 말라고?..."



팔짱을 낀 한수영이 김독자를 내려다보았다.



"너가 구원이라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건 모두 우리의 탓인가? 유중혁이, 내가, 지혜가 약했기 때문이고, 이현성이, 정희원이 잘못된 판단을 했기 때문인가?


아니잖아. 니가 구원을 한건 너 스스로의 의지지 우리의 탓이 아니었잖아."



김독자는 얼굴을 감싸앉았던 베개를 품에 끌어앉았다.


"비형이 자기를 희생해 우리를 구한건, 그만큼 우리의 이야기를 사랑했기 때문이지 니 탓이 아니야."



한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에게는 현재란 없어. 지나간 모든 순간은 과거고, 지나갈 모든 순간은 미래일 뿐이야. 소설이나 책도 마찬가지지. 쓰여진 장이 있고, 쓰여질 장이 있는거지 영원히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는 없어."


"그냥, 계속해서 덮어 씌여지는 이야기를 언제든 다시 펼쳐 읽어볼 수 있게,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나가면 되는 것 뿐이야."



한수영은 특유의 고양이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 레몬맛 사탕의 추억 7편이나 읽으라고."



한수영은 김독자에게 여러 장의 원고가 묶인 철을 내밀었다.



원고를 받아든 김독자는 눈물로 잠긴 목소리를 깨워 말했다.



"유중혁이랑 똑같이 말하네."


"허, 야 뭐라고? 내가 그 싸이코패스랑 뭐? 진짜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진짜, 시발 그딴 소리 할래?"



진짜로 화가난 것 처럼 몸부림치는 한수영의 모습에, 김독자의 얼굴에는 어느새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손에 쥔 원고철에서는 은은한 레몬맛 사탕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창 밖에 내리는 정오의 따사로운 햇살,


그것은 마치 비형이 김독자에게 보낸 하나의 설화파편과 같은 온기를 띄고 있었다.




 - [너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



계속해서 쓰여져 나가는 김독자 컴퍼니의 꿈과 같은 이야기 속에서,


비형은 당당하게 하나의 설화를 간직한 채 영원히 제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

시리즈물 창작에 낸 다음에 하나로 묶어서 대회에 내도 된다고 해서, 써놓고 깜빡해서 안올린거 올린당


1편 https://arca.live/b/reader/31859961?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2편 https://arca.live/b/reader/31867207?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3편 https://arca.live/b/reader/31902357?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4편 https://arca.live/b/reader/31964347?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5편 https://arca.live/b/reader/31991421?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6편 https://arca.live/b/reader/32042926?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7편 https://arca.live/b/reader/32087245?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8편 https://arca.live/b/reader/32121110?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

9편 https://arca.live/b/reader/32163178?target=all&keyword=%EA%B7%A0%EC%97%B4&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