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유중혁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싸보는 뻘글. 


*


피아니스트 유중혁, 28살의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 선언. 


얼마 전 사고로 인한 손가락 탈구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돼..


여전히 뉴스의 헤드라인은 시끄러웠다. 

청소도 하지 않은 거실, 쓰레기가 쌓여 있는 베란다. 

너저분한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피아니스트라고 보기보다는 차라리 배우나 연예인, 혹은 모델 같은 외모의 남자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후우.."


적당히 얇고 적당히 부드러운 그의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듯 허공을 두들겼다. 

입에 담배를 물고, 생기없는 눈으로 매캐한 연기를 한참이고 머금다 파하- 하는 소리와 함께 뱉어낸 그는,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누구.."


"안녕하세요, 옆 집에 새로 이사 오게 되어서 인사라도 드릴 참 들렀습니다."


그가 문을 열자마자 하얀 머리칼의 여자가 유중혁의 앞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눈처럼 희고, 꽃처럼 여린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잠시 코를 킁킁대더니, 유중혁에게 물어왔다. 


"혹시, 방금까지 담배 피우셨나요?"


"담배 내가 난 모양이군. 사과하지."


"사과는 저한테가 아니라 그 쪽 몸한테 하시구요. 참, 그나저나 통성명도 안 했네요 저희. 제 이름은 이설화에요, 스물 여섯 살이구요.  그 쪽은요?"


유중혁은 꽤나 생기발랄한 여자의 페이스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말했다. 


"유중혁이다. 스물 여덢 살이고."


유중혁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설화는 놀라워하며 그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 피아니스트 유중혁 씨 맞아요? 완전 팬이에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매번 1등을 차지한 불세출의 피아노 천재! 일 때문에 조금 바빠 직접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요."


"그런가. 고맙다."


그만 들어가고 싶어하는 유중혁과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이설화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쪽은, 무슨 일을 하지?"


"궁금해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았으니, 그 쪽도 들려 줘야지."


날 선 말투의 유중혁도 귀엽다는 듯, 이설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조그만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구요. 맨날 일에 치이느라 연애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불쌍한 여자랍니다."


이설화, 의사.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신의 손. 

불가능한 수술을 지금껏 몇 번이고 성황리에 성공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천재 외과 의사. 

그 실력만큼은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는. 


"들어본 적 있다. 신의 손이라고 불리운다는. 생각보단 밝은 성격이었군."


"후후, 알아주셔서 고맙네요. 참, 인사가 길어질 뻔 했네요. 전 이만 가 볼게요. 참, 담배 피우지 마세요. 좋은 거 하나 없으니까요."


그렇게 이설화는 떠나갔고, 유중혁은 뭔가 당한 듯한 억울함에 한동안 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추운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서 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또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또 기자겠거니, 하며 문을 연 유중혁의 앞에 허여멀건 남자가 나타났다. 


"유중혁, 잠깐 이야기좀 하자."


김독자였다. 

예전부터 쭉 자신의 뒤를 봐 준 매니저이자, 유일하게 그가 날 선 언어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중혁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온 김독자는 거실을 둘러보더니 한탄하듯 말했다.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예전엔 그렇게 깔끔 떨던 놈이 말이야. 일단 앉아."


김독자는 맘대로 유중혁이 사용하던 식탁에 앉더니, 손에 들고 온 소주 두 병을 내려놓았다. 

잔을 꺼내 온 유중혁은 소주를 자신의 잔에 따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러 온 건가.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이미 충분히 말하지 않았나. 내 생각을 바꾸러 온 거라면, 돌아가라."


"아니야 자식아.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기자들이 네 얘기를 가지고 난리를 치고 있다고. 그나저나 정말 수전증 때문이야?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한테 진료받게 해 주겠다니까?"


"넌 모른다, 김독자.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아니다. 그것만큼은 아니라고 확실히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자 답답하다는 듯, 김독자가 말했다. 


"그럼 뭔데? 아니 너 저번 년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놈이 이번 년도 들어서 손이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의사는 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눈에 띄는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니 PTSD나 저혈당, 혹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봤자 어떤 차도가 있었겠는가. 

결국엔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을 거라는 현실만 상기하고 되돌아올 뿐이었다. 


"나도 모른다. 알았으면 이미 고쳤겠지. 그리고, 사실 피아노 그만 둘 생각이었다."


"네가 피아노를 안 치면 뭘 할 수 있는데? 너 할 줄 아는 것 그것밖에 없잖아. 그래, X나 잘생겼으니까 뭐 연예인이라도 하겠다고?"


그의 말이 유중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였다. 

여태껏 유중혁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것이 바로 피아노였으니까. 


"김독자!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마라! 네놈은 모른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삶의 의미를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나도 알아! 너만 주인공이야? 나도 내 삶의 주인공이라고! 지지리도 많이 느껴봤어! 내게 삶의 의미 따윈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그렇기에 더더욱 알고 있다고!"


"잃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지 마라!" 


어째서 그랬을까. 

너무나 좌절한 인간은, 자신의 눈 앞에서 필사적으로 그 이유를 찾기에 이른다. 

천재였던 유중혁은, 자신이 좌절한 그 이유조차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슉-


순간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유중혁의 주먹이 허공을 갈라 김독자를 향해 쇄도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한 김독자는 유중혁의 셔츠깃을 잡고 팔을 잡고선 바로 몸을 돌려 그를 업어쳤다. 


콰앙-


"후우.."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유중혁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일어나 자신을 노려볼 줄 알았던 유중혁이 일어나지 않자, 김독자는 재빨리 그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유중혁의 매서운 눈을 보고 김독자는 날다람쥐처럼 그에게서 떨어졌다. 


".. 고맙다."


"뭐?"


"잠깐 이성을 잃었다. 네놈에게 업어쳐지고 나니 정신이 좀 들더군."


그 순간, 띵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