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편: https://arca.live/b/reader/34830265


싸우는 씬 안 나올 거야. 

전투씬 보고 싶은 사람은 저번 편 봐주면 대 ㅎㅎ

참고로 외지주 315화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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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혁은 굳은 얼굴로 짐을 싸고 있었다. 

사실 짐이라고 해 봐야 코트, 그리고 흑천마도와 몇 가지 아이템 밖에는 없었지만.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건 한수영이었다. 


"유중혁, 또 도망치냐?"


원래라면 성을 내고 검을 뽑아들었을 한수영의 도발에도 유중혁은 담담히 대꾸할 뿐이었다. 


"그렇다. 또 도망간다. 김독자도 도망갔는데 난 도망 못 가나?"


그런 그의 말을 한수영이 능청스레 받았다. 


"김독자 컴퍼니 리더가 맨날 도망만 치면 되냐?"


그녀의 말에 유중혁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덤덤했고, 손길 또한 무기질적이었으나 그의 마음 한 켠엔 분명히 무언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한 회차일 뿐이다. 

큰 의미를 가질 이유 따윈.. 없다. 


"누가 김독자 컴퍼니의 리더냐. 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김독자 그 놈이 제멋대로 맡기고 간 거 아닌가. 하고 싶으면 네가 리더 해라. 난 관심 없으니."


그러자 한수영은 부웅- 하고 따귀를 때리려 손을 휘둘렀으나 유중혁은 그것을 날랜 몸놀림으로 피했다. 


"느리다."


"아오 씨발 진짜! 아 존나 분해 개새끼들! 도대체 왜 안 맞는 거야!"


그렇게 자기 보라는 듯 소리치는 한수영을 보며, 유중혁은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을 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한수영에게 유중혁은 말했다. 


"김독자 컴퍼니 리더, 흑염마황 한수영도 별 거 아니군."


그러자 한수영은 뜻모를 슬픈 미소를 짓더니, 그에게 휴대폰 하나를 던져주었다. 

반사적으로 잡은 휴대폰은 유중혁이 잘 알던 이의 것이었다. 

김독자.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해 분명히 가지고 다녀야 할 그의 스마트폰이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을 깨달은 유중혁의 표정이 뭔가 묘하게 바뀌었다. 


"시끄럽고 유중혁, 이거나 보고 얘기해."


"이건..?"


유중혁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고, 그 화면에서 보이는 건 그가 잘 알던 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흐느적거리는 몰골에, 허여멀건 얼굴. 

그러나 뭐가 즐거운지 희미한 미소를 품고 조금이나마 위를 향해 올라가 있는 입꼬리. 

김독자가 화면 안에 있었다. 


"유중혁. 네가 이 동영상을 볼 때 쯤이면, 난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니.. 그러니까, 김독자 컴퍼니에 없겠지."


김독자는 화면 안에서 희게 웃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자주 보았던, 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의도적으로 그것을 숨기려는 김독자의 미소. 

그래서 일부러 김독자는 더 과장된 말투와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곧 불행해질 텐데, 행복한 척 좀 더 하는 것 정돈 괜찮찮아? 하면서. 


"사실 나도 이런 대사 해보고 싶었다. 뭐, 맨날 하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너 인성 많이 좋아졌다, 이렇게 내 메시지도 들어줄 생각을 하고... 나 너무 널 싸이코로 보고 있나?"


화면 속에 김독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으레 그랬듯, 무언가 충격적인 것을 제공할 때 그가 지었던 그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유중혁은 직감했다.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구나, 하며. 


"유중혁, 넌 날 많이 미워하고 있겠지. 난 김독자 컴퍼니를 팔려고 한 쓰레기니까. 하지만.."


김독자는 잠시 멈칫했다.

남의 감정을 읽는데 서투른 유중혁조차 김독자가 정말 이 사실을 말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김독자는 결심을 했는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난 김독자 컴퍼니를 차라투스트라에 팔지 않았어."


역시나.

예상하고 있었던 일임에도, 둔중한 충격이 유중혁의 사고를 휘감았다. 


"차라투스트라에 판 건 내 자신이야. 그게 내가 김독자 컴퍼니를 지키는 방법이었어. 수영이한테 있는 코인은 확인했냐? 걔네가 내 몸값을 10억 코인이라 하더라고. 앞으로 쓸 코인이 많잖아? 그 코인을 쓰는 거다."


김독자의 말이 담담히 이어지는 동안 한수영은, 벽에 기대 눈물을 훔쳤다. 

망할 새끼.. 여자친구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나쁜 새끼는 너 밖에 없을 거다 김독자.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속의 김독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너는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김독자 컴퍼니를 탐낼 수 없게 말이야. 나 대신 네가 내 가족들을 지키는 거야. 그리고 나 대신, 이 세계의 결말을 보는 거야."


그리고 김독자는 웃었다. 

미소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정말 행복한 사람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람 좋게 웃으며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사과했다. 


"연기해서 미안해. 김독자 컴퍼니를 맡겨서 미안해.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 줘."


유중혁은 무릎을 꿇고, 한 손에는 그의 휴대폰을 든 채 중얼거렸다. 


"연기였다고.. 다 연기였다고.. 그게 연기면 어떡하라는 거냐.. 그게 연기였으면, 어떡하라는 거냐.."


한수영이 슬픈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고.

마치 상처받은 짐승처럼 유중혁은 포효했다. 

화가 났다. 

하지만, 한 켠으로는 안심했다. 


"나는.. 나느은!! 난 네놈을 진심으로 미워했단 말이다!!"


빌어먹을 자식. 

끝까지 희생인가.


"한다.. 하겠다. 까짓 거, 하면 될 거 아닌가.. 네놈 바람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놈이 가지고 있던 그 책무, 내가 물려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리더, 하면 될 거 아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네놈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네놈 모든 것이 연기였어서. 


"시나리오로."


네놈이, 네놈이 이 세계를 버리지 않아서.


"기다려라. 내가 네놈이 원하는 대로, 이 세계의 끝을 볼 테니. "


내가 알던 그 김독자라서. 


-


그 날, 유중혁은 공식적으로 김독자 컴퍼니의 리더가 된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 인간 야망있는 인간이군요. 그 쪽이 버리고 온 '김독자 컴퍼니'의 리더를 맡다니. 어쨌든, 이제 일에 더 집중하실 수 있겠네요. No. 91?"


잘했다, 유중혁. 

그리고 시간 좀 남으면, 나도 좀 구해주고 자식아. 


김독자는 씩 웃었다. 

손발은 설화 사슬에 묶인 채로, 이곳 저곳 상처를 입은 몸으로. 

그럼에도 매우 즐겁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