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갔다. 아빠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교도소로 간 어머니.
"...어쩐 일이니 갑자기? 5년만인가?"
"무슨 일이 있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이었나요."
"나는 언제든 괜찮지만, 네가 무슨 일이 있을때만 왔으니까."
"..."
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나는 어머니를 찾아온 적이 없다.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찾은 적은 없어요."
"하지만 나를 찾을 때는 항상 무슨 일이 있었지 아마?"
"..."
어머니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냥 환해보이는 웃음인데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쓰린 웃음이었다.
"...이번엔 아니에요. 그냥 찾아온거에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표정이 변했다.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 그 표정으로 잠시간 나를 응시하던 어머니가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러니?"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 사이에는 긴 적막이 흘렀다. 그럼에도 어쩐지, 어머니가 안쓰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아버지를 죽였다는걸. 아니, 어쩌면 어머니가 죽인게 아닐 수도 있다는것을.
"...그날, 무슨 일이 있던건지 말해주세요."
"너도 알지 않니? 책으로 봤을.."
"...말해주세요. 진실을."
"..."
어머니가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꺼냈다.
"이미 어느정도 확신하고 온거구나? 그렇지?"
"......네."
"그럼 아마 네가 생각하는게 맞을거야."
"왜... 왜 그런거에요...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목이 메였다. 더 말하고 싶었지만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표정때문에.
"미안하다, 독자야..."
"......"
어머니의 형량은 20년. 어느새 출소를 앞두고 있는 어머니와 이제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은 내가 견디기엔 너무나 아픈 이야기였다.
.
.
.
"으음, 그렇게 된거였구만."
유지한이 주는 술을 계속 받아마신 것 때문인지, 평소에는 하지 못할 말까지 꺼내놓았다.
"그게 한달 전 일이면 이제 곧 출소를 앞두고 계신건가?"
"아마 이번 달 말에 출소하실 것 같습니다."
"그럼 상견례는 그때 하지!"
푸왁!
벌써 세번째다. 유상아가 나한테 물을 뿜는게.
"아 진짜! 결혼하는거 아니라고 아빠! 독자 씨!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러나 유지한은 유상아의 말을 들은건지 만건지 계속 뭐라고 유상아의 어머니께 말을 하고 있었다.
"여보! 독자가 우리랑 같이 사는건 어떤가? 집 구하기 전까지만 같이 살면 월세도 안나가고 돈도 빨리 모일거 아니야!"
"하이고, 이 양반아! 저 젊은 애들이 우리때문에 눈치 볼건 생각 안 하나? 이제 둘이 뜨겁게..."
"아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유상아가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엄마의 입을 막고 있었다.
"...독자는 어때? 집 구하기 전까지만 같이 살자고!"
사실 괜찮은 제안이다. 안 그래도 월세도 많이 나가는 상태여서 다른 집을 찾아야 하나 고민중인 내게는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안 그래도 자취방 계약이 이번 달로 끝나서 당분간 고시원에서 지내야하나 싶었는데 그래주시면..."
"이 보게 여편네야! 좋다잖아! 젊은 것들이 놀때는 밖에서 방을 잡던가 해서 놀겄지!"
"아 하지 말라고 진짜!"
어쩐지 이들 사이에 있으니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독자 방은 어디로 하지?"
"그냥 상아랑 같이 자라 그래!"
"좋네, 좋아!"
...그렇게 당분간 나의 데릴사위행이 결정되었다.
.
.
.
"으으... 머리야..."
지독한 숙취가 머리를 조여왔다. 잠시 띵한 머리를 주무르다가 주위를 보자, 내 무릎에 누워있는 유상아와 앞에서 서로에게 기대어서 자고 있는 유지한과 유상아의 어머님이 보였다.
"...몇 시지."
7시 30분. 그리고 우리 회사는 8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
그리고 나는 곧장 화장실로 가서 한명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자 씨?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제가 좀 아파서요. 오늘 휴가 좀 낼 수 있겠습니까?]
[휴가를? 그 정도로 아픈가?]
[아뇨, 한명오 부장님께 잘 처리해달라고 말씀드리려고요.]
[...알겠네. 휴가 수리하고 하루 추가해 놓겠네.]
전화를 끊고 샤워를 마치자,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에 독자 씨에요?"
"네, 혹시 남는 옷 있으면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입을 옷이 없어서."
"아, 전에 독자 씨 옷 가져와서 안 드린거 있는데 그거 가져다가 드릴게요!"
"넵, 감사해요."
유상아가 가져다준 옷을 입고 나가자 누워서 이불을 덮은 노부부가 눈에 띄었다.
"...침대로 옮겨드릴까요?"
"아니에요! 근데 독자 씨는 오늘 회사 안 가셔도 되는거에요? 저는 오늘이 마지막 휴가라서 괜찮긴 한데..."
"저도 휴가 냈습니다."
"네?"
"유상아 씨 마지막 휴가인데 저랑 보내시는건 어떠세요?"
"지금 작업거시는거에요?"
유상아가 내 양 볼을 찌르며 말했다.
"귀여우니까 작업에 한번만 넘어가드릴게요!"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봐봐, 이 여편네야... 결혼은 이제 시간문제라니까 그냥?"
"그러네. 당신 곧 손주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