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늘 일만 제대로 처리하면 형님이 조직에 꽂아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내가 지금은 심부름센터나 하고 있어도 90년대에 내 이름 부르면 다 알아주는 그런 놈이었다."


건장한 크기의 남성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장신의 남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툭 짚었다.


"어차피 빽도 없는 그냥 직장인이야. 눈물만 잘 짜면 돼."

"...네 형님."


그리고 드디어 결의를 다진 듯, 건장한 체형의 남자가 미노 소프트의 건물 앞에서 차의 시동을 걸었다.


*  *  *


"독자 씨, 저 업무가 좀 밀려서 같이 밥 못 먹을 것 같은데..."

"아, 네. 제가 샌드위치라도 사오겠습니다."


유상아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유상아가 인사팀으로 다시 뛰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회사 밖을 나가는 순간, 트럭 하나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이게 무..."


쾅!


몸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간 떠있었던 몸이, 이내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세상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갔다.


"꺄아악! 사람이!"

"얼른 구급차 불러요!"


앞이 뿌옇게 가려졌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오빠... 제발 정신 좀 차려봐..."


내 옆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불빛.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안도감이 찾아오며 웃음이 나왔다.


"......여긴."

"오빠! 괜찮아? 선생님! 여기 깨어났어요!"


여기저기서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괜찮으세요?"

"...괜찮아보이나요?"

"...다행히도 트럭에 치이셨는데도 뇌에 이상이 하나도 없어요. 다리가 부러지긴 했지만 3달만 깁스하시면 금방 나을겁니다."


밑을 보니, 양 다리가 깁스로 덮여있었다.


"얼마나 쓰러져있었죠?"

"...9시간."


유상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상아의 무릎에 채아가 머리를 대고 누워있었다.


"정말 하늘이 도운겁니다. 환자분."

"...회사는 갈 수 있는건가요."

"절대 안됩니다. 당분간은 좀 불편하시더라도 집에서 지내셔야해요. 병가 내세요."

"...네."


의사가 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가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가보세요."

"...네."


*  *  *


이튿날, 나는 회사에 1달간 병가를 냈다. 유상아가 2달은 내라고 했지만 내가 고집을 피운 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아빠, 아빠 다쳤으니까 내가 도와줄게!"

"너 유치원 안 가?"

"어제부터 방학이었어."

"유치원에도 방학이 있어?"

"아빠 회사에는 방학 없어?"

"어."

"아, 그래? 알았어."


채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TV를 켰다.


"...너 방학이면 아빠 없으면 집에 혼자 있는거야?"

"어제는 혼자 있었어."

"...아빠 회사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가 무슨 애야? 엄마랑 아빠 없다고 쩔쩔매게."


...너 애 맞는데?


*  *  *


"야, 장난하냐? 일처리를 이딴 식으로 해? 니들이 그러고도 용역이라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또 위해를 가하기엔..."

"경찰이 뒷조사를 시작하겠지."

"...네."


퍽!

도재윤의 발이 장신의 남성에게 날아갔다.


"크윽... 죄송합니다."

"하... 진짜 시발."


도재윤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내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저 싸이코패스같은 새끼."


도재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미노 소프트의 앞이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유상아가 도재윤과 마주쳤다.


"...뭐야?"

"연락이 없길래!"

"난 너랑 만날 생각 없어. 꺼져."


그 말을 들은 도재윤이 유상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놔."

"네 남편 교통사고 났다면서?"


유상아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궁금하면 따라와."

"..."


유상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유상아는 그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도재윤을 따라갔다.


*  *  *


"여기가 내 집이야. 어때?"


아파트 최상층에 위치한, 복층 펜트하우스.


"...말해. 설마 네가 그런거야?"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아."


유상아의 얼굴에 분노가 들이섰다.


"이 미친...!"


유상아의 손과 도재윤의 뺨이 부딪히는 파공음이 이 큰 펜트하우스에 퍼졌다.


"하하, 손이 많이 맵네."

"왜 그랬어. 왜 다치게 한거냐고!"

"아니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


유상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죽일 생각이었는데, 아하하핫..."


순간 유상아의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몸에 있는 모든 털이 쭈뼛 서는 느낌.


"뭐...?"


유상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도재윤을 바라보는 순간, 도재윤이 유상아를 쇼파쪽으로 밀치며 쓰러트렸다.


"다음에는 진짜 죽일거야. 살리고 싶으면 그냥 이혼하는건 어때? 내가 네 딸도 잘 키워준다니까? 원한다면 자식도 안 낳고 키울게!"

"...우리 아빠도 판사야. 지금 이 짓거리 하고도 감당 할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도재윤이 입에 조소를 머금었다.


"판사는 판사지. 그것도 아주 유명한."

"그, 그래.. 근데 왜...!"

"유명한 판사한테는 뒷세계를 움직일 힘이 없어. 너희 아버지는 사법부 명령 자체를 안 따르는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이 뒷세계가 움직이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러더니 도재윤이 자신의 셔츠를 벗어던지고서, 유상아의 외투를 벗겼다.


"그냥 나랑 결혼하면 돼."

"왜,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하는건데?"

"완벽하잖아. 정직한 판사 장인어른에 아름답고 참한 부인. 하핫. 애 딸린 유부녀라는 점은 좀 아쉽지만... 그 정도야 뭐, 다른 조건으로 상쇄할 만 하지?"


유상아가 도재윤을 밀쳤다.


"넌 고등학생 때부터 날 그런 눈으로 봐왔던거야..?"

"하하,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도재윤이 다시 다가와서 유상아의 흰 티를 벗기려고 하자, 유상아가 기겁하여 도재윤의 뺨을 세게 갈겼다.


"...어우,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미친놈!"


유상아가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자신의 첫사랑이, 자신을 그저 수단으로 봐왔다는 것에 대한 슬픔. 그리고 순전히 그를 향한 분노와, 상황을 어찌 할 수 없는 억울함.


"여기 우리 집 키야! 언제든지 마음 바뀌면 찾아와."

"그럴 일 없어."


유상아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서 외투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갔다.


*  *  *


"부장님?"

"엥? 상아 씨? 왜 거기서 나와?"

"아... 그게..."

"아, 맞다. 아버지가 판사라셨지? 친구 만나는건가?"

"...대충은요."


한명오가 웃었다.


"하하, 친구면 친구지 대충은 뭔가? 친구 이름이나 말해보게."

"...왜요?"

"이 건물 건물주가 우리 아빠거든. 관리비나 좀 까줄까 하고."

"...네?"


유상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왜?"

"저랑 얘기 좀 해요!"

"자, 잠깐만! 돈을 보고 변심한거라면 곤란하네! 난 요즘 독자 씨랑 친해지고 있어서!"

"미친 소리 하지 말고 빨리요!"


유상아가 한명오를 끌고 데려갔다.


*  *  *


한명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 싸이코패스 아닌가?"

"나도 몰라요."


한명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K&A 로펌이라면 그 쪽 대표랑 우리 아빠랑 친분이 좀 있어. 그쪽에서 키우려는 변호사면 좀 힘들거고 그냥 일개 소속 변호사면 자를 수 있을걸세."

"...꼭 잘라주세요."

"부탁은 해 보지. 근데 이번에는 확신 못 해."


그 말을 한 뒤, 한명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아빠. 그 강 대표님 있잖아요! K&A 로펌 대표님요. 거기 로펌에 좀 눈엣가시같은 놈이 있어서요."


한명오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번만 부탁할게요. 요즘 저희 부서 실적도 좋잖아요... 네, 네! 감사합니다! 이름은 도재윤이고 소속 변호사랍니다!"


한명오가 전화를 끊고 유상아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반은 됐네!"

"...고마워요."

"이걸로 빚은 퉁치는건가?"

"...반은요."


한명오가 눈을 크게 뜨고 유상아를 쳐다보더니,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유상아도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  *  *


"예?"

"해고라고... 위에서 통지 내려온거라 나도 어쩔 수가... 대신 줬던 차는 안 뺏고... 임대해준 아파트는 다시 가져갈 것 같네. 정말 미안해."

"아니 무슨 미친...!"

"...경비원!"

"야! 야 이 개새끼야!"


경비원에게 양 팔을 붙잡혀 끌려나가는 도재윤이 악다구니를 써가며 저항했다.


"이러면 내 계획이 다 망가진다고!"


물론, 이미 변호사 자격증을 땄기에 그가 먹고사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해고된다는건, 업계 블랙리스트에 들어가는건 사실상 확정된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말인 즉슨, 자영업이나 다름없는 사립 사무소를 세워 운영해야 한다는 소리이며, 그가 최상층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모두 바스라져 사라진다는걸 의미했다.


그리고 멀리서 그 사태를 주도한 한 사람이 가만히 차를 마시며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도 참 아들바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