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데이라서 독수 축전이나 짧게 한번 써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끝나기 50분전에 10000자나 되는 글을 썼다...상하편으로 나눌걸 그랬나. 인생 두번째 창작이라 부족한 점도 있을 창작이지만 그래도 부디 재밌게 봐주면 좋겠고, 피드백과 오타지적은 언제나 환영이야.





*





11월 10일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큰집의 오전. 그 평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성인 여성의 키는 족히 넘을 상자의 탑이 내려놓아졌다.

 

 

“야 꼬맹이들! 와서 빼빼로 가져가!”

 

 

한수영이 현관에서 소리치자 방문이 열리며 이길영, 신유승, 이지혜, 유미아가 뛰쳐나왔다.

 

 

“수영 언니 최고!”

 

“야 꼬맹아, 그거 내가 찜해 놓은 거거든?”

 

“먼저 가져가는 게 임자…미아 너 스킬 쓰는건 반칙이지!”

 

“믄즈 그즈그느게 이자르며서연?(먼저 가져가는 게 임자라면서염?)”

 

 

아이 세 명과 아이 수준의 성인 한 명이 빼빼로 쟁탈전을 벌이는 동안, 그걸 구경하던 한수영에게 유상아와 정희원이 다가갔다.

 

 

“올해도 난리네 난리. 저 상자랑 포장지 언제 다 치우나?”

 

“그래도 수영 씨 덕분에 애들 과잣값 아끼잖아요.”

 

“그건 그렇죠. 근데 작년보다 선물들이 늘어난 거 같은데 요즘 잘나가나 봐? 부럽네?”

 

“아 뭐래, 필요도 없는 것들이 늘어나 봐야 귀찮기만 하지.”

 

 

퉁명스러운 한수영의 대답에 정희원이 혀를 찼다.

 

 

“하여간…팬들 선물을 필요 없는 거라고 하는 작가는 너밖에 없을 거다.”

 

“희원씨가 이해하세요. 독자 씨 출장 간 지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가잖아요.”

 

“하긴, 하나뿐인 독자이자 남자친구가 없으니 많이 속상하지?”

 

“야, 둘 다 안 다물어!?”

 

 

얼굴이 붉어진 한수영이 두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둘은 이리저리 피해냈다. 그렇게 추격전을 하길 잠시, 한수영이 주저앉아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쁜 새X…매일 연락한다고 해놓고는 첫날 빼고는 문자도 없고…한낮의 밀회도 있으면서…”

 

 

단순히 한수영을 놀리려는게 목적이었던 두 사람은 그녀가 진심으로 울기 시작하자 당황해했다.

 

 

“쓰레기, 오징어만도 못한 자식, 모든 세계선에서 가장 못생긴 새X…”

 

“야야, 우리가 잘못했어. 그리고 독자 씨 내일이 귀국일인데 그만 울어, 응?”

 

“독자 씨가 일부러 연락 안 했던 건 아닐 거예요. 독자 씨가 출장 간 곳은 아직 복구가 덜 되었고, 시스템도 불안정한 곳이라고 하잖아요.”

 

 

장장 20여 분을 위로하고 나서야 한수영의 울음이 그쳤다. 한숨을 돌린 정희원이 한수영에게 물었다.

 

 

“근데 너, 독자 씨 줄 빼빼로는 준비했어?”

 

“으, 응?”

 

“’으, 응?’ 같은 소리하는 거 보니 저기서 대충 몇 개 집어줄 생각이었나 봐?”

 

 

정희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네 명이 웬만큼 털어가고 남은 빼빼로 상자들이 있었다.

 

 

“인간아 너야말로 너무하다! 아무리 독자 씨가 네가 주는 건 다 좋아한다지만 1년 내내 기념일마다 공산품은 아니지!”

 

 

정희원의 폭풍과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고, 반박하지 못한 채 듣고만 있는 한수영에게 유상아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희원 씨 저녁에 설화 씨랑 같이 장 봐서 빼빼로 만든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수영 씨도 같이 만드는 게 어때요?”

 

“엥? 내가?”

 

“그거 좋네! 설화 씨 퇴근 시간 맞춰서 병원 앞에서 만날 거니까 준비해라?”

 

“난 빼빼로 만들어본 적 없는…”

 

“나랑 설화 씨가 어련히 도와줄 거니까 잔말 말지?”

 

 

서슬 퍼런 정희원의 기세에 한수영은 마지못해 승낙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상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희원 씨 오셨...어머, 수영 씨도 오셨네요?”

 

“올해는 독자 씨한테 직접 빼빼로 만들어서 준다고 해서, 같이 나왔어요. 그렇지?”

 

“어, 어 맞아.”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한수영을 정희원이 노려봤지만, 이설화는 그런 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채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잘됐네요. 희원 씨나 상아 씨랑 뭔가 만들 때마다 수영 씨도 같이 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 그래…”

 

 

세 사람은 병원 근처의 대형마트로 걸음을 옮겨 장을 보기 시작했다.

 

 

“설화 씨, 봉투랑 포장지는 이만큼 사면 되겠죠?”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몰드는 집에 있는 거 사용하면 되겠죠?”

 

“작년에 살 때 모양 다양한 걸로 샀으니까 그대로 써도 될 거 같네요. 근데 수영이 얘는 과자랑 초콜릿 사러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안 온담?”

 

“그러게요, 저희가 그쪽으로 가봐야 하ㄴ…아 저쪽에 오네요.”

 

 

이설화가 카트를 가득 채워 오는 한수영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 있는지 걱정했잖아.”

 

“이것저것 살게 많아서 좀 늦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카트에서 물건들을 확인하던 이설화는 한수영이 사 온 것들을 보고 경악했다.

 

 

“이게 뭐야…와사비 초콜릿에 캡사이신 초콜릿, 토마토 초콜릿??”

 

“예에?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설화씨?”

 

“아, 그건 내가 결제할 거니까 내버려 둬.”

 

“너 미쳤냐? 빼빼로 만들건대 저런 걸 왜 사!”

 

“정상적인 것만 만들어서 주려니 억울해서, 특제 빼빼로도 같이 만들려고 샀다 왜?”

 

“야!!!” 

 

 

정희원과 이설화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한수영을 뜯어말렸고, 혼자인 한수영이 결국 괴초콜릿들을  다시 가져다 놓으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어휴 저 미친X.”

 

“카트 확인하길 잘했네요…”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부엌에서 한수영과 정희원, 이설화가 빼빼로를 만들고 있었다. 정희원과 이설화는 여러 번 해본 듯 능숙하게 빼빼로를 완성했고, 한수영도 걱정과 달리 무난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중탕을 하랬더니 초콜릿을 담은 그릇에 물을 넣으려 했다던가(정희원 : 물을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물을 담은 냄비 위에 초콜릿 담은 그릇을 올리고 녹이라고!) 짤주머니를 너무 많이 잘라서 초콜릿이 그대로 다 흘러나오는(이설화 : 수영 씨 짤주머니 끝 조금만 잘라도 잘 나와…어어어!)등의 사소한 일만 제외하면 말이다.

 

 

“다음부턴 우리가 만들어 줄게 네가 만들었다고만 해.”

 

“그래도 수영 씨도 잘 만들었잖아요 하하…”

 

 

한수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무시하며, 자신이 만든 빼빼로를 담은 봉투에 스티커를 붙이고 리본을 묶었다. 

 

 

“먼저 일어난다. 너네도 들어가서 자라.”

 

 

나는 포장을 끝낸 빼빼로 봉지들을 냉장고에 넣은 후 내 방으로 갔다.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피곤해서, 양말도 안벗은 채 침대에 누웠다.

 

 

“생각해보니 그놈 어디가 이쁘다고 이 고생을 하냐…그냥 정희원 말 생까고 파는 거 몇 개 집어서 줄걸.”

 

김독자 그 바보 녀석 욕을 하다가 몸을 돌렸다. 그런 내 눈에 선반 위에 놓여있는 김독자 인형이 보였다. 흰 코트를 입고 천사화와 마왕화를 한 김독자 인형은 김독자 컴퍼니 인형 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었지만 지금 나에겐 그저 샌드백용 못난이 인형이었다. 인형을 집어서 정수리에 꿀밤을 먹이기도 하고, 볼을 주욱 잡아당겨 보고, 양쪽 날갯죽지를 잡고 흔들어 보기도 했다. 처음엔 제법 재밌었지만, 몇 분 만에 질려버렸다.

 

 

“반응을 안 하니 재미가 없네. 진짜 김독자였으면 하지 말라고 진저릴 쳤을 텐데…”

 

 

옆으로 누운 채 인형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 김독자가 생각났다. 아무 일 없어도 실실 웃는 재수 없는 얼굴이, 항상 속을 알기 어렵게 하는 말투가, 의외로 좋은 몸과 품에 안겼을 때 느껴지는 단단한 가슴팍이, 나에게만 해주는 애정 표현들과 키스할 때마다 느껴지는 부들부들한 입술의 감촉까지, 그 모든 게 너무나 그리웠다. 나는 김독자 인형을 품에 꼭 껴안았다.

 

 

“빨리와 김독자…보고 싶어…”

 

 

내일 김독자를 만나면 꼭 안아줘야지, 그리고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

 

 

그리고 다음 날, 11월 11일의 날이 밝았다. 오전 강의를 빠르게 마친 나는 집에 들어와 점심도 먹지 않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옷은 평소에 입던 후드티 대신 얼마 전에 새로 산 흰 블라우스에 연보라색 뷔스티에 원피스를 입었다. 총장 퇴임식 때도 안 했던 화장을 하고, 언젠가 김독자가 내 옛날 사진을 보고 예쁘다고 했던 반묶음 머리도 해보았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2시 20분, 지금 나가면 비행기 착륙 시간인 3시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시간이었다.

 

 

“아이씨 머리는 그냥 묶지 말 걸 그랬나.”

 

 

급하게 집에서 나와 도로로 향하니 운 좋게 신호에 걸려 정차 중인 택시가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택시에 앉으며 택시 기사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김포공항 따블이요!”

 

 

따블이라는 말을 들은 기사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액셀을 냅다 밟으며 운전하기 시작했고, 2시 55분쯤에 김포공항 앞에 도착했다. 나는 새삼 돈의 위대함을 느끼며 5만원 2장을 낸 후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공항으로 뛰어 들어갔다. 김독자가 나올 게이트까지 있는 힘껏 뛰어가 보니 게이트는 아직 닫혀있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잠깐 앉아있을 자리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예?”

 

 

뒤를 돌아보니, 껄렁하게 생긴 남자가 제 폰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쪽 예쁘게 생겨서 마음에 드는데, 번호 좀 줄래요?”

 

“됐거든요? 저 남자친구 마중 온 거니까 갈 길 가세요.”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좋게 말로 거절하려 했는데, 남자가 내 팔을 붙잡았다.

 

 

“튕기는 여자는 재미없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놀죠? 좋은 곳 아는데.”

 

‘이 개새X가 진짜.”

 

 

말로 하려 했던 내 인내심은 저 자식의 비릿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 사라졌다. 대신 오른손의 주먹을 꽉 쥐고 휘두르기 위해 팔을 당겼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오른팔을 잡더니 뒤로 끌어당겼다. 그대로 뒤로 딸려간 나는 누군가의 품에 안겼고, 당황한 나의 귓가에 정말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여자친구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

 

 

“허허 이 사람, 그렇게 좋나?”

 

 

비행기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옆자리에서 보던 부장님이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 나갔다.

 

 

“하긴, 핸드폰은 고장 나고 스킬도 못 써서 연락이 안 되니 그럴만도 하지, 나도 우리 다름이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매일 밤 다름이가 꿈에 나왔다니까?”

 

“하하 네…”

 

 

부장님의 다름이 타령을 한 귀로 흘리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공항을 바라보았다. 저기에서 날 기다릴 수영이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한편으로 한 달 동안 연락이 안 됐다고 화낼 모습을 생각하니 겁도 났다. 레몬 케이크와 레몬 술을 비롯한 출장지의 레몬 상품을 두 상자 사긴 했지만, 이걸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 하겠다. 곧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기대와 근심을 안고 공항 게이트에 나왔지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수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공항 도착 시간은 알고 있을 텐데, 오후 강의라도 있나?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머리 스타일과 옷이 다르긴 했지만, 저 아담하고 귀여운 뒷모습은 틀림없는 수영이었다. 반가움에 당장 달려가려 했는데, 어떤 남자가 수영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끼어들까 생각했지만, 학생이나 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근처에 있는 기둥에 몸을 숨기고 청력을 끌어올렸다.

 

 

“…남자친구 마중 온 거니까 갈 길 가세요”

 

‘역시나.’

 

 

예상했던 상황이 그대로 전개되니 저 남자를 쓰레기장에 떨어뜨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서도, 오늘 수영이의 모습이 너무 예쁘니 그럴 수도 있다는 팔불출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수영이의 팔을 잡기 전까지는 말이다.

 

 

“튕기는 여자는 재미없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놀죠? 좋은 곳 아는데.”

 

 

‘저 개새X가.’

 

 

머릿속에서 뭔가 뚝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기둥 뒤에서 나와 그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수영이의 오른팔을 잡아당겨 수영이를 내 품에 안으면서, 약간의 격을 방출하며 남자를 노려봤다.

 

 

“제 여자친구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남자는 내 기세에 위축된 건지 좀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아..아닙니다. 제 지인인 줄 알고 착각했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착각은 무슨.’

 

 

나는 남자를 쭉 노려보다가 꿈 장악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남자는 제 발에 걸려 넘어졌고, 엎어진 남자를 누군가가 놓친, 짐이 가득 실린 카트가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만족한 나는 수영이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속이 다 시원하네, 괜찮아 수영ㅇ..”

 

 

그런데 수영이가 내 팔을 풀더니 나를 밀쳐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말없이 나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받으니 수영이가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게 느껴졌다.

 

 

“그 수영아 내가 연락을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라 핸드폰이 고장났었어…현지 통신 사정도 좋지 않은데다 시스템 불안정 지역이라서 스킬도 사용할 수가 없었고…”

 

 

“김독자.”

 

 

수영이가 싸늘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변명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보통 화가 난 게 아닌 거 같은데, 이걸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벌써부터 하늘이 아득해졌다. 그때 수영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나 얼마나 보고 싶었어?”

 

“어?”

 

 

수영이가 꺼낸 한마디는 어떤 분노의 말이 나올지 걱정하던 내 예상을 무너뜨렸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고개를 들자 표정이 그대로인, 하지만 눈가에는 습기가 찬 수영이가 보였다. 그제야 수영이의 감정이 분노나 원망이 아닌, 그리움이었다는걸 알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냐니…’

 

 

모든 게 보고 싶었다. 짧은 단발이, 고양이를 닮은 눈매와 눈물점이, 몸에서 나는 레몬 향이, 나에게 장난을 칠 때마다 짓는 익살스러운 표정이, 글을 쓸 때마다 집중하는 모습이, 아무리 작은 애정 표현에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수영이가, 무척 보고 싶었다. 나는 수영이에게 다가가 수영이의 앞머리를 조심히 걷어낸 다음, 허리를 숙여 이마에 키스했다. 내 입술을 통해서 수영이의 이마의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입술을 떼자 수영이는 멍한 표정으로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것의 몇 배는 더 보고 싶었는데, 일단 이 정도만.”

 

 

이마를 만지던 수영이가 내 말을 듣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할말을 찾던 나를 수영이가 와락 안았다.

 

 

“나도 보고 싶었어…정말로 보고 싶었다고 김독자 이 바보야…”

 

 

수영이의 눈물이 한쪽 어깨를 적셔왔지만, 나는 수영이를 마주 안은 채 묵묵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수영이에게 고백한 날, 다시는 그녀가 그리워하게 하지도, 슬퍼서 울게 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기다리고 울게 했으니, 정말 죄인도 이런 죄인이 없다.

 

 

“뭐야, 저거 구원의 마왕 아니야?”

 

“구마 품에 안긴 사람은 누구래?”

 

“아까 여자친구 어쩌고 하던데, 설마 구마 여자친구??”

 

“일단 찍어!”

 

‘큰일이다…!’

 

 

마음 가는 대로 일을 저지르긴 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무시한 모양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이쪽을 바라보며 수군거렸고,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부장님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독자씨 일단 튀어!”

 

“예?”

 

“상황 수습하는 거랑 짐 챙기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독자씬 수영 씨 데리고 튀라고!”

 

“하지만…”

 

 

그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행색을 보니 기자들인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기자들에게 잡히면 상황이 더 피곤해질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부장님!”

 

 

나는 품속에 있던 수영이를 안아 든 다음, 천사화와 마왕화를 발동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무시한 채 전속력으로 수직으로 상승해 공항 건물이 손가락 정도로 작아질 때쯤에야 멈춰서, 집을 향해 날았다.

 

 

“우리…큰일난거 아니야?”

 

 

수영이도 일이 터졌다는 걸 인지했는지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귀여워서, 다시 한번 수영이의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

 

 

“부장님이 잘 처리하신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별일 있겠어? 기껏해야 뉴스에 실리는 정도겠지.”

 

“그게 별일이잖아!”

 

“내가 내 여자친구 이마에 키스하고 안아준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별일이야?”

 

“윽…!”

 

 

수영이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순간적으로 입술에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잘못하면 수영이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그, 그보다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아?”

 

“당연하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잖아.”

 

“그래! 이 천재 미소녀 작가님이 널 위해 빼빼로를 준비했다 이거야!”

 

“기대되는데? 무슨 맛이야? 아몬드? 딸기? 화이트 쿠키?”

 

“후후, 놀라지나 마.”

 

 

저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 수영이를 보니 뭘 준비했을지 제법 궁금해졌다.

 

 

‘수영이 성격에 빼빼로를 직접 만들진 않았을 테고, 어디 유명한 제빵사나 성좌한테 주문제작했나?’

 

 

*

 

 

“짜잔, 이 천채 미소녀 작가님이 직접 만든 수제 빼빼로!”

 

“어…어?”

 

 

내가 정성껏 만든 빼빼로를 주자 김독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유명한 제빵사나 성좌한테 주문 제작할 줄 알았나 보지.

 

 

“반응이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도로 가져갈까?”

 

“아니! 엄청 마음에 들어!”

 

 

김독자는 내가 진짜로 뺏어갈까 봐 제 품 안에 빼빼로를 꼭 안았다. 그 모습이 마치 도토리를 뺏길까 경계하는 다람쥐 같아 제법 귀여웠다. 김독자가 리본을 풀고 봉지를 열어 빼빼로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어때?”

 

“맛있다…내가 먹어본 빼빼로 중에 이게 최고야.”

 

“그러엄~누가 만든 빼빼론데 당연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뻐하는 김독자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고마워, 수영아.”

 

“알면 됐어. 그런데, 내거는?”

 

“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빼빼로 만들었는데, 너도 나한테 뭐라도 줘야 할 거 아니야. 출장지에서 선물 안 사왔어?”

 

“사왔어! 그런데…공항에서 도망치느라 짐을 못 챙겨서…”

 

“그러니까 지금은 없는 거잖아. 그리고 짐에 선물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난 네 짐 보지도 못했는데.”

 

“아니 그게…”

 

 

나는 김독자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올 거 같았지만, 꾹 참았다. 공항에서 도망칠 때 김독자의 카트에 레몬이라고 써진 상자들이 쌓여있는 걸 봤지만, 연락이 안됐던 게 이유가 뭐였든 조금은 괘씸해서 골려주기 위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서러워하는 연기를 계속했다.

 

 

“연락도 안 하더니 이젠 선물도 안사오네…독자가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나 봐…”

 

“수…수영아…”

 

 

무릎 사이로 김독자가 무릎을 꿇는 게 보였다.

 

 

“내가 다 잘못했어. 뭐든지 할 게 제발 화 풀어 응?”

 

 

나는 그 소릴 듣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든지 한다고?”

 

“응? 응…”

 

“좋아~! 잠깐만 기다려.”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내 책상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이거 한 조각 꼭꼭 씹어먹어. 그게 벌이야.”

 

“이게 뭔데?”

 

“토마토 맛 초콜릿.”

 

“뭐??”

 

“어제 장 보러 갔는데 이거 보자마자 네 생각이 나지 뭐야~”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 같아 토마토 맛 초콜릿 하나를 몰래 사뒀는데 벌써 쓸 일이 있을 줄이야.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상자를 열고 초콜릿 한 조각을 드는 김독자를 보니 묵은 체증이 절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수영아…혹시 다른 건…”

 

“뭐든지 다 해준다더니 또 말 바꾸려 하네…역시 사랑이…”

 

“아니야 먹을게!”

 

 

내가 또다시 울려 하자 김독자는 초콜릿 조각을 통째로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그러자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김독자의 얼굴이 구겨졌고, 그걸 보며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야 너 지금 얼굴 진짜 오징어 같아!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해!”

 

“우웁…”

 

“어어 뱉으면 안 된다? 뱉으면 한 조각 더 먹일 거야?”

 

 

내가 토마토 초콜릿 한 조각을 손에 쥐고 흔들자 김독자는 진저리를 치더니 눈을 꼭 감고 입안의 초콜릿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리고는 입을 벌려 초콜릿을 아무것도 없는 입안을 보여줬다.

 

 

“잘 먹었네, 수고했어 김독자.”

 

 

그 말을 듣자마자 김독자는 아공간에서 2L짜리 생수 한 병을 꺼내 들이키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물을 마시는 김독자를 보니 내가 좀 심했나 싶고 미안해졌다.

 

 

“허억…허억…”

 

“벌칙 잘 받았으니까, 이제 상도 줄게.”

 

“아니 괜찮은데…”

 

“진짜 상이니까 잔말 말고 입이나 벌려.”

 

 

김독자는 미심쩍어해야 하면서도 입을 벌렸다. 나는 봉투에서 빼빼로 하나를 꺼내 김독자의 입에 물려주고, 반대쪽을 내가 물었다.

 

 

“증근에 그개 들리그나 흐며 지자 흔난다?(중간에 고개 돌리거나 하면 진짜 혼난다?)”

 

 

그 말과 함께, 나는 빼빼로를 조금씩 베어 물기 시작했다. 한입 한입씩 베어 물수록 나와 김독자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빼빼로의 길이가 반 정도 줄었을 때쯤, 김독자의 숨결이 느껴졌다. 거친 숨을 쉬는 김독자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져 있었고, 그걸 보며 내 얼굴 또한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끊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제까지 온 게 아까워 계속 전진했다. 그렇게 남은 빼빼로가 1cm 남짓해졌고, 우리 둘의 입술은 살짝만 움직여도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용기를 내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김독자가 양팔로 내 뒤통수를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우리 둘의 입술이 꾹 맞닿아지며 김독자의 혀가 빼빼로를 밀어내고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나 역시 혀로 김독자의 입안 구석구석을 훑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이 빼빼로 때문인지, 아니면 1달 만의 키스의 기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것과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김독자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란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푸하~”

 

숨이 막히기 시작한 내가 김독자의 가슴팍을 툭툭 치자 김독자가 양팔을 풀어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살짝 떼어냈다. 우리 둘의 입술을 연결한 갈색 실이 잠깐 늘어났다 이내 끊어졌다.

 

 

“내가 상 주는 거라니까…”

 

“열심히 빼빼로 준비하고 한 달 동안 기다려준 여자친구한테 주는 내 상이야. 그리고, 빼빼로는 아직 많이 남았잖아?”

 

 

김독자가 아직 빼빼로가 가득 들어있는 봉지를 가리켰고, 나는 웃으며 빼빼로를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엔 진짜로 내가 상 줄거니까 움직이면 안된다?”

 

“물론이지.”

 

 

김독자는 새 빼빼로를 물었고, 나 역시 반대쪽 끝을 물은 다음 빼빼로를 베어 물기 시작했다. 김독자의 익살스럽게 웃는 표정을 보건대, 아무래도 이 빼빼로 게임이 끝나려면 제법 오래 걸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