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게 무슨...!"


김독자가 뒤로 몸을 주춤했다.

그의 눈에는, 평소의 우리엘이 아니라 그 새하얀 피부에 시퍼렇고 시뻘건 상처들이 생긴 채 담요를 덮고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날개와 천사의 증표가 사라진 우리엘이 보였다.


"비키셈. 이설화를 불러야함."

"저 여기 있... 우리엘? 이게 무슨...!"


이설화 역시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얼른 데려가서 상태를 확인하도록."

"네, 네!"


이설화가 우리엘을 들것에 싣고 빠르게 병동으로 뛰어갔다.


"똑바로 설명하시죠.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내가 설명하겠음."


라파엘의 이야기가 이어져나가면 나갈수록, 김독자의 표정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마침내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김독자에게서 가공할 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진정하셈."

"지금 진정 할 수가...!"


그 순간, 라파엘의 전신에서 엄청난 격이 파공음을 내뿜으며 터져나왔다.


[지금 분노한 건 너뿐만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라파엘이 다시 일렁이는 격을 거두자, 그제서야 김독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3일 후,


우리엘이 깨어났다.


"...희원아?"

"우리엘..!"


우리엘의 옆에서 꾸벅대던 정희원이 그녀의 목소리에 벌떡 눈을 떴다.


"괜찮아요?"

"...응, 괜찮아."


우리엘이 퀭한 얼굴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설화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영양제 갈 시간... 우리엘? 깨어났어요?"

"...가브리엘은?"

"당신만 데려다놓고 다시 에덴으로 올라갔어요. 라파엘과 요피엘도 마찬가지고요."


이설화가 잠시 망설이는듯 손을 꼼지락댔다.


"...희원 씨,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아, 네. 얘기 끝나면 말해주세요."


정희원이 문을 열고 나간지 한참 후에야 이설화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임신하셨어요."

"...뭐?"


우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에도 이설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배 안에 있는 것은 마(魔) 그 자체에요. 그러니까..."

"그, 그만...! 그만해!"


우리엘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으으....흐윽...."


*  *  *


"구원의 마왕...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서기관님."


김독자가 악수를 건넨 메타트론의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연회장의 원탁에 앉았다. 라파엘은 "말걸지마셈."이라고 짜증내며 그 옆에 앉았고, 가브리엘 역시 싸늘한 눈빛으로 메타트론을 바라보며 원탁에 앉았다.


"...요피엘은?"

"어차피 협상도 못하는 깐깐한 년이라서 안 데려온거겠지. 우리엘 그 년 지키려고 그런것도 있을거고."


미카엘이 조소를 머금으며 김독자에게 질문했다.


"천사의 증표를 잃은 천사는 어때? 아직도 환하던?"


절대선의 성좌로서 군림하던 대천사, 우리엘. 그런 그녀가 천사의 증표를 잃었다는건 가장 빛나는 성좌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는 말과도 같다.


"시답잖은 말은 그만두셈. 우리가 여기로 온 이유는 알고 있음?"

"...성마대전. 때문이겠죠."

"그렇다. 성마대..."

"일으킬 수 없습니다."


메타트론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에 라파엘의 미간이 구겨졌다.


"내가 너한테 대항할 수 있는 자라는걸 잊었음?"

"당신은 내게 대항할 수 있지만 천사들을 이끌 자격은 없어요, 라파엘."


[설화, '옥좌에 모시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설화, '옥좌에 맞서는 자'가 이야기에 대항합니다!]


쿠구구구궁!


압도적인 격에, 김독자와 라파엘은 제외한, 심지어 미카엘마저 메타트론에게 무릎을 꿇었다.


[나는 하늘의 서기관, 메타트론입니다. 또한, 한 성운을 이끄는 수장입니다.]

"...그게 뭐 어쩌라는거임? 안물임."

"물어보지도 않은걸 혼자서 분위기 잡으면서 저러네."


메타트론은 그 둘의 말을 무시하며 진언을 보냈다.


[지금은 우리가 갈라질 때가 아닙니다. 다들 진정하세요.]


그리고 이내 메타트론이 격을 해제했고, 그제서야 천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난 네 편인데, 서기관?"

"미안합니다. 조금 흥분해서."

"이 미친 ■이...!"

"...미안합니다."


그 순간, 라파엘이 원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럼 우리엘은 뭐임? 그 짓을 당하고 천사의 증표까지 잃었는데, 우리는 그저 그걸 아스모데우스의 일탈이라고 보고 이해해야 함?"


라파엘의 원탁을 누르는 손바닥이 바들거렸다.

메타트론이 그 손바닥 위에 제 손바닥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성마대전은 시작되었습니다."


*  *  *


"..."


평소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우리엘이 죽은듯한 동태처럼 반 쯤 눈을 감고 퀭한 표정으로 한강 주변을 걷고 있었다.


"..."

"아, 이제야 찾았네요. 설마 여기로 왔을 줄이야."


그 순간, 우리엘의 주변이 마기로 뒤덮였다.


"...아스모데우스."

"오? 트라우마가 남았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난 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아."


우리엘의 눈동자가 불타오를듯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봤다. 그 모습을 보며 아스모데우스가 조소를 입에 잔뜩 머금었다.


"인간과 다름없는 몸을 가지고서 내 아이까지 밴 기분이 어떤가요? 지고하신 대천사님?"


우리엘이 말없이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봤다.

그 순간, 아스모데우스가 우리엘에게 쇄도하더니 그녀의 배를 어루만졌다.


"우리의 아이가 여기에 있다는 말이죠?"

"꺼져!"


우리엘이 기겁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며 제 배를 감싸안았다.


"...내 아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닥쳐라, 아스모데우스."


카가가가각!


아스모데우스의 손톱과 요피엘의 단검이 부딪혔다.


"그러게 내가 따라간다고 했잖나."

"...혼자 있고 싶었어."


아스모데우스가 그런 우리엘을 보며 혀를 핥짝였다.


"이 더러운...!"

[멈춰요.]


아스모데우스가 진언을 내뱉었다.


"내가 멈출 것..."

"성마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뭐?"


아스모데우스가 미소를 지었다.


"지옥의 왕, 루시퍼가 돌아왔거든요."

"...뭐?"


셀 수 없이 오래 전. 천사였으나, 오만에 빠져 샛별이 되어 추락한 악마.


"미카엘의 쌍둥이, 루시퍼 말입니다! 하하하!"


*  *  *


"...내 동생이..."

"동생을 지옥으로 내쫒은게 지면서 아련한 척 역겨우셈."

"닥쳐라, 라파엘."


메타트론이 그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엘이 없는 에덴과 루시퍼가 합류한 마계. 최악의 상황입니다."



루시퍼는 72마왕이 아니다. 하지만 타락한 천사들의 왕. 즉, 그 하나로만으로 1위였던 바알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마왕이다.


"이미 그 놈은 전에 내가 지옥으로 내쫒은적이 있다. 이번에도 가능해."

"그때의 에덴이라면 가능했겠지."


가브리엘이 중얼거렸다.


"지금의 에덴은 안돼. 천사들의 수준부터가 달라. 지옥에서 염화를 견디며 기어나온 타락천사들을 구름속에서 양들이나 돌보던 애들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 때 그들과 싸웠던 천사들을 다시 전쟁터로 부르면 된다."


가브리엘이 책상을 쾅 쳤다.


"그들은 사실상 에덴의 유일한 전투전력이야! 걔네들로 루시퍼를 상대하면 아가레스를 비롯한 72마왕은 어떻게 할건데?"

"...방법이 있셈."


라파엘이 김독자를 돌아봤다.


"...저요?"

"너에겐 초월좌들의 왕이 있지 않음?"


*  *  *


"요피엘. 물어볼게 있어."

"...뭐지?"


우리엘이 제 배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분명 요피엘은 그 아이를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덴으로 데려가 아이를 멸하려고 했던 것이고.


하지만 우리엘이 울듯한 눈을 하고 배를 쓰다듬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입에서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저주같아."


우리엘이 제 배를 꽉 움켜잡았다.


"내가 왜... 왜..."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여서 울음을 가슴 속으로 삼켰다.


-난 루시퍼가 싫어요. 그래서 만든겁니다. 천사의 몸으로 타락한 루시퍼에 맞설 생명체. 천사의 몸에서 태어난 악마. 완벽한 상위호환이죠.

-넌 마왕 아니었나?

-난 마왕이죠. 하지만 루시퍼는 72마왕이 아니에요. 그가 에덴을 몰아낸다면, 72마왕. 즉, 내 위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거죠.


에덴을 구하기 위해서. 

만약 요피엘 자신이 대천사가 아니었다면, 에덴의 대천사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우리엘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에덴을 위한 삶이 아니라 너를 위한 삶을 살라고.


하지만 그녀는 에덴의 대천사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루시퍼를 막기 위해서는..."

"그럼 내 인생은 뭐야..? 이 아이는 뭐고?"

"그건..."

"그래, 내 인생 따위. 에덴을 위해 바칠 수 있어. 근데 얘는 뭔데? 싸우기 위해서 태어나는건 너무하잖아. 그건 아니잖아..."


우리엘이 울먹였다.


"너무 힘들어..."


이내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잔혹한 악마 사냥꾼이,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작고 약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