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윽!"
한 손을 붕대로 칭칭 감고 한쪽 눈에 적안을 빛내는 소년이 날아와서 지휘대로 꽂혔다.
"...너 뭐하는거야?"
"그, 그게...! 내가 똥이 좀 마려워서..."
"그래서 제 힘을 못 썼다?"
한수영이 흑염룡을 노려보자, 흑염룡이 꼬리를 내렸다.
"그... 개연성이 없어서... 난 악의 성좌라서 선의 편에 설 개연성이 없다."
사실 그가 그나마 전장에 참여할 개연성을 얻게 된 것도 우리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덕택이었다.
"절친이 다쳤는데 그 원숭이는 도와주러도 안 오고."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자신은 중립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콧방귀를 뀝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얼른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기를 기원합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살기를 내비칩니다.]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한수영이 이내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시끄러워!"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시무룩해합니다.]
"..."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천사 둘과 개연성을 지원받지 못한다고 툴툴대는 흑염룡 하나가 합류했음에도, 전투는 그저 버티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빛이 하늘에서 뿜어져 나왔다.
"저, 저게 무슨..?"
"아가레스 님!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이게 대체..."
순간 아가레스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메시아.
모든 것의 구원자.
"설마...!"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사그라들었다.
메시아는 승천했다. 그리고 그가 승천하여 다다른 존재는, 악마이자, 동시에 구원자인 존재이기에.
'그렇다면 저건 대체...?'
구름 사이로 퍼져나오는 환한 빛 사이에서 그보다 더 찬란한 빛을 내는 존재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나는 메타트론.]
그리고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전장에 빛이 들어섰다.
[하나님의 대리인이자,]
한번의 일격에 마왕 3명이 쓸려나갔다.
[하늘의 서기관.]
그의 등 뒤로 셀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그를 지나쳐 악마들에게로 쇄도했다.
"이게 무슨...! 분명 저 군대는 타락천사들에게...!"
아가레스가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메타트론이 일순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미카엘은 버림패였어."
* * *
"크윽..."
주변에 모든 천사들이 날개가 꺾인 채로 죽어있었다.
미카엘은 벽에 기대 누운채로 가만히 생각했다.
어떻게 승리설화를 가지고 있는 그의 군단이, 이렇게 쉽게 패할 수가 있는지.
"처음부터 나는 버림패였군."
그리고 그는 잠시간의 회상에 잠겼다.
.
.
.
셀 수 없이 오래 전, 거의 모든 전력을 잃은 루시퍼와의 마지막 전쟁.
"산달폰.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오만에 빠진건 내가 아니라 나를 얕본 너희 둘이야."
산달폰. 인간이었던 메타트론의 남매이자, 메타트론과 함께 천사가 된 존재. 그리고 미카엘과 함께 루시퍼에 맞선 천사.
"그래, 확실히..."
그 산달폰이 루시퍼의 장창에 심장을 꿰뚫린 채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사, 산달폰...!"
"미카엘... 지금이야..."
산달폰이 그의 심장에 박힌 장창을 꽉 잡았다.
순간 루시퍼의 얼굴에 당황이 어렸다.
"무슨 힘이...!"
"루시퍼...!"
미카엘이 자신의 장창을 들고 루시퍼에게 쇄도하자, 루시퍼는 자신의 창을 내버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럼에도 미카엘은 루시퍼에게 낙인을 찍어냈다.
"끄아아아아악!"
루시퍼의 몸이 녹아내리며 땅으로 흡수되었다.
"반드시 돌아온다..! 돌아와서 너희를 멸(滅)할 것이다! 에덴을 멸할 것이다! 모든 것을 멸할...!"
마침내 마지막 조각마저 땅으로 흡수되었을 때, 그 잔혹하고 찬란한 창인 미카엘이 무릎을 꿇었다.
그 무릎은 산달폰에 대한 것이었다.
가장 위대한 영웅을 향한 경례이자, 가장 사랑하던 전우를 위한 사과.
"산달...폰..."
"...오빠한테 너무 슬퍼하지는 말라고 전..해줘..."
그 말을 한 후, 산달폰은 픽 웃음을 짓더니 머리를 떨궜다.
"산달폰...! 제발... 제발!"
* * *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메타트론이 거의 처음으로 노호성을 질렀다.
"...미안하다."
"인간이라 그런거겠지! 인간이니까 희생하게 만든거겠지! 너희는 지고하신 대천사로써 태어났으니까!"
메타트론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돌려내... 돌려내라고!"
그 말을 한 직후, 메타트론은 과로에 시달린 스트레스까지 더해 3일간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을 때, 메타트론은 그 일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
.
.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루시퍼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 그를 보고 있었다.
"...내가 졌다."
"형님."
루시퍼가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형님도 알다시피 나는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 형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면..."
루시퍼가 미카엘의 귀에 제 얼굴을 가져다댔다.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미카엘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신이라..."
"당신을 배신한 메타트론. 그리고 당신을 적대하는 모든 것들을,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겁니다! 형님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우리가 합친다면...!"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말고 죽여라."
미카엘이 루시퍼의 말을 끊었다.
"내가 너의 손을 잡는다면, 나는 내 전우를 욕보이는 꼴이 된다."
"감히..."
"처음부터 악어의 눈물이었잖아?"
미카엘이 피식 웃음을 짓자, 그 모습을 본 루시퍼의 안광이 붉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장창이, 그의 형을 수차례 찔러댔다.
마침내 약간의 빛이 그들을 비췄을 때, 미카엘의 형상은 뭉개져 알아볼 수 없는 꼴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