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고생했다. 설마 현타와서 챈뒤지고 있던 와중이라면...

급 전개 주의, 억지 감동, 시나리오 내용 거의 없음. 수능 본 지 꽤 돼서 내용 이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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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졸린 티 하나 없는 이지혜가 밝게 인사하고선 밖으로 나섰다. 어젯밤에 새벽까지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음에도 충분한 근력과 체력 레벨이 이지혜를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제자를 보던 유중혁은 6시임에도 이지혜를 현관까지 바래다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밖에서 준비중인 운전수 순정강철과 심판관, 옆에서 눈을 비비는 의선을 제외하면 보이지 않았다.
“하암, 좋은 모습이에요. 오늘 시험도 잘 보면 좋으련만.”
“...지금 이지혜 나이가 몇이지.”
“육체 나이는 아직 청춘이잖아요. 그냥 봐줘요.“
유료 시나리오 이후 재정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교육계를 정립하자마자 공표한 첫 번째는, 수능의 원상복구였다. 수도권이 박살이 났기에 유능한 교수와 지식인들 대다수 전부 사라졌음에도 이리저리 준비하게 되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살아남은 생존자 중 본래 수험생이었던 자들은 휴식은커녕 다시 공부의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른이 된 이지혜도 끌려가는 것이다. 언젠간 대학에 가야 할 테니.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미리 언제 일어나있었는지 몰라도 유상아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안타까워요. 제가 다니던 대학도 사라졌는걸요.“
”저도요. 그러고 보니 제가 다니던 의대엔 좀 질 낮은 사람들이 있었지요. 다 죽었겠죠?“
”제 쪽과 똑같네요.“
어딘가 살벌한 대화에 유중혁의 입은 닫히게 된다. 그들은 프로게이머인 유중혁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정부도 너무하죠. 수도권은 시나리오가 사라졌던 지역이잖아요. 이 시국에, 굳이 그곳에서 수능을 봐야 할까요.“
”글쎄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이런 거겠죠. 이능력자 규제보다 수능 시험 발표날짜가 더 빨리 나오니..“
”이만 나가겠다.“
두 여성의 말을 초를 친 유중혁은 그대로 나가 이현성을 보았다. 단단히 무장한 이현성과 정희원이 이지혜의 가방을 트렁크에 실어주고 있었다.
”아! 유중혁 씨도 나오셨습니까?“
”어라? 댁도 가시게?“
가볍게 그들의 말을 흘리고 자동차의 조수석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미리 올라타 있는 이지혜의 중얼거림을 듣는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
”영화 보네요...?”
“지혜야?”
그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지혜는 키득거리며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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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고등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수험표를 보고 이제 자리 잡았다. 뉴스에서나 보던 수능은 바깥에 부모와 헤어지는 학생들이 즐비했었지만, 지금은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전국에 시행될 이 시험에는 자격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기 증명만 하면 되기에 이지혜 역시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만 간단히 한 뒤 학교로 들어왔다. 익숙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 잠깐 한 교실을 들린 후 자신의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일단 자리에 앉고 책을 폈다. 만약 친구가 온다면 그냥 보낼 생각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이젠 없을뿐더러, 그 시국이니 간격을 벌려야 했으니까.
화장실은 주기적으로 들렸다. 원래 시험 감독관 따라온다는데 잘못 들은 것인지 자유롭게 오고 다닐 수 있었다. 문이 고장난 것 같아 부수기도 한 해프닝 역시 존재했다.
-시험 감독관께서는….-
국어 시간의 종이 울렸다. 종이를 받고 OMR 카드에 낙서하듯이 이름과 번호를 칠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책상을 보자 빽빽한 글자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일단 읽고 밑줄을 쳐가며 시험지가 구겨질 것 같이 종이를 넘겼다. 주변에 사락사락거리는 소리는 자신이 제일 컸지만, 안간힘을 다해 다른 ‘학생’들에게도 거슬리지 않도록 했다. 중간부터는 본문에서 한자를 볼 때마다 머릿속이 必死則生幸生則死(필사즉생행생즉사)밖에 떠오르지 않아 잠깐 어질어질할 때도 있었다.
일단 ㄱ, ㄴ, ㄷ 문제는 거의 ㄱ, ㄴ 으로 찍었고, 화자의 심정은 칼로 물베듯 빠르게 읽어가면서 답을 찾아냈다. 중간중간 머릿속에 중독성 넘치는 비트와 함께 글씨가 읽혔지만, 간신히 이겨내고 45문항을 다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게 되네?
남은 시간이 11분 정도 남았기에 다시 읽고 답을 고쳤다. 딱 봐도 2번인데 3번으로 체크했었네...
다음은 수학 시간.
난 문과라고 시잇팔,
일단 유상아 언니도 이 과목은 가르치기 포기했다. 최소한의 공부만 한 뒤 다른 과목을 스파르타 했었지. 그래도 앞면의 4문제는 확실히 다 풀어야 7등급은 간신히 넘길 터이니 자신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의대생과 명문대생이 모여 이지혜를 박박 긁어댔다. 한 달간은 배웠는데 쪽팔리진 말아야지.)
문이과 통합이니 7등급도 그리 쪽팔리지 않는다. (문이과 통합 아니었던 필자는 웁니다.)
앞장의 문제를 거침없이 썰어버리던 이지혜는 잠깐 손을 멈췄다. 형태가 심상치 않다. 이건 마치 일곱 머리가 달리고 꼬리가 세 개인 무시무시한 거대 해수룡을 닮아있었다. ∫∫∫∫∫ dx
넘겼다.
모르면 넘겨야지. 다른 문제 다 찍, 아니 풀고 도전해야겠다. 이렇게 논리적인 생각을 못 하면 수학 자체를 못 푸니까. 앞장을 다 풀었기에 약간 으쓱해진 이지혜는 ‘몇 년 쉬었다가 했는데 이 정도라니, 난 천재야‘ 하며 모르는 문제들을 계속 넘겼다,
30번째 문항에 도달했다….
식사 시간.
얼른 교탁에 가서 도시락과 영단어집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책상에 가운데에 영단어집을 두고 그 위에 따끈한 도시락을 올려두고 먹었다. 속을 자극하지 않도록 전복죽과 달걀, 잘게 썰린 김치로 구성된 도시락을 먹다 보니 영어 시간이 다가왔다.
...얼마 안 먹었는데?
그리 말하는 이지혜의 책상 위에는 엿과 초콜릿 봉지로 가득했다.
일 년 전 다이어트 도중 한 성좌가 보낸 메시지가 떠오른다.
-도대체 얼마나 처먹는 게야.
-돼지 같은 넘~~
세 번째 종이 치자 이지혜는 인생 종치지 않게 정신을 차렸다. 영어는 절대평가이니 앞에 망했던 점수를 그나마 만회할 수 있다. 뱃속에 잔뜩 넣은 달달한 당 성분이 머릿속을 찌르는 느낌이다.
일단 스피커에서 몇 시를 알린다는 말이 나오자 영어 앞장을 넘겨 13번을 미리 봐놓았다. 그냥 모르겠지. 그래도 보았다. 허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두 세줄 간신히 읽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깨물다가 원어민의 영어 발음을 듣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외웠는데도 반을 못 알아듣겠다.
나머지는 맨 윗줄과 마지막 줄만 비교해서 비슷한 것끼리 체크해 두었다. 수학 시간에 잠을 자 둔 덕인지 잠이 올 겨를이…. 겨를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식곤증으로 마지막 면의 문제 5개는 그냥 찍어서 냈다.
드디어 네 번째까지 와버렸다. 마음 놓아라.
진짜 끝났다.
그래도 장군님과 다른 성좌들에게 받은 게 있으니까 풀긴 했다. 슬프게도 자신의 배후성에 대한 문제가 나오지 않았... 기대치 않게 9번에 나와서 텐션이 올랐다. 늘 나오던 ’한글의 창시자‘의 문제도 정확히 맞힌 듯했다.
이후 사회탐구를 편 뒤 사회문제를 풀었다. 그동안 인권 유린과 사회 붕괴를 몸소 겪고 세계의 역사 위인들과 직접 다툰 이지혜였지만, 이론에 대해서는 쥐뿔도 몰랐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자신이었다면 어땠을지, 또 그 위인들과 검을 나누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지 상상하며 열심히 숫자를 체크해 나갔다.
“선악 구별은 행위에 적용될 뿐 성품에 적용될 수 없다라...“
이거네. 나중에 보니 답은 그 아래였다.
이후 5교시까지 치루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밖에 나와 초콜릿을 씹었다. 그녀의 가슴 한구석이 여전히 비어있다. 어째서인지 대업을 이루었음에도 뭔가 실패할 기분이다.
이내 눈을 비비고 학교 주변을 보았다. 자신의 고등학교를 똑 닮은 모습에 어째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오랜만에 보는 정경에 이지혜의 입안은 어느샌가 씁쓸함으로 가득 찼다.
그때 교문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혜야!“
”누나!”
“지혜 언니!“
오후에 공필두 아저씨와 볼일이 있는 이현성 아저씨가 아닌, 어린이 두 명과 심판관이란 시끌벅적한 조합이 도착했다. 얼른 눈가를 훔친 이지혜는 팔을 벌려 그들을 환영했다.
기분 좋은 소란은 차에 올라탄 후에도 계속되었다. 긴장감이 쫙 풀린 이지혜에게 정희원이 넌지리 물었다.
”어땠어?“
”힘들었죠. 전 수능 처음 치러보거든요.“
”그래?”
정희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도.”
”네?“
“아니야.”
뭐지. 하지만 혜-는 의문은 가볍게 넘겨 버리고 익살스러운 두 꼬마와 미뤄둔 게임을 시작했다. 뿅, 뿅뿅. 리어뷰 미러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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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집에 들렀다가. 마르크네 요리집에서 내렸다. 오늘만 손님을 받지 않고 김독자 컴퍼니에게 대여해준 그 안에서 유중혁이 바삐 손을 놀리고, 장하영이 음식을 날랐다.
식탁에서는 겁도 없이 무림계의 전설들에서 자신의 수험생활을 이야기하는 한명오와 방벽를 새로 새우고 돌아온 공필두와 이현성도 있었다. 거인의 어깨에서 향주를 연거푸 들이키는 키리오스와 한명오의 허풍을 장원 급제로 착각하고 마는 파천검성의 순박한 모습에 어째서인지 웃음이 지어졌다.
가게에 들어서자 커피를 마시던 유상아가 웃으면서 옆에 달라붙었다.
“힘들었지? 수고했어.”
“언니도 저런 사람들 불러오느라 힘내셨네요.“
”잘 아는구나.“
둘은 깔깔 웃으며 다시 바깥으로 향했다. 이지혜가 오기 전에 술 한 잔씩 해서 시끄러운 것도 있었고, 두 번째 고기가 덜 구워졌기 때문이다.
시험에 대해 서로의 소감을 나누던 중, 지혜는 슬쩍 주제를 돌려 유상아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고 보니 수영 언니도 올 줄 알았는데요. 온다면서요.“
뾰로통한 얼굴로 아쉬움을 잔뜩 표현하는 그 모습에 유상아는 잠깐 웃었다.
”안 그래도 병문안 좀 다녀오면서 말해놨어. 작가님 설득이 좀 길어지긴 해버렸네. 이제 슬슬 올 시간은 됐네. 다들 일이 있어도 온 것처럼.“
”네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멀리 레몬 맛 사탕을 씹으며 오는 성좌의 등장에 다른 김독자 컴퍼니 멤버들도 나와 반겼다. 이지혜 역시 그중 한 명이 될 뻔했다.
“잠깐만. 지혜야.“
유상아의 등 뒤에서 돌아가는 거대한 굴레가 돌아간다. 동시에 연꽃에 앉은 수천 팔을 가진 거대한 석상이 이지혜의 앞을 막았다.
”가채점표, 줘야지?”
칫.
이래서 눈치 빠른 언니는 싫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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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부를 묻고 약간의 실랑이를 하며 파티가 점차 무르익었다. 한명오가 어깨를 토닥여 주기도 했고, 그 유중혁 역시 음식을 만들기를 잠시 멈추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또한 어쩌다 대사부 파천검성에게 한 잔 받았다가 유상아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축하 파티가 끝난 후 이지혜는 조용히 밖에 나왔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짐은 없었다. 아침때와 다르게 가방은 방에 남기고 더 두꺼운 패딩과 스마트폰만 챙겼다.
-저도 사장님 병문안 다녀올게요.
단체방에 메시지를 남기고 그녀는 먼 옛날에 부서진 도로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 시나리오가 일어나기 더 전의 모습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수능을 쳤던 고등학교 건물이었다. 학생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다 되레 모두 죽어버린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이지혜가 수능을 본 그 건물이었다.
“...“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지하철을 탔던 네 명, 아니 세 명 모두 날 걱정해 주었다. 그들은 내가 친구를 목졸라 죽이는 걸 본 사람들이니까. 걱정되면 장소를 바꿔 주겠노라 말해주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러기 싫었다. [태풍여자고등학교]란 이름이 지워진 그곳을 천천히 배회하다가 어둠으로 가라앉은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렸다. 그리고 학교의 정면을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금이 간, 아직도 병원에 있는 누군가가 남긴 스마트폰을 켜고 저장해둔 영상을 조용히 틀었다.
-백병전을... 준비하라!-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자신의 친구, 그리고 그녀와 함께 떠나버린 자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성좌와 조용히 영화를 감상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친구를 죽인 겁쟁이는 위인들의 눈길 아래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방주를 멈췄던 그때가 떠올랐다. 동시에 다른 시간선에서 살아있을 친구 역시 회상한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라면 내가 비겁하게 살아남으려 고생한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동시에, 영화 역시 끝을 맺는다.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이라고 고생한 것을 알까잉.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