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너를 구한 것은 내 운명이었을까.」


아직도 라파엘은 자신이 왜 그날 그녀를 구했는지에 대해 종종 의문을 가지고는 한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그녀를 구한 날, 그리고 그녀와 제대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된 날.

성마대전때의 기억을, 라파엘은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회상했다.





[제대로 함정에 걸려들었군, 아스모데우스.]


[이제 네 녀석도 끝이다.]


아스모데우스.

선의 진영에서 보나 악의 진영에서 보나 미친 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같은 편인 마왕들까지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라면 가리지 않고 죽여댔으니까.


"그냥 승격전을 한 것뿐인데 왜들 그리 놀라시는지..."


지금 그가 최상위 서열의 마왕들에게 걸려들어 화신체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스모데우스는 굉장히 서열을 빠르게 올리고 있는 중인 마왕 중 한 명이었다.

자신 진영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잠재적으로는 위협이 될만한 존재를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이 아스모데우스를 제거하려 드는 것은 어찌 보면 언젠가는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다.


그가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다면 그녀는 그날 성마대전에서 제거된 채로 전쟁의 끝을 맞았을 것이다.

아마 마왕들 사이에서의 입지도 약해진 채, 지금처럼 선 진영의 천사들의 속을 긁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그 순간 그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걸까.」


요충지이긴 했지만 선 진영의 입장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공략할 필요가 있는 국지전은 아니었다.

그 마왕들을 공격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그의 결정이었다.


전투는 짧지 않았다.

고된 전투 탓에 마왕들도 제대로 정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가 운용한 설화들은 마왕들을 제압하지는 못해도 내쫓을 정도의 위력은 충분히 되었다.

아직까지 도망치지 못한 마왕은 하나뿐이었다.

아스모데우스.


한 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선 진영의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이 아니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음... 라파엘?"


이미 마왕들에게 꽤나 당했는지 어느 한군데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기척은 충분히 느꼈는지 자신이 다가오자 그녀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님까지 죽이러 온건 아니니까 그렇게 경계 안 해도 되심.]


"절... 구해주신 건가요?"


[일부러 구하려고 그런 건 아님. 그저 마왕들을 상대하려고 그런 것뿐임.]


"큭...... 푸핫!"


자신의 말을 듣더니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심? 드디어 미친 거임?]


"상식적으로 고위급 마왕이 넷인데 그걸 그냥 '상대하려고' 그런 거라고요? 조금만 솔직해지죠 라파엘."


자신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행위의 동기를 그녀는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저한테 관심이 있는 거죠?"


관심.

물론 이성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은 있었다.

언제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녀석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어떨 때는 그렇게 자유분방한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에덴]의 온갖 규율에 매여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원칙대로 처리해야만 할 때는 차라리 자신이 마왕이었다면 어땠을까를 그려보고는 했다.


[맘대로 생각하셈.]


"푸훗... 네, 그러도록 하죠. 아무튼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약간은 붉어져 있음을 라파엘은 눈치채지 못했다.


[알면 됐음.]


"아무튼."


슬슬 정신을 차린듯 그녀도 슬슬 진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전쟁이 끝나게 된다면... 그때 한번 제 성으로 초대하고 싶네요. 거절하지는 않겠죠?]


[...... 알겠음.]


[그보다 빨리 도망가기나 하셈. 나는 선 진영 소속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너를 이렇게 봐주고만 있을 수는 없으심.]




"저기 라파엘님이 아스모데우스를 쓰러뜨렸다!"


"어서 잡아!"


어느새 지원군이 오고 있었다.

그는 아스모데우스를 한참 빗나가도록 공격 하나를 날렸고 아스모데우스는 이해했다는 듯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둘의 제대로 된 첫 만남은 끝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마대전은 끝이 났다.







그 후 약속대로 아스모데우스는 라파엘을 자신의 성으로 초대했다.


'...... 가도 될까.'


아스모데우스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은 둘째치고 자신이 그곳에 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선과 악의 대립이 또다시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그는 그녀의 초대에 순순히 응했다.


'그냥 악의 편에 선 자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하며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그럼에도, 초대한 사람이 아스모데우스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걸 라파엘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스모데우스의 성으로 갔지만 라파엘이 생각했던 나쁜 상황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스모데우스를 만나는 게 그에게는 즐겁고, 편했다.

아스모데우스의 성으로 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어떤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지가 기대되었다.


방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둘 사이의 기류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라파엘.]


[우리가 사귀게 된다면 어떨 거 같나요?]


이렇게 훅 들어올 때만 아니면 꽤나 즐거웠다.


그녀는 생각보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사람, 아니 마왕이었다.

생각만큼 미친 것도 아니었고, 때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고민을 가지기도 할 정도의 평범한 존재.


때로는 적극적이기도 하지만, 막상 그 후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더 매력적인 그런 존재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와 한번 만나보는 것도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기 시작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야.'


'게다가 나는 선이고 걔는 악이잖아. 이건 불가능 한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를 억제해왔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아스모데우스가 묻고 있었다.

선과 악의 사랑은 불가능할 거 같냐고.


[크흠...]


[님이 무슨 생각으로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힘들 것 같음.]


[설령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는 선이고... 너는 악... 임......]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에게서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 감정의 파편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스모데우스는 다시 물었다.


[그런 이유만으로 사랑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오히려 그쪽은 좀 아쉬워하는 거 같은데......]


[질문을 좀 다르게 해보죠.]

[라파엘, 당신만 괜찮다면 저랑 만나볼 생각 있나요?]



라파엘의 표정이 굳었다.

그동안 아스모데우스가 은근슬쩍 들이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아마도 지금 그는 고뇌 중일 것이다.

그녀와 친한 친구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을지라도 연인이 되어볼 것인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친구로서의 네가 편했음.]


[내가 봐왔던 너랑도 다른 모습이었고, 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비록 너는 마왕이지만 정말 매력 있다고 생각했음.]


[너랑 앞으로도 계속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았는데, 갑작스럽게 이런 고백을 받으니까 좀 당황스러움.]


[며칠 동안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되겠음?]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그 고요함을 깬 것은 아스모데우스의 웃음이었다.


[하하하! 라파엘, 생각보다 꽤 진지한 답변이네요?]


[그렇지만 꽤 미안하게 됐어요.]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해본 소리였거든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스모데우스는 자신을 향한 격을 느꼈다.

이곳에서 함부로 선의 기운이 담긴 격을 방출했다가는 다른 마왕들이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하기 전에 라파엘은 소리쳤다.



[너는 그 말이 고작 장난이었음?]


[아무리 우리 둘이 친해졌다고 해도 그렇지, 마음으로 장난치는 건 정도가 심하잖아!] 


[잠깐이지만 나는 진지하게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평정심을 잃었는지 그가 습관처럼 유지해온 말투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화]를 발동한 그녀가 순식간에 그를 제압했다.

애초에 마왕의 공간인 이곳에서, 라파엘이 아스모데우스를 일대일로 이길 수는 없었다.


[여기서 선의 설화를 함부로 발동하면 위험해요, 라파엘.] 


[정상적인 말투도 쓸 줄 아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그리고 제 장난은... 그렇게 느껴졌다면 정말 미안... 하네요.]



[그래서 어쩌라는 거임, 그게 다임?]


그 말을 끝으로 한참 동안이나 뜸을 들이며 말을 할듯 말듯 하는 아스모데우스가 답답했는지 라파엘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라파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아스모데우스는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소리쳤다.



[두려웠어요...!]



[제 마음을 피할까 봐...]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 말이 제게는 거절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장난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반응을 보니 이제 알거 같네요.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걸...]


[이번엔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다시 물을게요. 라파엘, 나랑 만나보지 않을래요?]


한참을 돌아서 듣게 된 그녀의 진심.

나만 느껴오던 이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라파엘은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그녀의 관계가, 이제는 연인의 그것이 되었다는 것에 기뻤고, 감격스러웠다.


그녀를 끌어안은 채 나눈 첫 키스는 그래서 더욱 달콤했을 것이다.


[설화, '선악의 사랑'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써놓고 보니 그냥 이렇게 단편으로 끝내도 괜찮을것 같네.

하지만 원래 장편으로 쓰던거 잘라서 올린거라 뒤가 훨씬 많을 거 같다.

그냥 프롤로그 같은 느낌이라 봐주셈.

이번 거 쓰면서 전독시 다시 읽어보니 아스라파도 좀 괜찮은거 같기도 하고...?


잘봤다면 개추와 댓글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