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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보자…계란 샀고, 소시지 샀고, 양파 샀고. 살건 다 산 거 같네.”

 

 

메모장에서 장보기 리스트를 체크하던 김독자는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때 작고 고사리 같은 손 하나가 김독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쁘아~나 쪼꼬렛 사저.”

 

 

카트에 앉아 있던 서아가 손가락으로 한 진열대를 가리켰다. 진열대에는 알록달록한 봉지에 담긴 사탕과 초콜릿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서아야 쪼꼬렛은 몸에 안좋고 맛도 없는거야. 저거 말고, 엄마가 서아 좋아하는 고기 사온다고 했으니까 내일 고기 먹자.”

 

“거지말! 은성이 어빠랑 은혜 언니가 고기보다 쪼꼬렛이 더 마싰대애! 나도 사져!!”

 

 

김독자를 떼를 쓰는 서아를 보며 무척 난감해했다. 김독자 부부는 3살까지 서아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안 먹이겠다는 한수영의 뜻에 따라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단것이 맛없고 해로운 것이라고 서아에게 말하고, 자신들도 집에 있을때 서아 앞에서는 단걸 먹지 않고 서랍이나 선반에 숨겨놓고 몰래 먹어 왔었다. 그 노력들이 거품이 될 위기에 당면한 김독자가 뜻을 서아의 소원을 들어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서아가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김독자를 쳐다봤다.

 

 

“아쁘아~하나만 사져~”

 

‘읏…’

 

“안, 돼.”

 

 

서아의 회심의 애교공격에 김독자가 넘어가려는 순간, 어느새 온 한수영이 양손 가득 들고 있던 고기들을 카트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아야, 엄마가 3살까지는 저런거 먹으면 안된다고 했지?”

 

“하지만…”

 

“우리 서아 4살 되면 서아가 싫다고 해도 잔뜩 사줄게. 자, 약속.”

 

“으응…약쏙…”

 

 

서아는 한수영의 손에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진 못한 듯 진열대가 눈에 안보이는 순간까지 진열대를 바라보았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 한수영은 출판사와 미팅이 있어 나가고 집에는 김독자와 서아만이 있었다. 김독자가 빨래를 하는 동안 서아는 가지고 놀-김독자와 한수영에게는 뒷수습으로 골머리 썩게 만드는-것을 찾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다 문이 살짝 열려있던 한수영의 방에 침입했다. 화장품이 담긴 반짝거리는 병, 화려한 색의 옷 등 서아의 관심을 끌 것이 많았지만 서아가 가장 눈독 들인건 한수영이 평소에 만지지 못하게 하던 노트북이었다. 하지만 팔을 쭉 뻗어보고 있는 힘껏 점프를 해봐도 노트북은 서아의 손에 닿지 않았다.

 

 

“안다아…”

 

 

노트북이 손에 잡히지 않자 서아가 무척 실망하고 있을 때 서아의 눈에 살짝 열린 책상 서랍이 보였다. 서아는 그걸 보고 서랍들을 열어 계단처럼 만들어 책상에 올라갈 생각을 해냈다.

 

 

“나는 천재야!”

 

 

서아는 자화자찬을 하며 맨 아래 서랍을 끝까지 열었다. 그 위의 서랍의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서아는 방금 연 서랍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수영이 서아가 못보도록 숨겨두었던 초콜릿들이 서랍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서아는 그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어마 아빠가 네짤 되때까지 머찌 말라구 해는데…하지만 언니 어빠는 마시따구 했구…”

 

 

부모님의 말을 들을 것이냐, 이은성과 이은혜의 말을 들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서아는 결국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하나만 머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인 ‘한번만’, ‘하나만’이었다. 독자가 오는지 문을 한번 바라보고 확인한 서아는 초콜릿을 입안에 넣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마시따!”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리면서 느껴지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 지금까지 먹었던 과일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달콤함에 서아는 완전히 빠져버렸다. 동시에 이런걸 못먹게 한 부모님에 대한 분노도 느꼈다. 분노한 서아는 서랍안에 있는 초콜릿들의 포장을 모두 뜯어 마구 집어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수영이 감쳐두었던 초콜릿은 점점 사라져갔다.

 

 

*

 

 

“아구구, 다 끝났다. 우리 따님은 또 얼마나 신나게 놀았으려나.”

 

 

빨래를 마친 김독자는 허리를 펴면서 집안의 상황을 상상했다. 서아가 어질러 놓는 광경들은 볼때마다 눈앞이 깜깜했지만, 귀여운 딸이 즐거워 한다면야 김독자는 수백번, 수천번이고 치울 수 있었다. 김독자는 각오를 다지며 거실로 나갔다. 하지만 김독자가 본 것은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멀쩡한 거실뿐이었고, 서아는 보이지도 안았다.

 

 

“서아야~우리 딸 어딨어?

 

 

김독자는 부엌, 화장실, 서재 등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서아를 찾았지만 서아는 보이지 않았다. 김독자는 마지막으로 한수영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한수영의 방 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 있나?”

 

 

김독자는 서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려다 문틈새로 보이는, 바닥에 잔뜩 떨어진 초콜릿 봉지와 입주변에 초콜릿을 잔뜩 묻힌 채 초콜릿을 먹는 서아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망했다.’

 

 

서아가 초콜릿을 먹은 순간 거짓말은 전부 들통났고, 그동안 꾹 참아왔다가 한번에 많은 양의 초콜릿을 먹은 아이를 설득하기란 시나리오에서 묵시룡을 혼자서 때려잡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꿈 장악력을 사용해서 초콜릿 먹은 일을 없애야 하나?’

 

 

김독자가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며 비유가 나타났다.

 

 

“아빠!”

 

“비유야?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쟤 때문에 왔지.”

 

 

비유가 문 틈 새로 보이는 서아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내가 초콜릿 무작정 못먹게 하는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잖아.”

 

“수영이가 너무 완고해서…”

 

“하여튼 아빠는 엄마 말이라면 아주 깜빡 죽지? 아무튼, 쟤는 내가 해결해볼게. 아빠는 잠깐 비켜서 있어. 그리고…”

 

 

김독자에게 뭔가를 지시한 비유는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김독자가 온 줄 알고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휙돌린 서아는 비유인걸 보고 안심했다.

 

 

“비유 언니!”

 

“뭐 먹어, 내 동생?”

 

“쪼꼬렛! 어마 아빠는 거지말쟁이야! 쪼꼬렛 맛어고 모메 안조타면서 이러케 순겨두고 혼자 머꼬! 어마아빠 미워!”

 

“그래, 엄마랑 아빠가 참 나빴네.”

 

‘아빠 가슴에 구멍 좀 나시겠다-실제로 문 옆에 서있던 김독자는 반쯤 무너져 내렸다.-.’

 

“언니도 하나 머거!”

 

 

서아는 초콜릿 하나를 비유에게 건네주었다. 

 

 

“어이구 내 동생 착하네. 근데, 엄마아빠가 거짓말만 한 건 아냐.”

 

“응?”

 

“이것 좀 볼래?”

 

 

비유는 크게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안을 가리켰다. 비유가 가리킨 곳에는 있어야 할 어금니들이 없고 잇몸만이 있었다.

 

 

“이빠리 없어!”

 

“언니는 이쪽 이빨들이 없어. 썩어버렸거든.”

 

“써…거?”

 

“응. 사실 언니도 옛날에 초콜릿을 매일 산처럼 가득 쌓아놓고 먹을만큼 초콜릿을 좋아했다? 그런데 초콜릿을 많이 먹고 양치도 안했더니, 무시무시한 세균들이 언니 이빨을 다 갉아먹었어.”

 

 

히끅!

 

 

서아는 비유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딸꾹질을 하며 반쯤 먹던 초콜릿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데 우리 서아도 초콜릿을 엄청 많이 먹었네? 아아, 이러다 세균이 와서 서아 이빨을 갉아먹을지도 몰라.”

 

 

비유는 그 말을 하며 뒷꿈치를 들어 바닥을 몇번 쳤다. 그러자 한손에 삼지창을 든, 누군가와 키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세균이 방안으로 뛰어들듯이 들어왔다. 

 

 

“크앙! 나는 무시무시한 세균이다!”

 

“으악 세균이다!”

 

“으아아아앙!”

 

 

세균을 본 비유는 과장되게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고, 서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나는 아이들의 이빨을 좋아하지, 특히 초콜릿을 많이 먹은 이빨을 더욱 좋아하고. 거기 너! 보아하니 초콜릿을 많이 먹은 모양인데!”

 

“아, 아니야!”

 

“아니긴, 네 입주변에 초콜릿이 잔뜩 묻어있는데 말이야. 네 이빨을 파먹어야겠다!”

 

“으아아앙! 오지마! 오지마! 아빠아!! 살려져!!!”

 

 

서아는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넘어졌다. 서아가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세균 때문에 공포에 떨떨 있을 때, 현관문이 열렸다.

 

 

“나 왔어.”

 

“엄마아아아!!!”

 

 

서아는 한수영의 목소리를 듣자 젖먹던 힘을 다해 일어나 방밖으로 뛰쳐나갔다.

 

 

“서아야? 우리 딸 왜 울어?”

 

“엄므아아아아!!!”

 

 

서아는 한수영의 한쪽 다리를 움켜잡고 엉엉 울었다.

 

 

“내가 잘모해써 어마! 다시는 쪼코렛 안머꼬 치카치카도 잘할게에!!!”

 

“얘가 왜 이래??”

 

“어…수영아 왔어?”

 

 

영문모를 소리를 하며 서럽게 우는 서아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한수영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김독자와 똑같은 키의 세균이 서있었다.

 

 

“김독자? 넌 또 꼴이 그게 뭐야?”

 

“나도 있어 엄마.”

 

“비유?”

 

 

갑자기 나타난 비유와 세균 인형탈을 입은 김독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가에 초콜릿을 묻힌 채 우는 서아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해 결론을 내린 한수영은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내가 니들땜에 못산다…”

 

 

*

 

 

 

 

“이번엔 진짜 약속 지켜야 해?”

 

 

서아를 다독인 한수영은 하루에 초콜릿은 작은 거 두개만 먹고 먹은 후에는 바로 양치질을 한다는 약속을 했다.

 

 

“약쏙!”

 

 

서아는 서아는 한수영의 손에 새끼 손가락을 걸고 이번에는 엄지 도장까지 꾸욱 눌렀다. 한수영은 무릎을 꿇고 서아를 꼭 안았다.

 

 

“착하다 우리 서아.”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김독자가 들어왔다.

 

 

“언제 왔어 수영아?”

 

“아쁘아!”

 

 

서아가 김독자에게 달려가자 김독자는 서아를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아쁘아 세균 좀 혼내줘!”

 

“세균? 세균이 어딨는데?”

 

“쩌어기….어? 어디가찌?”

 

 

서아가 가리킨 곳에는 세균은 사라지고 비유만이 서있었다.

 

 

“언니 세균 어디가써?”

 

“너 엄마랑 약속하는 동안 도망가더라.”

 

“서아가 초콜릿 좀만 먹고 양치도 잘한다고 약속하니까 무서워서 도망갔나봐.”

 

“아빠가 그걸 어떠케 아라?”

 

“아빠는 다 알지. 자, 아빠랑도 약속.”

 

“약쏙!”

 

 

김독자와 서아도 새끼 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꾹 찍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김독자 가족은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양치까지 마친 후 서아를 먼저 재웠다.

 

 

“잘자 서아야.”

 

“우리 딸 좋은 꿈 꿔.”

 

“꿈에 세균 나오면 말해, 언니가 혼내줄게.”

 

“히히…안녕히 주무세요…”

 

 

서아가 잠드는 모습을 지켜본 세사람은 방에서 나왔다.

 

 

“그럼 나도 내방 들어갈게. 엄마랑 아빠도 빨랑 쉬어.”

 

“오늘 수고했어 비유야.”

 

“다음에 도토리묵으로 한상 차려줄게. 나 말고 얘가.”

 

 

대답 대신 V자를 한번 한 비유는 그대로 자기 방에 들어갔다. 침실에 들어간 김독자와 한수영도 침대에 털썩 누웠다.

 

 

“서야 걔, 내 서랍에 있던 초콜릿 다 먹었더라. 그 조그만 배에 그 많은게 다 들어가나?”

 

“우리가 그동안 너무 못먹게 했으니까. 한번 먹었을 때 그 반동이 꽤 컸을거야.”

 

“난 그게 서아한테 좋을 줄 알았어…”

 

 

김독자가 우울해하는 한수영의 빰을 어루만졌다.

 

 

“애한테 초콜릿이 좋은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서아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잖아. 기운내 수영아.”

 

“응…”

 

 

김독자의 위로에도 한수영의 얼굴엔 자책하는 기색이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김독자가 몸을 일으키며 아공간을 열었다.

 

 

“사탕 먹을래 수영아? 기분전환엔 단게 최고야.”

 

“응? 어, 그래.”

 

 

한수영이 김독자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김독자의 손 어디에도 사탕은 없었다.

 

 

“뭐야 사탕은?”

 

“여기.”

 

 

김독자가 앙 다문 입술을 떼어내자 이에 물려있는 레몬사탕이 드러났다. 

 

 

“이렇게 먹는 사탕이 제일 맛있잖아?

 

“참나, 하여튼 김독자 음흉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래서 싫어?”

 

“싫기는,”

 

 

한수영이 미소 지으며 양손으로 김독자의 뺨을 감쌌다.

 

 

“오늘 밤 내내 먹을거니까, 각오해.”

 

 

점점 가까워지는 한수영을 보며 김독자 역시 작게 미소지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어지자, 두개의 혀가 서로 상대의 입안에서 놀리며 사탕을 천천히 녹였다. 새콤달콤한 레몬맛을 김독자와 한수영은 한참동안 음미했다.

 

 

 

*

 

 

 

비유 이빨은 잠깐 안보이도록 환영 씌웠다는 설정임. 그나저나 산타에 이어 세균맨까지, 김독자의 다음 분장은 과연 무엇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