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튀는 전장 한 가운데,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검날이 그녀를 공격하려 했지만, 검날이 재가 되어 휫날렸다.
"...제발, 제발!"
공격하려던 남성이 절규하며 소리쳤다.
여인이 손을 까딱이자, 남성의 목이 비틀어졌다.
-꾸드득
그녀는 마녀, 한수영이였다.
.
마녀는 본래 신계에 살던 천사들이 타락하여 생긴 것이다.
탐욕을 가지거나, 천사의 금기 사항을 행해 권능을 빼앗기고 지상에 내쫓긴 이들.
그 들 중에는 간혹, 권능조차 타락하여, 그것을 들고 지상에 내려오는 자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한수영이다.
왜 내쫓겼는지 한수영은 기억하지 못한다.
억겁의 세월 속, 어딘가 파묻혀 버렸을 기억이니.
그녀의 이름이 한수영인지 확실치도 않다.
그저 아주 흐릿한 기억일 뿐이니.
따스한 목소리로 저를 불러주는 아주 흐릿한 기억이 매일 밤 꿈속에 나온다.
"...아이야, 너는 답을 아느냐?"
한수영이 바닥의 시체들은 밟고 일어서며 말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어디선가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수영의 검은 망토가 시체들을 쓸고 지나갔다.
"..."
너무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구나.
너무나도 많은 죄악을 지고 살아왔구나.
왜 이리 되었을까.
해답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문제조차 모르는 문제의 해답을 찾기위해 한수영은 억겁의 세월속을 헤메다녔다.
끝에는, 피와 죽음 뿐이였다.
신은 구원자라지.
"하..."
누구든지. 살아있다면. 구원의 손길을 뻗어준다지.
"...신이 있다면..."
나를, 구원해주세요.
한수영이 원망어린 눈길로 하늘을 처다보았다.
해답이 없는 문제를 좇고 싶지 않았다.
'마'는 절대적인 '마'만이 죽일 수 있다.
절대적인 힘.
한수영의 왼손에 보랏빛 마기가 맴돌았다.
마치 불 같이 보이는 그것을 한수영이 손 끝에서 만졌다.
-스르륵
불은 뱀의 형상을 띄고, 한수영의 몸을 옭아 매었다.
-쉬익
뱀이 한수영의 몸에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이내 불타올랐다.
한수영의 몸이 마기에 타올랐다.
의미 없는 세월 속, 그녀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였을까.
.....
모르겠다.
이젠 다. 모르겠다.
생각이 끝에 다다랐을 때, 모든 것이 새하얘졌다.
더럽혀지지 않은 순백의 색깔.
..아름답구나.
오랜만에 보는 흰 빛을 한수영이 넋 놓고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이토록 황홀한 것인가.
[아이야.]
어디선가 새하얀 남성이 튀어나왔다.
흰 망토로 뒤덮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구원을 바라느냐?]
흰 손이 한수영을 향해 뻗어졌다.
손이 한수영의 뺨에 닿았다.
한수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수영의 입에서는 악귀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예, 바랍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동시에, 한수영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
푸른 초원이였다.
풀잎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잔뜩 심어진 버드나무에 수양버들이 보였다.
"수영아, 일어나. 또 늦잠이냐?"
소년이 어딘가 익숙한 웃음을 지어보냈다.
씩 웃는 입꼬리가 보였다.
"한수영?"
그곳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공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