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마을이었다수도에서도 먼데다 사람도 몇 없는겨우 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그 곳은 왕의 눈에서 벗어난아니 왕이 보지도 않는 곳이기에 왕의 평민 복지도 받지 못했다그러나 그만큼 평화롭고 조용했다그런 마을에 사는 평민들은 다른 마을과는 다른 유대감을 키우며 살아갔다.

 흉년이 들어 콩 하나 먹기 힘든 날에도 작은 쌀 한 톨을 쪼개 먹을 정도로 서로를 위했다오늘 본 사람 내일도 보고다음 주에도 보고내년에도 볼 터기에 서로 돕고 살자는 뜻이었다그런 마을에 큰 파란이 일은 건 불과 하루 전이었다.

 

 겨울이었다진눈깨비가 얼굴에 닿았기에 벌써 이번 년이 다 갔다는 걸 느낄 때 즈음바깥이 웬일로 시끄러워 집 밖으로 나갔다그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자주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다 나와서 한 곳을 보고 있는 광경이었다나는 순전히 궁금증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던 곳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나도 모르게 따라 고개를 숙였다차가운 바닥에 손이 닿았기에 손이 아렸지만 어째선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꽤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여기유상아라 하는 계집아이가 있느냐?”

 

 목소리가 낮고 제법 컸기에 필히 양반 정도는 될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런 것과 별개로 머리를 들 생각은 할 수 없었다상아란 이름도 알지 못하고목소리부터 양반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아니양반 수준이 아니었다풍문으로만 들었던 왕의 목소리보다도 또렷하고쟁쟁 울리는 게 분명했다.

 

 “아무도 모르느냐?”

 

 슬쩍 옆을 쳐다보자 저번에 김장을 도와드렸던 김 씨 아주머니와 남아있던 쌀을 나눠주셨던 오 씨 아저씨까지 머리를 내린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어째서인지 나 뿐 아니라 전부 고개를 들 생각은커녕 숨조차 잊을 정도인 것 같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그가 맨 앞에 있는 사람을 지목했다.

 

 “너에게 특별히 발언권을 줄 터이니 말해보아라상아라는 계집아이를 아느냐?”

 “모릅니다나리혹여나 잘못 오신 게 아닌지······.”

 

 목소리로 판단하기로는 아마도 촌장의 아들인 명오인 것 같았다촌장의 손에서 크며 오라버니처럼 따랐었는데 언젠가부터 멀어졌던 그였다애시당초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독자란 계집을 찾던 이가 아차 싶었는지 말했다.

 

 “이 곳에서는 이름이 다른가······. 그렇다면 내 말과 닮은 계집아이가 있느냐?”

 

 그가 생각을 하는 듯 말을 잠깐 끊었다가 헛기침 몇 번을 하고 말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햇빛에 비추면 가을 볏단처럼 빛나며 눈동자는 옥처럼 빛나면서 피부는 새하얀 계집아이는 아느냐눈 밑에 점도 있었지키는 한······ 그래한 아름 정도 길이겠구나.”

 

 명오가 생각을 해보는 듯 대답을 늦추다가 기어이 입을 열었다.

 

 “······분명히 그런 아이가 저희 마을에 있습니다그러나 나리그 아이는 천애 고아인데다 저희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아이인만큼 나리와는 전혀 연이 없을 터입니다.”

 

 그가 말하는 이의 이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천애 고아인데다 그의 아버지촌장이 키운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그러니 더 확신할 수 있었다지금 이 마을을 찾아온 이는 잘못 찾아온 게 분명했다그러나 그는 명오의 설명에도 의지를 꺾지 않고 말했다.

 

 “일단 데려와 보아라판단은 내가 하도록 하겠다.”

 

 그의 말에 명오가 조금 망설였다가 결심히 섰는지 나를 불렀다.

 

 “······목화야.”

 

 목화나를 주웠던 촌장이 붙인 이름이었다글을 쓰던 도중 산책을 나왔다가 목화와 함께 놓여져 있어 붙인 이름이라 했던가대충 지은 감이 있지만 예뻐서 나쁘지만은 않았다.

 순간무언가가 나를 당기듯 일어서졌다그러나 이러나 저러나 일어선 이상 뒤로 무를 수는 없었다.

 

 “오라버니.”

 

 그때서야 이 마을을 찾은 이방인을 볼 수 있었다허리춤까지 내려오는 흑발밝다고는 하지 못하는그렇다고 태양에 탄 건 아닌 듯 투명한 피부거기다 결코 작은 편이 아닌 명오가 크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훤칠한 키내가 살면서 본 남자중 가장 미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미남이었다하지만 양반이라 하기에는 차림새가 영 깔끔하지 못했다거기서 명오도 망설였겠지만 풍문으로는 평민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는 관직이 있다고 하니 아마 그런 쪽인 것 같았다물론 차림새와 별개로 귀티는 자르르 흘렀다.

 그가 내 몸을 한 번 훑듯 쳐다보지도 않고 싱긋 웃고는 다가왔다.

 터벅터벅뛰지도 않는데도 몇 초 만에 내 앞에 선 그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상아······아니 이젠 목화겠군목화야나랑 가자꾸나.”

 

 하고 뭔가 끊어진 기분이었다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상황 속 그가 어깨에 올려둔 손을 갑자기 더 깊게 찔러넣었다그러더니 오른손으로 내 뒷통수를 받치고 왼손으로 내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아플 정도로 강하고 단단하게 안았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했기에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다화륵 하고 가슴 어딘가에 불이 붙은 듯 뜨거웠다진눈깨비가 내려앉더라도이 추운 날씨에도 식을 줄 몰랐다.

 나를 안은 그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그러고는 그가 입을 살짝 열었다.

 

 “드디어······ 드디어 만났어······.”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코에 닿은 그의 흑발에서 깨끗한 햇빛의 향기가 났다그가 나를 껴안자마자 당황했지만 미처 밀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리고 그의 제안을 생각했다원래 같았다면 고민도 않고 거절했겠지만 어째서인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입을 열었다.

 

 “······■■.”

 

 *

 

 꿈에서 깼다무슨 꿈이었더라그래남자가 나왔어······ 난 무엇이었지······? 아니난 무엇이지······ 한수······ 그래한수영이었어내 이름은 한수영스물에 대학교 신입생이었지어제는······ 환영회라면서 잔뜩 먹어서 취했고.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작작 좀 쳐 먹을 걸······ 하면서 후회했지만 또 숙취 때문에 그 생각은 사라졌다.

 주변을 보니 내 원룸은 맞는 것 같았다새끼······ 깨워서 물 먹이고 좀 가지.

 속으로 욕을 하며 냉장고를 열자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젠장나는 냉장고 문 닫는 것도 잊은 채 바로 화장실로 가 변기를 부여잡았다.

 

 “우욱!”

 

 그렇게 몇 분동안 속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게워내고 나서야 화장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냈다얼굴에 닿는 찬 공기와 손에 닿은 응결된 물기에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틈도 없이 나는 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한 모금두 모금 마시자 다시 위가 지랄을 해댔다아직도 비울 게 남았나보다.

 

*

 

 변기와의 사투를 끝내고 씻은 후 옷을 대충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어제 날 데려다 주기로 한 놈과 마주쳤다그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바로 나온 말은······.

 

 “야 이 개······!”

 

 내가 이렇게까지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어제 먹은 술의 절반아니 80%는 그의 탓이었는데 물 한 모금 먹이지 않은 채 침대에 던져두고 갔기 때문이었다.

 내 욕을 들은 그도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숙취는 다 깼냐?”

 “니 얼굴 보니까 다시 올라오기는 한다 야.”

 “말 한 번 예쁘게 하네.”

 “그치나도 알아.”

 

 나와 같이 가는 이 놈의 이름은 김독자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어쩌다보니 대학교까지 같은 곳에 붙어서 우정은 이어졌다키가 막 큰 편은 아니지만예쁘게 빛나는 흑발과 잘난 얼굴운동으로 단련 된 몸 때문에 반한 적도 있긴 했다요즘은 그냥······ 그래그냥 친구다덧붙이자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다이러나 저러나 좋은 친구는 맞다물론 가끔 머저리 같기는 하지만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역시 저 흑발은 예술······ 어라저 머리색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울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가 어색한 듯 더듬더듬 말했다.

 

 “왜 그리 쳐다봐내 얼굴에 뭐 묻었냐아니면 혹시 고등학교 때처럼······!”

 “아니야이미 다 끝난 얘기를······.”

 “흐음그건 모르는 일 아닐까?”

 

 그가 얄궂게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를 보니 또 이미 사그라들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안 돼심장아 멈춰우리는 그냥 친구야라면서 속으로 떠들어댔지만 사실은 그에게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솔직히 말해서 저 외모면 누가 안 반할까길 가던 남자들도 그의 외모에는 반할 거라 자신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외모는 매력적이고 예술적이었다그러나 내가 내 감정을 통제하는 이유는 간단했다또 그에게 고백했다가 그의 그 곤란한 듯한 표정을 다시 볼 각오가 없어서였다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감정을 통제해서 어떻게든 친구관계를 잇자는 게 내 각오였다.

 내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를 노려보자 그가 더욱 짓궂게 웃어댔다그 웃음은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해 등짝에 손바닥 자국을 남기기 전까지 이어졌다.

 

*

 

 “이야······ 니네는 술 쳐먹은 다음 날에도 염장질이냐?”

 

 강의실 구석에 나란히 앉아있자 그녀가 와서 말을 걸었다.

 

 “사귀는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친구라고 친구.”

 “수영아다 그렇게 말하면서 할 건 다 한댔어그것보다 속은 괜찮냐?”
 “아니······! ······ 아직 조금 울렁거린다뭐 숙취해소제라도 사주게?”

 “그러게 그만 좀 마시지 그랬어.”

 

 나와 친한 듯 말하는 이 년의 이름은 정희원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애인데 내 절친이라 김독자를 좋아했던 것도 그녀에게 말했었고나와 이어주려고 노력도 했던 친구였다요즘도 포기 안 한 것 같지만.

 희원이 내 옆에 털썩 하고 앉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 그냥 휴학할까수영아······.”

 “왜 또무슨 일인데?”

 

 그녀가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이 패턴어디서 많이 봤는데.

 

 “선배한테 고백받았는데······ 전혀 운명이 안 느껴져.”

 

 젠장느낌이 틀린 적이 없어.

 희원은 중학교 때부터 예쁜 얼굴에 털털한 성격 덕에 인기가 많았다그것도 그냥 예쁜 게 아니라 길거리 캐스팅을 수십 번 받을 정도로 예쁜 얼굴이었기에 정말 일 주일에 한 번씩 고백이 들어오던 날도 있었다그러나 그녀에게 남친이 생긴 적은 없었다왜냐면그 인기가 많은 그녀가 하필하필······ 운명 맹신론자였다물론 나도 예전에는 운명을 믿었다그리고 내 옆에 앉은 저 새끼 때문에 깨졌지만.

 아무튼 그녀의 외모가 아까울 정도로 엄청난 운명맹신은 스물인 그녀를 모태솔로로 남게 만들었다그녀가 한숨을 쉬며 아직 데워지지도 않았을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내 운명은 언제 찾아올까······.”

 “그냥 독신으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진짜······?”

 “진짜.”

 

 내가 무슨 농담을 하든 그녀는 안 들을 생각인 듯 한숨만 푹푹 쉬어댔다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앉은 독자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점심 같이 먹자.”

 “사주냐?”

 “오늘 알바비 들어왔으니 이 누나가 쏜다.”

 “이야울 수영이 많이 컸네옛날에는 김밥 하나 사주기도 힘들어 했는데.”

 “그 얘기 더 꺼내지 말랬지?”

 “.”

 

 티격태격대며 얘기를 나누고 있자 금방 강의 시간이 된 듯 교수가 들어오며 크게 말했다.

 

 “잡담 그만들 하고!”

 

 *

 

 “오늘 알바 가냐?”

 “오늘까지 빠져점장님도 놀다 오랬으니까.”

 “그 점장님은 뭐 맨날 놀다가 오라 하냐?”

 “나야 좋지 뭐.”

 

 모든 강의를 끝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평소처럼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 기시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햇빛에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에서 이상한 실루엣이 겹쳐졌다긴 머리에 지금 그와 비슷한 키의 실루엣이었다물론 3년 동안 봐온 머리카락이라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한울의 머리카락을 뚫어져라 보았더니 또 그가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뭐 묻었냐아침부터 왜 이리 쳐다봐?”

 “아냐아무것도.”

 

 기시감 중 대부분은 착각이라고 하니 이번 것도 착각인 것 같았다아니착각이 분명했다내가 그를 처음 본 것도 고등학교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후 일 주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같이 다녔으니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을 보았을 일은 없다그러니 아마 이것 또한 그냥 요즘 피곤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하긴그럴만했다아르바이트도 철야 근무고어제는 뒤지게 술을 먹어댔으니 더욱 그럴 법하다.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든 후 한울을 다시 보았다역시 착각이 맞는 것 같다이번에는 이상한 실루엣이 겹쳐보이는 등 하는 현상조차 없다다시 싱긋 웃고는 다시 발걸음을 뗐다.

 

 *

 

 “점장님 진짜 나빠······ 어떻게 사람을 오라 가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밥 먹으려고 어플로 찾고 있다가 연락을 받았다오늘까지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동생 놈이 도망쳐서 안타깝게도 일하러 와줘야한다고 했다원래는 일하는 게 맞겠지만아무튼 밥 먹고 씻은 후 빨리 자버리려 했는데 철야를 불태워야 한다니하지만 이미 닥친 일이니 후회는 그만하자.

 유니폼인 조끼를 입고 머리를 묶자마자 누가 들어와 급하게 카운터로 나갔다.

 

 “던힐 하나.”

 

 듣기 좋게 낮은 목소리로 굉장히 예의없는 말투를 뱉은 그를 나는 무심코 힐끗 바라보았다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어둡지만 투명한 피부웬만한 아이돌보다도 잘 생겼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인 얼굴에서 든 강한 기시감이 몸을 삼켜버렸다.

 

 “··················.”

 “······?”

 “아무것도 아니에요사람을 착각했네요.”

 “.”

 

 아무 일 없었던 듯 얼른 담배를 꺼내어 결제를 끝냈다그 후 그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나가자마자 접수대에 기대어 상념에 빠졌다.

 유중혁그게 누구지기억에도 없는데······. 역시 기억 안 난다애초에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 중 유 씨인 사람도 몇 없는 데다 그 몇 명중 유중혁을 이름으로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그렇다면 누구일까아까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어느정도 감이 잡힌 것 같기도 했다.

 그냥 TV에서 닮은 사람을 봤나보다전에 봤던 영화 등장인물 이름이 유정우였기에 그냥 그거랑 햇갈린 것 같다생각해보니 닮은 것도 같았다.




대충 초기 설명

목화는 한수영과도 유상아와도 연관성이 없는 그냥 붙인 이름이다

현대 AU지만 사극 AU도 섞였으며  본래 전독시 속 캐릭터성들이 많이 뭉개질 예정

언젠가 또 생각나면 다시 들고 올게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