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나이는 고 2정도)
어두운 밤.
주택가의 남아있는 불빛이 드문드문 보일 정도로,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새벽.
일찍 끝난 마감으로 오랜만에 꿀같은 잠에 빠져들었던 한수영은, 곧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표정을 찌푸렸다.
"씨발.. 이 밤에 누가 전화질이야.. 원고 다 냈는데.. 좆같은편집자새끼"
휴대폰을 들고 그 화면에 비친 이름을 확인한 순간, 한수영은 잠에 취해 반쯤 감겼던 눈이 떠졌다.
"... 김독자?"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혹시 몰라 헛기침까지 몇 번 한 한수영은 그제서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가 작게 훌쩍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한수영은 다급하게 물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 한수영."
이윽고, 울음 때문에 잠겨버린 김독자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긴장한 한수영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나 있잖아. 죽였어."
"... 어?"
"죽였어. 송민우.. 내가 죽여버렸어.. 어떡하지?"
순간 한수영은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는 있었다.
송민우가 김독자를 끔찍하게 괴롭힌다는 것을.
또한 그것을 보다못해 김독자와 최대한 같이 다니며 송민우가 손을 뻗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한수영이었다.
".. 송민우?"
"응.."
그런 놈이 결국엔 어찌 또 김독자를 만나 괴롭히다, 결국 그에게 죽어버렸다는 모양이다.
인과응보였다.
한 인간을 그렇게 몰아세우니, 물지 않고선 못 배겼던 것이겠지.
"너 지금 어디야."
"신고하게?"
"신고를 내가 왜 해. 차라리 잘 뒈졌지 뭐."
태연자약하게 그렇게 얘기하는 한수영이었지만, 속마음은 조마조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유순하고 착해빠졌던 김독자가 사람을 죽였다니.
한수영은 아직까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 나 여기.."
새벽 5시.
누군가 일어나 자신들을 보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그런 시각에 김독자를 불러내 또 괴롭혔던 송민우는, 도대체 어떠한 부류의 인간이었던 걸까.
한수영은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쓴 후, 패딩을 걸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
그렇게 나가려다, 김독자의 옷에 피가 묻었으리라 생각하고는 또 다른 패딩 하나를 집어들고 한수영은 집을 나섰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푹 숙인 채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한 남자의 신형이 보였다.
".. 김독자."
"수영아.."
자신이 죽였음에도, 김독자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또한 군데군데 피가 묻은 옷. 패딩도 뭣도 걸치지 않은, 흰 와이셔츠 뿐이었다.
누가 볼까 두리번거리며 한수영은 일단 패딩을 내밀었다.
"일단 이거 입어. 피가 눈에 띄면 안 되니까."
".. 으응.."
"목격자는?"
"없어.."
"시체는 어디에 묻었어."
"산에.. 중턱쯤에다가."
한수영은 목격자가 없다는 말에 잠시 안심했다.
적어도 송민우를 죽인 후 시체를 유기하기까지 1시간 정도는 걸렸을 테니, 실질적인 범행은 새벽 3~4시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겠지.
극소수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시간까지 나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후우. 뭘로 죽였어."
"벽돌.."
"그건 어떻게 했어."
"시체랑 같이 땅에.."
도구는 벽돌.
게다가 김독자의 바지 이곳저곳에 묻은 석회 가루를 보면, 아마 송민우는 공사장에서 죽었던 듯 하다.
애초에 땅도 맨손으로 팔 수는 없었을 테니.
"땅은 뭘로 팠어."
"거기 있던 삽으로.."
"그거 맨손으로 잡았어?"
"아니.. 송민우 옷으로.."
그러자 안심이라는 듯 한수영은 잠시 늘어졌다.
김독자는 여전히 뭐가 그리 무서운지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문득 바라보며, 한수영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모르겠어."
김독자는 상당한 패닉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제아무리 밉고 증오하는 상대라도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그리 쉽게 헤어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한수영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 일단 사건 덮히기까지 기다려 보자. 그냥 조용히 미제 사건으로 해결되길 바라야지."
"으응.. 근데 수영아.. 만약 안 되면..?"
"만약 일찍 안 끝날 것 같으면, 똑같은 수법으로 여자를 또 죽여."
자신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한수영은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김독자보다 자신이 더 나쁜 것이 아닐까 하며.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자기최면을 걸어가며, 한수영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수사망이 넓어지겠지. 넌 그 안에서 가련한 학교 폭력 피해자만 연기하면 돼."
".. 무서워."
"알아. 당연히 무섭겠지."
"집에도 못 들어가겠어. 지금 들어가면 경찰들이 있을 것 같아.."
한수영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어 그것들을 지워내고선 한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 따라와.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자."
".. 어? 아.. 으응.."
아무 말도 없이 앞서 걷는 한수영과, 그런 그녀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김독자.
두 명의 사이에선 묘한 기류가 흘렀다.
슬슬 지금쯤, 격앙되었던 정신 또한 고요하게 가라앉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냉정하게 파악할 때가 되었을 것이다.
'난 방조죄. 독자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형량은 살아도 5년은 족히 살겠네.
김독자의 말을 들어보니 정당 방위도 성립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집에 도착한 한수영은 일단 김독자를 집에 들이고, 커텐이란 커텐은 전부 쳤다.
".. 일단 그냥 덮히길 기도해야 돼. 송민우 그 새끼 어차피 좀 노는 새끼라 용의자도 많을 거야."
김독자를 욕실로 보내 놓고, 한수영은 잠시 고민하다 묵혀 뒀던 중고 노트북을 꺼내왔다.
아이피도 VPN으로 연결하고, 토르 브라우저를 실행한 채 딥 웹에 접속했다.
여러 소름끼치는 사진들을 넘고 넘어 한수영은 '살인자를 위한 강좌'라는 것을 클릭했고, 이윽고 검은 화면이 펼쳐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 안녕? 오늘도 보러 와 줘서 고마워요! 오늘은 제 1강, 혈흔 지우기부터 시작할 거에요!"
발랄하게 말하는 갈색 롱 헤어의 여자가 그 곳에 있었다.
밝은 갈색 생머리, 오똑 선 콧대. 마치 갈색 토파즈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갈색 눈.
"일단은, 먼저 예를 보여드리자면.. 자 봐요! 여기 피로 얼룩진 방이 있어요. 이걸 물로 닦아내면, 눈에는 안 보이죠. 하지만.."
그녀는 방 전체에 루미뇰 시액을 바르고선 불을 끈 후, 라이트로 불을 비췄다.
그러자 형광색의 얼룩이 이곳 저곳에 묻어났다.
물로 닦을 생각을 하고 있던 한수영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루미뇰 시액을 뿌리면 보인답니다! 그럼 경찰이 오면 들킬텐데, 저는 어떡하죠? 하는 분들은 걱정 마시라! 표백제로 닦아내면 괜찮아요."
그렇게 표백제를 들고 오는 여자의 전체적인 신장과 몸은, 자신이 알던 그 어떤 이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아닐 거야. 애써 부정하며 머리를 가로젓는 한수영.
"그리고 이렇게 닦아내다.. 아야.."
다쳤다며 자신의 손을 카메라에 가까이 들이대는 그녀의 손에는, 한수영이 장난삼아 볼펜으로 그린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같은 학교 같은 반, 자신과 가장 친한 여학생인 유상아.
그녀가 딥 웹에서 살인자들을 위한 강좌라는 것을 찍고 있었다.
"..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