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https://arca.live/b/reader/44822838



갓 노을이 진 시간. 집 앞에선 두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김독자.”


“? 왜?”


“전쟁 말이야…이길 것 같냐?”


“…나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조금 무섭네.”


“너 답지 않게 왜그러냐.”


“그러게 궁상이나 떨고, X같은 기분 풀 겸 바람이나 쐴레?”


“좋지”


김독자는 얋은 옷을 걸치고선 먼저 나간 한수영의 뒤를 따랐다.
달빛이 스며든 밤바람이 시렸다.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풀잎이 싱그러웠다.


“달이 밝네.”


“그러게.”


“수영아, 전쟁 끝나면, 우리 어디 좀 놀러갈까?”


“좋다. 어디 갈거야?”


“생각해보자.”


둘은 천천히 주변을 돌았다. 조금 걷다보니 반딧불이가 이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예쁘다…”


한수영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 말에 김독자가 대답하였다.


“그러니까, 예쁘네”


그것은 반딧불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


“으으으 추워…”


얋은 옷을 걸치고 나갔기에 약간의 오한이 느껴졌던 한수영은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야식 먹을래?”


“좋지!”


마침 배고프던 참이랴, 한수영은 김독자가 조금 구워준 고기를 밥과 함께 먹었다.


“맛있네.”


“유중혁 그놈이 요리는 잘한다니까?”


“그건 인정.”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 밥그릇은 비워졌다.


“내가 할게.”


“넌 요리 했잖아 내가 할게.”


서로 약간의 말다툼을 하다 참지 못한 한수영이 김독자가 들고있던 그릇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김독자는 그릇을 높게 들었는다. 그러자 한수영의 몸이 김독자의 몸과 부딪혔고, 서로는 같이 쓰러졌다.


“저기 수영…아?”


졸지에 덮치는 듯한 모양새가 되자 서로는 당황하면서도 약간 부끄러워하였다.


“신성한 주방에서 뭐하는 짓거리냐”


만약 유중혁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


“야 야 중혁아, 아니라니까?”


“닥쳐라, 전부 까발려버리기 전에.”


유중혁이 들이닥치자 마자 한수영은 마치 빛과 같은 속도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결국 모든 변명은 김독자가 하게 되었다.


“나한테 왜 변명을 하려는 건가.”


“그거야…”


니가 지금 의미 모를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이 소문이 퍼져나가면 일단 우리 둘은 고개를 들 수 없을 테고. 정희원과 이지혜의 놀림감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것만은 안된다. 그것만은…


“말…안할거지?”


“내가 말을 하든 안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 있지 없겠냐!


“그…내가 조금 곤란해져서 그래, 응?”


“그러니까 네가 곤란해지는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소리다.”


김독자는 결국,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땐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전쟁이 시작되는 날이 다가왔다.


*


“이번 전투는 나와 김좌진 장군, 두 개의 부대로 나누어서 일본을 각개격파하는 작전이오. 유격전으로 힘을 빼놓으며 유인한 후, 험난한 산에서 매복공격을 하시오. 그리하면, 10배정도 되는 병력도 이길 수 있소이다.”


검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용맹한 호랑이 상의 장군이 작전을 설명하였다. 그의 이름은 홍범도. 봉오동 전투의 주역이었다.


“알겠소. 회의 결과, 우리 부대는 지형이 험난한 백운평 개곡으로 매복지를 정하였소.”


홍범도 장군보다 조금 더 긴 콧수염. 굵은 눈썹의 사내가 그 말에 답하였다. 김좌진 장군이었다.


“옳은 선택이오.”


홍범도 장군이 김좌진 장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꼭, 살아서 만납시다.”


회의가 끝난 홍범도 장군은 밖으로 나왔다. 철저하게 훈련된 1400여명의 군사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정렬해 있었다.


“우리는 와룡촌으로 간다. 일본군 놈들이 김 장군의 군대를 추격해오면 우리가 잡는다.”


바야흐로 청산리 전투의 시작이었다.


*


“희원씨.”


“네.”


“우리, 살아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길 빌어야죠.”


“희원씨, 누가 희원씨 죽이려 하면, 내가 대신 죽어줄게요.”


“아니에요. 스스로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자, 갑시다.”


김좌진 장군의 지휘 아래에, 1,600여명의 독립군이 백운평으로 향했다.


*


저벅, 저벅


험난한 산골 사이로 10000명 정도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워낙에 험난한 산골이기에 일본군들은 조심히 산길을 헤쳐 나갔다.


100보


주변은 동물 한 마리도 없는 듯 고요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하늘이 이들에게 내리는 심판이 앞에 있었다.


90보


바람마저 죽은 듯 산은 고요했다. 바람 때문에 나부끼던 잎들도, 아침을 알려주던 새들도 모두 침묵했다. 바야흐로 침묵의 숲이었다.


80보


일본군은 거의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예상한 격전지는 이곳보다 조금 더 먼 곳, 험하디 험한 이 곳에 매복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70보


지면이 울렸다. 마치 저승사자가 다가오는 것처럼, 조용하고, 고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60보


하늘은 맑았다. 너무나도 맑았지만, 그 넘어로 보이는 존재중 저들을 도우려는 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50보


조용히 손에 힘을 준다. 지금 경직되어 있는 손에 힘을 주면 안된다. 자신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산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있었다.


40보


가을이지만, 태양의 빛은 뜨거웠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인해 혹여 매복이 들킬까 노심초사 하였다.


30보


긴장되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적군일지 나일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이들은 처음으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20보


보인다. 일본군들이. 우리의 가족을 학살하고 친우의 목을 베고.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낸 저 망할 놈들이. 찢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국적(國賊)놈들이“
그리고 드디어


10보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그들이 있었다.


“전군! 공격하라!”


김좌진 장군의 허락에 우리는 무기를 들었다. 방아쇠를 당겨 적들의 심장을 꽤뚫었다. 죽어가는 이에 얼굴에는 당황, 놀람 그리고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공포의 대상이 바뀐 순간이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일방적인 총알의 방향은 한 방향이었다. 적들은 놀라서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독립군은 승기를 잡았다.


철컥, 착


이현성이 능숙하게 총알을 장전했다. 승기를 잡았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현성씨 조심해요.”


아무리 이쪽이 우세라고 해도 일본군은 제대로 된 곳에서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정예들이었다. 아마 금방 정신을 차리고 독립군에게 총구를 돌릴것이었다.
그 시간이 빨리오나 늦게오나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달려있었다.


“이익, 모두 공격하라! 상대는 겨우 조센징일 뿐이다!”


일본군 대령의 말에 저들은 곧 정신을 차렸다.


타다다당


수십발의 총알이 독립군에게로 날아왔다.


“…일단 후퇴한다. 이현성, 저들을 유인하시오.”


“네”


1,400명준 1,000가량이 산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이현성과 정희원은 수풀 사이에 숨으며 일본군을 유인하였다.


“쫒아라! 곧 일어날 전쟁이 조금 일찍 시작한 것일 뿐이다!”


일본군 간부의 말을 따라 일본군들이 일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현성과 정희원이 이끄는 부대 역시 일본군과의 거리를 좁혓다 벌렸다 하며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빨리 오세요!”


이현성의 도움으로 산 위 매복지까지 올라온 정희원이 일본인들을 도발하였다.


“赤いやつらよ! びびった?(아카이 아츠라요 미밋 다?)(빨갱이 놈들아, 쫄았냐?)”


정말로 머리가 빨개진 일본군인들이 젭싸게 산 위로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는 기관총과 함께 수많은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타다다당 타당 탕


빗발치는 총알 가운데서 일본안들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키며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으아아악!”


“살려ㅈ”


“후퇴! 후퇴하라!”


일본군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총알이 일으키는 파공성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일본군이 후퇴한 곳으로부터 엄청난 병력이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원군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