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타다닥. 타다닥. 탁. 타닥.
위잉. 위이잉.
이명이 들렸다.
뻐근한 목을 문지르면서 수영은 짧게 눈을 감았다 떠냈다.
몸 어딘가가 고장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작가였고. 작가는 질병을 여럿에 수시로 달고 다니는 직업이었다. 그 말인 즉슨 수영이 이명을 겪는 것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람 몸이 나락으로 추락을 시도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수영은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오래 하면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알게 되는 법이다. 긴 경력은 장장 16년의 학창시절로 시작해서. 그 후임은 작가 생활이 이었다. 교과서를 손에 쥐었을 때부터. 글 쓰기로 먹고 산 만큼 동료 겸 후배의 역할이기도 했다.
수영은 당연히 해결법과 티를 내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전자는 도움 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해도. 후자는 유용했다.
모니터를 귀 대비 이상 적은 눈이 응시 해도 될 법하다는 방향으로 바라보고. 그대로 시야 등을 고정한다. 그것이 티나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해결법은 으레 그렇듯 불가능한 휴식이었고.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유는 모호해서 명확하지 않다.
그렇게 수영은 아프다는 것을 티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을 알면 걱정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탓이었다.
"수영씨, 안 피곤해요? 잠도 못 자고 쓰는 것 같던데."
상아가 수영을 부른다. 그러나 수영은 뒤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괜찮아, 필요한 만큼은 자니까."
"어머, 볼 때마다 쓰면서도요?"
"빨리 해놔야 시간이 남지. 정해진 시간 동안은 무조건 쓰는 거 알잖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유로 이 때는 상아를 바라보지 않는다.
쓰지 못하는 이유. 단순히 잔소리에 의해 금지 당해서 따위의 애들 장난 같은 이유가 아니다.
한 번 본다면 시선을 떼내지 못 할까봐. 그 이유였다.
일종의 합법적이고 긍정적인 마약. 중독적인 수치를 따지자면 상아는 수영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독자라는 위치의 작가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아님에도. 작가 이전의 수영에게 필요했다. 안정을 준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모르핀으로 봐도 옳았다.
수영은 불만스럽게 입술을 비죽였다. 뒤에서는 총분히 보일 정도로.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상아의 앞에서만 아이처럼 굴었다. 장난스러운 연인이 그렇듯 수영은 그녀에게 그랬다.
수영이 어리광을 부리는 것은 오직 상아가 있을 때만이다. 그녀의 부모-서류조차도 그들의 피가 이어져 있다고 증명해주지 못하는 자들의 앞에서도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수영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은 먹고 살게한 글 재주나 본인도 아닌 상아였다.
위잉. 위이이잉.
탁. 타다닥. 타닥.
수영은 키보드의 자판을 두드렸고 키패드가 눌리면서 화면에 활자가 써졌다.
모니터에 떠 있는 것은 연애 이야기 중 하나. 수영이 쓰는 것은 로맨스 소설이었으므로 당연했다.
읽은 감상으로는 전에는 눈꼴사나워 했을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수영은 막힘없이 써내고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이 손을 잡는 장면이었다. 수영은 스킨십이 나오는 장면을 쓰고 있었다.
"야, 유상아. 나 손 좀 잡아줘라."
"왜요, 수영씨. 손 잡고 싶어졌어요?"
"스킨십 장면 써야 하는 것도 있고 겸사겸사."
수영은 상아의 손을 잡았다. 얼굴은 보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수영은 남은 손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잡은 손의 느끼는 것에 집중하면서. 그 이유는 글을 써내는 것 이외에도 있었다. 또다른 이유란 본래의 목적이기도 하다.
스킨십 장면을 쓰는 데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잡은 손의 촉감이 어떤 지. 그것을 수영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상아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잊지 않았다.
그저 수영은 하나라도 손을 잡을 이유가 필요했을 뿐이다.
수영은 상아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따뜻했고 보드라웠다. 생생한 감각이 손 끝의 말초신경을 타고 신경을 자극했다.
수영은 상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을 알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상아가 마냥 웃어주지는 못할테니까.
"수영씨, 얼굴 한 번만 봐줄래요?"
"싫어. 조금만 더 있다가 보면 안될까, 응?"
"수영씨, 제 얼굴을 봐요. 안 보면 멍청이라고 소문 낼거에요."
"전에는 그런 말 입에 올리지도 않더니 이제는 잘 쓰네. 귀한집 아가씨는 어디로 가버린 거야?"
거듭되는 상아의 설득에 수영은 결국 고개를 돌렸다. 결국 지는 것은 언제나 그녀였으므로.
그녀가 본 것은,
매정할 정도로 흰 벽밖에 없었다.
그래, 그녀도 알았다.
더 이상 상아는 이곳에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상아를 느꼈다.
그녀의 시신경을 제외한 신경 하나 하나가 상아에 대한 정보를 보냈다.
수영은 작가였다. 작가는 글을 썼다.
작가가 잠을 줄여가면서 글을 쓰는 이유. 삶을 꾸역꾸역 지탱해주는 일을 할당량의 시간동안 해내고. 남은 시간은 흔적-편린으로 부르기도 민망한 기억 조각들을 되새기기 위해서. 그 이유로 작가는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은 고장이 났다. 이명, 환각은 당연한 증세였다.
작가의 몸은 수시로 질병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