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간은 시계가 깨졌을 때, 항상 뒤로 흘러가곤 했다. 시계는 다시 한 번, 시곗바늘을 반대로 돌렸을 뿐이다.



 그는 마른 기침을 하며 눈을 떠냈다. 폐를 장창에 찔렸던 탓이다. 이미 상처는 사라졌으나. 생생하기 그지 없었다는 것이 그가 방금 전 부상을 입었음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눈을 뜨기 전에 창에 찔렸다. 그의 심장이 멎었음을. 그는 마지막의 순간에 깨달았다. 또한 다시 뛸 것을. 시간을 또다시 거슬를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배후성이 건넨 성흔으로 인하여 시간을 되돌리고. 숨을 틔었다. 그의 죽음으로 발현하는 저주가 그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벽지가 발라진 천장이 보였다. 다시끔 인지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때 쯤. 처음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어째서 이곳에…? 음절 단위의 집합이 그것이었다.

 또한 스마트폰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알아야 할 정보에는 시간과. 날짜가 있다. 그러나 그의 주머니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이불자락 뿐이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지하철이었다. 좌석에 앉아. 벗어날 길도 없는, 달리는 철 짐승의 뱃속에. 자리를 잡고 다시 생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천 번도 넘게. 반복해왔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낡은 옥탑방 쪽방의 누런색 벽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전단지들. 학교에서 무료로 나눠주던 연례행사의 증거, 달력이 있었다.

 그는 달력을 바라본다. 그가 살던 해의 십년 전. 그가 열여덟 살 이던 때의 연도가. 달력 상단에 쓰여있다.

 달력의 옆. 튀어나온 못에는 교복이 걸려있다. 시선을 돌려 교복을 바라본다. 네모난 명찰에 그의 이름인 "유중혁" 석 자가 쓰여 있었다.

 유중혁은 바닥에서, 구식 폴더폰을 찾아냈다. 배터리가 절반 이상 차 있을 지는 고사하고. 전원이 켜져 있을 지 조차 알 수 없는 폴더폰을 킨다. "목" 라는 글자가 날짜와 함께 화면 가운데에 떠 있다. 해가 중천에 가깝게 걸린 아침 열 한시. 그러나 그는 곧 이 날이 재량휴업일 이었음을 떠올려냈다. 화면이 띄운 날짜는. 달력에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

 폴더폰의 배터리는 40. 유중혁은 전원을 킨 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 달의 전기는 아직 끊기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냈다. 또한 게임을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나, 그에게 대줄 컴퓨터의 전원을 킬 비용은 주말에 한정해 허락되었다. 마지막으로 유미아는 유치원에 있을 것을 깨달았다.

 있는 재료를 그러모아 요리를 해낸 후에. 밥이라도 괜찮은 곳에서 먹길 바라며 보낸 것이다. 밥 두어끼를 거르면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 벽지가 습기에 절어 떨어지는 방은. 열여덟 살에게는 충분하나 네 살에게는 충분치 않다. 그 또한 그런 자각을 할 때가. 인도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었음을 깨닳는다.

 그러나 살 만 하므로. 그가 직접 버는 돈 이외의 것이 있었으므로 가능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허울뿐인 정책이나, 약간의 도움이 되었던 유권자의 공약은 실재했다. 부모도 없으며 뚝 떨어진 듯 나타난 고아인 그는 운 좋게 대상에 들어간 것이다.

 유중혁은 전단지 뒷 면을 메모지 삼아. 잉크가 터진 볼펜으로 그가 겪은 것의 요약을 적었다. 십년 전으로 돌아왔다. 스타스트림은 이 세계선에 아직이긴 하나 도착하지 않았다. 또한 변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돈도 없는 주제에 폰을 켜놓은 것은 그 목적 또한 있다. 유미아, 혹은 유미아의 유치원에서 연락할 경우를 고려하기 위해.

 유중혁은 고개를 들었다. 금 간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십년 이후의 그가 보아왔던 것과는 달랐다.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는 직감적인 예감이 근거도 없이 들려온다.

 알 수 없는 사건이 터져 인간관계에 변화가 생기던지. 아니면 인간관계에 변화가 생겨 사건이 터지던 지. 그 역이든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순환을 거듭하든 간에. 시간이 뒤로 돌아가듯 예측할 수 없는 동시에 일어날 리가 없는 것들이 일어날 것이다.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떠들어댄다. 유중혁은 병상에서 깨어난 동료들이. 뚝 뚝 끊기며 앞 뒤, 서두, 종결 조차 없는 말을 떠들던 것을. 확신하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므로, 유중혁은 그 스스로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정신병원에서 방금 탈출한 미친 놈의 말이 더 그럴듯 할 것이다. 그는 확언할 수 있었다. 수가 많은 탓에 정상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미친 놈들 뿐이었다. 그 미친 놈들은 멸망 이후의 수가 더욱 많다. 그도 그들 중 한명이고.

 다만 십년 후에. 지하철을 타고, 수업을 듣고, 병원에서 진료를 할 날에 다다른다면. 어떤 이의 말이 옳은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가. 그에 대해 유중혁은 질문을 던졌다. 프로게이머의 일은 순수익 30만원을 벌 쯤에 그만 둘 준비를 할 것이다. 가스비나 수도비들을 제외하고.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목돈을. 그에게는 시간과 돈이 동시에 필요했다.

  유중혁은 미래에 대한 정보를 활용할 것이다. 회귀자의 약점은 틀어진 시간이다. 그러나 그가 이용할 것은 큰 흐름이었고. 그는 흐름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강하지 않다. 그의 존재는 유미아를 제외한 이들에게 노숙자의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고. 구단에게는 그가 써먹기 좋다는 이점이 있을 뿐. 그 외의 것은 다름이 없을 터였다.

 성장하는 회사들과 시간대를 덧붙여. 기록을 완성했다. 작게 접어 주머니에 넣어둔다면 만족스럽게 될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복권 따위에 그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것들 만으로도 충분히 족했다. 유중혁은 종이를 작게 접었고, 주머니 안 쪽 지갑에 넣었다. 그가 항상 들고 다니는 것 중에. 또한 그의 소지품 중에 가장 멀쩡한 것들 중 하나였다.

 유중혁은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외출준비를 마쳤다. 화면 밝기를 최대한 낮춘 폴더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는 문 밖을 나섰다. 유중혁은 동네 슈퍼를 향해 걸었다.

 이 날은 장을 보기로 정한 날이었다. 그와 유미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식량이다. 적어도. 유미아에게는 식량이 필요했다.

 멸망한 세상에서 벗어나니. 여러가지 자각이 든다. 지금의 그도 인도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가장 놀랍다. 허나 이는 기억조차 흐릿한 과거의 그를, 흉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멸망하기 이전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 만한 개자식도 없을 것이다. 이는 그도 알고 있었다. 몇 번의 죽음을 거듭하기 전. 멸망을 40번째 겪을 때마저도. 다만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 변할 리가 없으니. 그는 여태껏 개자식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라는 자기합리화도 그만 두기로 결정한다. 그가 인도주의자에 관심이 생겼다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 동네 슈퍼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주의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니르바나 라던가. 그가 개자식인 이유도 그것에 있을 수도 있겠지.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두가 개자식일 것이다.

 유중혁은 슈퍼에서 양파 묶음을 집었다. 작은 계란판을 쥐고 싼 야채도 몇 개 고른 뒤. 계산대로 걸어갔다. 슈퍼에 간식을 사 먹기 위해 온 꼬마가 그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어, 안녕하세요?"


 유중혁은 손을 흔들어 준 뒤, 다시 걸어갔다. 웃음 따위가 그와 어울릴 리는 없고. 그를 보고도 울지 않는 아이는 오랜만인 탓에 오작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한테는 유미아를 본 것도 오래 전의 일이었다.

 지갑을 꺼낸 유중혁은 계산대에 살 것들을 내려놓았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금액들을 노려보듯 바라본 뒤, 돈을 꺼내 계산했다. 또한 그의 딴에는 뻔뻔스럽게 비닐봉지도 요구했다. 비닐봉지는 서비스로 받을 수 있던 시절. 고아에 뛰어날 것도 없는 그가 하기에는 뻔뻔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나. 못할 것도 없었다. 뻔뻔하다는 이유로 가릴 것 있던 시절은 그의 인생에 존재하던 적도 없다.

 계산하던 사장은 인상을 쓰며 봉투를 넘겨 주었다. 슈퍼에 올 때 마다. 매번 일어나는 일이다.

 봉다리에 물건들을 집어 넣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기가 울린 적은 없었으니. 변한 것은 그 뿐일지도 모른다. 유미아의 하원까지는 2시간이 남았을 무렵. 물건들을 방 바닥에 내려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누군가한테 들었던가. 요리를 잘 하니 식당이라도 차려보라고.

 그러나 그럴 돈도 없었다. 또한 그는 가게를 못 할 것이다. 그가 요리를 해 주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었다. 우선적으로는 유미아가 있다. 이현성, 신유승, 이지혜, 김남운, 이설화. 끼워넣자면 우리엘까지.

 문득 묻힌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먹고 살만해진 탓이다. 그의 옷자락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다. 동료, 적, 이름조차 모르는 타인. 그 누구의 피 조차도. 묻어있지 않았다.

 다만 튄 양파즙이 묻어있을 뿐이다. 부엌갈을 쥐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얼굴에 묻은 즙을 닦아내고, 불에 양파를 볶았다. 계란을 넣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유중혁은 물에 불린 쌀을 냄비에 넣고 밥을 지었다. 하얀 김이 닫힌 뚜껑사이로 퍼져갔다. 밥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참으로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그에게 같이 밥을 먹을 상대가 있었나. 이 때의 그에게는 있었다.

 간단한 요리를 마치고. 유중혁은 또다시 외출준비를 했다. 유미아의 하원 시간이 가까워졌다. 옷을 가볍게 털고, 최대한 말끔히 보이도록 한 뒤에 나섰다.

 유중혁은 유치원으로 향했다. 음식 냄새가 나고,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곳에. 유미아의 유치원이 있다. 아이가 봐야 할 곳은, 좁은 집이 아니라 이런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네는 색채부터가 집과는 달랐다.

 유중혁은 유치원에 도착했다. 이 날의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뛰어 나왔다. 그 중에는 유미아도 있었다.


"오뺘, 와쩌염?"


 네 살 밖에 되지 않은 유미아가. 그에게 달려와 품에 와락 안겼다. 따뜻한 숨결이, 그와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사실이 기쁘다면, 그것만으로 그가 기쁨을 느낀다면 믿겠는가? 그 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허나 사실이었다.

 유미아를 끌어안은 그는 유치원 교사들을 향해 허리를 한 번 숙이고. 집으로 걸었다. 유중혁은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별 일은 없었나."

"그래염. 별일 업서쪄여."

"유미아, 말투는 좀... 아니다. 나중에 고치면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