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맞은편 골목길.

 이길영과 신유승은 집 앞에 모여있다가 돌아가는 기자들을 보고 있었다.


-야, 방금 그거 독자 형 맞지?
-맞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가까운 일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둘이었.....지만.


 -... 그나저나 배고픈데.
 -나도.


 ..밥이 더 중요했다.



...



 기사가 쓰이는 건 오늘 밤이려나.

 김독자는 방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수영과 자신은 잠깐 소문에 휩싸이겠지만 그 이후 쓸 거리가 없으면 잠잠해질 것이다.

 생각이 오늘 있던 일을 되짚어보는 방향으로 흐르자 김독자는 한수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답지 않게 이상한 행동을 했지.'


 그리고 그걸로 끝.

 애초에 그가 자신에게 갖고 있던 부정적인 전제, 자신이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동료들에 의해 많이 나아졌지만, 그 잔재인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해줄 존재는 없을 것이다'라는 무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수영의 의미심장한, 꽤나 노골적인 말과 행동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수영의 방이 있는 천장을 잠시 올려다보던 김독자는 이내 한수영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읽는 소설을 물어본 건 뭐지? 소설을 이제 써주려나?'


 기왕이면 빨리 써줬으면 좋겠는데.

 김독자는 한수영과의 대화를 회상하면서 중얼거렸다.


-나 요즘은 소설 읽는 거 없어.
-뭐?
-네거 읽기로 했던 거 기다리고 있다고. 난 소설 볼 때 하나씩만 보니까, 네 거 먼저 다 봐야지.
-...알았어.


 그때 한수영의 귀가 살짝 붉어졌던 것을, 김독자는 보지 못 했다.

 혼자 그렇게 멍하니 있던 김독자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온 소리에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음.

 맛있는 냄새가 난다.



...



 ''잘 먹겠습니다!''


 많이 배고팠는지, 아이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유중혁이 요리 담당인 날은 항상 다 같이 밥을 먹는다.

 오늘 담당이 유중혁이어서,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느라 식탁이 좁아보일 지경이었다.

 하루는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식탁 하나 새로 살까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 맘대로 해라.''

 ''다 같이 먹을 때 가까워서 좋은데요, 뭐. 함께한다는 느낌도 더 느껴지고요. 굳이 바꾸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딱히 필요 없지 않냐? 매일 이렇게 먹는 것도 아니고.''


 ...음, 그래서 유지 중인데.


 ''지혜야.''

 ''....어, 응? 왜, 아저씨?''

 ''..아니다.''

 ''독자씨, 무슨 일 있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수상한데~.''


 정희원이 나와 이지혜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가 그 사이에 앉아있던 한수영을 보고는 말했다.


 ''수영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없어. 밥이나 먹자고. 우리 셰프님 화내시기 전에.''

 ''나는 화내지 않는다.''

 ''예~예~. 쨌든.''


 설렁설렁 대답한 한수영이 말없이 밥을 먹자, 잠시 의아하게 쳐다보던 일행들은 다시 식사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다 끝나고,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때 나는 한수영을 잠깐 불러세웠다.


 ''야, 한수영.''

 ''...?''

 ''소설 써주기로 했던 거, 어떤 장르로 쓸 거냐?''

 ''로맨스.''

 ''뭐?''

 ''너가 원한다던, 너만을 위한 3천 편짜리 로맨스를 써준다고.''

 ''...그렇게 말하니까 프로포즈 같은 거 알지?''

 ''...헛소리 말고 기다리기나 해. 며칠 내로 첫편 써서 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한수영은 입꼬리를 씹 올리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로맨스라...새롭네.

 ...기대되는데?



...



 다음날 아침.

 유중혁은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 둘 식탁이 채워지면서 나는 향긋한 음식냄새에 동료들이 눈을 반짝이며 식탁에 앉는 것을 보며, 그는 슬쩍 웃고선 TV를 켰다.

 익숙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네, 아침 7시 연애 기사 프로그램 '아연한 기사'입니다. 이번에 들어온 소식은 무척이나 놀라운데요, 바로 김독자 컴퍼니의 김독자 대표와 흑염마황 한수영 씨의 소식입니다. 김독자 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둘은 각별한 사이로.../


 ''어머, 독자씨. 언제 그렇고 그런...''

 ''김독자. 저게 무슨 소린지 설명해라. 왜 숨기고 있었지?''


 김독자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 그게 말이ㅈㅡ.''

 ''안 되는데! 독자 형은 내꺼야!!''

 ''뭔 소리야! 독자 아저씨가 왜 네 거야!''

 ''축하해요, 독자씨.''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김독자는 쩔쩔매다가 한수영한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걸 지켜보던 한수영은 자신에게 쏠린 모두의 시선에 피식 웃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부웠다.


 ''...뭐, 그렇다는데?''

 ''야, 한수ㅇ...''

 ''진짜로??''

 ''독자 씨, 저도 이건 궁금하기 때문에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건 새치기야! 내가 독자 형 제일 먼저 침 발랐어!!''

 ''어머머.''

 ''...뭐야, 그럼 난 어제 옥상에 왜 매달렸던 거야..?''


 이렇게까지 설명하기 힘들 줄은 몰랐는데.

 김독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독자. 밥상에서 한숨 쉬지 마라.''

 ''...알았어.''


 다시 삼켰다.



...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 기분마냥 흐릿한 것이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악몽 같던 아침 식사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10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면.

 여전히 백수인 나는 이제 체념하고 백수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피아노.

 몰래 배워서 서프라이즈로 놀래켜 주기 위해 다들 일하러 갔을 때 들여왔다.

 그동안의 용돈을 몰래 모아둔 보람이 있었다.

 ...용돈이라고 하니까 뭔가 좀 슬프지만.


 ''배우는 건 교재랑 인터넷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음악 스킬 배워두는 건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다시 피아노 교재를 펼치고 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통역 스킬이라도 써야되나?

 문득, 바람의 길을 배우려 했던 때가 떠올라 등줄기에 식은 땀 한 방울이 흘렀다.

 설마 훨씬 많은 시간을 들일 건데 못하진 않겠지..?

 ...여러모로 불안한 느낌이 든다.



...



 한수영은 대학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야, 오늘 아침 뉴스 봤냐?
-오늘 늦잠 자서 못 봤는데?
-아니, 그걸 못 봤냐? 구원의 마왕이 한수...


 또각.

 신나서 설명하려던 학생의 얼굴이 굳더니 한수영에게 허겁지겁 인사하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렇게 될 건 알고 있긴 했는데...''


 쯧.

 성가시네.

 휴게실에서 잠시 햇볕을 쬐려던 한수영은 교수들의 수다 소리에 발을 돌려 교수실로 향했다.

 김독자, 한수영, 김독자, 한수영...

 학교 내에서 어딜 가든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을 노려보다가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한수영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 뭐 하고 있으려나.

 ...아주 조금 일찍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우리엘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김독자 컴퍼니 하우스에 가고 있었다.

 이번에 제천대성, 흑염룡과 함께 낸 신곡 <기적>.

 둘 또한 김독자 컴퍼니에 가고 싶어 했지만 따로 일정이 있는 바람에 못 왔다.

 김독자가 돌아오면서 함께 회복된 힘으로 다 무시하고 다녀도 되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상식'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


 집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안쪽이 소란스러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충격적인 풍경.


 [한수영..?]


 한수영이 기절해서 쓰러져 있었다.

 동료들이 이설화를 불렀고, 허겁지겁 와서 한수영을 살피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 과로네요.''



...



 우리엘이 들어오는 걸 느껴서 현관 앞으로 가는데 한수영이 쓰러져 있었다.

 이설화가 올 때까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로라는 말을 듣고선 안심했던 것은 기억이 났다.

 하루가 지난 지금은 한수영의 방에 들어와서 상태를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한수영을 보고서 왜 그렇게 과하게 걱정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어 되돌아보던 그때.


 ''...으음.....뭐야? 김독자?''

 ''여어, 깼어?''

 ''...네가 왜 내 방에 있냐?''


 한수영이 일어나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모습에 설명을 좀 해주었다.

 과로 때문에 쓰러졌었고, 그때 찾아왔던 우리엘은 걱정하면서 빨리 나으라고 하고 갔다고.

 지금은 하루가 지나서 상태를 보러 왔다고 말하자 한수영이 시계를 쳐다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시발, 마감 놓쳤다! 야, 김독자, 저기 있는 내 폰 좀ㅡ''


 그 말을 듣던 나는 왠지 울컥 화가 나서 말했다.


 ''야, 한수영.''

 ''...어?''

 ''네가 더 중요하지 일이 중요하냐? 좀 쉴 땐 쉬고, 힘들면 말했어야 될 거 아냐.''

 ''...''

 ''얼굴도 붉고, 열 나는 거 같은데 이참에 좀 쉬어라. 내가 네 직장에 다 연락해둘 테니까, 네 몸이나 좀 챙겨. 그리고, 폰은 압수다.''

 ''야, 김독자ㅡ''


 뭐라 말하려던 한수영을 냅두고 녀석의 폰과 노트북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뭐에 그리 화가 났는지, 아직도 목이 턱 막히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내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걸터앉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결론은 빠르게 나왔고.

 몇 번이고 다른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답은 하나뿐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수영을 좋아하는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하게.

 문득, 명계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후보 2번은 성격이 날카롭고 독설을 자주 하긴 하지만 왕자님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왕자님의 음침한 취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심지어 그 취미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떡하면 좋냐, 진짜...''


 상상도 못 했지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결론은 무자비했다.

 이전과 달리 지금의 문제는 답을 찾을 이야기도 없다.

 상황에 얽혀있던 문제가 아닌 사람에 대한 문제라서 완전히 다르니까.

 그리고 한수영이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면서 동료들과 시나리오를 돌파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건...


 ''...망했는데?''







*회상한 부분 : 전지적 독자 시점 388화 72%




ps. 지금와서 생각난 건데 설정집(?)이랑 외전 못 봐서 등장인물 성격이 좀 안 맞을 수 있으니까 알아서 고려하셈(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