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순이는 애연가이자, 애주가였다.


남친 회붕이는 언제나 회순이의 술과 담배를 끊으려 노력했지만

회순이는


"자기가 없을 때, 날 위로해 주는 건 얘네 뿐이야... 서로 직장도 있는데, 자기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줄 수는 없잖아?"


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곤 했다.



회붕이도 차마 말릴 수는 없었다.


담배를 피지 않는 그는, 직장 상사들과 동기들이 담배를 피면서 업무 관련 얘기를 하고, 통보하는 데에 신물이 났다.

억지로 흡연실에 같이 들어갔지만, 매캐한 니코틴 냄새는 그를 괴롭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회식 때 모두가 '위하여' 라고 외치며 취하고, 그러면서 서로 2차를 논하면서 자기를 빠트렸다.

억지로 한 모금 해 보았지만, 알코올은 철저히 그를 외면했다.


직장 생활에서는

그래서 회붕이보다는, 회순이가 더 잘 녹아들었다.



그리고 회순이 또한

회붕이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술은 언제나 바에 가서 마시거나, 혼자 마셨다.

여럿이 마시는 자리거나, 다른 여자와만 둘이 마셨다.

여자의 수가 많이 적은 술자리는, 다른 핑계를 대며 빠져나왔다.


담배는, 회붕이를 만나기 전에만 피우고, 서로 집으로 배웅해 준 뒤에나 피웠다.

피고 난 후엔, 입 안에 구강청결제를 머금고 가글을 하곤 했다.

흡연실에 갔다 온 후에는 옷에 탈취제를 뿌리곤 했다.



회붕이는 그래서

회순이가 자기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아서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상견례 자리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 날 오전은 업무 스트레스가 쌓였다.

담배는 커녕, 화장실조차 가기 눈치보일 정도로 바빴고

회순이는 손을 살짝 떨기 시작했다.


오후는 더 가관이었다.

서로 퇴근 후 만나기로 했으니, 한 대 정도는 미리 피우고 가야지 했던 회순이는

부사수의 멍청한 실수 때문에 욕설을 내뱉으며 연장 근무를 해야 했다.



부랴부랴 상견례 자리에 갔을 때

이미 회순이의 부모님은 안절부절 하고 있었고

회붕이의 부모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슬쩍 나와서

담배를 한 대 태웠다.


회붕이의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회순이를 보지 못했다고 했고

회붕이의 아버지는 밖으로 잠깐 나가다가, 담배를 달게 태우는 회순이를 보았다.


억지로 참고 참은 회붕이의 부모님은

무심코 회순이의 아버지가 시킨 소주를

회순이가 달게 마시는 것까지 보았다.




'내 아들도 피우지 않는 담배를, 마시지 않는 술을, 내 며느리가 즐기게 둘 수는 없다.'


회붕이의 아버지는 그리 말하며 반대했다.


회순이가 사회 평판도 더 좋고, 외모도 괜찮지만

술담배를 한꺼번에 하는 며느리는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세상이 어느 시대인데 거 참...'


회순이의 아버지 역시 반대했다.


요즘 세상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게 흠도 아니고

술은 오히려 못 하는 게 사회생활에 흠일 터인데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고작 거기에 막혔다는 게 어이없어서.



결혼을 약속했던 둘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갈라설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회붕이는 회순이를 놓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회순이가 참아 왔던 모습을 봐 왔으니까.


자신을 위해서.


회순이도 회붕이를 놓을 수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가장 큰 이해자는, 부모님이 아니고 회붕이었으니까.



회순이는 그래서 결심했다.


술담배를 끊고, 다른 걸 찾아서라도 회붕이와 다시 이어지고 싶다고.




처음엔 금단현상에 괴로웠다.

하지만, 의외로 혹하게 된 쉬운 방법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전남친 잊는 법. 주식을 시작한다. 주가 볼때마다 벌벌떨려서 전남친 금방 잊음.'


그러면

술담배도 잊을 수 있을까?




결혼 자금을 제외한 재산을

모조리 주식에 때려박았다.


대기업, 우량주는 그래프가 요동치지 않아 긴장감이 없었다.

작전주가 의심되는 주식을 구매해서, 손을 벌벌 떨며 털 때만을 찾았다.


서서히 이득을 보고 나니 지루해졌다.

이건 스릴이 부족하다.



다음은 경마였다.


도박이라고는 해도, 경마는 나름 스포츠다.

말들이 어떤 컨디션을 가졌는지, 기수가 누구인지, 코스가 어떻고 날씨가 어떤지까지 공부해가며

다시 여유재산을 꼴아박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리 공부를 해 오곤 했고

그래서 대부분 정배로 소소하게만 이득을 따게 되었다.


그래서 정배만으로는 회순이를 스릴에 담게 하기 부족했다.




그리고

상견례 자리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합격으로 끝났다.


회순이는 손을 벌벌 떨고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해댔지만

술도 한 잔 하지 않고, 담배도 한 대 피지 않았다.


회순이의 부모님은 조금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회순이와 회붕이가 기뻐하니 넘겼다.

회붕이의 부모님은 술담배를 끊어버린 며느리를 대견히 여겼다.


회붕이 혼자, 오로지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꼈다.




"지금 뭐 해."


의문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아니, 말 안 해도 돼. 당장 때려 치워. 난 너 술도 담배도 다 참을 수 있어. 사람이 망가지면 안 돼."


손을 벌벌 떨며 돈이 오고가는 전쟁터를 오가는 회순이에게

회붕이의 그 말은 공허한 외침과 같았다.


"망가져? 내가? 아니, 전혀."


그렇게 회순이는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며

서서히 더 강한 것을 원했다.




바람은 필 수 없었다.


뇌가 스릴과 쾌감에 완전히 불타버려서

바람까지 피워버리면 진짜 끝장인 건 알겠으니까.

회붕이를 배신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고 싶으니까.

한 번이라도 바람을 피우면, 자기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적어도 그 수준의 스릴이 아니면

그러면 술담배를 잊을 수 없을 듯 했다.


아니, 다시 술과 담배를 즐기더라도

더 큰 스릴을 원했다.




그리고

회순이는 바이크를 하나 구매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바이크가 순간순간 튀어올랐고

헬멧을 쓴 머리가 나뭇가지에 부딛힐 때마다 아찔했다.



회순이는 카지노를 출입하기 시작했다.


'결혼식 자금은 부모님과 회붕이에게 손 벌리지 뭐' 하면서

주사위가 돌아가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홀에, 짝에, 6눈과 1눈에 몸이 전율했다.




정신을 차려 보면

자동차도, 집도 압류되어 있었다.


빨간 딱지는 난생 처음 봤다.


회붕이는 그저 한숨만 푹 쉬고 있었고

회순이는 부모님과, 시부모님께 이 사실을 감추는 것에서조차 스릴을 느끼는 미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분간 병원에 다녀. 예약해뒀어."


회붕이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아내를 믿었다.



회순이는

자동차가 압류당했다는 핑계로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에 가서 치료 일정을 취소한 뒤

환불받은 금액으로 카지노로 달렸다.




살아있다.

자신은 살아있다.


칩 무더기가 칩 한 줌이 되고, 곧 수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짜릿했다.

오토바이가 150km/h가 되고, 200km/h가 되어가면서 더 짜릿했다.


이게 살아있는 거지

답답한 인생에, 이것만이 내가 살아있다 느끼는 스릴이고 쾌감이지.


그 생각은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의해 중지되었다.




불행히도

회순이는 살아남았다.


회붕이는 배신감 가득한 눈초리로, 이혼 서류를 준비해 왔다.

회순이의 부모님은 차라리 술담배를 즐기지 그랬냐며 울었다.


다리 둘, 오른 팔 한 짝, 안면 반 쪽이 날아가버린 회순이는

남편도 행복한 미래도 날아가버린 회순이는


처음부터 이런 거 몰랐으면 좋을 거라고 울다가

차라리 회붕이와 자신을 위해서라도 서로 헤어지는 게 좋았을 거라고 울다가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한번 더 울다가


깨진 액정의 핸드폰 알람에 정신을 차렸다.


'수익률 1000% 달성! 회순님의 투자만을 기다립니다!'


별 것 아닌 광고에

회순이는 후회하면서도

후회하면서도


다시 스릴을 찾기 위해서

왼손을 꼼지락거리며


주식 투기를 시작했다.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다시 몸을 담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