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도착하고 스즈카와 나는 함께 교실에 들어갔다.


교실에 스즈카가 들어오자마자 반의 분위기는 활기를 띄었다.

차례차례 스즈카의 주변으로 반 친구들이 모였다는 얘기지.

모두 스즈카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을거다.


스즈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모두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 궤도에서 살짝 이탈해, 내 자리로 향했다.


내가 옆에 있으면, 스즈카와 이야기하고 싶은 녀석들에겐 

방해가 될 수도 있기에 굳이 신경쓰게 하고 싶진 않았다.


창가의 맨 뒷자리

만화나 라노벨 주인공의 지정석이나 다름 없는 

그 자리가 바로 내 자리였다.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자 자연스레 시선이 스즈카에게로 향했다.

스즈카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잡담하는 중이었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모두와 자연스레 대화하는 걸 보니 대단하다 싶었다.


아마 이런 점이 스즈카를 좋아하게끔 되는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내 앞자리에 사람이 앉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안녕~" 나는 앞자리 녀석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녀석은 조금만 돌아보더니 "..응"하고 얼굴만 돌려

짧게 인사를 받아줬다.


뭐, 특별한 교류는 전혀 없지만 일단은 초등학교부터 알고 있던 녀석.


쿠라키 마유미.


이 녀석은 또 다른 의미로 스즈카와 같이 눈에 띄는 녀석이다.

양키같은 외관에서 나오는 선입견같은 건진 몰라도

반의 여자무리들로부턴 조금 경원시되고 있었다.


그래도 이쁘긴 해서 수작 부리는 남자들은 꽤 있었지만

쿠라키는 그런 남자들마저대부분 무시해버리는 바람에 

친한 친구도 없이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은 땡땡이라도 치는지 자리에 없을때도 있다만

적어도 아침 조회 시간엔 앞자리에 앉은 이 녀석과 대부분 만났었지.


쿠라키가 자리에 있으면 뭔가 공간이 분리된듯 

아무도 접근하질 않아 창가 쪽이 오히려 고요해진다.


이 고요한 분위기가 상념이나 고민따위를 찬찬히 숙고하기에 

딱 알맞았던지라 의외로 내 마음에 쏙 들었었지.


이런 고요함 속에서, 창 밖의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크리스마스에 스즈카와 둘이서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히나타! 미키짱과 아이짱도 같이 가고 싶대! 바로 구해버렸어!"

"버..벌써? 이젠 무리네.."

"왜 그래? 하렘이라 기뻐?"

"아, 아무것도 아냐. 하렘이라니, 앞으로 남자도 모으지?"

"역시 히나타! 날 잘 알고 있네~"

"하아, 벌써 안 지 십년이 넘었으니까.."


점심 도시락을 들고 내 옆자리로 온 스즈카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릴 해댔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항상 교실에서 스즈카와 다른 녀석들이랑 섞여서

먹는다. 스즈카는 오전 내내 권유하고 다녔는지

수족관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젠 데이트는 무리다. 한숨을 깊게 내뱉은 나였지만

뭐 그래도 크리스마스날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호재다

따윌 생각하며 내 자신을 달랬다.


"근데 같이 가도 진짜 괜찮아? 둘 만의 데이트인거 같은데.."

도시락을 손에 들고서 다가오며 말한 것은 반 친구인 미키.


"그럼 괜찮지! 모두 같이 있는게 제일 즐겁지. 안 그래? 히나타!"

"하핫,그렇네"라 웃으며 대답하지만, 날 전혀 의식하지 않는 스즈카

떄문에 마음은 절찬리, 좌절중이었다.


변하지 않는 일상. 언제나 겪어왔던 아침이 또 오겠지.

이런 나날들이 계속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즈카와 함께 등교하고, 스즈카와 섞여서 점심을 함께 먹고,

쉬는 시간엔 스즈카와 잡담을 하면서 그대로 하교 시간이 됐다.


스즈카와 나는 별도로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기에,

스즈카는 집에 갈 준비를 끝내고 내 자리로 다가왔다.


"다 챙겼어? 오늘 어디 들렸다 갈래?"

"또? 달달한 거라도 먹고 싶어졌어?"

"역시, 히나타! 날 잘 알아!"


물어보자마자 의도를 파악한 내게 스즈카는 만족한 표정을 보냈다.

기나긴 인연이다. 친구가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디 들렸다 가고 싶단

말을 꺼낼땐 필연적으로 달콤한게 먹고 싶다는거다.


"대단해 히나타" "두 사람 황혼부부 같네" 라며, 마음이 통한듯한

우리의 대화에 반 친구들이 감탄을 표현했다.


"그렇지, 폼으로 소꿉친구라 하는게 아니란 말씀~" 라며 내 등을 툭툭치는 스즈카.

"그렇지만, 스즈카는 나에 대해선 잘 모른단 말이지" 

"으..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었잖아.."

라며 투덜대는 걸 돌려주긴 했지만 황혼부부라던가 스즈카가 등을

쳐줬다는가 같은 걸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버렸다.


주변 사람들도, 스즈카 본인한테도 부부라는 걸 간접적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과 후엔 동아리 활동을 하는지라,

스즈카와는 둘이서만 하교하는 경우가 많다.

급하게 짐을 챙기고 막 출발하려고 했을 때였다.


바로 이 순간이, 지금 여기가,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분기점이었다.


"이치노세, 혹시 잠깐 볼 수 있을까?"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에 눈을 돌리니, 교실 입구엔 미소년이 서있었다.


저 녀석은 분명, 옆 반의 타니구치일텐데. 야구부의 에이스이자 4번타자인

만화같은 설정을 가진 녀석, 운동으로 다져져 몸매가 탄탄하고 남자다운 녀석.

남들이라면 별로일 반삭머리조차도 잘 어울릴만큼 멋진 얼굴을 가진 녀석.


"여기선 안 돼?"

"응. 괜찮다면 조용한 곳이 좋아"

"...응, 알았어"


스즈카는 잠깐 고민하더니 타니구치에게 긍정의 표시를 했다.


"미안, 히나타. 아까 얘긴 없던걸로 해줘. 오늘은 먼저 돌아가줄래?"

"....알았다. 그럼 갔다와"


내가 괜찮다는 의사표시를 보내자 스즈카는 가방을 들고 타니구치와

교실 밖으로 함께 나갔다.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질 무렵

교실 전체가 떠들썩했다.


"이거 이거, 고백이겠지!?"

"그렇지 그렇지. 타니구치, 전부터 스즈카를 좋아한다고 했다구!"

"화제의 미남 미녀 커플 탄생인가.."

"역시 히나타는 그저 소꿉친구였나"


시끄러운 반친구들을 흘겨보곤, 나는 조용히 교실을 나갔다.

감정을 숨기는데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먼저 약속한 건 나잖아?

거기다 스즈카가 권유한거잖아?

그런데도 다른 남자의 유혹에 스즈카가 넘어가버렸다.


저지할 수 없었던 나. 갑자기 튀어 나온 타니구치.


이것은 분노인가.

아니면 슬픔인가.

그러면 질투인가.


나에게로 향한건지

스즈카를 향한건지

그것도 아니면 타니구치인지..


질척질척해진 감정이 소용돌이쳐서,

혼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될 것만 같았다.


불현듯 타인에게 이 꺼림칙한 감정을 토해내버릴까 무서워,

나는 학교를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



그러니까, 교실 창문에서 쿠라키씨가 나를 보고 있었던것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던게 당연하겠지..